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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X백현] 개와 늑대의 시간 上 | 인스티즈

[카이X백현] 개와 늑대의 시간 上 | 인스티즈







아무리 입김을 불어봐도 차갑게 식은 손끝은 따뜻해질 기미가 보이지않았다. 오돌오돌 떨리는 몸을 웅크리곤 좀 더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하, 짧게 숨을 내뱉자 몽실몽실, 하얗게 연기가 되었다가 사라진다. 백현은 무릎을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파묻었다. 아까 강요에 의해 내키지도 않는 밥 몇 숟갈 좀 억지로 퍼먹었다고 그 새 얹힌건지 자꾸만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불편했다. 목구멍이 꽉 조이는 느낌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그 느낌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어도 보고, 힘 없는 주먹으로 가슴을 쳐봐도 역시나 딱히 이렇다할 효과는 없었다. 백현은 지금 제 모습이 꼭 땡볕아래 시멘트바닥에서 아가미를 버끔거리며 팔딱이는 물고기 같다고 생각했다. 한 평 남짓한 좁고,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캄캄한 이 방 안에서 백현은 꽤 오랜시간을 홀로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차라리 한숨이라도 푹 잤으면 좋겠건만 제 어머니와 남동생은 무사한지,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지 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그를 괴롭히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끈지끈 머리가 아팠다. 입술을 깨물었다.


백현이 사는 곳, 그가 나고 자란 그곳은 달과 닿을 듯,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달동네였다. 여름이면 가장 덥고, 겨울이면 가장 추운 곳 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어설프게 굳힌 시멘트 벽으로 만든 허름한 집과, 높고 가파른 계단이 끝없이 이어진 그곳. 날이 맑은 날에 계단을 올라가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제 집으로 가는 게 아닌, 하늘로 가는 계단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허나 이곳은 이름과는 상반되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살고있는, 가장 낮은 곳 이었다. 백현이 사는 그 곳은 가장 높은 곳이지만, 동시에 가장 낮은 곳 이기도 했다. 
백현은 제 가정이 비록 가난할지라도 다른 집에 뒤지지않을만큼 화목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제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근면성실하고 가족밖에 모르는 분 이라고 자부했다. 그래서 며칠만에 수척해진 모습으로 돌아와, 급하게 지방에 일자리가 생겨 빨리 가봐야한다고 바리바리 짐을 꾸리시던 그 날도 의심조차 하지못했다. 되려 가는 길에 뭐라도 따뜻한 것 좀 사드시라고 비상금으로 챙겨두었던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세장을 조심스레 건냈던 것을 기억했다. 아버지, 날이 많이 추워요. 뭐라도 따뜻한 것 드시면서 가세요. 감기 조심하시고,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세요. 아버지가 슬몃 미소지으며 잡아주셨던 손의 온기가 떠올랐다. ... . 안그래도 안부전화 한통도 없고, 아버지의 행방을 아는 이가 없기에 걱정하던 차에 늦은 새벽, 낡고 녹슨 저희 집 문을 쾅쾅 두들기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원망스럽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인지라, 원망스럽지만서도 걱정되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아버지는 도박판에서 큰 빚을 지고 도망쳤다고 했다. 그럴리가 없어, 우리 아버지는···. 애써 아니라고 부정해봐도 제가 끌려와있는, 어딘지도 모를 이 공간이 너무 싸늘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걸까. 눈 앞이 캄캄했다. 어머니도, 남동생도, 아버지까지도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이곳에 끌려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백현은 이미 심적으로 많이 피폐해져있었다. 그리고 곧 평생 열리지않을 것 같던 문이 열리고 그 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눈부셔.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숨고싶다, 도망치고 싶다.

"나와."
"..."
"보스가 널 좀 보자신다."



*



넓고 탁 트인 전망이 좋은 방 이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가구들은 모조리 매우 고가품 이었다. 여태껏 남이 쓰다버린 것을 주워다쓴 적 밖에 없는 백현이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보스라는 그 사람은 푹신해보이는 쇼파에 드러눕듯 거만하게 앉아 다리를 꼬고 턱을 괴고 있었다. 그 앞 탁자엔 양주가 있었고, 그의 사선에 백현이 있었다. 또 다시 강요에 의해 억지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두 다리에 얹어놓은 두 손이 이내 굴욕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이 감정은. 매번 느끼고 매번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매번 백현을 괴롭게 했다.

"변사장님이 자식장사 하나는 잘하셨네."

그가 백현을 한 번 보고선 툭, 던지듯 뱉은 첫마디였다. 살면서 처음듣는 제 아비를 향한 높임말. 허나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 뒷말이 두려웠다. 목이 바싹 타들어갔다. 그는 그런 백현을 보며 잔에 담긴 양주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백현에게 내밀었다. 목 마르지? 라면서. 허나 백현은 그 잔을 받지도,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그는 푸스스 웃으며 잔을 다시 탁자에 놓았다.

"고등학교는 다 마치지도 못했다던데."
"..."
"자퇴. 맞나?"
"..."
"그러면 쓰나. 우리애들도 고등학교는 다 나왔는데."

그리 좋은 성적들은 아니였지만 말야. 하고 말을 덧붙였다. 불러 앉혀놓곤 한다는 말이 저런 시덥잖은 잔소리 나부랭이라니. 어차피 관심도 없었다. 협박을 하던지 돈 언제 갚을거냐, 어떻게 갚을거냐 윽박을 지르던지 그냥 뭐든 좋으니 빨리 하고 끝냈으면 했다. 그는 백현의 동그랗고 차분한 머리를 빤히 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짓궂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다리위에 얹은 다리의 발목을 까딱거렸다. 흥미로웠다.

"돈 때문인가? 학비가 부담스러워서?"
"..."
"아니면... 동성애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그런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웃고있었다. 애써 묻어두었던 그 기억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런 백현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그는 실실 웃으며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 껐다. 사실인가봐? 반응을 보아하니. 

"재밌어."
"..."

그는 혼자 중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백현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왠지모를 불안함에 바싹 마른 백현의 몸이 미세하게 덜덜, 떨렸다. 분위기가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어둡고, 무서웠으며, 긴장감이 가득했다.

"네 어머니와 남동생, 그리고 빚 지고 도망간 네 아버지 말이야. ... ."
"...살려주세요."

공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상관없었고 알 수도 없었다. 그냥 두려웠다. 그는 손을 내밀어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살려줄게. 낮게 내뱉은 그 음성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백현은 또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나를 봐. 그 말에 백현이 주저하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크진 않지만 귀엽게 축 처진 두 눈과, 얇쌍한 입매. 쥐면 바스라질듯, 유약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퇴폐적인 분위기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나쁘지 않네, 다시금 그가 입꼬리를 당겨올렸다.

"원래는 말야. 네 아비는 산 채로 잡아다가 새우잡이 배에 팔아버리려고 했어. 네 어미는 사창가에, 네 동생은 공중분해 하고 말이야."
"..."

팡. 살짝 말아쥐었던 주먹을 피며 그런 소리를 내고선, 뭐가 웃긴건지 저 혼자 하하, 웃었다. 뭔지 알아 듣겠어? 공중분해. 장기매매를 하려고 했단 말이야. 백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데, 널 보는 순간 맘이 바뀌었어.

"앞으로 내가 하란대로만 해."
"...그거면 돼요?"

힘들게 내뱉은 그 몇 마디 안되는 말 마저 파르르 위태롭게 떨렸다. 떠는거봐. 귀엽기는. 그의 손은 백현의 머리에서 귀로, 그리고 뺨으로 내려와 백현의 뺨을 살살 쓸었다. 당연하지. 내가 하라는대로만 해. 그럼 네 아버지도, 네 어머니도, 네 남동생도, 너도 살 수 있어. 백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앞으로 내가 많이 귀여워해줄게.

.

모두들 나가봐. 그 한마디에 그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갔다. 백현 또한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뒤돌아 나가려는 백현의 팔을 잡고 당겨 쇼파에 앉혔다.

"넌 여기 있어."

그 말에 어정쩡하게 자리에 있던 백현이 바르게 앉았다. 두 주먹은 여전히 꼭 쥔 채 무릎 위에, 시선도 여전히 아래를 향해 있었고 멀찍이 떨어져있었다. 가까이 와. 그가 말했다. 그 말에 득달같이 엉덩이를 그의 곁으로 당겨 앉았다. 제 행동에 제 가족의 생사가 달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못 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더 가까이. 입술을 한번 축였다.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다시 한 번 엉덩이를 밀어 그의 곁으로 당겨앉았다. 

"하, 이거 참."

혹여나 제가 그의 심기를 거슬렀을까 그의 눈치를 보았다. 점점 더 위축되어 갔다. 그는 팔을 뻗어 백현의 어깨를 감싸 제 곁으로 당겼다. 그의 몸뚱아리에 닿은 제 오른팔과 어깨가 이상했다. 썩어들어가는 듯, 타들어가는 듯 묘한 느낌이 났다. 자꾸만 목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왜 이렇게 떨어? 추워?"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가 백현의 동그란 어깨를 감싸쥐었다. 어깨에 손가락으로 동글동글 원을 그리다가, 주무르기도 하다가, 다시 감싸쥐었다.

"카이."
"..."
"그렇게 불러, 백현아."
"...네."

제 이름은 어떻게 안건지 순간 놀라 그를 보았다가 아아, 알만하구나 싶어 다시 시선을 내리깔며 얌전히 대답했다. 종인의 손이 백현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그의 손을 쥐었다. 그가 몸을 틀어앉았다.

"변백현."
"..."
"대답해."
"네. ... ."
"나를 봐."

고개를 들어 종인을 보았다. 종인은 역시 여유롭게 백현을 내려다 보고있었다. 곧 다시 고개를 숙여버렸다.

"왜. 불편한가?"
"그게 아니라..."
"괜찮아, 불편해 하지마."

담담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꽤나 끈적했다. 종인의 다부진 손이 백현의 주먹을 조물딱 거렸다. 몸둘 바를 몰랐다. 그저 입술만 깨물었다. 이내 그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숨결이 느껴질만큼 가까운 거리었다. 백현이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여도, 전혀 개의치않고 되려 백현의 어깨를 감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착하지, 백현아."

종인이 백현의 귀에 속삭였다. 파르르, 온 몸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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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의 시간 > 개와 늑대의 시간 제목 변경했어요 죄송합니다ㅠㅠ


 
 
 
 
 
 
 


 
독자1
백현아ㅜㅜ카이라....카이는 앞으로 백현이를 어쩌려구.....ㅜ
10년 전
독자2
뭐죠 이 불맠이 없는데도 있는듯한 기분?아주 좋아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담편 완저뉴기대되요!
10년 전
독자3
헐헐ㅠㅠㅠ죠타ㅠㅠㅠㅠㅠㅜㅜㅜ카백ㅠㅠㅠㅠ
백현이는역시당해야제맛!
백현이한테좀미안하지만....ㅎ
신알신하고담편보러갈게요!

10년 전
독자4
아아아앙언제봐도몇번을보ㅓ도 제취향이네요ㅠㅠㅠㅠ
지금이것만 세번째 구독해서 보네요ㅠㅠㅠㅜㅜ
진짜너무너무제취향ㅜㅠㅠㅠㅠㅠㅠㅠ
다음에또보러올게요..ㅎㅎㅎ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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