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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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이번 주 일위는!!"
"방탄소년단!!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말씀해주세요"
좁은 가게 안 티비에선 음악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텅 빈 가게를 쭉 훑어본 점장님이 한숨을 푹 내쉬며 겉옷을 입으셨다.
"여주씨, 난 먼저 가볼게요. 정리하고 퇴근하시면 돼요. 내일 봐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딸랑 거리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가게 안은 정적이 흘렀다.
겨울엔 '날씨가 추우니까 아무래도 아이스크림을 찾는 손님들이 많지는 않지' 라며 허허 웃으시던 점장님이다.
하지만 어느덧 푹푹 찌는 여름이 왔고, 가게엔 여전히 찾아오는 손님이 없었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가방엔 늘 우산을 챙겨뒀기에 걱정 없었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문단속을 마친 후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다.
"...아,"
...고장났다. 불과 일주일 전에 새로 산 우산이다.
바깥으로 슬쩍 내민 손바닥에 비가 거세게 부딪혔다.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정도 쯤이야, 나에겐 비를 피하는 것 보다 맞는 것이 더 익숙했다. 망설임 없이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내 기억이 시작되는 때 부터 난 혼자였다. 부모님은 늘 이런 저런 문제로 싸우셨고, 그 문제들 중엔 나 역시 포함되어있었다.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결심하셨다. 어느 쪽에서 날 키울지에 대하여 한참을 다투셨다.
결국 난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엄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집에 잘 들어오시지 않았다. 가끔 밤 늦게 들어오실 땐 잠든 나를 붙잡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셨다.
난 그녀의 불행 덩어리였다.
그 무렵 학교에서 난 왕따였다.
내가 받은 급식엔 늘 머리카락이나 벌레 따위의 것들이 나왔고, 학생 수가 홀수일 때 짝을 뽑으면 항상 혼자 앉았다.
가위바위보를 하면 늘 졌고, 마니또 게임을 하면 내 마니또는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는 양아치였다.
날이 더워질 쯤엔 가끔 상한 우유를 마시고 배탈이 나기도 했다.
우산을 챙기는 습관을 들인 것도 그맘때 였다. 우산을 챙기지 않은 날엔 비가 왔고, 우산을 챙긴 날엔 비가 오지 않거나 우산이 고장나거나의 식이었다.
너 정말 운이 없구나. 지겹게도 들은 말이다.
반 친구들은 나에게 '불운아'라는 별명을 붙였다. 어느 누구도 내 옆에 오려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어느 누구의 곁에도 가려 하지 않았다.
-
가게를 나오기 전, 티비에서 들리던 소리가 생각났다.
"아미 여러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아미 여러분들 덕분이에요."
빗물에 젖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에게 '덕분'이 될 수 있다는 건 이렇게도 행복한 일이구나.
늘 '때문'이라는 말만 듣던 나에게 그들이 주는 행복감은 새로웠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죽지않고 사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위험해요!"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내가 서 있는 보도를 향해 돌진하는 승용차를 발견했다.
피할 수 없었다.
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눈 앞이 하얘지고 귀가 먹먹해졌다.
건물과 차 사이에 끼인 것 같았다. 눈 앞에 모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라고 생각했다.
눈병이 유행하면 눈병에 걸렸고, 독감이 유행하면 독감을 앓았다. 유행하는 질병은 다 한번씩 나를 거쳐갔다.
이래 저래 다치는 일도 많았다. 자전거에도 부딪혀봤고, 타고가던 버스가 사고난 적도 있었다.
병원 한 번 제대로 가지 않았지만 내 몸은 어떻게든 견뎌냈다. 죽을만큼 아팠지만 죽지 않았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 정말 재미없고 질기기만 한 인생이었다.
점장님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제 가게 장사가 잘 될지도 모른다.
엄마도 이제 더이상 눈물 흘리지 않으실 거다.
내가 없어져야 비로소 행복해질 사람들이었다.
눈을 감으며 간절히 빌었다.
다음 생엔, 부디 행운만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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