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이 만들어진지도 벌써 2년이 흘렀다. 처음에 레스토랑을 차리겠다는 크리스의 말에 재밌겠다며 동참한 친한 동생 준면이 있었고, 통해통해 아는 지인들을 섭외하다보니 그럴듯 하게 인원이 채워졌다. 그러다보니 정식으로 면접을 통해 들어온 직원은 서빙을 맡은 얼굴담당 루한, 세훈과 보조 셰프인 타오. 이 셋밖에 없었다. 서빙을 맡은 둘은 당연 뛰어난 외모덕에 바로 채용을 했고, 타오는 사장인 크리스가 이상하리만큼 맘에 들어해 얼굴을 보자마자 다음주부터 일을 시작하라는 쿨내 나는 말을 내뱉었다. 사장의 전형적인 권력남용이 느껴지는 순간이였다. 처음엔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지만 대학내에서도 잘하기로 유명했던 메인셰프 경수, 천재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며 극찬을 받던 바리스타 종인, 각종 대회의 상을 휩쓸던 파티쉐 이씽, 귀염상의 얼굴이라 안 어울릴듯 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소믈리에 민석까지. 실력 좋기로 소문난 사람들이 모여 점점 레스토랑을 성장시켜 갔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쑥쑥 늘어나는 매출액의 원인은 하나같이 빼어난 외모의 Ideale 핵심 인물들에게 있었다. 한눈에 딱 봐도 잘생겼다, 라는 말이 나올 법한 직원들과 어딘가 성스럽게 생긴 매니저 준면, 훤칠한 키와 훤칠한 외모의 소유자 사장 크리스까지. 어느새 입소문이 난 레스토랑안은 항상 여자손님들로 북적였다. … 그래, 거기까진 좋았으나 그와 비례하게 레스토랑에서 일어나는 사건수도 점점 늘어가는게 문제란거다. 때는 가장 바쁜 점심시간이 끝나고 한가해진 시간. 모두들 그제서야 점심을 먹곤 몇 없는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손님들을 구경하던 종대가 곧 흥미를 잃었는지 카운터 테이블 위에 축 늘어졌다. 잠시 후면 또 눈코뜰새 없이 바빠질걸 생각하니 괜스레 머리가 지끈거리는것만 같았다. 마침 디저트를 완성시킨 이씽이 그런 종대를 보며 살풋 웃고는 다시 주방으로 가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겨 카운터로 다가갔다.
“어, 이게 뭐야?” “먹어. 너 주려고 만든 거야.”
하트모양의 초콜릿이 예쁘게 올려진 티라미스케익이였다. 평소에도 단 걸 좋아하는 종대이기에 이씽은 종종 종대가 기운이 없거나 시무룩해져 있을 때 이렇게 케익이나 쿠키따위를 만들어 주곤 했다. 케익의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조심 포크질을 하는 종대의 입 안으로 초콜릿이 가득한 케익이 들어가고, 곧 종대의 얼굴 가득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형이 만든게 최고인 것 같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좋아하는 종대를 보며 따라 웃던 이씽이 손을 올려 종대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 나도 알아.
…? 뭔가 자부심 가득한 말이 이씽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이미 케익에 정신을 빼앗긴 종대는 말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그저 흐흐, 거리며 웃기만 했다. 그에 따라서 보조개가 푹 패이도록 미소 짓는 레이를 힐끔 바라본 세훈이 입을 삐쭉였다. 저 형들은 하라는 일은 안하고 뭐하는거야! “뭐야, 밖이 왠일로 이렇게 조용해?”
평소와 다르게 일 한 번 일어나지 않는 레스토랑에 찝찝해진 준면이 자신과 크리스가 함께 쓰는 사장실에서 나와 레스토랑 안을 두리번거렸다. 다들 일 열심히 하나 보네. 괜시리 흐뭇해지는 마음에 미소를 짓던 준면이 곧 이씽과 종대를 발견하곤 급정색을 했다. 저것들이 하라는 일은 안하고!
“내가 케익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는 안 만들어 주더니….”
몰라, 나 삐졌어. 사장실 밖에서 나오자마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준면은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런 준면을 가만히 지켜보던 루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쟤도 요즘 제정신이 아니야.
“아니, 나라니까? 나같은 미남이 또 어딨다고?” “지랄마. 넌 그냥 키 빨이야.”
한 편, 주방은 준면의 흐뭇함과는 달리 팽팽한 신경전이 오가고 있었다. 찬열과 백현은 아까부터 뜬금 없이 외모서열을 따져가며 싸우고 있는 중이였다. 물론 준면에게 들키지 않기위해 조용히. 마침 케익을 다 먹고 그릇을 가져다 놓기 위해 디저트를 만드는 곳에 갔던 종대가 바로 옆인 주방에 들려 그럴 줄 알았다는듯 찬열과 백현을 바라보았다.
“변백현 넌 왜 여기 있어?” “아, 진짜 박찬열 대박이라니까? 자꾸 지가 제일 잘생겼대서 현실을 일깨워주기위해 온거야.”
백현이 주방에 있는 것을 보고 준면에게 이를 생각에 신나있던 종대가 더 흥미로운 말에 따라서 찬열을 디스하기 시작했다.
“그래, 쟨 키 빨이 좀 심해. 웃을 때 안면붕괴도 좀 쩔고.” “뭐? 김종대 저게!” “맞아맞아,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짱이야.” “뭐, 이 자식아?”
뜬금 없는 백현의 근자감에 자동반사적으로 종대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어 나대고 있어. 라 말을 내뱉은 종대가 그럼 둘이 인기투표라도 해보던지. 하며 지나가는식으로 말을 흘렸다. 때 마침 승부욕에 불타오르던 둘은 흘리는 말을 흘려서 듣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바로 실행에 옮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매일 시작하는건 찬열과 백현이지만 거기에 불을 지피는건 종대라며 신세한탄을 하던 준면의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였다.
저녁시간이 거의 다 끝나고 잠시 찾아 온 휴식시간에 찬열과 백현이 빨빨거리며 레스토랑 안을 돌아다니다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경수에 빠른 속도로 경수의 앞에 앉아 눈을 반짝거리며 빛냈다.
“왜, 왜이래….” “우월한 경수야, 물어볼게 있는데.”
아예 꽃받침을 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백현에 경수가 미친놈 이라는 눈빛을 보내고, 그 눈빛을 눈치챈 백현이 꽃받침한 손을 스르륵 테이블 위로 내려놨다.
“우리 둘중에 누가 더 잘생겼냐?” “야, 그렇게 물어보면 당연히 내가 불리하지! 매력으로 해, 매력으로!” “뭐야, 내가 더 잘생긴건 인정 하나봐?” “……개새끼.”
뜬금 없는 찬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경수가 이어지는 백현의 말에 급하게 둘을 말렸다. 또 이러다 싸움 일어날라.. 항상 둘이 싸우기만 하면 초토화가 되는 주방에 경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여기가 무슨 전쟁터도 아니고!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이제 둘 중에 이데알레의 미스코트를 정해야 할 때가 왔어.” “맞아! 그래서 인기투표를 하는 중이야.” “미스코트? 마스코트 아니야?” “…어?” “미스코트 아니였어?”
…이런 미친놈들. 무식함을 몸소 보여주는 찬열과 백현에 경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스코트는 무슨. 코트중에 제일 이쁜 코트를 고르는것도 아니고. 서로 창피한듯 괜히 어색하게 웃던 찬열과 백현이 때 마침 주방에 들어오는 타오를 붙잡아 경수의 옆에 앉히곤 상황을 처음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아, 이 둘중에?” “응! 누가 더 매력있어?” “매력? 음… 백현 귀여워!”
서툰 발음으로 한국말을 하는 타오의 얼굴이 뚫어져라 집중하던 둘은 곧 밝게 웃으며 하는 타오의 말에 희비가 엇갈렸다. 나? 나 말하는거 맞지??? 그치??!!! 백현이 신이난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고, 찬열은 그건 귀여운거지 매력이 아니라며 타오의 말을 부정했다.
“경수야, 너는?” “나? 음…….”
타오를 들들 볶던 찬열의 희번뜩 거리는 눈이 갑자기 자신에게로 향해 놀란 경수가 눈을 크게 뜨고는 말을 더듬더듬 거렸다. 난… 어… 둘 다 좋은데.. 어색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백현이 자신만만한 투로 말했다. 경수는 당연히 나라고 할…
“난 찬열이.” “뭐???? 헐, 도경수….” “하, 역시 우리 경수. 이 형아가 많이 아끼는 거 알지?”
거야, 는 무슨. 이번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백현이 경수의 어깨를 붙들고 아련한 투로 내뱉었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넌 내친구 잖아 경수야….” “뭔 개소리야. 그럼 내 친구는 아니냐?”
아, 그건 그러네….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진 탓에 자리에 가만히 앉은 백현이 자신보다 뭐가 더 낫냐며 입을 삐죽였다. 그에 자신을 끌어 안고 정수리에 뽀뽀를 해대는 찬열을 세게 떨어뜨린 경수가 입을 하트로 만들며 웃었다. 찬열이는 잘생겼잖아. 음, 그리고 키가 커……. 마지막말이 왠지 슬픈건 기분탓이니 경수야? 유일하게 찬열에게 꿀리는 키 얘기에 입을 다문 백현이 그래…. 하며 체념한듯 수긍 하자 찬열이 신이나 또 다시 경수에게 들러붙었다.
“아, 형!!! 어디다 지금 뽀뽀를 하는거야!!!!”
물론 주방 밖에서 들리는 경악에 찬 종인의 목소리에 바로 떨어져야 했지만. “씽씽이형!! 어딨어!!!”
분명 씽씽이형은 날 뽑아줄거라며 찬열을 끌고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따로 만들어진 주방으로 간 백현은 텅 빈 안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씽을 찾기 시작했다. 뭐야, 어딜간거야. 자신보다 머리 한통이 더 있는 찬열의 손목을 붙잡고 레스토랑을 휘젓는 백현의 표정은 몹시 힘들어 보였다.
“아, 저기 있구만. 저 둘은 왜 맨날 붙어 있는거야, 대체.”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카운터에서 종대와 이야기를 하는 이씽을 발견한 백현이 입을 내밀고 투덜거리자 찬열이 웃으며 그 입을 잡아 당겼다. 오리. 므? 이 그즈슥이! 자신의 손을 탁탁 내리치는 백현에 그제서야 찬열이 입에서 손을 뗐다. 안 아플거라고 생각한 백현의 손은 은근 매웠다.
“씽씽형!” “어? 백현. 맨날 일은 안하고 싸돌아댕기고.” “에이, 내 맘 알지?” “아니.”
잔인한 말을 내뱉으며 밝게 웃는 이씽에 준면을 보는 듯 한 착각을 느낀 백현이 허허, 어색하게 웃으며 찬열과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뭐야, 진짜로 하네?” “니 덕분에 완전 불 붙었어. 확실하게 정할 때가 온 거야.”
쓸데없이 비장한 찬열의 말투에 종대가 어깨를 으쓱 했다. 그냥 한 말인데. 그런 종대의 말이 들릴리 없는 둘은 아까전 경수와 타오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눈빛을 이씽에게로 보냈다.
“형, 나지? 응? 나 형이랑 일하잖아아아아아!” “야, 지금 그런 빽을 써먹으면 안돼지!” “넌 그래서 경수빽 썼잖아! 응? 이씽형! 우리 주방의 귀염둥이 배쿄니말 듣고 이써요?”
양 손을 들어 토끼애교까지 부리는 백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이씽이 예쁘게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대고 있어.” “헐.”
혀,형 이런 사람 아니였잖아요! 크게 당황하는 백현의 뒤로 카운터 테이블에 기대 있던 종대가 크게 웃었다. 우리 이씽형 잘한다! 김종대 이 놈, 착한 이씽형을 변질시켜 놓다니…. 신난 종대에게 웃지마! 라 외친 백현이 자신의 옆에서 바닥을 구를 기세인 찬열을 발견하곤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야!! 넌 더 웃지마, 이 자식아!!!
“그래서 형, 결론은 나라는 거야?” “응? 아니.”
혼자 쭈그려 앉아서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백현의 머리를 불쌍하다는 듯 쓰다듬던 찬열이 기대 가득한 눈으로 이씽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찬열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말이였다. 어! 나한테도 기회가 있는거야? 그 말에 다시 회복한 백현이 급 밝아진 목소리로 자리에서 튕겨나오듯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머리를 쓰담아주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고 있던 찬열의 턱과 백현의 정수리가 세게 부딪혔다.
“아!!! 왜 갑자기 일어나!!!!” “그러니까 넌 왜 거기 서있어!!!!!”
갑작스레 전해진 고통에 서로 부딪힌 부분을 붙잡고 한참을 투닥대던 둘은 사장실에서 나오는 준면을 발견하곤 억지로 입을 다물었다. 워낙 잘못한 일이 많았기에 당분간은 조용히 착한 찬열과 백현으로 살아야했다.
“결정 했어.” “오, 나지?” “나라니까?”
얼마나 아픈건지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힌채로 자신을 쳐다보는 둘에 이씽이 종대를 한 번 웃으며 바라보곤 다시 고개를 돌려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는 비글 두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난 종대가 제일 괜찮은 것 같아.”
아, 예……. 둘이 다 해먹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