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에게 11
12장. 내가 없는 너의 시간들
- 3일 전
“뭐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매장 안을 둘러보며 선뜻 은주의 선물을 결정하지 못하는 성우를 보다 못한 직원이 말을 걸었다. 직원의 질문에 성우가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아, 다음 주가 여자친구랑 2주년이거든요. 선물 사려고요.”
“요즘 선물용으로는 이 제품이 잘 나가요. 가격이 부담스러우시면 이 제품은 어떠세요? 이번 라인 디자인이 대체적으로 깔끔하게 나와서 요 제품도 고객님들이 많이 찾으세요.”
직원이 보여준 두 가지 목걸이 중 고민하던 성우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가격은 상관없어요. 제일 먼저 보여 주신 걸로 할게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26만 7천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성우가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고 금방 계산을 마친 직원이 성우에게 포장된 목걸이를 건넸다. 그 목걸이가 제 주인에게 전해지는 대신 성우의 회사 책상 위에 놓일 거라곤 상상도 못한 채.
성우가 은주에게 목걸이를 선물하려던 날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2주년 기념 선물로 산 목걸이는 상자에 그대로 담긴 채 성우의 회사 책상 위에 놓여있다. 은주에게 다시 연락을 해 볼 엄두는 나지 않는데,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목걸이를 줘 버릴 수도 없는 성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은주와 헤어진 이후, 자신의 집을 나서던 은주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는 건 어느덧 성우의 버릇이 되어있었다. 둘의 관계가 끝나버린 날, 은주와 말싸움을 벌이는 동안 밖에 비가 내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성우는 급하게 나가버린 은주에게 우산이 있었는지, 행여나 우산이 없어 비를 맞지는 않았는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우산을 들고 나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 성우는 자신의 쓸데없는 자존심에 은주를 놓쳐버린 것 같아 매일같이 화난 은주를 따라가 사과를 건네는 상상을 하곤 했다. 오늘도 똑같은 후회와 상상을 하며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는 성우의 뒤로 지나가던 팀장이 말을 걸었다.
“성우씨, 아까 내가 부탁한 서류 정리 끝났어?”
“네? 아, 여기 있습니다. 어제 맡기신 자료는 아직 끝까지 검토 못 했는데, 얼른 마무리해서 점심시간 이후에 드려도 될까요?”
“내가 오전까지 검토 끝내라고 했잖아. 하... 어쩔 수 없지 뭐. 최대한 빨리 해서 가져다 줘.”
“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성우의 책상을 둘러보던 팀장이 목걸이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저건 뭐야? 성우씨 여자친구 있었어?”
성우가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여자친구 ‘있었죠’, 하고. 그런 성우의 속마음을 대신하는 건 멋쩍은 웃음뿐이었다. 성우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지랖 넓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팀장이 눈치 없이 말을 이어갔다.
“여자친구한테 선물하려고 사 놓은 거야? 이야, 성우씨 여자친구는 좋겠다!”
성우가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선물을 받았더라면 좋아했겠죠.’
먼저 헤어짐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잘 지냈을 리 없는 은주는 성우와의 이별을 마음 놓고 슬퍼할 새도 없이 취업 준비로 바쁜 두 달을 보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면접이 있는 은주는 오늘도 면접을 마친 뒤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오늘 본 면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면접관들이 던졌던 질문을 하나하나 곱씹고 있던 은주의 핸드폰에서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띠링-
3주 전 있었던 면접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확인한 은주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수없이 많은 회사들에 지원했지만 그중 가장 주력했던 회사의 합격 통보였기 때문이다. 은주는 지인들에게 합격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핸드폰을 다시 꺼내 들었다. 불행하게도, 연락처 목록을 내리던 은주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이제 연락이 닿지 않는 성우였다. 자신의 일상에 자꾸만 끼어드는 성우를 가까스로 밀어낸 은주는 고민 끝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어지는 통화 연결음에 실망하던 것도 잠시,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은주니? 무슨 일이야?]
“엄마! 나 합격했어!”
[뭐?]
“내가 꼭 들어가고 싶다고 했었던 회사 있잖아, 나 거기 합격했대!”
[진짜? 너무 잘됐다! 그 회사도 네가 열심히 준비한 걸 알아봤나 보네. 축하해 우리 딸.]
은주는 엄마의 말에 불현듯 자신과 성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은주씨, 나 됐대요. 전에 본 면접, 그거 합격했대요!”
“와 정말? 너무 잘됐다! 성우씨 그 회사 엄청 들어가고 싶어 했잖아요. 축하해요 진짜.”
“와... 이거 꿈 아니죠? 와... 뭐지...”
“뭐긴요, 될 사람이 된 거지. 성우씨가 열심히 준비했다는 걸 면접관님들도 알아보셨나 봐요.”
[여보세요? 은주야?]
“어, 엄마. 듣고 있어.”
[근데 얘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요즘 많이 힘들어?]
“에이, 힘들긴 뭐가 힘들어. 나 괜찮아.”
[엄마 새로 반찬 했는데, 내일 몇 개 싸들고 갈게. 내일 집에 있지?]
“그냥 사 먹자니까 수고스럽게 반찬은 왜 또 했대.”
[사 먹는 건 다 건강에 안 좋아. 그리고 네 엄마 아직 젊거든? 해 줄 때 맛있게 먹어.]
“알았어. 나도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싶었는데 잘 됐다. 내일 봐 엄마.”
[그래. 요즘 환절기라 감기 걸리기 쉽다더라. 몸조심하고. 취직 축하해 은주야!]
엄마와의 전화를 마친 은주는 길가에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지난 2년 간 기쁜 일과 슬픈 일이 있을 때면 전부 성우와 함께였는데, 이젠 소소한 일상조차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속이 상한 은주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우를 잊어보려는 은주의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간신히 마련한 술자리에 가서도 은주는 무슨 일인지 흥이 나지 않았다. 자꾸만 목이 메여와 술잔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비우지 못한 은주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먼저 약속을 잡아놓고 벌써 가는 게 어디 있냐는 친구들의 불평을 뒤로 하고 집에 돌아온 은주가 팔을 걷어붙이고는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그동안 버리지 못했던 성우와의 기억을 모조리 없애겠다는 다짐 하나만으로.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은 채 함께 찍은 사진과 주고받은 선물을 상자에 차곡차곡 정리하던 은주는 생각보다 많은 성우의 흔적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막상 정리하려니 힘들긴 해도, 성우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물건들을 없애는 것이 계속 아파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꿋꿋이 집 정리를 하던 은주의 눈앞에 성우와의 마지막 날이 펼쳐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성우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던 자신의 모습에 은주의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다 문득 성우와의 말다툼이 떠올랐다. 성우가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날 자신이 괜한 이야기를 꺼내 관계를 다 망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은주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성우와의 추억이 가득 담긴 상자 위에 엎드려 펑펑 울고 말았다. 제일 위에 놓여있던 편지지의 귀퉁이가 은주의 눈물에 서서히 젖어들었다. 편지지에 떨어진 자신의 눈물을 닦아내던 은주가 무심코 편지를 열어보았다.
[내 안의 우주가 너로 인해 이렇게 아름답듯이, 나도 항상 너의 우주 속에서 빛나고 싶어. 우주를 주겠다는 마음으로 다 줄게. 항상 고맙고, 항상 사랑해.
-부족함 많은 남자친구 성우가-]
이미 다 지나버린 일이었다.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에 은주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 성우가 비싼 목걸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의식중에 돈많은 남자와 바람난 승혜로부터 받은 상처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보니 살짝 뜬금없는 것 같기도 하고..ㅎㅎ
++ 둘이 헤어졌다고 해서 막
"뭐야! 이제 안 봐!!!"
하시면 안 돼요... 저 슬퍼요..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