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중 가장 막막한것 같은 화요일 저녁.
권경위님은 늘 혼자 점심을 드시고, 유치장에 가득가득한 조직원들을 조사하느라 절반씩 나뉘어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덕분에 막내 3명, 즉 다니엘, 성우 그리고 내가 얼마남지 않은 점심시간을 즐기며 식당에 앉아 있었다.
“야. 너 오늘은 권경위랑 뭐하고 왔냐?”
하루종일 조사에 시달리다 곧 말라죽을 사람 처럼 입에 밥만 넣기를 반복하다가, 성우가 먼저 입 한가득 밥을 오물오물 씹으며 물어왔다.
“그냥 같이 경찰청 갔다왔는데?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선배인데 권경위에 님 정도는 붙여라.”
사실 탕비실에서 권경위님의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본 뒤로, 뭐랄까 조금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내가 이곳으로 오고 선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것 처럼 처음엔 누구든 서툴 수 있는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감정 때문에 성우의 말을 바로잡은건 아니고, 그냥 남들이 보기엔 옳지 않은 행동인건 맞는거니까...
하지만 그런 내 행동이 의아했는지 밥에 코를 박고 먹던 두 사람이 갑자기 서로 눈빛을 주고 받더니 동시에 젓가락을 식탁에 탁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왜 맨날 너만 데리고 나가는데?”, “나가서 경찰청갔다가 또 뭐하는데?”, “이상한 뜻 있는거 아니냐.” 하며 쉴새 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하나씩 질문해, 하나씩. 후, 일단 들어봐. 매일 나만 데리고 나가시는건 우리 팀중에 내가 제일 운전이 미숙해서 운전 연수 겸 데리고 가시는거고, 경찰청 갔다가 점심시간 걸리면 밥먹고 밥먹으면 식곤증 오니까 커피 한잔 정도 먹고 그렇게 복귀해. 그리고 나랑 황선배 사이를 뻔히 아는데 이상한 뜻이 있긴 뭐가 있어.”
“빼박이네. 김여주 네가 이렇게나 남자를 모른다.”
“맞죠. 내만 이상하게 생각했던거 아니죠.”
그 뒤로도 이 두사람은 남자가 베푸는 친절에는 다 이유가 있는거라며, 굳이 운전연수에 밥먹고 게다가 커피까지?! 하며 아주 짝짝쿵이 잘 맞아 이미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피리까지 불어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민현이형 두고 김여주 네가 그러면 안되는거야.”
아니, 내가 뭘 어쨌다구...
그렇게 말하면서도 선배얼굴이 떠오르자 절로 말끝이 하려졌다. 다른 뜻이 아니라, 누구보다 스트레스 받아 할 선배임을, 그러면서도 힘들다 말 한마디 못하는 선배임을, 그래서 팀원 모두가 권경위님에게 그렇게 대하는것임을 잘 알면서도 팀원 중에서 내가 권경위님이랑 가장 친한건 사실임을 느껴서 였다.
“민현이형은 뭐라고 안해?”
뭐라고 할리가, 누구 보다 공과 사가 철저하신 분이라 신경도 안쓰실겁니다.
“암튼, 둘이 가까운 사이인건 맞으니까 알아서 잘해라.”
“진짜, 둘이 뭔 감정이라도 생기면 내가 누나 중간에 포기한거 억울해서라도 가만히 안냅둬요.”
아참, 요즘 다니엘은 머리가 컸다고 아주 매일같이 기어오르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옛 감정을 오픈하는 거였다. 물론 그 감정이 옛 감정이라 다행이긴 한데, 그래서 이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긴 한데, 굳이 그걸 또 옹성우 앞에서?
“진짜 강다니엘, 너 좀 맞자.”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저녁시간, 사람이 없는 식당에서 다니엘을 때려보겠다고 있는 힘껏 팔뚝을 때렸다가 단단한 팔에 내가 더 아파 손을 감싸쥐었고 그 모습에 놀란 다니엘이 괜찮냐며 나를 걱정하다가 결국 등짝을 얻어 맞았다.
그리고 그런 둘 사이에 어떻게든 끼어들어서는 “맞지? 둘이 그렇고 그랬었지? 아니, 진짜로 그랬어?” 하며 허공에 열심히 물음을 던지는 성우였다.
언제나, 오늘도, 강력 1팀은, 평온합니다.
***
불구속 조사로 사람을 조사할 수 있는 시간 최대, 48시간.
이틀간의 밤,낮 없는 조사가 끝이나고 마지막 조직원까지 조사보고서 작성을 완료해 권경위의 책상에 올려졌고 망설임없이 보고를 확인했다는 싸인이 남겨졌다.
모두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제자리에서 기지개를 폈다. 입을 가릴 여유도 없이 하품을 쩍쩍 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몽롱한 정신을 권경위의 짝짝- 박수소리가 깨웠다.
“조사 끝난 기념으로 우리 회식이나 하죠. 10분뒤에 입구에서 만납시다.”
전과 다르게 밝은 목소리톤으로 박수를 크게 두번 치며 먼저 말을 꺼내는 권경위의 행동에 모두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녁도 걸러서 배가고프기도 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신나는 수다로 떨쳐버리고 싶기도 한데 그동안 늘 권경위 없이 모였던 터라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로 곁눈질로 눈치만 보고있는 사이 하선배가 먼저 말문을 텄고 처음이 어렵지 그 뒤는 괜찮다는듯 모두가 자연스레 하선배를 따라 한마디씩을 남기곤 일어나 숙직실로 향했다.
“난 갑자기 배가 아파서.”
“저는 몸살이 걸릴 예정이라.”
“나이가 들었나, 잇몸이 시리네.”
.
.
.
“저는 좀 피곤해서...”
그렇게 약속이라도 한듯 갖가지 핑계를 대고 사무실을 빠져나온 우리는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는 숙직실에 모여 앉아 고픈배를 컵라면으로 달래고 있었다.
핑계라기 보단 누가봐도 변명이었던 대답들이었기에 차마 말을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권경위의 표정을 볼 순 없었다. 평소 같았다면 에이 다들 밥이라도 먹어요- 라며 권경위를 도우려했겠지만 불과 하루 전 다니엘과 성우의 대화가 조금은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하선배와 윤선배의 마음을 알기에 그럴 수 없었다.
나한테 실망하셨겠지? 되게 서운하실거야. 대놓고 무시하는데 기분이 좋을 사람이 어디있겠어. 자꾸만 드는 생각에 결국 입맛도 뚝 떨어져 억지로 밀어넣던 컵라면도 2층 침대 옆 서랍장위에 올려놓고 푹신한 이불에 몸을 뉘었다.
“벌써 자게?”
“야, 이 팩 하고 자라니까?”
***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10분이 지나도 어두운 밤 경찰서앞은 아무도 지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배고픈 고양이만 작은 울음소리를 내며 앞을 서성거렸다.
벽에 몸을 기댄채 애꿎은 신발코를 괴롭히던 현빈이 쓴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한손에 고양이 사료가 든 접시를 든 민현이 문을 열고 나왔다.
민현이 나오자 고양이는 기다렸다는듯 민현에게 몸을 비볐고, 사료통을 내려놓으며 익숙하게 고양이를 쓰다듬던 민현이었다.
“천천히 먹어, 천천히.”
“이젠 하다하다 고양이한테 까지 다정하냐?”
담배를 꺼내들고 입에 물며 어이가 없다는듯 말하는 현빈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이마저도 칭찬으로 듣는건지 여전히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두사람의 입가엔 대조된 의미로 다른 웃음이 걸려있었고 말없이 연기만 뻐금거리던 현빈이 발로 담배를 비비며 불을 끄자 민현이 그제야 고양이에게서 떨어져 현빈의 옆에 섰다. 그리고 그런 민현을 뭐하냐는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현빈이었다.
“회식하자며, 가자.”
적당히 어두운 조명과 적당히 들리는 음악, 남자 둘이 앉아 있기엔 조금 과한 분위기까지 갖춘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민현이 어이가없다는듯 계속해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회식을 가자던 민현을 부담스러울정도로 빤히 쳐다보면 현빈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앞장서더니 긴다리로 휘적휘적 먼저 걸어갔다. 그렇게 같이 걷는 것도, 따로 걷는것도 아닌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며 걸어가던 두사람이 횡단보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뭐 먹을래?”
“시간도 애매한데 고기나 먹자.”
주머니에 손을 꼽고는 전혀 일행이 아닌 사이처럼, 민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저 멀리 지나가는 차들에 시선을 고정한 현빈이 먼저 질문을 던졌고, 어느덧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민현이 회식 때 늘 먹는 고기를 아무 생각없이 말했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말해서 일까, 두사람이 너무 달라서일까. 대부분 불판에 지글지글 구운 고기를 상추쌈에 올리고 소주 한잔까지 곁들이는, 그런 고기를 생각한 민현과는 다르게 고기라는 말에 본인이 자주 가는 스테이크가 맛있는 레스토랑으로 데려온 현빈이었다.
회식에, 것도 남자 둘이서 이렇게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 아까부터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민현과는 다르게 익숙한듯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현빈이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다.
“등심 스테이크하나랑 레드와인 한잔이요. 너는?”
“같은걸로 주세요.”
주문마저 해버리자 정말 해야할 행동이 ‘대화’뿐이라 둘 사이엔 정적만이 맴돌았다.
“너 술 못먹었잖아. 이제 좀 마시냐?”
“아니. 짠이라도 해줘야할것 같아서.”
예상치 못한 대답에 물수건으로 손을 닦던 현빈도 아까전 민현처럼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두사람 다 비슷한 의미의 웃음을 짓는게 분명했다.
경찰대 시절, 조원들이 같이 밥을 먹으러 모처럼 시내로 나왔는데 모두가 현빈을 따라 어리둥절하게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하던 기억처럼 얘는 하나도 변한게 없을까, 대-단하다 라는 의미로.
민현아 이것 좀 빌려줄 수 있어? 이것 좀 도와줄래? 라는 여러 물음들에 한결같이 당연하지로 대답하는 일관성을 넘어서서 물어보기도전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 심지어 그 배려에 부담이나 미안함을 느낄까 자신의 배려마저 숨기려는 행동. 그런 행동덕에 여자,남자 할것 없이 모두 민현을 입모아 칭찬하던 기억처럼 쟤는 뭔데 아직도 저렇게 착해 빠졌지. 대-단하다 라는 의미로.
그렇게 두 사람 다 이번에는 비슷한 웃음을 지었다.
정적은 다행히도 빠르게 나온 음식들 덕에 어색함을 조금 미뤄두었다.
가벼운 건배와 함께 와인으로 목을 축인 현빈은 고기를 한점씩 썰어먹기 시작했고, 민현은 아무생각없이 늘 그렇게 해주듯 고기를 작은크기로 잘게 다 썰었다가 아- 하고는 그런 자신의 행동에 웃음지었다.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자신의 습관들이 여주를 떠올렸고 그 습관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늘상 같은 패턴처럼 생각의 끝에 또 여주를 떠올렸다. 그래, 분위기는 좋으니까 다음에 꼭 데려와야지.
서로 생각에 빠져 음식을 입으로만 먹어서일까, 빠른속도로 메인요리를 헤치웠고 디저트로 나온 달콤한 푸딩을 입에 넣자 오늘 내내 미소를 띄고 있던 현빈이 다시 말을 열었다.
“여주씨, 신기하더라. 강력반에서 꿋꿋히 잘 버텨내는것 같아.”
“사심을 제외하고 봐도 실력,담력,노력 다 갖춘 친구야.”
“같이 외근 나갈때 마다 커피마시던데, 좋아하나봐?”
“카페인 때문에 먹으면 잠도 못자면서 매일 먹어. 먹고 밤에는 잠 안온다고 매일 전화로 괴롭히거든.”
자연스럽게 나오는 여주 이야기에 민현이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여주를 상상만 해도 좋은듯 자꾸 혼자 미소를 짓는 민현을 보며 현빈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리고 처음 느끼는 그 감정이 불러낸 질투심은 현빈을 더 과감하게 만들었다.
"여주씨, 뭐 좋아해?"
"먹는거면 뭐든. 그 중에서도 달달한 거."
"영화는 호러? 로맨스?"
"로맨스.."
"꽃을 좋아할까, 선물을 좋아할까?"
"......."
"걷는걸 좋아해, 드라이브를 좋아해?"
"너 뭐하냐?"
점점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현빈의 질문에 표정이 굳어진 민현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민현은 신경쓰지 않는듯 계속해서 쏟아내는 질문에 결국 목소리가 가라앉은 민현이 "뭐하냐고." 라고 말하자 오히려 이 상황을 더 즐기며 물을 한모금 마시는 현빈이었다.
"관심갖는건데?"
"니가, 왜."
"나도 김여주가 좋으니까."
"장난해?"
"누구보다 진심이야. 왜, 천하의 황민현이 권현빈한테 밀릴까봐 겁나냐?"
당당한 현빈의 태도에 민현은 화가나면서도 어이없어 했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여자친구를 좋아한다고 면전에서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싸늘하게 식어버린 분위기 사이로 피어오르는 불꽃을 현빈이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황민현이 다 가졌으면 이제 하나 쯤은, 자신이 가져도 되는거 아니냐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것도 아닌데 김여주를 좋아해서 안될 이유는 없다고. 그 말을 남기고 현빈은 "먼저 간다." 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빈자리를 멍하게 바라보던 민현이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친 현빈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너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갈껀데."
"황민현 밑바닥 보다 더 내려갈거야. 거기까지 파고들어서 설곳이 없게 만들면 무너지겠지."
***
그나마 가장 평화로운 강력반의 아침이 오늘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이젠 나도 대충 얼굴을 외울것같은, 그 중국인 무리들이 또 사고를 쳤는지 아침부터 2팀 형사님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누나. 내 오늘 오랜만에 꿈꿨어요."
"무슨 꿈?"
"내 웬만하면 사랑싸움엔 안낄라 했는데, 누나 오늘 정장입은 남자.."
뜬금없이 슬슬 옆으로와서는 꿈 야기를 꺼내는 다니엘의 얼굴을 보니 척 봐도 나쁜꿈은 아니었던것 같고, 그렇다고 큰 일도 아니었던것 같아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채 영혼없이 대답만 해주었다. 그러다 옆의 2팀이 부쩍 조용해진 느낌이라 시선을 그리로 돌리면,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서 있었다.
다시 조용해진 경찰서 안에서 나 홀로 "어?!"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자 몇몇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그 또한 마찬가지로 나를 쳐다봤다.
"어, 잘 지냈어요?"
오랜만에 보는 관린씨의 얼굴에 곧바로 반갑게 손인사를 건네며 의자를 뒤로 빼냈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옆에 있던 다니엘이 손목을 잡아왔다.
"누나, 꿈에서.."
"니엘아, 잠시만. 나 인사만 하고 올게."
그리고 그 손을 손수 떼어내고는 곧장 관린씨에게 반갑게 달려갔다. 물론 그땐 다니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유를 알아채지 못했었다.
오랜만에 보는 관린씨는 전보다 살이 더 빠진건지 얼굴이 헬쑥헤져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샤프한 분위기와 잘생김이 배로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다.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에게 오글거리는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네던 관린씨를 처음 만났고, 그 당시엔 선배와의 사이도 서로의 마음을 모르던 사이었다. 지금이 겨우 두번째 만남일 뿐인데 어느새 우린 많은게 변해 있었다.
"꽃들이 지길래 어디갔나했더니, 여주씨 때문에 다 졌구나."
하지만 특유의 농담 아닌 농담은 여전했다.
그리고 전 처럼 따뜻하게 내 손등에 입맞추는 행동까지도.
그러고 보면, 그 땐 일방적인 짝사랑 중이었고, 그 짝사랑을 쌍방향으로 바꿔준것도 관린씨를 이용해 얼떨결에 성공한 질투작전 덕분이었다. 정말 내가 관린씨랑 밖에서 데이트라도 할까봐 이상한 변명거리를 만들어가며 나를 데리고갔던 선배, 진짜 너무 귀여웠는데.
그땐 그랬었다면, 반강제적으로 우리의 연애 사실이 밝혀지고 선배는 경찰서 안에서는 공적인 대화가 아니면 나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는 일이 없었다. 그게 당연한거고 그래야 한다는걸 알지만 왠지 모르게 가끔 서운할 때 가 많았다. 혹시 그 서운함을 또 관린씨가 풀어줄 수 있는건 아닐까. 날 보고 웃는 관린씨의 얼굴을 보자 아찔한 상상이 점점 커져갔다.
"머리 많이 길었네요?"
"라푼젤처럼 관린씨 오면 머리잡고 이리오라고 하려고 했죠."
예전에도 그랬지만 관린씨의 농담은 관린씨만이 소화할 수 있었다. 남들이 한다면 정말 오글거리고 재미없는 말일지라도 관린씨가 한다면 뭔가 분위기 있고 위트넘치는 말들로 바뀌었으니까.
그런 관린씨의 말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말도 되지 않는 말들을 마구잡이로 말하면 나의 농담이 마음이 들었는지 혼자 의자에 기대듯 앉아 웃으며 우릴 지켜보는 하선배였다. 그리고 그 특유의 하이톤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러펴졌다.
"난 여주씨 보고 싶어서 사고칠까 고민도 했는데."
"저도 관린씨 보고싶.."
작은과자를 와그작 씹으며 영화를 보듯 우릴 지켜보는 하선배였고 다음으로는 영화같은 대사를 내뱉는 관린씨였다. 그리고 그에 맞게 대답을 해주려 하면 어느새 뒤쪽으로 다가온 선배가 이번엔 어떠한 말도 없이 내 손목을 잡고는 경찰서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갔다.
굳게 입을 다문 채 손목을 꽉 잡고 나를 하늘공원으로 데리고 간 선배는 아무도 없는 이곳에 와서도 쉽사리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런 표정도 짓지않고 있는 선배의 무표정은 차가움을 불러일으켜서 그를 바라보는 내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저번과 오늘, 가장 크게 달라진건 아무래도 선배와 나의 사이인데 표정만 봐도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있는 사이가 되어버린 우리인데 지금 선배의 표정은 그 어떤 때 보다 좋지 않았다.
"선배, 왜그래요..."
"너야말로 왜그래. 뭐하는거야."
"그냥 장난치는거잖아요.."
"그 장난에 내 기분은 어떨지 생각안해?"
결국 먼저 꺼낸 말에 선배는 인내심이 터져버린듯 굳은 표정으로, 아니 정확히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마주했다. 늘 한없이 다정했던 사람이기에 화를 내는 모습도, 그것도 나에게 화를 내는 모습은 더더욱 처음이라 하고싶은 말이 많아도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너였더라면 애초에 다른 사람이 너를 그렇게 대하게 두지도 않았을거고, 장난삼아 맞장구 치지도 않았을거야. 네가 장난처럼 행동할 때, 그 상대방은 너를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봤어?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어떨지."
"...죄송해요. 근데,"
"김여주, 나 실망하려고 해."
***
두사람에겐 이미 한바탕의 폭풍이 지나갔것만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폭풍이 남아있었다.
밤샘근무가 끝난지 얼마 되었다고, 1팀의 새로운 반장도 왔으니 강력반 다같이 회식을 하자는 계장님의 말에 그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고 꼼짝없이 모여 다들 잔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선배와 다툼 후 아무런 대답도 하지못하고 서로가 상처를 받아 차갑게 돌아섰는데 화해는 커녕 회식자리에서 기분좋게 술을 넘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게다가 다른 팀 형사님들이 서로 앞다퉈 잘 보이려 권경위를 칭찬하는 모습에 모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어떤 티도 낼 수 없었다.
“권경위, 술 좀 하는것 같은데? 술까지 잘하면 어쩌나 자네.”
“술 못하는 황경위랑은 완전 딴판이네. 역시,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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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몽실몽글][숨숨][항미년][0810][밍챠][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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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야축구하자][체리쉬][레인보우샤벳][공육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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