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정이었던 당신에게,
나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고독사,
prologue
우리 옆 집에는 잘생긴 남자가 산다.
내가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늘 굳게 닫힌 문에 사람의 소리도 들리지 않아 아무도 살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거기 사시나봐요."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왔던 어느 밤 그와 우연히 마주쳤다.
절대, 절대 말을 걸 생각이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 네."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안 사시는 줄 알았거든요, 이사온지 한 달 정도 됐는데 뵌 적이 없어서..."
그는 옅은 미소를 짓고는 짧은 목례를 한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직감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이불을 차겠구나.
*
그 날부터였다. 우연히 만났던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섰던 건.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눈이 감기지가 않았으니까.
"요새 너 왜 이렇게 못 자? 뭐 불면증 같은 거 아냐?"
"아니야, 그런 거. 잠깐 나갔다올게."
며칠을 허탕친 어느 날, 걱정하는 룸메를 달래고는 나선 그 때.
"안녕하세요."
드디어 만났다!
"...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매일 이 시간마다 들어오시는 건 아니신가봐요."
... 또 직감했다. 내 이불은 나로 인해 또 고통받을 거라는 걸.
"... 네."
그의 손이 현관문에 달린 키패드로 서서히 다가가는게 보였다.
어차피 이불 찰 거, 눈 딱 감고....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네?"
처음으로 그 사람이 나를 쳐다봤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눈이 동그랗게 바뀐 채였다.
"저는, 한여주거든요. 어... 당황스러우시겠지만, 궁금... 해서요. 불편하시면 안 알려주셔도..."
"... 문태일이에요."
"네?"
"...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어서 들어가세요. 밤 산책, 위험하잖아요."
그 순간부터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 그리고 짧게 목례하는 장면 정도.
아, 그리고 얼굴에 번져있던 은은한 미소까지.
그리고 내 예상은 틀렸다. 그대로 집으로 들어간 나는 그 어떤 날보다 행복하게 잠들었다.
*
"뭐?"
"203호 사는 그 사람 죽었다고. 어제 관리실 아저씨가 발견하셨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잖아. 나랑... 얘기도 했는데."
"너랑 얘기했다고? 그 사람 엄청 조용했잖아."
"..."
인사를 나누고 난 그 날 이후, 그를 보지 못했다.
갑작스런 연락에 본가로 향해야 했으니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날 그는 더 이상 내 이웃이 아니었다.
"야, 너 괜찮아?"
"... 어, 괜찮아."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얘기를 나눈 것도 고작 두 번이었고,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과 얼굴 뿐이었는데.
마음이 텅 비어버렸다.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 그의 집 앞... 아니, 그의 집이었던 곳 앞에 섰다.
늘 굳게 닫혀있었던 것과 달리 오늘은 활짝 열려있었다.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우리집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딱 한 가지만 빼면.
커다란 책장이 벽 한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
천천히 책장을 훑어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대부분 소설이었다.
특이하게도 책장의 중간에 위치한 한 칸은 전부 <어린 왕자>가 꽂혀있었다.
판본이 다른 것도 아니었고, 모두 같은 책이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제일 왼쪽에 꽂혀있는 책을 꺼냈다.
"..."
<어린 왕자>가 아니었다. 그 책은, 일기장이었다.
겉표지만 책이었을 뿐 페이지마다 2011년의 일기가 적혀있었다.
당황한 나는 책을 황급히 덮으려다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책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인 그 순간
책에서 떨어진 종이 하나를 발견했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놓쳤던 사랑을 회고하며, 나는 서서히 침잠한다.'
나는 직감했다. 이 조각글이, 그 사람이 남긴 마지막 글이라는 것을.
*
그의 집 앞을 나온 내 손에는 <어린 왕자>가 들려있었다.
프롤로그, 마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