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이 내리는 벚꽃잎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은 말그대로 맑은 하늘색에다가 핑크색의 벚꽃잎까지 날려 혼잡한 시내를 꽤 분위기있게 만들어줬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허밍을 하며 분위기에 좀 빠져보려는데 핸드폰이 울리며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동우의 문자에 우현의 발걸음은 다시 빨라졌다.
" 기어왔냐 ! "
" 아오,니가 남태현이 데려다주고 와봐 ! 더워죽겠네."
또 뛰었더니 후덥지근해졌다.
테이블위에 있던 얼음물을 벌컥벌컥 원샷하자 짱돌이 뒷골을 내려친 것처럼 지끈거린다.
" 염색 언제했냐 ? "
" 오늘 아까 미용실에서...머리자르러 갔는데 갑자기 막 염색 잘 어울릴꺼라고 하길래..."
" 쯧쯧.멍청한 놈."
동우가 노란색에 가까운 갈색머리칼을 만지며 울상을 지었다. 어려보이고 귀엽고 잘 어울리긴 하는데 24살이나 되서 염색은 무슨... 우현이 자신의 까만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상하지않은 머릿결을 자랑하듯이 동우에게 가져다댔다.
" 이 동네 얼마만에 오는거지 ? "
" 제대로 온 건 4년만일껄."
졸업하자마자 셋이 나란히 지방으로 대학가서 방학때만 몇 번 올라왔다가 군입대하고 제대 후에 복학해서 미친듯이 대학생활하느라 제대로 찾아온적이 없으니깐 거의 4년만에 온 게 맞을 듯 싶다.
" 겁나 변했네...."
" 그치."
" 김멍수놈은 왜 안와 ? "
" 오고 있댔어."
" 왜 걔한텐 재촉문자 안 보내 ? 죽을래 ? "
" 보내고 있었어.걔네 집 이사갔잖아.여기서 훨씬 멀어."
" 아,맞다."
폭신한 까페 의자에 몸을 기댔다.에어컨도 적당히 시원하고 노래도 잔잔한게 잠이 올 것만 같았다.
" 방학이라서 좀 놀까했더니...빠듯하다,빠듯해."
" 난 레포트 장난아니야...과제도 맨날 있구...그리고 완전 어려워서 맨날 물어보고 다녀야해."
간호학과에 들어간 동우가 울상을 지으며 테이블에 볼을 대고 누웠다.
" 나는 쉬운 줄 아냐..."
우현도 지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노래를 못 하는 게 문제가 아니였다.아니,우현은 충분히 잘했다. 하지만 그만큼 잘하는 애들이 주변에 많아 경쟁하느라 힘들뿐이지...
" 저기 김명수 온다 ! "
동우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우의 말대로 까페로 달려오던 명수가 갑자기 어떤 할머니 앞에 멈춰서더니 무어라 얘기를 하는게 보였다. 그리곤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고 다시 반대쪽...
" 저 할머니 도와드리러가는 것 같은데..."
" 아우,저 개..."
" 냅둬.도와드리게."
이상한 클래식이 끝나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을 따라 흥얼거리던 우현이 동우에게 물었다.
" 이 노래. 많이 들어봤는데 제목을 모르겠네."
" ...아무리 무식하다해도 이 노래를 몰라 ? "
" 죽을래 ? 모를 수도 있지."
" Over The Rainbow."
" 알아. 알고 있는데 기억이 안난거야."
우현이 계속 노래를 흥얼거렸다. 바깥에 보이는 분홍빛 벚꽃잎들과 참 잘어울리는 노래다.
*
" 근데 셋이 뭐하고 노냐."
뒤늦게 합류한 명수가 체리에이드에 둥둥 떠있는 얼음을 와그작와그작 깨물어먹으며 말했다.
그냥 공강시간에 만난것처럼 지루하고 밍밍한게 딱히 할 것도 없고 자꾸 졸음만 밀려온다.우현이 고개를 한번 떨구고 다시 번쩍 들었다가 다시 스르륵 떨궜을때 명수가 우현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쳤다.
" 술이나 마시러 가자.나 아는 형이 서울올라오면 자기 가게로 놀러오랬거든."
" 어딘데 ? "
" 여기서 좀 많~이 멀긴 한데...어차피 갈데도 없잖아."
동우와 우현이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등학생때는 몰래 마셨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나란히 까페에서 나온 셋은 면허가 있어도 차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이렇게 좋은 날씨에 남자 셋이서 술이나 마시러가고...에휴..."
" 꿍쳐놓은 여자라도 있으면 부르던가."
" 무슨 여자가 물건이냐 ? 아무튼 입놀림 아주 더러워,남우현."
" 꺼져."
명수와 우현이 또 티격태격대는 와중에도 분홍빛 벚꽃잎을 보며 감상에 젖은 동우가 서로 엉덩이에 발길질을 하고 있는 둘에게 물었다.
" 너네들도 생각나 ? "
" 뭐가 ? "
" 5년전인가...성규형이랑 성열이랑...그리고 호원이형말이야."
동우의 말에 발길질이 멈췄다.
" ......왜 생각이 안 나겠냐."
'가끔씩은 꿈에도 나오는데'하며 씁쓸하게 웃은 명수가 성열의 얼굴을 떠올렸다.머릿속에서 상상으로만 그려진 성열은 싱글벙글웃으며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우현이 매끈한 핸드폰을 꺼내들어 익숙하게 사진첩으로 향했다.액정속에서 빛나는 성규의 얼굴은 옛날의 그 말랑거리고 따뜻한 느낌과는 달리 차갑고 딱딱한 액정의 느낌만 느껴졌다. 우현과 명수,동우는 걷던 걸음을 나란히 멈추고 각자 5년전을 떠올렸다.벌써 5년이나 지났다니.그래도 얼굴은 쉽게 잊혀지지않아 다행이다.
" ...아씨,장동우. 넌 왜 갑자기 그 얘길 꺼내가지고..."
" 그냥...생각나잖아."
" 얼른 가자."
명수가 고개를 저으며 우현과 동우의 등을 떠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
" 야...여기 존나 비쌀 것 같은데."
" 괜찮다니깐."
'나만 믿어'하며 윙크를 해보인 뒤 바에 서있는 키 큰 남자에게 다가가 반갑게 아는체를 한다.
몇 마디가 숙덕숙덕 오고가는 것 같더니 곧 환히 웃으며 손짓을 한 명수가 룸으로 걸어들어갔고 우현과 동우도 서둘러 쪼르르 명수가 들어간 룸으로 따라들어갔다.
" 와,소파 존나 고급.테이블도 존나존나 고급."
" 야,남우현 입닫어.촌스럽게..."
우쭐하며 테이블에 발을 올린 명수가 서빙하는 웨이터가 들어오자 후다닥 발을 내리고 쟁반에 가득 담겨있는 과일안주들과 이름모를 양주병,파란 맥주병들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 와...이건 뭐래 ? "
동우가 맥주병 모양안에 퍼렇게 들어있는 술을 집어들며 물었다.
" 크루저도 몰라 ? 아유,애기네,애기.동우 넌 그것만 먹어. 애기들이 먹는거니깐.울룰룰루~"
병뚜껑을 돌려 딴 뒤 몇 모금 마셔본 동우가 눈을 크게 뜨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와,맛있어 ! 그냥 음료수같애 ! 이거 먹어봐."
동우에게서 병을 받아든 우현이 킁킁 냄새를 맡고 한 모금 마셔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쁘지않단 표정으로 과일을 집어먹었다.제철과일이 한가득에다가 안주들도 수제 소시지에 치즈닭갈비에 요상한 떡볶이,암튼 이것 저것 메뉴판에 있는 온갖 안주들은 다 가져다 놓은 것 같다.
" 이거 다 공짜야 ? "
" 그렇다니깐...걱정말고 맘껏 먹어.일단 좀 나가서 흔들다오자."
" 아,귀찮아..."
" 나도...좀 피곤한데..."
나란히 룸을 나와 스테이지로 향한 셋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마이클잭슨 혹은 비욘세에 빙의한 듯 몸을 털어대기 시작했다.
*
" 아오,개자식들..."
" ...으흐....윽....으....우웁!!!! "
" 야!!! "
몸을 들썩거리던 김명수새끼가 결국 벚꽃나무를 붙잡고 아름다운 분홍빛 벚꽃잎들이 쌓여있는 나무 기둥에 오묘한 주황색 부침개를 만들어냈다.참 역겹게도 생긴 부침개다. 외계 부침개랄까.장동우를 옆구리에 껴고 김명수의 넓은 등판을 거세게 두드렸다. 인디언밥할때만큼 온 심혈을 기울여서 팡팡 소리가 나게 때리자 술에 취한 와중에도 아픈건 느끼는지 요상한 소리를 내며 팔을 휘젓더니 보도블럭에 벌러덩 누워 수영을 하려는 듯이 팔을 휘저어댄다. 병 and 신 같다.
" 지랄 참 정성스럽게 하시네..."
" 으음...어푸후.어푸후.낄낄."
가게에서 들고나온 휴지로 벅벅 입가를 닦아주고 다시 김명수를 집어들었다. 무거운 솜마냥 추욱 늘어진 둘을 질질 끌어가며 겨우겨우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 아,시발..."
제길슨.계단이다.
어떻게 내려가지 ? 한 놈 먼저 데구르르 굴려서 내려보내고 다시 또 한 놈을...그러면 분명 어딘가 하나가 부러질텐데. 그럼 투포환 던지듯이 휙 ? 대갈통이 수박통처럼 뽀샤질게 분명했다.결국 양 쪽 옆구리에 한 놈씩 껴안아잡고 후다다닥 계단을 내려갔다. 장동우랑 김명수의 두 발이 계단에 탁탁탁탁 부딪히며 숨막히는 비트를 완성해냈다.
" 후우..."
다 내려와서 땀을 닦으며 힐끗 두 새끼의 발을 보는데, 어라 ? 두 놈 다 신발이 안 신겨져있다. 휙 뒤돌아 내려온 계단을 보니 신데렐라가 떨구고 간 유리구두마냥 신발 두 짝이 계단 곳곳에 처량하게 놓여져있었다. 신데렐라 맞나 ? 백설공준가 ? 라푼젤이였던가 ? 아무튼 바닥에 두 꽐라새끼를 내려놓고 후다닥 올라가 신발을 줏어와 다시 신겨줬다.
" ...힘들어뒤지겠네..."
잠시 쭈그려앉아 숨을 고르며 욕을 뱉었다.
내가 그나마 덜 마셔서 다행이지,이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마셔댔으면 난리날뻔했다.다시 몸을 일으켜 널부러져있는 장동우와 김명수를 다시 잡아부축했다. 끙차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겨우겨우 표를 뽑고 플랫폼에 놓여진 의자에 두 거지망나니들을 눕혔다.장동우는 눈을 반쯤뜨고 쿨쿨 자고 있었고 김명수는 뭐라 중얼중얼거리며 목을 벅벅 긁고 있었다.그냥 버려놓고 가고 싶다.
의자 끄트머리에 간신히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시간을 확인하니 11시. 시간이 좀 남아 후다닥 자판기로 달려가 이온음료를 뽑아 벌컥벌컥 원샷을 한 뒤 쓰레기통에 병을 던져놓고 얼른 달려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자꾸 어디서 드르릉드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길래 슬쩍 귀를 갖다대니 장동우 콧구멍이다.
" 가지가지하네."
지하철역은 시간에 맞지않게 꽤 한산했다.10시쯤이면 사람들로 득실득실한 시간일텐데.지금 이 플랫폼에는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듣는 남자 한 명과 긴 생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은...헐,남자네 ? 여잔 줄 알았더니. 얼른 고개를 딴 쪽으로 돌렸다. 몇 분 뒤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전철이 들어오는게 보였고 의자에 누워있던 두 놈을 얼른 집어들었다.
" 으으으...물...물..."
" 닥쳐. 침모아서 삼켜."
물타령하는 장동우를 좌석에 눕히고 그 위에 김명수를 얹었다. 장동우 얼굴이 좀 구겨지긴했지만 내 알빠아니다.여기까지 모셔온 것만 해도 감사히 여겨야지.
일단 둘 다 우리집으로 데려가야겠다. 집까지는 또 어떻게 끌고간담. 한숨을 쉬며 반대쪽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그제서야 슬슬 술기운이 몰려오면서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나까지 자면 분명 내려야하는 역을 지나칠텐데...자꾸 감기려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고 있을때 출입문이 덜컹하며 닫혔다.
문득 출입문 너머로 빠르게 계단에서 내려오는 남자가 보였다.이 호선을 탔어야됐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와 문을 두드린다.하지만 전철은 조금씩 속도로 내기 시작했고 남자의 표정도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팔짱을 껴고 꾸벅꾸벅 졸면서 그 모습을 보는데 순간 숨이 덜컥 멎으면서 심장이 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왔다.
" ...기,김성규 ?! "
오랜만에 뱉는 이름이 참 생소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잠시 전철이 빠르게 속도를 시작했고 난 창문에 바싹 달라붙어 아까 그 남자가 서있던 플랫폼을 살폈다.
김성규와 닮았던 걸까,아니면 김성규였을까. 눈을 깜박이며 터덜터덜 뒷걸음질로 의자에 다시 앉았다. 장동우의 코고는 소리가 어느새 잠잠해져있었다. 졸린 눈을 벅벅 비벼대며 방금전 출입문을 두드렸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얇은 눈매,하얀 볼,축 처진 눈썹...김성규랑 판박이였는데.잘못봤겠지,잘못봤겠지하면서도 자꾸만 가슴이 쿵쾅거렸다.
*
" ...치익."
" ......"
" ...치익치익."
" ...차거..."
" 치익치익치익치익. "
" 으윽... "
씨익 웃으며 시원한 냉수가 가득 담긴 분무기를 동우와 명수의 얼굴에 뿌려대자 마치 농약을 피하는 애벌레들처럼 꿈지럭꿈지럭거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몇 번 더 분무기를 치익치익 분사하자 그제서야 게슴츠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핀다.
" 으으...여기 어디야 ? "
" 어디긴 어디야. 즐거운 나의 집이지."
명수와 동우가 좀비처럼 스믈스믈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 몇시야..."
" 오후 3시다,이 어리석은 새끼들."
" 어제 어떻게 된거지...기억이 안나..."
" 어제 이야기는 하지마. 빡.트.니.깐."
'엄마가 너네따위 해장하라고 해장국 끓여놓고 갔어.내려와'하고 분무기를 두어번 더 뿌린 우현이 낄낄거리며 1층으로 내려갔다.뒤따라 내려온 명수와 동우가 식탁에 앉아 철퍽 엎드리고 앓는 소리를 냈다. 가스렌지에 올려진 냄비에서 콩나물북어국을 푸짐히 접시에 담아 차례대로 서빙한 우현이 숟가락을 휙휙 던지듯이 나눠주고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
" ...오,굳. 겁나 맛있다."
" 와,대박."
명수와 동우가 콩나물북어국을 한 숟갈 퍼먹어보더니 미친듯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 조미료 많이 들어가서그래. 엄마가 조미료를 좀 많이넣어.건강따위."
" 아아...큼. 아,그래도 속이 좀 풀린다..."
" 그러게...아줌마 어디 가셨어 ? "
" 엉. 우리 엄마 요즘 일하느라 바빠.암튼 이거 먹고 설거지는 너네 둘이 알아서 해라."
" 장동우 너가 해."
" 싫어,김멍수 너가 해."
" 둘 다 해. 장동우 너가 씻고 김멍수 너가 물기 닦아."
" 알았어..."
한참 설거지를 하는데 명수의 주머니에서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려퍼졌다.물기를 대충 동우의 옷 뒷자락에 문질러닦은뒤 전화가 끊길까 서둘러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 ...어라 ? 남우현 니 지금 나한테 전화함 ? "
" 아니 ? 왜 ? "
" 이거 니 번호인데 ? "
우현의 번호가 떠있는 핸드폰 액정을 식탁에 앉아있는 우현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 무슨 개소리...헐 !!!! 미친 !!!! 내 핸드폰 ! "
" 여보세요 ? 네,형...네네,제 친구에요...네 ! 오늘 찾으러 갈께요. 네. 감사해요. "
전화를 마친 명수가 혀를 차며 물기를 닦던 수건을 대충 싱크대 걸쳐놓고 손을 털었다.
" 소파에 껴있던거 형이 갖고 있대. 오늘 찾으러 간다고 했으니깐 갔다와."
" 나 혼자 ? "
" 어쩌라고 ? "
" 나 혼자 갔다오냐고."
" 핸드폰 존나 무거웡 ? "
" 꺼져...어제 그냥 너는 버리고 오는 거였는데...짱동. 넌 같이 갈꺼지 ? "
" 으으,피곤해."
동우도 외면을 하며 거실 소파로 달려가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 ...개새끼들."
" 갔다왕."
" 미친놈. 갔다왕이고 나발이고 진짜 아무도 같이 안갈껴 ? "
" ...거의 ? "
" 꺼져,진짜. 친구도 아닌 것들."
" 빠싱~"
우현이 지갑을 챙겨들고 신발을 주워신으며 궁시렁거렸다. 거기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야하는데...동우와 명수도 혼자 가기엔 조금 먼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속도 쓰리고 아직 술기운이 덜 가셔 몸이 노곤해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쉽사리 몸이 움직여지진않았다.
" 지랄하고 날씨도 좋네."
반짝거리는 날씨에 눈살을 찌푸리며 햇살을 손으로 가린 우현이 차마 걸어갈 기분이 안들어 쿨하게 택시를 불렀다.비록 뒷자석의 문을 열고 시트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후회를 했지만.
" 얼마에요 ? "
" 삼만 오천원."
" 헤엑 ?!...사,삼만 오춰넌... "
혀를 깨물며 만원짜리 4장을 꺼내 부들부들떨리는 손으로 택시기사에게 건넸다.벌써 용돈이 다 날라가게생겼다.
김명수 시발롬,장동우는 약간...덜 시발롬.아무튼 계속 꿍시렁거리며 술집안으로 뛰어들어가자 마치 우현을 기다렸다는듯이 입구에 서있는 명수의 아는형이 우현의 핸드폰을 건넸다.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우현이 핸드폰에 찍힌 부재중전화와 문자들을 확인하며 가게를 다시 빠져나왔다.
가는 길마저 택시를 탔다간 쌩알거지가 될 것 같아 이번엔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 아...텁텁해."
물 한 모금 마시지않고 나왔더니 침이 바싹바싹마르고 머리도 어지러운데다가 속도 좀 메스껍다는 느낌이 들어왔다. 근처에 편의점이...
" 없네."
대신 사거리에 있는 대형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료수 하나만 계산하기는 조금 민망하고 뻘쭘한 탓에 쇼핑카트를 집어끌고 태현이가 좋아할만한 아이스크림과 과자등을 대충 카트에 던져넣듯이 담고 어제 술집에서 봤던 파란 맥주도 덤으로 하나 챙겨넣었다. 쓸데없는 지출이 자꾸 늘어나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지만 뭐 태현이가 다 먹을테니깐.
" 흠..."
눈으로 슬쩍 살펴봐도 계산대가 다들 만원이다.엄마부대들로 아주 바글바글하다. 우현이 같이 소량을 산 사람들위해 만들어놓은 소량계산대에도 물건을 잔뜩 산 사람들로 득실거렸다.저런 똥숫간 매너들. 우현이 혀를 차며 그나마 사람들이 제일 적은 계산대에 줄을 섰다. 천장 스피커에서 나오는 걸그룹의 노래를 따라부르는데 뒤쪽에서 시끌시끌한 남정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오,좀 내려와 ! 무겁잖아 ! "
" 뭐가 무거워!"
" 시끄럽고 얼른 내려와 ! 거기 두부랑 계란 다 뭉게지잖아 ! "
" 난 괜찮아."
" 이게 진짜 ! "
" 으악 ! 왜 때려 ! "
결국 따악 !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아마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은 것 같다. 근데 힘이 얼마나 센건지 꼭 참외 쪼개지는소리같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피식 웃은 우현이 배터리 잔량표시가 빨갛게 변한걸 확인하고는 얼른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앞에 주르륵 세워져있던 카트가 서서히 계산을 마치고 드디어 우현의 차례가 왔다. 카트에 실려있던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얼른 올려놓고 계산을 마친 다음 봉투에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주워담는데 문득 뒤에 서있던 남자가 올려놓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부,계란,고등어,파. 전형적인 저녁 식사 재료들과 그 뒤에 무수히 쌓여있는 ...핫바 ? 뭔 핫바를 저렇게 많이 산대 ? 우현이 코를 찡긋거리며 슬쩍 물건을 올려놓는 남자의 얼굴을 슥 쳐다보는 순간,
" 성규가 핫바 절대 사주지말라했는데 이게 다 얼마야,진짜."
손에 들려있던 불룩한 마트봉지가 바닥에 툭 떨어지며 내용물들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 봉지에 들어있던 맥주병이 깨진건지 파란 액체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우현의 초점이 흔들림없이 남자의 얼굴에 정확히 꽂혀있었고 느껴지는 시선을 마주친 남자 또한 깜짝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계란판을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 아나..."
젊은 남자 직원이 대걸레를 가져와 파란 액체를 닦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계란판을 치우기 시작했다. 미친 놈 둘이서 누가누가 더 잘 떨어트리나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짓이람. 직원이 궁시렁거리며 치우는 동안에도 우현과 남자는 꼼짝하지않고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 사,사자님..."
" 아......안,안녕 ? "
호원의 첫마디에 우현이 뒤늦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우현이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때 호원의 옆 카트안에서 핫바를 까먹고있던 성열이 핫바를 입에 넣은채 우현을 가리키며 입을 쩌억 벌렸다.
" ...헐... 남,남우현이다... "
호원의 카트 뒤에 서있던 아줌마들이 얼른 가라며 볼멘소리를 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호원이 서둘러 카트를 밀고 계산대를 빠져나왔다.
우현이 달달달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너무,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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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제발 손팅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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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몽은 매일 8~10시에 연재됩니다.
신작알림 필수
댓글 진짜 너무나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