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명, 순수한 혈통, 잔인함, 차가움, 고귀함. 같은 기숙사인 슬리데린 뿐 아닌 다른 여타의 기숙사 학생들도 민현을 보면 항상 떠오르는 생각들 이었다. 물론 민현 본인도 다른 학생들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 앞에서 대놓고 수군거리지만 않는다면 그런 이슈를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여유도 숙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민현에게 있어선 오늘도 아무 문제없는,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아니,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며칠 후에 있을 학년말 고사인 ‘O.W.L(표준마법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바로 오늘 그의 완벽한 계획을 이 바보 같은 여자가 다 망쳐버리고 있었다.
“헐. 미안.”
민현의 의자에 걸려 넘어져 순간적으로 그의 책에 자신의 약물을 쏟아버린 세인이었다. 그때문에 기분이 몹시도 더러워진 민현은, 당장에라도 여자한테 저주의 주문을 쏠 기세로 그녀를 매섭게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바보 같은 여자의 얼굴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기가 몇 초간 지속되자, 세인이는 두려움에 꼴깍 목울대를 삼키며 민현에게 미안한 감정을 표현할 뿐이었다.
“일부러 그런 건 진짜 아니고···. 아무튼 정말 미안해.”
“됐고, 원래대로 돌려놔.”
“응?”
“책. 원래대로 되돌리라고.”
“아. 응! 잠깐만 기다려봐.”
그렇게 세인이는 목을 잠깐 가다듬으며, 옆구리에 껴놓았던 지팡이를 그 작고도 하얀 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렸다. 이때 효과음을 넣는 다면 분명 ‘휘이익 틱’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무슨···. 저학년들이 처음으로 마법 주문을 쏘는 것도 아니고. 교수한테 처음 배웠던 메뉴얼 그대로 지팡이를 휘두르는 그 모습이 민현이 생각하기에 영 한심한 모양새였다.
“이제 됐지? 아무튼 정말 미안했어.”
“되긴 뭐가.”
“깨끗해 졌는데···?”
“필기한 것까지 다 지워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어처구니 없게도, 이날은 바보 같은 여자와의 첫 만남이었다.
마법의 미약(媚藥)
W. 형용돈죵
누가 래번클로 학생들을 ‘지혜’의 상징이라고 했던가. 이것은 이 여자를 래번클로에 배정한 마법 모자 잘못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멍청한 애가 래번클로에 있을 리가 없잖아. 바보 같은 그리핀도르라면 또 몰라도.
슬리데린 담당 교수가 가르치는 수업인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과목에서 민현은 저 멀리 앉아 있는, 그것도 아주 볼썽사나운 세인이의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보나마나, 안 봐도 비디오였다. ‘휘이익 틱’하며 지팡이를 흔드는 여자의 앞엔, 아무런 변화도 없던 것이었다. 하다못해 불빛이라도 반짝여야 되는 거 아닌가. 하며 민현은 가볍게 지팡이를 흔들며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거미는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였다.
“한심해.”
너무 쉬운 주문을 가르치는 이 수업도 한심했고, 무엇보다 그 쉬운 주문 하나 제대로 못하는 세인이더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민현이었다.
그렇게 세인이는 그 다음 수업인 공통과목 ‘점술학’에서도, 그리고 ‘천문학’ 수업에서도 민현의 냉소적은 시선을 끝내 피하진 못하였다. 그런데 이번 ‘마법의 약’ 수업에서는 아주 조금 이야기가 달라졌다.
“잘했어. 세인아. 약 만드는데 소질이 있네.”
담당 교수의 칭찬을 들으며 얼굴을 붉힌 세인이의 손엔 성공적인 ‘아모텐시아(사랑의 묘약)’가 들려있었다. 꼴에 짝사랑이라도 하는 모양인지, 하라는 주문 실력은 키우지도 않고 엉뚱한 마법의 약은 잘도 만들고 있던 것이다.
“야. 민현아. 네가 맨날 보는 저애 웬일이냐 오늘은.”
“맨날 보긴 무슨.”
“매일 빤히 쳐다봐 놓고선. 그것도 쟤 얼굴 뚫릴 기세로.”
옆에서 조잘대며 떠드는 성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민현은 자신도 성공 못한 볼품없는 약물을 바라보며 인상을 구겨왔다. 기분이 매우 나빴다. 근데 이건 저 바보 같은 여자에게 졌다는 것에 대한 분노도 뭐도 아니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교수의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서있는 세인이영 , 맘에 안 들었던 것이다.
“미안. 내가 잘못했어. 표정 풀어···.”
성운의 재잘거림은 여전히 안중 밖이었으나, 다니엘 교수를 향해 살며시 미소 짓는 세인이의 얼굴은 민현에게 있어서 전혀 사소하진 않았다.
마법의 미약(媚藥)
“너, 아모텐시아 어쨌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나한테 쓴 거 아니냐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슬리데린 남자애가 찾아와서 대뜸 세인을붙 잡고 하는 소리였다. 아, 가만 보니 이 애. 자신이 도서관에서 실수했던 그 남자였다. 이름이 황민현이었지 아마. 소문대로 혼자 고귀한 척, 똑똑한 척은 다 하는 녀석이기에, 세인이는최 대한 그의 심기에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했건만 오늘은 정말 실수였다.
다니엘 교수만을 생각한 채로 멍 때리며 걷던 세인이의 앞 너머로 걸어오는 민현을 차마 보지 못했던 것이다. 평소였다면 그를 피하고도 남았을 상황이었을 텐데, 이 모든 건 자신의 잘못이 분명했다. 그래. 이 점은 자신도 인정한다. 근데 그것을 뚫고도 제일 어이없는 게 무엇이냐면.
기껏 와서 한다는 소리가 저번에 자신이 만든 물약의 행방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것을 자신에게 먹인 게 아니냐는 허무맹랑한 민현의 의심이었다.
“내가 미쳤어? 아깝게 너한테 그걸 먹이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뒤에 무어라 말하려던 민현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세인이는 그런 그의 뒷말이 전혀 단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이 억울한 상황을 피하고만 싶었다. 자신이 만든 아모텐시아는 이번에 다가올 크리스마스 때의 선물로 다니엘 교수에게 쓸 계획이었다. 더 정확히는, 순수한 제자가 드리는 순수한 쿠키 속, 하지만 순수하지만은 않은 사랑의 묘약을 뿌려서.
그렇다고 자신의 짝사랑을 친하지도 않은 남자애에게, 그것도 오히려 싫어하는 축에 가까운 남자 앞에서 밝히고 싶진 않았다.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오해야.”
“그럼 누구한테 쓸 건데.”
“네가 알아서 뭐하게.”
“다니엘 교수?”
발걸음을 옮기던 세인이 그의 말에 의해 멈칫 거렸다. 뭐야 얘. 점술학 ‘O.W.L’을 시원하게 통과하더니 정말로 내 미래를 점치기라도 하는 것도 아니고. 당황한 세인이의 표정은 민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굳이 없어도 충분히 그 말을 예상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참으로 더러운- 그것도 아주 뭣 같은 민현이었다.
마법의 미약(媚藥)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그리고 호그와트 기숙사엔 대부분의 학생이 본가에 간 듯 조용한 적막이 흐를 뿐이었다. 민현은 창 밖에 흩날리는 함박눈은 그저 관심 밖이었고, 오로지 골똘히 누군가에 대한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젠장.”
인정하기 싫지만 세인이만을 생각하는 제 자신이 싫어지려는 찰나였다. 아모텐시안지 뭔지, 다니엘 교수한테 먹힐 리가 없으니 걱정은 없는데, 문제는 세인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그 마음이 몹시도 거슬렸던 것이다.
그 감정은 자신에게도 전염이 된 건지, 민현이 느끼는 이 생소한 감정은 사랑이 분명했다. 가문과 가문이 이어져 온통 슬리데린의 피가 흐르는 민현에게 레번클로가 웬 말인지. 그것도 아주 멍청한 세인이 왜 자신한테 비집고 들어왔는지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는 민현이었다.
“다니엘···. 흐···.”
그런데 대뜸 조용한 기숙사 복도 구석에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어버렸다. 그래서 민현은 자신이 하고 있던 일도 잊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가녀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민현이 줄곧 생각했던 그 인물이 맞았다. 그 음성이 너무도 익숙하게 들려오기에 민현은 당장 소리가 흐르는 곳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면 그곳엔 아모텐시아가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고.
“끅···. 네가···. 여긴 왜.”
깨끗한 함박눈과 잘 어울리게도, 맑은 눈물방울을 흘리는 세인이 울고 있을 뿐이었다.
“왜 울어. 거기서.”
“알 거 없, 잖아.”
“말해줘. 그래도.”
끅끅대며 우는지라 세인이의 그 모든 말들이 민현의 귀에 제대로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웬일인지 다정히도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세인이의 말만을 집중하는 그가 고마웠다. 그래서 세인이는 오늘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민현에게 모조리 말해주었다.
전에 있던 민현의 예상대로 쿠키 속에 몰래 넣은 아모텐시아를 결국 교수님께 들켜버렸다. 들키는 것 정도야 세인도 물론 예상은 했지만, 그가 세인이에게 혼낼 것이라는 생각은 예상을 빗나갔던 것이다. 혼만 났으면야 자신이 이렇게나 슬프게 울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다니엘 교수는 호그와트 학생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유부남이었던 사실이었다. 그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젊고, 잘생긴 다니엘교수가 벌써 결혼을 했다는 것을.
이 이야길 힘겹게 그에게 전하는 세인이었지만, 민현에겐 그게 전혀 힘겹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상황이 우스웠고, 심지어는 끅끅대며 우는 세인이 귀여워지기까지 하려던 찰나였다. 하지만, 민현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물 밑으로 숨긴 채, 세인을 살며시 끌어안아 다정히도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울지 마.”
민현의 넓은 품안에서 한참을 울던 세인이는, 자신이 민현을 한참을 잘못 생각했다고 느꼈다. 이렇게 친절한 앤데 왜 그동안 소문에 따라서만 그를 오해했던 걸까. 그래서 세인으로서는 그가 정말로 고마웠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그녀는 정말 몰랐다. 자신을 품 안에 가둬온 그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금방 잊힐 거야.”
다정한 그의 언사와는 대조되는- 민현의 명성에 걸맞게 잔인하고도 소름끼치는 웃음을 짓는 그를, 세인이는끝 내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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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작성한 글이었는데, 지금 인티에 올리는 이유는.. 오늘 날이 너무 더웠기 때문이죠!ㅋㅋㅋㅋ 그래서 독자님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하고자 올린 것인데 어떠셨는지요. 개인적으로 해리포터 소재를 즐겨 읽는 지라 쓰는 데는 즐거운 기분으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만, 독자님이 원하시는 그런 슬리데린의 분위기가 조금은 덜 하지 않나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ㅜㅜ 일단 컨셉은 여주한테 집착하는(?) 슬리데린 민현이었는데! 이상하게 집착 소재가 거의 0에 수렴해서 그냥 슬리데린 민현과 래번클로 여자주인공의 꽁냥꽁냥 씬이 위주가 된 것 같습니당ㅎㅎㅎ
그럼에도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바라며.. 저는 이어서 갱 F편을 들고오도록 하겠습니다 츕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