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이 닫히기 전에 정국에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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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방으로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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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시큰한 무릎을 한 번 굽었다가 핀 뒤, 문자락에 손을 올려 두었다. 묵묵히 침구를 정리하는 까아만 뒷통수를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괜스레 헛기침을 두 어번 하다가도 돌아보지 않는 정국에 입을 벙긋거렸다.
“저,기.”
느릿 느릿.
끔벅이는 눈이 곧이어 저를 쳐다보고 아무 감정을 담지 않는 흐름에 어깨가 움찔거렸다. 차갑다는 말의 정의는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고개를 살짝 조아린 뒤 눈치껏 문을 닫는다. 기어코 정국의 발소리가 들려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지만 잠시후 소등이 되는 방에 불을 끄기 위함이었음을 알아차린다.
과수묵우전 果樹默雨傳
2
긴 마루와 앞마당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차디찬 마루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마저도 누가 들을 세라 조심스럽게 다리를 피다 보니 아까는 미처 느끼지 못한 무릎의 상처가 아려온다.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자락을 살짝 걷어 올려 후- 하고 불어오면 아릿한 것이 꼭 어릴 적 어머니가 엉덩방아를 찍어 다친 제 팔뚝 어디쯤에 불어주던 바람 같아 눈 앞이 시큰하다.
타닥-
“…?”
분명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잠시 엉덩이를 붙인 것인데 소리가 들려온다. 불안감이 엄습해 치마자락을 내리고 신을 신는다. 단에서 내려와 소리가 난 쪽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에는 나뭇가지를 잔뜩 쌓아 놓는다. 땔감이 될 것 들을 모아두는 곳이라 주모에게 들었는데 분명 제가 낮에 지나오며 밟은 나뭇가지 소리가 들렸다.
뒷마당으로 통하는 작은 골목을 들어서려는데 또 한 번의 소리가 들린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애끼!”
“흡!”
뒤에서 주모의 목소리가 들려 소리를 치려던 찰나 누군가에게 이끌려 누군가의 품에 등이 붙었다. 합, 하고 다물린 입은 아주 큰 손에 막혀 답답하고 너른 품에는 낯선이의 향기가 풍긴다.
“또 괭이들이 난리를 쳐놨구만, 쯧쯔.”
주모는 골목 입구에 널브러진 나뭇가지를 발로 휘휘 젓더니 이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쉴틈도 없이 뛰어 놀라 덜덜 떠는 어깨를 잡은 이가 천천히 제 입을 놔주고 토닥거렸다.
저보다 한 뼘보다 조금 더 큰 키에 고개를 드니 높은 콧대가 먼저 보인다. 저도 놀랐는지 다문 입술이 곧이어 호선을 그리고 벌어진다.
“괜찮아?”
“누,누구세요?”
“보아하니 내인인가 본데 나를 모르면 큰일나지.”
누구인가 뚫어져라 코 끝에 찍힌 점을 빤히 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언듯 풍기는 담배향이 방금 막 핀 모양이었다.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웃는 폼이 신이 나 보였다.
“여기서 담배피면 할멈한테 혼쭐 나.”
“그럼 안 피시면 되잖아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어디있드냐, 아이구야.”
반딧불처럼 번쩍이는 담뱃불이 아직 꺼지지 않아 바닥에 번쩍거렸다. 그는 발로 살포시 그것을 짓이고는 긴 갈발을 한 번 털었다. 이상하게도 도련님과 같은 향기가 난다.
“사과냄새..”
“그야 내가 이 과수원의 농부니까.”
“농부요?”
“여기서 일을 하거든.”
그러고보니 옷을 입은 폼세가 다르다. 얇은 긴 모시옷은 곳곳이 때가 타 있고 장화도 노오란빛이 도는 게 폼이 나지 않는다. 갸우뚱거리는 제 고개를 보다가 웃더니 긴 손가락으로 제 코를 툭 튕겨온다. 살살 쳐온 것 뿐인데 사과향이 듬뿍이다.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
“그쪽이나 들어가시죠. 주모한테 다 말할 것이에요.”
“숙녀를 감히 품에 안은 건 미안한데 그쪽은 너무하지 않아?”
능글거리는 발 끝이 제가 갈 길에 나뭇가지를 치우기 시작한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과수원에서 말동무가 생겨 다행인지 툴툴거리는 제 말 하나하나에 답을 주는 남자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작은 골목길이 끝나고 뒤를 돌아 쳐다보니 아직도 실실 웃는 남자가 보여 괜스레 저도 신이 났다.
마음 둘 곳이 없던 곳에서의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길을 나오다가 낮은 나무에 머리라도 쓸린 것인지 나뭇잎이 머릿칼에 붙어 손을 들어 툭 튕겨냈다.
“째끄만게.”
“별루요. 얼른 들어가세요.”
“이름이 무엇이야.”
본래 이름을 알려줘야 하나, 싶어 망설이다가 결국 ‘향이에요.’ 라고 웅얼거렸다.
좁아지는 길에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꼭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같아서 느낌이 이상했다.
또 무슨 생각이 드는지 스믓 거리는 웃음이 입가에 맴돈다.
“아까 전부터 킁킁거리던 것이 이름에 걸맞으라고 그런 것이야?”
“지금 누구 놀리세요?”
“아니, 장난은 아니고. 나는 태형이다. 다들 태라고 부르지.”
내인들의 이름은 한글자라더니, 이 사람도 다를 게 없구나 싶어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렸다.
스치듯 아린 무릎을 털고 앞마당으로 향하는데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달큰한 사과내음이 풍긴다.
도련님이다.
정국이 방 문 앞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제가 걷다 멈추는 소리에 때와 다른 듯 눈길을 주는 데 어딘가 모를 불편함이 섞여 있었다.
입을 열지도 않고 말을 하지도 않으니 그 어떤 것도 물을 수 없고 들을 수 없어서 답답할 뿐이었다. 저 때문인건지 아니면 비가 오려는 듯 눅눅한 공기때문인건지 가늠이 가질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태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고 온전히 저를 쳐다보는 것을 느껴 정국에게 고개를 한 번 푹 숙이고 빠르게 방으로 향했다. 별로 멀지 않게 느껴지던 거리가 어느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
“향아, 어제 도련님이 언질이라도 주시든?”
“네?”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다. 아침을 거르신다네.”
“아…”
한 것은 없지만 지난 밤의 눈길이 마음에 콕 박혀 저를 찔러왔다. 소등하실 때 까지만 해도 고운 미간이 찌푸려지지 않았는데, 마루에 앉아 쳐다보던 그 눈빛이 영 잊혀지지가 않는다.
주모는 저녁상에 올릴 생선을 손질하는 내내 잠자리가 안 좋으셨나보다, 면서 정국의 걱정을 서슴지 않았다.
“오늘은 비가 올 모양인가보다. 사과나무 밑에 종이 다발들이 혹시라두 날아갈지 모르니까 마루에 앉아있거라.”
“네. 그럼 오늘 일하시는 분은 안 오는 건가요?”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
“그 .. 태라는 사람 말이에요. 과수원에서 일을 한다 던데.”
“태?”
주모는 인상을 찌푸리며 제게 다시금 물었다. 분명 태라고 그랬는데..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 기억을 더듬던 중 부엌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바닥에 축축한 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사람에 고개를 들어 확인한다.
“도련님! 또 과수원에 나가셨어요?! 비 오는 날에는 가지 말라니까!”
"...?"
“어, 안녕.”
눈 앞에 있는 것이 꿈인가 싶어 고래를 설레설레 저었지만 주모는 그런 저를 밀치고 남자에게 다가가 목에 걸린 수건으로 그의 젖은 품을 탈탈 털었다. 스믓거리며 웃는 것이 꼭 어제 와 똑같아 제가 정말 꿈이라도 꾼 줄 알았다.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다. 태라는 그 남자는 안주인의 배다른 아들이라던 큰 도련님이었다.
-
“삐졌어?”
“왜 제게 그런 장난을 치신..!”
“나야 너가 어제 있던 일을 이를 까봐,”
“도련님이라고 말씀해 주셨다면,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도 충분히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마루 끝 주모의 말씀대로 사과나무 밑 더미가 쏠리지 않을까 지켜보던 중 제게 살금 살금 걸어오는 태형이었다. 오는 것을 알고 어제 일이 또렷하게 살아나 귀를 붉히고 등을 졌다.
말끔한 옷을 입고 제 옆에 앉은 태형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 왔다. 집에 붙어 있지를 않는다던 큰도련님을 그렇게 마주 할 줄이야.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주모는 제게 배다른 큰도련님을 말해주면서 말 끝을 흐리셨다.
배다른 형제인 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말 한 번 섞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여기서 일을 하는 내인에 불과하다며 신경 쓰지 않겠다, 마음을 먹었는데 도련님과는 다른 저 모양세와 품을 보니 한 없이 호기심이 부풀었다. 그건 마음속에나 담고 하는 생각이지 절대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너, 저 종이 더미가 무엇인지는 알고 보고 있는 거야?”
“주모가 보라니까 그냥 보고 있는 거죠. 무엇인데요?”
“자 봐.”
태형은 제 뒤로 자리를 옮겨 또 다시 너른 품에 저를 가두었다. 깜짝 놀라 움직이는 어깨를 토닥거리며 나무 밑을 가리키고 말을 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알싸한 사과내음이다.
“비가 오면 파인 나무 끝에 물이 고여. 어느 것이나 과하면 넘쳐 흐르고 흉이 진다. 그걸 막기 위해서 종이 더미를 두어 물을 흡수하고 길을 터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야. 이제 알겠어?”
“저, 알겠는데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요.”
“쉿. 그리고 잘 들어봐.”
태형은 저를 살짝 당겨 품에 안기게 한 다음 딸랑이는 종소리를 가르켰다. 바람이 불어 쉴 틈이 없는 맑은 소리가 고요하다.
딸랑, 딸랑.
꼭 종 하나만을 두고 저를 가두어 둔 것처럼 종소리만 들리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저를 툭툭 쳐오는 손길에 눈을 뜨면 저 멀리 마루 끝 방에서 나오는 까아만 눈동자.
제 귓가에 낮은 음성이 천천히 들리고 저와 태형을 보던 정국은 이내 눈을 두어번 끔벅이며 발을 움직였다.
“물이 한 곳으로 쏠리면 다른 한 곳은,”
말라가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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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곧장 일어서서 정국을 따라간다.
2. 부엌으로 향하는 정국을 쳐다본다.
정국을 위한다고 선택하는 것이 흉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선택은 새로운 만남일수도 있고 ㅎㅎ
과반수가 택해준 것으로 전개가 되는 것이니 신중하게 부탁해 오늘도 읽어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
암호닉은 아직 내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 남겨주면 공부해서 해놓도록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