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냈어?”
방탕해, 아주 방탕해. 그래서 아주 마음에 들어. 얼굴은 순하게 생겨가지고, 아주 방탕한 음색이다. 이런 사람이 가수해야지, 흥해야지. 고작 연남동 공원에서 버스킹을 하다니 참 아깝다고 생각했다. 곧 노래가 끝남을 알리는 기타 맺음에, 엉덩이를 떼고 박수를 보냈다. 그때.
“강여주다.”
“어? 뭐야,”
“반대편에서 너 보고 아닌가 싶어가지고,”
“잠깐만, 내가 지금 렌즈를 안껴서...,"
“그 정도로 눈 안 좋았었나?”
"어? 어, 아니."
그때와 다를 것 없는 눈, 코, 입. 심지어 머리색까지. 학생 때는 당연히 흑발이었던 거고, 지금은 우연히 흑발인거겠지. 만남도 우연인데, 그때랑 더 확연히 겹쳐 보이는 것도 우연이라 말문이 막혔다. 나 역시, 그때와 같은 사람이어야 할 것 같아서.
7년 동안, 강다니엘
ⓒ 강고기
그날의 강여주
도로로륵, 내 시선이 옮겨 가는 소리였다. 혹여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을까. 아까부터 움츠리고 있던 어깨가 떨리기 까지 했다. 낯선 공기, 낯선 광경, 낯선 사람들. 오늘 내가 본 것들 모두가 그랬기에, 나는 지금 아주 천천히 내 앞의 모든 것들을 담는 중이다. 내일은 이 공기가, 이 광경이, 이 사람들이 낯설지 않았으면,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이제 그만 가서 앉을까?”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님에도 깜짝 놀라 버렸다. 어딘가에서 작게 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기엔 문득 두려움이 앞섰던 것 같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빈자리 옆은 아까부터 날 찌푸려 쳐다보던 애가 앉아 있었다. 다시 한 번 내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에 빈자리만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빨라졌는데, 반대로 호흡은 아주 느려졌다. 그래서 한참을 숨을 들이키고선 뱉지 못했다. 내게 쏟아진 시선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돌아갔음을 느끼고 나서야, 뱉어진 숨. 나는 이런 애다.
“어디 아파?”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아주 작고, 또 조용하게 자신이 갈 길, 자신이 할 일을 하는 개미 같은 사람. 누군가가 나를 그런 사람이라 말했었다. 분명 모든 시선들이 다 돌아갔다고 느꼈는데, 아니었나 보다.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입을 막았다. 숨을 급하게 마셔버렸다. 숨 쉬는 법이 뭐였더라, 뱉어야 하는데. 지금, 빨리.
“야,”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등에 아픔이 느껴졌다. 입을 막았던 손이 떼어지고, 동시에 숨도 뱉어졌다. 하, 후우…, 하지만 이 소리도 너무나 작아서, 내게 닿았던 손의 주인만이 나를 살필 뿐이었다. 작은 숨소리가 잦아 들었을때,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익숙하다. 눈가를 꾹꾹 누르고, 그대로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무시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제발, 나한테 아무 말도 걸지마.
“선생님, 얘 아픈 것 같은데요.”
요란하지도 않고, 그리 급하지도 않게 내 상태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책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곧 양 어깨가 들어 올려졌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여러 시선들이 엉켰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키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다는 말 한 마디면 될 걸 알면서도, 나는 또 못한다. 못하겠다. 왜, 왜 그럴까 나는.
“괜찮아?”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어떠한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양호실 문을 열고 있을 때쯤, 가쁜 숨을 내쉬며 기어코 말 한마디를 내뱉은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교실 앞에 서있는 내내 나를 찌푸려 보던 그 애였다. 숨 쉬는 법을 잠시 까먹었던 그 때, 내 등을 세게 내리쳐준 그 애였다. 그러니까, 내 짝.
“선생님 없을 건데,”
“…어?”
“외출중 걸려있네.”
퉁명스레 내뱉은 말과 함께 어깨 너머로 눈짓을 준다. 외출중이라니, 창문에 걸려 있는 팻말엔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글자부터가 세 글자와 일곱 글자로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잘못 읽을 수 있는 걸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단 듯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길에 일단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양호실 문을 마저 열었다.
“야, 없다니….”
잘못 읽었다고 말하는 것보단 양호실 안에 계실 선생님의 광경을 보여주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없다. 외출중이 걸려 있지 않았음에도, 선생님이 없었다. 나와 함께 양호실까지 들어선 그 아이는 뒤에서 푸념 섞인 말을 늘어놓는다. 외출중 걸려 있다고 했잖아,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냐. 아까 전까지만 해도 아주 작은 용기도 생기지 않았었는데, 이상하다.
“외부인 출입금지,”
“뭐?”
“외출중 아니고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었어.”
말하고 싶어졌다. 이상하게. 그 애의 눈을 똑바로 보진 못했다. 대신 발끝을 봤다. 나보다 훨씬 크니까 고개를 들어도 닿지 않을 것 같아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떨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어쩐지 퉁명스레 내게 말을 걸던 아이의 눈이, 시골 집 강아지를 연상케 했다. 그래서 이 한 마디 정도는 내뱉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음,”
보고 있던 그 애의 발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뒤를 돌아 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설마 민망하게 했던 걸까. 머리를 긁적이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오늘처럼,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라서 이상했다. 그래서 문을 여는 그 애의 뒷모습을 보다 서둘러 뒤를 돌았다. 잠깐 있다가, 그 애가 교실에 도착할 쯤, 나도 양호실을 나서야겠다.
“저기,”
얼마 안 가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다. 아까 그 애가 내던 소리와 같았다. 곧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내 어깨에 무언가가 닿았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그 애는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자연히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것에 시선이 갔다. 아까 내 어깨에 닿은 것은 작은 팻말이었다. 그리고 그 팻말엔,
“여기 외출중이라고 써있잖아,”
“…아,”
“맞지?”
놀리는 걸까, 아니다. 아닌 것 같다. 굳이 팻말까지 가져와 보여주는 그 애의 행동이 호의 같았다. 잘못 된 것이라 놀리는게 아니라, 알려주는 거라서. 그래서 웃음이 났다.
“내 이름은 강다니엘이야.”
“…….”
“반갑다,”
그날의 강다니엘
뻑뻑한 눈을 몇 번이나 비볐는지 모르겠다. 결국 얼얼한 느낌에 앞에 앉은 친구에게 거울이 있냐고 물어보던 참이었다. 그때 교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새로운 얼굴. 얼마 전, 눈물을 한바가지 쏟고 전학 간 짝이 생각났다. 둘씩 짝지어 있는 애들을 보면서 은근하게 느껴지던 허전함. 이제 앞자리 애 귀찮게 못하는 건 아쉽지만, 허전함은 안 느껴지겠네.
"녕, 녕이 안 들렸어."
턱을 괴고 같은 반이 될, 그리고 내 옆자리가 될 아이의 모습을 익히고 있었다. 목소리가 궁금할 참이었다. 입을 벌린 것 같은데 이상하게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 제일 끝자리였지만, 지금 이 순간 단 한 명도 떠들지 않고 있는데. 안경을 안 가져오기도 했고, 하필 전 시간에 렌즈가 불편해 빼버렸다. 초점이 잘 안 맞는다. 눈에 힘을 빼면 전학생이 두 명으로 보인다. 근데 쟤 좀 떠는 것 같이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훕, 후우.”
작다. 어깨가 내 손으로 두뼘 반 정도 되려나. 아니 그것도 안 되겠네. 어젯밤에 몬스터주식회사를 보는게 아니었다. 나는 왜 설리 같고, 얘는 왜 마이크 같은지. 살짝 입을 가려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다행이다. 헛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아니 근데, 처음 본 애 몸을 이렇게 훑다니. 이상한 생각은 안 했지만, 그래도 잘못한 것 같다. 아니지, 이게 이상한 생각이잖아.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불규칙적으로 숨을 내뱉는다. 어디 아프냐고 물었을 뿐인데, 눈물을 쏟는다.
“…….”
내가 이상한 생각을 한 걸 들킨 걸까.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말할까. 미안하다고, 이게 그 문제가 될 그런 생각인 줄 방금 깨달았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고. 네가 작아서, 내가 너보다 엄청 커서, 그게 신기해서 그랬다고. 엄청 또 신기한 건 아니었는데, 이제 내 옆자리고. 내 짝꿍이고. 친해지고 싶었다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핑계인 것 같고. 그냥 진짜로 작은 체구가 먼저 눈에 보였는데, 미안. 불편하면 자리 바꿔달라고 말해줄게. 이렇게 이상한 생각만 가득 찬 놈은 아닌데, 미안. 정말 미안.
“제가 따라가 볼게요.”
아무도 따라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거겠지.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조금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양호실은 어디 있는지 알까. 복도 끝 작은 체구의 실루엣이 보인다. 왜 하필 바로 전 시간에 렌즈를 빼버린 것인지, 안경은 왜 집에 놓고 온 것인지. 그리고 난 왜 이 아이를 불편하게 한 건지. 여러모로 후회스러운 일이 가득한 오늘이다.
*
'7년 동안 강다니엘'로 돌아온 강고기입니다. 오랜만이쥬 ?_? 원래 글을 찔끔찔끔, 오래오래 쓰는 성격이라서,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뵙게 되었네요! 구독자 분들 명단도 못받구, 제 식성대로 다니엘 글을 놓고 휭 가버린ㅜㅜㅜㅜ! 제 글은 소심쟁이의 끝인 아이가 이끌어가요. 제가 화면을 통해 보는 다니엘의 다양한 모습들 중, 제일 좋아하는-! 간혹 가다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작은 것에 환한 웃음을 보이는 모습! (사시르은- 제가 소심쟁이라 그런 걸 잘 발견하는 것일지돜ㅋㅋㅋㅋ)
지극히 일상에서도 다니엘을 찾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평범하고 작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글을 써요. 물론, 다니엘이란 거 자체가 절대 평범하지 않고 작지 않은 이야기지만! 여러분, 오늘도 강다니엘 하세요.
우리 모두, 기억조작을 시작해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