노래 몇 백곡과 손녀시대 뮤직비디오와 예능 출연 했을때 다운받았던 영상들(물론 이젠 손녀시대보다 김성규지만),그리고 수많
은 어플들과 연락처는 없어져도 안 아쉬웠다. 그 사진들만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베게를 잘근잘근 씹으며 속상한 마음을 풀어보려했지만 풀릴리가 있을까...
" 흐어악!!짜증난다... "
그 중에는 정말 예쁘게 나온 레전드 사진도 있었다.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놓고 매일매일 미소짓던 사진이였는데. 진짜 멘붕이다,멘붕.
" 남우현 뭐해 ? "
병실문이 열리더니 김명수와 이성열이 소란스럽게 들어왔다.
" 지금 말할 기분아니야. 저리가."
" 이거 봐봐. 나랑 성열이 사진 찍은거."
얼마나 찍어댄건지 검은색 비닐봉다리에 사진들로 가득하다. 아니,이 식빵새끼가 누구 염장지르나...
난 보기싫다는 표정으로 봉지를 툭 쳐내고 침대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을 하기 시작하려는데 냉장고
문을 연 이성열이 '오늘은 별로 없네'하며 초를 친다.
" 성규형이랑 너도 찍어주려고 필름 더 사왔는데 성규형은 어디갔어 ? "
" 나랑 김성규 찍어준다고 ? 진짜 ? "
" 어. 5만원주고 50장이나 더 사왔지."
그나마 저거라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핸드폰에 있던 몇 백장의 사진에 대한 미련은 사라지질않았다.
" 표정이 왜 그렇게 아련해 ? 자식 떠나보낸 부모마냥... "
" 김성규랑 찍었던 사진들...핸드폰 부셔지면서 다 증발 되게생겼다고 시발...이럴 줄 알았으면 그 폴로라이드로 찍어놓는거였는
데..."
" 폴로라이드가 아니라 폴라로이드. 너 노래랑 동영상 아이튠즈로 넣으면서 백업했을 거 아니야 ? 컴터랑 함 연결해봐."
" 부셔졌는데 연결이 되겠냐..."
" 그런가.."
베게에 얼굴을 다시 묻고 앓는 소리를 내고있는데 병실문이 열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어 ? 명수랑 성열이 와있었네 ? "
김성규 목소리다.
베게에 묻고 있던 고개를 빼꼼히 돌리자 한 손에 커다란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아직 있더라구."
미친놈처럼 후다닥 달려가 봉다리를 찢어 바닥에 탈탈 털었다.핏물이 잔뜩 베어있는 교복이 병실바닥에 툭 떨어지자 김명수와
이성열이 인상을 찌푸리며 우웩거리는 소리는 낸다. 내 피가 더럽냐 ? 개시키들. 교복 외에도 엄마가 버리려고 했던 블라우스와
치마가 툭툭 떨어졌고 마지막쯤에 가서야 이어폰과 내 핸드폰이 툭 떨어졌다. 액정은 산산조각이 났고 뒷면도 아주 보기좋게 깨
져있었다.
" 이,이거 고칠 수 있겠지 ? "
" 모르지. 액정이나 뒷면은 고친다치지만 빗물 잔뜩 들어가고 보니깐 옆면도 덜렁덜렁거리네 ? 새로 사."
" 지금 내가 핸드폰 부셔져서 그러냐 !? 사진때문에 그러지 ! "
" 그래서 이걸로 찍어준다니깐은."
혹시모르는 마음에 티슈를 뽑아 휴대폰을 조심히 감싼뒤 선반에 잘 올려놨다. 바닥에 쏟아졌던 옷들을 다시 주워담고 병실 쓰레
기통에 쳐박고 꾹꾹 눌렀다.
" 일단 둘이 나란히 앉아봐,침대에."
" 배경이 안 예쁜데..."
투박한 창문에 답답한 병실 안. 사진을 찍기에 예쁜 배경은 아니였다. 적어도 병원 앞 벤치라면 꽤 예쁘게 나올텐데.
" 야. 이런게 다 추억이지. 얼른 앉아봐."
" 크흠..."
못 이기는 척 김성규와 나란히 침대에 앉았다. 작은 핸드폰과는 달리 저 커다란 폴라로이드를 쳐다보며 자세를 잡자니 참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성규형은 웃고 있는데 존나 남우현 너는 무슨 영정사진찍냐 ? "
그 말에 깁스를 하지않은 손을 올려 김성규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 찍는다. 하나,둘...셋 ! "
피융 - 하는 소리와 함께 플래쉬가 터지며 금새 사진이 올라왔다.
" 김명수 사진 작가의 작품이다."
" 우와. 우현아,이거 봐봐 ! "
김성규가 환하게 웃으며 나와 제 모습이 고스란히 찍힌 사진을 내게 내밀었다. 플래쉬때문에 평소보다 더 뽀얗게 나왔다.
" 신기해."
점점 뚜렷해지는 사진에 신기해하며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는 김성규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괜히 먹먹해진다.
" 이리줘봐."
김명수 손에 있던 사진기를 뺏어들었다. 근데 도무지 사진기가 요상하게 생겨서 작동법을 모르겠다.손으로 렌즈를 누르니 렌즈
가 쑥 들어가질않나, 버튼을 눌렀더니 필름통이 쑥 올라오질않나...결국 한참뒤에야 플래쉬가 터지며 본의아니게 셀카를 찍게됐
다.
" 우하하학 !!! 남우현 콧구멍봐 !!! "
올라온 사진을 재빠르게 뽑아간 김명수가 이성열과 함께 웃으며 내 콧구멍을 비하했다. 내 콧구멍 넓은데 지네들이 도와주기라
도 했어 ? 콧방귀를 뀌어주며 침대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김성규쪽으로 렌즈를 들이댔다. 그때부터 한참을 서로 찍어주고,같
이 찍고 김명수와 이성열과 같이 4명이서도 찍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 몇 장 남았어 ? "
" 대충 열 장 ? 장동우는 어디갔어 ? 전화해볼까."
" 아,안돼.하지마. "
" 왜 ? "
" 하지마,그냥. 걔 바빠."
" 짱동주제에 뭐가 바빠."
넌 모르는 게 있어,인마.
김명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머니에서 꺼냈던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김명수는 이성열과 자신은 이미 많이 찍었다며 필
름 대부분을 나와 김성규를 찍어주는데 썼고 덕분에 꽤 많은 사진이 침대위에 널려있었다.
" ...이거로 미리 찍을 걸..."
사진을 쭈욱 훑으며 중얼거렸더니 김성규가 내 손을 꼬옥 잡으며 '괜찮아'하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 깍지 낀 손을 좀 더 꽉 잡고
마주 웃어주자 뒤에서 지켜보던 김명수가 닭살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 그럼 우린 갈께 ~ "
" 사진기는 ? 안 가져가 ? "
" 내일 가지러 올께. 둘이 실컷 찍어."
' 그럼 빠이빠이'하며 김명수와 이성열이 나가고 소란스럽던 병실은 조금 차분해졌다. 남은 필름은 딱 12장이었다. 김명수와 이
성열이 있었을땐 할 수 없었던 포즈들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김성규...이리와봐."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깔고 김성규를 부르자 왠지 얼굴이 좀 붉어진 듯한 김성규가 괜히 발장난을 쳤다.
" 뽀뽀하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네. "
입술을 삼켜버릴듯이 덮쳤다. 셔터를 한번 누르고 사진기를 침대에 내버려둔뒤 김성규의 허리를 감쌌다.
손이 불편해서 좀 애를 먹었다.
벌써 오후 7시.해가 긴 여름이지만 얼마 남지않았다는게 무섭게 몸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
" ...동우야."
" ...... "
호원이 달달한 목소리로 동우를 불렀지만 지쳐 잠이 든건지 규치적으로 숨소리만 들려왔다.
동우와 키스를 하며 목덜미에 뜨거운 입술을 묻자 터져나오는 아찔한 목소리에 순간 이성을 잃은 호원이 동우의 티셔츠를 벗겨
내고 트레이닝바지에 손을 대었을때 겁을 먹고 자신의 어깨를 꼭 잡는 동우의 모습에 간신히 이성을 부여잡고 동우의 하얀 피부
에 빨간 마크를 잔뜩 남긴 다음, 입술에 짧게 뽀뽀를 하며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걸로 만족을 했다.
윗도리를 거치지않은채 곤히 자고있는 동우의 모습은 생관부 사람같이 맑고 깨끗했다. 혹시나 감기에 걸릴까 침대에 있던 이불
을 펼쳐 동우에게 덮어준 호원이 잔뜩 헝클어져있는 동우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정리했다.
어느새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주 부터 명부관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아마 내일이 동우를 보는 마지막 날이 될 것 같다.
몰래 내려올 수는 있지만 들켰다간 동우도 끝이고 호원도 끝이다. 착잡한 기분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동우가 꼼지락거리며 호원의 품에 파고들었고 그런 동우를 가만히 쓰다듬은 호원이 동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 오래오래 살아,동우야."
널 너무 사랑하지만 내가 있는 곳에 너무 일찍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
명수와 성열이 티격태격대지않고 사진을 나눠가졌다. 명수가 잘 나온 사진은 성열이 가져갔고 성열이 잘 나온 사진은 명수가 챙
겼다. 둘이 같이 찍은 커플사진은 다행히 짝수였기때문에 사이좋게 똑같이 나눠가졌다.
집안의 분위기가 우울했다.
평소에 그렇게 즐겨보던 tv심야영화도 집중이 되질 않았고 입맛은 이미 일찍부터 없었기에 저녁은 따로 차려먹지않았다. 가방안
에 사진들을 챙겨넣던 성열이 한숨을 쉬며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명수가 저렇게 말없이 앉아있으니 자신까지 우울해지려한다.
이런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는 성열이 가방을 정리해 바닥에 잘 내려놓고 포르르 날아 명수가 앉아있는 소파 옆자리에 살포시 앉
았다.
" 김명수야."
" ...... "
" 김명수야."
" ...... "
" 멍청이 김명수."
" ...왜."
"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는데 왜 말 안 걸어 ? "
" 무슨 말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생각하고 있었어."
" 그냥 평상시랑 똑같이 하면 되는데..."
결국 의미없는 tv를 끈 명수가 리모컨을 테이블에 올려놓은뒤 중얼거렸다.
" 가지마..."
" 뭐라고 ? "
" 너. 가지말라고."
그냥 나랑 살자. 내가 너 책임질께.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명수의 모습에 잠시 눈만 껌벅거린 성열이 대답했다.
" 난 평생이 이 모습일텐데 넌 시간이 갈수록 늙다가 나중엔 결국 죽잖아. 그거 지켜보기싫어.마음아파."
" 다시 만날 방법같은건 없는거야 ? 그 비약인가 뭔가하는거 얻어서 내려오면 되잖아. "
" 구하기 어려운 거야. 그리고 맛도 없어."
" ...넌 정말. "
명수가 짙은 한숨을 쉬며 성열의 손을 잡고 방으로 향했다.
" 가방은 다 챙겼어 ? "
" 응. 챙길 것도 없어서 사진만 챙겼어."
" 기다려봐."
부엌에 있는 냉장고를 연 명수가 핫바가 가득 든 봉투를 들고 방으로 돌아와 성열의 가방안에 핫바봉투를 쑤셔넣었다.
" 이거 보면 니 생각날 것 같아. 가져가서 다 먹어."
" 고마워."
" 내일 몇 시에 갈꺼야 ? 성규형이랑 같이 갈꺼지 ? "
" 응. 밤에는 어두워서 힘드니깐 ...낮에 가야지. "
" ...그래,그렇게 해. 일찍 잘까 ? "
공원에서 분수대 주변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았더니 노곤해진 몸을 숨길 수 없었다.
오늘도 부모님은 안 들어오신다. 무슨 일이 있는가싶어 두 분 모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금방 들어가겠다
는 말만 들려왔다. 오히려 다행이다. 있는 것 보단 없는게 더 편하니깐.
" 성열아."
" 어,왜."
" '김명수야'말고 '명수야'라고 불러주라."
그냥 갑자기 듣고 싶어졌다.
다정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성열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성을 빼고 부르려니 얼굴이 빨게지는게 느껴졌다.
" ...명수...야. "
" 아니. 그렇게 말고 ! 부드럽게 . 명수야~ "
" 명수야."
명수가 씨익 웃으며 이불 아래로 성열이의 손을 잡았다.
" 사랑해,성열아."
" 나도...명수야. "
한 달 동안 너무너무 고마웠어. 평생 잊지못할 경험일꺼야.
그날밤, 서운하고 슬픈 마음에 눈물을 주륵주륵흘리며 명수는 또 다시 성열을 안았다.
*
" 성규야. "
" 응,우현아."
" 먼저 올라가서 기다려. 오래오래 살다가 올라갈테니깐... "
" 그래. 꼭 오래오래 살다가 올라와. 혹시...혹시 내가 널 못 알아볼 수도 있으니깐...너가 먼저 날 알아봐줘. 사랑해,우현아."
" 나도 사랑해. "
초등학교때 너무 갖고 싶은 마음에 문방구에서 천원짜리 장난감을 훔친 적이 있었어. 내가 천원짜리 하나 훔친 것 때문에 문방구가 망하진 않을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후회돼. 혹시나 그것땜에 지옥가게되면 어떡하지 ? 나 진짜 너무 후회돼,성규야.
*
번외 그냥 인티에 올리려구요...흐흐흫
텍스트 파일용량 어느새 430kb... 결말이 바뀌었네여....제가 생각하던 거로 바꿨는데....
그것떔에 어제 안올라왔었져 ?> ㅠㅠㅠ죄송해요.
내일부턴 주말 !!끼앾 !!!
이제 정말 완결이 콧구멍 앞까지 다가왔음여 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