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에게 09
9장. 두 마리의 토끼
- 2개월 후
“어? 잠시만요.”
“문자 왔어요? 천천히 확인해요.”
“은주씨.”
“네?”
“...나 됐대요.”
“뭐가요?”
“전에 본 면접, 그거 합격했대요!”
“와 정말? 너무 잘됐다! 성우씨 그 회사 엄청 들어가고 싶어 했잖아요. 축하해요 진짜.”
“와... 이거 꿈 아니죠? 와... 뭐지...”
“뭐긴요, 될 사람이 된 거지. 성우씨가 열심히 준비했다는 걸 면접관님들도 알아보셨나 봐요.”
“그냥 뭔가... 그동안 계속 떨어지면서 나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 이렇게 붙고 나니까 실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해요.”
“성우씨 지금 표정 진짜... 그렇게 좋아요? 이거 꿈 아니니까 정신 좀 차려 봐요. 회사도 취직했는데, 나한테 뭐 바라는 거 없어요? 내가 대단한 건 못해주지만, 소원 하나 정도는 들어줄게요.”
“음...”
“없으면 말구요.”
“있어요. 호칭.”
“호칭?”
“응, 호칭. 우리도 이제 성우씨, 은주씨 하는 거 그만 해요.”
“난 좋은데. 성우씨, 은주씨 하는 거.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뭐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는데요?”
“말하면 다 들어줘요? 진짜?”
“...막 엄청 이상한 것만 아니면요. 여보, 자기... 이런 건 나 못해요.”
“은주씨 뭘 생각한 거예요? 나도 그런 건 싫어요.”
“다행이다. 그럼 우리 성우씨 이제 뭐라고 불러줄까요?”
“...오빠?”
“오빠? 성우 오빠. 와 이거 되게 어색하다.”
“......”
“부르는 건 난데 왜 성우씨, 아니 오빠 얼굴이 빨개져요? 부끄러워요, 오빠?”
“아아 몰라요. 나도 이제 은주씨 말고 은주야 할 거예요. 말도 놓고. 편하게.”
“드디어 반말하기로 한 거예요? 해봐요 한 번. 처음엔 어려울 텐데.”
“하나도 안 어려운데? 은주야, 내가 못할 것 같아요?”
“못하는데요?”
“아니거든. 완전 잘하거든요?”
“엄청 못하는데. 차라리 내가 말 놓는 게 빠르겠다.”
“그럴래요? 우리 그냥 서로 말 놓을까?”
“그건 싫어요. 지금은 존댓말이 더 편하거든요. 나중에 자연스럽게 놓을래요.”
“그래요 그럼. 말을 놓느냐 놓지 않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럼요. 그것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 8개월 후
“지금 전화하면 받으려나... 에이, 그냥 문자나 보내야겠다. 설마 문자도 확인 못 하겠어?”
오후 4시 32분
[오늘도 회사 늦게 끝나요? 엄청 많이 보고 싶은데.]
오후 7시 58분
[오늘 회식 있을 것 같은데? 미안해. 우리 내일은 꼭 보자.]
오후 8시 23분
[오빠 회식 시작했어? 술 너무 많이 마시진 말구요.]
오후 11시 49분
[이제 회식 끝나고 집 들어가는 중. 부장님 기분 맞춰 드리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회식 늦게 끝났네... 하긴, 신입사원이 무슨 패기로 회식을 빠져. 서운해하지 말자 정은주.
...그래도 연락은 틈틈이 해줄 수 있지 않나...”
- 1년 2개월 후
“이야, 우리 은주가 드디어 졸업을 하네.”
“다예 언니! 올 줄 몰랐는데. 어떻게 왔어?”
“네 졸업식에 내가 빠지면 쓰나. 오늘 성우씨는 안 왔어?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빠 요즘 바빠. 아직 취직한 지 일 년밖에 안 돼서 그런지 힘든 일은 다 도맡아서 하나 봐.”
“좀 섭섭하긴 하겠다. 근데 나도 뒤에 약속이 있어서 오래는 못 있을 것 같아. 미안.”
“와 준 것만으로도 어디야. 진짜 고마워요.”
“결국 못 오나 보네... 그래, 올 리가 없지. 요즘 연락도 잘 안되는데.”
“은주야!”
“오빠?”
“졸업 축하해.”
“오빠 요즘 바쁠 텐데... 와줘서 고마워.”
“여자친구 졸업식인데, 당연히 와야지. 오는 길에 샀어. 졸업식에 꽃다발이 빠지면 안 되니까.”
“처음 보는 꽃인데? 되게 예쁘다! 이 꽃은 이름이 뭐예요?”
“리시안셔스래. 나도 처음 보는 꽃인데 보자마자 이거다 싶더라.”
“얘도 꽃말 같은 거 있나?”
“있지.”
“꽃말이 뭐래요?”
“변치 않는 사랑.”
“오... 왜 하필 이 꽃을 골랐대?”
“이유는 얘기 안 해도 알잖아.”
“진짜... 사람 감동받게 하는 데는 뭐 있다니까. 어? 여기 편지도 있네?”
“야... 그건 나중에 집 가서 읽어. 부끄럽단 말이야.”
“뭐가 부끄러워요. 평소에도 낯간지러운 이야기 잘만 하면서.”
[은주야, 졸업 축하해!
손편지 쓰는 거 진짜 오랜만인 것 같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너에게서 내가 얼마나 많은 위로와 행복을 얻어 가는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야. 며칠 전에 네가 나한테 우주 관련된 시 하나 알려준 거 기억나? ‘내 안의 우주’라는 시. 그 시를 읽고 나서 내 옆에는 항상 네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내 옆에서, 내 삶이 되어줘서 고마워. 너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내가 용기가 부족한 탓에 말로는 못 할 것 같아 편지로 대신할게.
내 안의 우주가 너로 인해 이렇게 아름답듯이, 나도 항상 너의 우주 속에서 빛나고 싶어. 우주를 주겠다는 마음으로 다 줄게. 항상 고맙고, 항상 사랑해.
-부족함 많은 남자친구 성우가-]
“...이거 오빠 혼자 썼어?”
“혼자 썼지. 편지를 도움 받아서 쓰는 사람이 어딨어.”
“무슨 남자가 편지까지 이렇게 잘 써...
그리고 부족하긴 뭐가 부족해요. 오빤 이미 내 우주 속에서 빛나고 있어. 사랑해, 우주보다 더.”
+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부제와 문자 내용은 기분탓...이겠죠...?
++ '나의 행복에게'는 성우의 어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성우의 편지에 인용된 시는...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 아실 거라 믿어요!!
저의 우주는 독자님들로 반짝 빛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