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착하지, 백현아."
종인이 백현의 귀에 속삭였다. 파르르, 온 몸이 떨렸다. 어깨를 잡고있던 그의 손이 팔을 한번 훑어내리고 떨어졌다.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 듯 다가오는 그의 얼굴에 그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피싯 웃는 소리가 났다. 주먹을 조물딱 거리던 손은 백현의 가슴팍을 밀어 쇼파에 눕혔다. 종인 또한 곧 그 위로 몸을 숙였다. 혹여나 심기를 거스를까 주먹하나도 제 맘대로 쥐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제 가슴앞에 팔을 모았다. 곧 그 손도 종인에 의해 치워졌지만.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배에서 가슴, 어깨까지 옷을 걷어내는 손길에 결국 백현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종인은 그 위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가 바지버클에 손을 대는 그 순간,
"시, 싫어요···!"
일순간 종인의 행동이 멈췄다. 싫다고? 아무 감정도 묻어나오지 않는, 순수하게 되묻는 그 목소리에, 채 뜨지도 못하고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던 두 눈이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번쩍 뜨였다. 그, 그게 아니라... 아차 싶어 그의 어깨를 잡으려 뻗은 손이 허공을 맴돌았다. 종인은 이미 몸을 일으킨 후 였다. 백현은 반쯤 일어난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자리에 굳었다. 종인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내가."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터에서 피어난 불꽃이 담배에 옮겨갔다. 뭐라고 해야할까,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그 짧은 시간에 수천가지 생각이 들었다. 종인은 후, 짧게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하라는대로 하라고 했을텐데."
빠르게 담배를 빨아들이던 그는, 금새 태워버린 담배를 비벼 끄고선 이내 몸을 일으켰다. 차갑게 가라앉은, 푸른빛이 번쩍이는 새까만 눈동자가 백현을 향했다. 그 눈빛을 온몸으로 받아낸 백현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멍청한건가, 기회를 줘도 못잡는걸 보면."
"..."
"아까 말했지? 일단 네 가족은 말했던대로 처리하고. 넌 어쩌는 게 좋을까."
"..."
그래, 너도 사창가가 좋겠다. 잘 팔릴거야. 거기서 네 어미 모시고 둘이서 잘- 살라고. 그렇게 말하곤 뒤돌아서는 그를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작정 뒤에서 종인을 껴안고, 되는대로, 생각나는대로 내뱉었다.
"잘못, 잘못했어요. 제가, 처음이여서... 너무 떨려서... 헛소리가, 허... 헛소리가 나왔어요. 제발, 제발...!"
제발 그러지마세요... 간절하게 애원하는 목소리에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종인은 백현의 팔목을 잡고선 허리에 둘러진 팔을 풀어내었다. 싸늘하게 백현을 쳐다보며, 더러운것이라도 닿았던 양 옷을 탁탁 털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겁에 질린 내 몸이, 내 몸이 아닌것만 같았다. 몇 걸음 더 걸어나가려는 그를 쳐다만 보다가, 방의 문고리를 잡은 종인의 옷소매를 답싹 쥐었다. 종인은 불쾌하다는 듯 팔을 쳐냈지만, 덜덜 떨면서도 다시 그의 옷자락을 쥐었다. 당장 제 앞에서 으르렁대는 종인에 대한 두려움보다, 제 가족의 안위의 대한 걱정이 더 컸기에 필사적으로 종인을 돌려세울수밖에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완전하게 불쾌감을 드러낸 눈동자, 저를 내려다보는 그 두 눈동자가 더욱 공포로 몰아넣었다. 백현은 다시 한번 종인을 안았다.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않고,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서있을뿐이였다. 가지마세요, 잘못했어요. 말하며 종인의 가슴팍에 머리를 부볐다. 그러다가 문득,
'카이. 그렇게 불러, 백현아.'
그 짧은 새에 백현, 백현아. 제 이름을 여러번 부르던 것도 생각났다. 백현은 고개를 들어 종인을 보았다. 종인이, 저를, 보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참으려고 해도 멈추지 않는 제 눈물 탓에 종인이 보이지않았다. 결국 그를 껴안았던 팔을 풀러내어 한 손은 종인의 허리께의 옷을 꽉 쥐고, 다른 손으로는 눈가를 거칠게 훔쳐내었다. 그새 발갛게 변할만큼 몇번을 벅벅 닦아도, 눈물은 그칠줄을 몰랐다. 코를 쿨쩍이며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종인을 보았다. 울음을 참으며 최대한 또박또박 말했다.
"제, 가, 잘못했어요."
"..."
"처음이여서, 헛소리가 나왔어요."
힘들다. 너무 힘들어. 이제 고작 첫날일뿐인데, 앞으론 어떻게 지내야하는걸까. 눈앞이 캄캄했다. 나오는 울음을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애써 눈물을 참던 백현은 그새 비집고 나온 눈물을 다시 닦고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똑바로 종인을 쳐다보았다.
"제발, 가지마세요."
"..."
"안아주세요, ···카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그마한 백현의 머리통을 감싸쥔 종인이 거칠게 입을 맞춰왔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
종인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차에서 내렸다. 어디론가 향하는 그 발걸음이 꽤나 신경질적이었다. 요즘들어 자꾸만 속을 뒤집어놓는 제 애완동물 탓에 종인은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느낌이었다. 제 애완동물은 본래 온순하고 순종적인, 아주 얌전한 종이였는데, 최근들어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오는건지는 몰라도 자꾸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필시 본때를 보여주리라. 손찌검이라도 해야 정신 차리려나, 씨발. 종인은 길고 긴 복도를 지나 깔끔하지만, 고급스럽게 장식된 문 앞에 서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거칠게 열어제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건, 척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음식들이 가득 차려진, 길게 늘어져있는 상'들'이었다. 종인은 그것들을 쭉 한 번 보고 어이가 없어 실없는 웃음만 피싯피싯 흘렸다.
"왔네?"
먹었다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내어 온 그대로 차게 식어가는 음식들이 가득한 그 상들을 타고 쭉 올라가면, 그 끝에는 침대에 늘어지게 앉아있는 제 애완동물이 있었다. 다 찢어진 오버사이즈의 와이셔츠 한장만 입고있는, 그가.
"미친년, 팔자 좋은 소리 하고있네."
한걸음, 두걸음 상 옆으로 걸어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앉아있던 그가 폴짝 내려와 종인을 반겼다.
"보고싶었어."
"웃기지말고, 이제 봤으니까 순순히 밥이나 쳐먹어."
종인은 살랑거리며 제 품에 안기는 그를 밀어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섭섭하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순순히 밀려난 그가 침대에 앉아 한쪽 다리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내가 이번엔 오래 걸린다고 분명히, 분명히 말을 했을텐데, 떠나자마자 그 지랄을 해?"
"그치마안... 사실인걸 어떡해?"
"네가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사랑했다고. 씨발, 뭐? 내가 보고싶어서 밥이 안 넘어가?"
제가 생각하기에도 제가 뱉은 말이 우스웠던건지, 아니면 종인의 반응이 재미있는건지 그는 뒤로 넘어가며 꺄하하 웃었다. 종인은 그 모습을 아니꼽다는 듯 보았다. 여전히 씩씩대고 있는 채였다. 도대체 며칠을 굶은거야, 씨발. ···음, 글쎄. 한 3, 4일 정도? 산뜻하게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까지 으쓱여가며 가볍게 말하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어이가 없어서 자꾸만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씨발, 미친년이 진짜.
"이제 봤으니까 잡소리 집어치우고, 얌전히 밥이나 쳐먹어."
"맘이 바뀌었어. 배도 안고프고, 입맛도 없어. 안먹을래!"
찬찬히 몸을 일으키며 말한 그의 눈이 잔뜩 휘어져있었다. 씨발, 저년이. 종인은 속이 뒤틀림을 느꼈다. 저벅저벅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그대로 머리채를 휘어잡고선 상에 쾅, 머리를 박아버렸다. 고통에 억눌린 거친 숨소리가 이내 하하, 웃음기를 띄었다. 그가 제 머리통을 꽉 누르는 종인의 팔목을 꽉 잡았다.
"아, 박력있어. 역시 멋져."
나긋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이는 악물고, 부릅 뜬 두 눈은 잔뜩 종인을 노려보는 채였다. 종인의 팔목을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재밌지, 내가 네 손에 놀아나는 것 같고 기분 좋지? 쥐락펴락, 아주 재미있지, 씨발년아."
오냐오냐 하니까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 종인이 그의 머리채를 잡은 손을 다시 들어올렸다. 그가 묘하게 뒤틀린 웃음을 지으며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종인의 뺨을 쓸어내렸다.
"누가 할말인데 그래."
나긋나긋했던 목소리가 이내 분노를 띄었다. 도대체 언제 잡는건데? 네가 말하는 그 금방이 언젠데? 물어볼 때 마다 매번 곧 잡는다, 놓쳤다. 몇 번을 말을 바꾸는지, 아주 피가 바싹바싹 마르거든, 난. 매일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아. 네가 알아? 알기는 해? 하고 내뱉는 그 목소리가, 맺힌 게 굉장히 많아보였다.
"그래?"
종인은 그의 머리채를 잡은 그대로, 거칠게 침대로 던져버렸다. 그는 던져진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종인은 그의 어깨를 잡고 돌려 저를 마주보고 눕게 했다. 흐트러진 앞머리를 걷어내고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이, 꽤나 부드러웠다.
"많이 힘들었겠네. 보고싶지? 가족들 말야."
"..."
"어떻게 해야 위로가 될지 모르겠네."
종인은 그렇게 말하며 그의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렀다. 그는 그런 종인을 제지하지도 않고 경멸, 분노가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방울져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종인을 노려보며 이불을 꽉 그러쥘 뿐이었다.
"근데 그거 알아?"
"..."
"사실 놓친 게 아니야."
"..."
"풀어주는거지."
그렇게 말하고는 푸스스 웃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 경악과 경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종인은 전혀 개의치않고 짧게 촉, 입을 맞추곤 이제 알았어? 하고 답했다. 하루하루 두려움과 공포, 죄책감에 시달리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못할 제 아비 생각에 그의 두 눈에 쉴새없이 눈물이 고였다가, 흘러내리기를 반복했다.
"말 잘 들어야겠지?"
그가 고분고분 한 풀 꺾인 기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종인이 웃었다. 다시 한 번 그의 입에 촉, 짧게 입을 맞췄다가 떨어졌다. 눈물이 묻어난 입술이 축축했다.
"그래. 그래야지, 백현아."
백현이 종인의 넥타이를 잡고 끌어당겨 먼저 진하게 입을 맞춰왔다. 이내 백현의 다리가 종인의 허리를 감아왔다. 백현과 진득하게 입을 맞추던 종인의 입꼬리가 말려올라갔다.
더보기 |
오타, 맞춤법 지적 언제든 환영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 한달이 넘어서야 하편을 올리다니... 혹시나, 그럴일은 없겠지만 ㅜㅜ 정말 혹시나 기다려주신분이 계시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