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은 과수원 안 사람들에게 미련하다는 소리를 듣는 이었다. 무거운 짐가방을 끌고 과수원 정문에 들어서 쭉 늘어진 돌 길과 그것을 중신으로 꾸려진 과수원. 햇빛을 더 받겠다 아등바등 처마처럼 모여 흔들리는 잎사귀는 참으로도 순하여라.
돌 길을 얇은 발 판으로 꾹 꾹 눌러가며 걷고 풀내음을 마신다. 바깥세상과는 이질적일 정도로 풍기는 이 참나무의 풍과 높은 처맛단. 알록달록 꾸려진 어처구니. 부드러운 추녀, 길게 늘어진 마룻마닥에서는 간혹 빛이 나기도 한다. 엄마, 사과 내음은 다름이 아니라 이것이었어요.
마루 위 가벼운 가방을 툭 하니 내려 놓고 기둥 하나에 몸을 기대어 고개를 쳐들었다. 딸랑 거리는 종소리 높은 가을 하늘, 그리고.
“…”
“어,”
열다섯 보 정도 떨어진 거리에 첫번째 미닫이 문이 열린다. 한지가 빳빳하게 서린걸 보니 창을 갈아 낸지 별로 되지 않은 것이었다. 순간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풍겨오는 달큰한 사과 내음.
제가 걸어 온 돌 길보다 딱딱한, 가을 하늘 언듯 비추는 솜덩이보다 하얀, 바람이 치고 들어오는 종소리 보다도 아릿한, 이질적인 이 공간 안에서도 가장 미련한 그 사람이 보인다.
다물린 입은 열리지 않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미간이 참으로도 잘생겼다.
“저, 안녕하세요. 오늘 들어온 내인입니,다..”
끔벅거리는 졸린 눈이 저를 스치고 그 눈길이 순식간에 거두어진다. 씹혔다.
마루가 저를 밟아 성이라도 난 듯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고 사라진 남자는 마루 끝에 달린 작은 방으로 향했다.
“얘! 너 오늘 온다던 내인이니?”
“어, 저,”
“머뭇거리지 말고 얼른 옷부터 입어라. 안주인 어른과 도련님께 인사부터 드려야지.”
뒤에서 들려오는 쇠한 목소리가 저를 끌었다. 자신을 주모라고 칭하는 할멈은 제게 하얀 모시 옷을 떠넘기듯 쥐여주고 오른쪽 끝 방을 가르켰다. 긴 처마집에는 방도 많다. 이전에 남자가 나온 방과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방은 작고 간결했다. 바람이 통하는 창과 좌식 책상, 솜이불 그리고 마루와 같은 향을 풍기는 서랍 하나. 두리번 거리다가도 저를 다그치는 주모의 목소리에 손을 빠르게 굴렀다. 하얀 모시로 만들어진 생활 한복이 가볍고 살과 닿는 느낌이 좋았다. 살짝 누릿한 빛이 따뜻한 느낌을 주기도 했고 어김없이 풍겨오는 사과 내음이 질리지도 않아 팔 언저리에 코를 한 번 박아본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안주인 어른과 도련님께 문안 드리는 날이다. 예를 갖추고 행동은 조용히 하거라. 도련님 심기 건들지 말고.”
“도련님이라면, 그 하야신..”
“도련님을 뵈고 인사는 헜니? 불쌍한 얼굴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던?”
주모는 첫 날부터 이상한 말을 하였다. 입을 굴리며 쯧쯔, 소리를 내고 가슴 한 켠을 투닥거렸다.
“도련님은 말을 안 허시니 무엇이든 묻거나 대답을 기다리지 마라. 손짓하시면 자리를 뜨면 돼.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말을 절대 꺼내지 말거라.
주모는 나지막이 마지막 말을 하고서는 작은 방으로 몸을 옮겼다. 우뚝하니 멈춘 발이 순간 저려와 탈탈 털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주모가사라지 왼쪽 끝 작은 방으로 몸을 들어서니 과수원의 내인들이 다 모여 앉아있었다.
제가 몰라 뵈었던 도련님은 하얀 낯으로 정면을 고집하고 있었다. 시선이 올곧은 것이 저의 삶과 심성을 말하는듯 하다. 시선이 닿기 위함은 아니지만 빤히 쳐다보는 눈길에도 언질을 주지 않는 것이 꼭 너무도 차가워 괜히 등골을 움찔거렸다.
과수묵우전 1
果樹默雨傳
“향아, 도련님 침구 좀 정리하고 와라. 잘 주무실 수 있게 차도 가져다 드리고.”
“네.”
과수원 사람들은 나를 향[香]이라고부른다. 내인들의 이름은 한글자로 이루어졌다. 안주인들의 간결함, 편리, 그리고 그다지 많은 글자를 필요로 하지 않다는것이었다. 도련님의 이름은 나라를 다 잡아 먹을 것 같이 지으셔 놓고, 처음에는 조금 약 오르다가 이내 수긍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좋은 뜻에서 온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과내음이 좋다며 온종일 온 집안에 코를 박고 있으니 나를 향이라고 부르시더라. 따뜻하던 햇빛이 사리지고 마루 바닥이 차가워졌다. 낡은 나무의 소리가 날까 한 발 한 발 조심히 내딛어 도련님의 방 앞에 섰다. 문을 두어번 두드리니 방 안에서 들리던 타닥타닥, 타자소리가 멈추었다.
도련님은 글을 쓰신다고 하였다. 차마 말로 하지 못한 것들을 얇디 얇은 종이 한 장에 담아 내시고는 책으로 묶어 세상에 뿌린다고 하신다. 이 좋은 세상에 이질적인 이 과수원은 그 흔한 0과 1의 세계는 눈 씻고 찾아 볼 수가 없어 타자기 소리가 귀에 닿는다. 멈춘 타자기 소리에 쉼호흡을 한 뒤 미닫이 문을 열었다. 녹이 들었는지 조금 버벅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도련님, 밤이 늦었습니다.”
“…”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그가 고개를 돌려 저를 처다보았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열리지 않은 그의 목구멍은 여전히 고요하다. 좌식 책상에서 타자기를 옆으로 밀어 놓고는 눈을 느리게 끔벅거린다. 그 뜻을 몰라 눈치만 보다 제가 든 찻잔을 쳐다보니 그제야 알고 급하게 잔을 올려드렸다. 바로 뒤에 차분히 개어 있는 도련님의 침구를 하나씩 풀었다. 도톰한 솜이불인 제 것과 다르게 참 포근해 보이는 것이다. 괜스레 한 번 꾸욱 눌러보다 정신을 차리고 마저 이불을 폈다. 황금빛 수가 알알이 박혀 때깔이 고왔다.
“차를 다 드시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주모의 말 그대로 도련님과 좀 떨어져 바람이 새는 문자락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작은 소리 하나 뒤척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려니 무릎이 짜르르 떨려온다. 쥐가 났다. 마침 때 좋게 도련님이 찻잔을 내려놓는 것이 보이고 밝은 표정으로 일어서고자 하는데, 차마 다리가 떨려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쿵, 소리를 내며 넘어진 것이다.
순간의 정적을 뒤로 빠르게 자세를 고쳤다. 큰일 났다. 당황하는 눈을 굴려 도련님을 쳐다보니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둘러 찻잔을 들고 고개를 조아리며 나가려니 제 손목을 턱, 하고잡는 손이 보였다. 큼지막한 손이 보이고 눈을 꼭 감으며 도련님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린다. 혼내려나 보다. 그렇게 딱딱하고 허연 낯의 도련님이 나를 혼내키려나보다. 달달 떠는 몸으로 이따금 하실 행동을 기다리는데 제 무릎을 덮은 제 치마자락이 살짝 들어올려진다. 너무도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찍어 찻잔이 데구르르, 굴러가고 감히 도련님의 허연 손을 붙잡았다.
“도,도련님. 잘못했어요!”
“…”
마주하는 얼굴이 한없이 차가워 눈물이 울컥 나오려는데 도련님은 그저 한쪽 눈썹을 지켜 올리며 다시금 무릎위로 치마를 살짝 올리셨다. 눈을 꽉 감고 눈물을 한방울을 아깝지 않게 흘렸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미울 뿐이다.
“…?”
이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슬그머니 눈을 뜨니 제 무릎 한쪽을 빤히 쳐다보는 도련님의 얼굴이 보인다. 간혹 미간이 찌푸려 지는 것이 분명 무언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시선을 돌려 제 무릎을 쳐다보니 과수원 나무에 달린 사과 마냥 발개져 살이 까진 무릎이 보였다. 쥐가 나 넘어진 찰나에 빳빳한 한옥집 바닥에 쓸린 모양이었다. 제가 한 생각들이 뻘줌하고 미안해 도련님을 쳐다보니 그저 묵묵히 무릎을 보고있을 뿐이었다.
“도.도련님. 저는, 저는 괜찮아요. 어서 잠자리에 드셔야 하는,”
제가 시끄러운듯 발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흡, 하고 숨을 참으니 좌식 책상의 작은 농을 열어 연고를 꺼내 온다. 할머니네 집에서만 보던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여전히 느린 눈을 끔벅거리며 약을 덜어내는 행동이 이상하다. 분명 미련하다 그랬는데. 차갑디 차가워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그랬는데. 사람보기를 돌같이 하여 조심하라 그랬는데. 제 상처에 닿은 연고가 차가워 몸을 움찔거렸지만 아무렴, 거침없는 손길이 마냥 따갑다. 천천히 내려앉은 얼굴을 하나씩 뜯어본다.
동그란 눈, 하얀 얼굴과 작은 입술. 흑심을 마구 뿌려 놓은 듯 까아만 머릿칼과 눈동자. 상심으로 내지않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궁금해지는 미인이다. 제 치마를 잡아 다시 내리더니 고개를 까닥거린다. 나가보라는 뜻이다. 발개진 온 몸이 들킬까 굴러간 찻잔을 주어 들고 문고리를 잡았다. 아릿한 무릎에서 연고향이 코끝을 찌르는 탓에 한 번 훌쩍거려 본다.
1.문이 닫히기 전에 정국에게 말을 건넨다.
2.주방으로 뛰어간다.
향이 다음으로 취할 행동을 선택해줘. 이야기 전개는 과반수의 결정에 따라결정 될거야!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