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것들은 늘 그랬다.
쉽게 칼날 같았고 쉽게 울었고 쉽게 무너졌다.
이미 병들었는데 또 무엇이 아팠을까.
/허연, 지층의 황혼
정신이 아찔하다. 그러니깐 퓨즈가 끊겼다가 다시 들어온 느낌. 눈을 뜨니 저번처럼 몸이 무거웠다. 분명 여주가 절 떠나는 모습, 제가 복도 한복판에서 울고 있는 모습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호시 눈만 꿈뻑이다가 상체를 힘겹게 일으켜세웠다.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엎드려있는 여주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다, 다행... 호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구원 받을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호시 움찔거리는 여주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저와 같이 악몽을 꾸고 있다면 제 토닥임을 받고 그 꿈이 없어지길... 하는 바람이었다.
호시 아무 말 없이 등만 토닥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주가 깨어난지 반대편에 있던 얼굴을 호시 쪽으로 돌렸다. 둘은 서로만 쳐다보고 있었다. 퉁퉁 부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다가 여주 입 뗐다.
괜찮아요?
-......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쓰러지시면 저는 달려갈 수 밖에 없잖아요.
-미안...
그렇게 약한 모습 보이지 마세요... 헷갈려요, 더.
여주 사실은 제 자신이 어이없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 곳이 호시와 많은 추억이 머문 곳, 인간 세계가 보이던 곳이었다. 호시에 대해 헷갈렸는 건 사실이다. 무엇이 그의 진짜 모습인지 가늠이 안 갔다. 하지만, 호시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건 아니었다. 인간 세계가 보이던 곳에 가서 몇 번을 울었다. 우지의 말 한 마디에 흔들리는 자기 자신이 미웠다. 분명 그를 싫어하게 된 것도 아닌데... 무서웠다. 그러다가 호시가 쓰러졌다는 얘기가 들려서... 그래서 달려갔다. 결국은 여주는 호시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호시가 침대에 누워있는 걸 봤을 때도 엉엉 울었다. 그냥, 엉엉... 목 놓아서.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잔 거였을 듯.
호시 여주 바라보고선 우물쭈물한다. 여주 시선 돌리고선 아무런 말도 없다. 호시 이불 꽉 잡고선 입 연다.
- 내 얘기 한 번만 들어줄 수 있어?
당연하죠.
-...고마워.
고맙다는 말 들을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모두들 내 말은 안 들어줘서.
나쁜 놈들이네요.
여주 다시 호시 쪽 바라보고선 호시 얘기 듣는다. 호시 자신의 과거 얘기 말하면서 손 덜덜 떨듯. 어릴 적 이야기이지만 어릴 때 받은 공포랑 외로움이 너무 컸다.
여주 다 듣고 나서 화난다는 듯 얼굴 붉어져있다. 어떻게, 어떻게 신이라는 사람들이 그냥 사람들보다 무식할 수가 있어요? 여주 화가 주체가 안 된다. 인간들한테 무식하다고 떠들었던 신들이... 인간보다 무식하다니. 여주 그동안 호시가 겪었던 차별, 외로움, 슬픔 등이 가늠이 안 간다. 여주 덜덜 손을 떠는 호시 손 위에 제 손 얹고서는 사뭇 진지하게 말한다.
죄송해요. 우지씨 말에 흔들려서요.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부인.
......진짜 생각할 수록 짜증나네.
여주 얼굴 구기다가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본다. 왜 호시가 목 놓아서 운지 이제 이해가 됐다. 여주 침대 위로 올라가더니 호시 안아버릴 듯. 그러면서 훌쩍거린다. 진짜 제가 나쁜놈들 다 패버릴 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이러는데 호시 그런 여주 귀여워서 허허 웃을 듯. 또, 마음 한 켠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어서, 내가 사랑할 사람이 날 버리지 않아서. 호시 여주 꽉 안으면서 혼잣말 작게 중얼 거릴 듯, 너면 됐어... 그러면 난 구원 받은 거야. 라고.
여주 호시 안아주면서 훌쩍거리다가 품에서 벗어난다. 퉁퉁 부은 호시 눈 근처 눌러주면서 씩씩 거린다.
진짜 나쁜놈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 나는 괜찮은데... 여주야.
뭐가 괜찮아요! 아직도 무섭잖아요, 그때가. 거짓말 할 거예요?
-......
여주 그러다가 호시 초커로 눈이 간다. 호시 목에 달린 초커 매만지면서 신기한 눈을 하고서 묻는다. 이거는 그 벌이랍시고 채운 거예요? 호시 제 초커 만지느라 가까이 온 지도 모르는 여주 보고 웃으면서 대답해줄 듯. 응, 답답해. 여주 그러면 초커 끊어보겠다고 헐렁한 부분 잡는데 꽤 단단해서 놀란다. 뭐야, 진짜 단단하네요. 여주 말하는데 호시 뜬금없는 말 던진다.
- 부인, 근데 너무 가까운 거 같지 않아?
...어, 어. 아,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 뭐가? 난 있는 그대로 말했는데?
아, 진짜! 됐어요.
여주 밉지 않게 째리면서 떨어질 듯. 그러다가 화제 돌리면서 일어선다. 배고프지 않아요? 여주 말에 호시 웃다가 따라서 일어선다. 여주 아무 반응 없는 호시에 머쓱해져서 아님 말고요. 하는데 호시가 문 열면서 말한다. 가자, 밥 먹으러. 웃으면서 말하는 호시에 여주도 웃으며 밖으로 나간다.
***************
둘이 식사 다 마치고 산책하는데 익숙한 문에 누군가가 나온다. 누가봐도 의사같은 가운 차림에 한 쪽에는 파일을 들고 있는 사람. 그 사람, 호시를 보더니 황급히 와서는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상태가 많이 호전 되셨습니다. 이렇게 가면 길면 일주일, 짧으면 며칠 새로 깨어나실 수 있을 겁니다.
- 아... 다행이다, 다행... 남은 수명은 뭐 어찌 알 수가 없죠?
여주 그 사람이랑 호시 번갈아보다가 생각했다. 아, 저 사람은 호시가 호시 새엄마한테 붙혀준 주치의구나. 호시 상태가 호전 됐다는 말에 입꼬리 올라가있다. 호시는 빨리 일어나서 절 보고 뭐라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한 방 먹였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여주를 소개 시켜주고 싶었다. 당신이랑 똑같은 사람이 나타났다고, 내 앞에.
짐작은 가능합니다. 쓰자마자 쓰러지셨으니... 원래도 남은 수명이 별로 없으셨을 것입니다. 길면 한 달입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제가 하는 일인데요, 뭐.
호시 목례하고 주치의가 나가는 걸 지켜봤다. 여주 호시 옆으로 가서는 말했다. 그러면 깨어나시기 전동안 어떻게 그 사람들을 한 방 먹일지 생각하는 게 어때요? 호시 방금 전보다는 침울한 눈으로 여주 바라봤다. 말은 쉽다, 항상 말은 쉽다. 호시 한숨 푹 쉬더니 여주에게 물었다.
- 말은 쉽지. 아, 방에 다시 들어가볼래?
...들어가도 돼요?
- 이제 다 아는 사이인데, 뭘.
호시 여주 손깍지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 방의 불 꺼진 어두침침한 모습만 봤던 여주는 불 켰을 때 놀랐다. 그냥 방 한 가운데에 커다란 침대 하나만 있었다. 의외네. 여주 혼잣말을 하고선 이미 침대 옆에 서있는 호시에게 갔다. 호시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 나 어쩌면 구원 받을지도 몰라. 얼른 일어나서 엄마도 나 용서해줘. 여주 호시 쳐다보다가 새엄마 쳐다본다. 별로 안 닮았네, 새엄마라서 그런가. 둘이서 아무 말도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호시의 새엄마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여주 한 마디 한다.
만약에 기억 못 하면, 그때는 어쩔 거예요?
-...그러면 하는 수 없지, 뭐. 평생 살인자 소리 듣고 사는 거지.
재미없게.
여주 푸, 하는 소리를 내고선 침대에 기울였던 몸을 폈다. 호시 그런 여주 바라보다 묻는다. 이제 방으로 갈까? 여주 말 없이 고개 끄덕이며 방 밖으로 향하면 호시 뒤따라서 방을 나간다.
방으로 향하는 길, 여주 어두침침한 호시의 표정이 신경 쓰인다. 하긴, 나였어도 마냥 해맑게 웃지는 못 할 것이다. 여주 생각해보니 밥 먹으며서 들은 게 있었다. 오늘 인간 세계에서 축제를 연다고 했다. 여주 손 잡고 방으로 향하다가 호시에게 물었다. 우리 밖으로 나가면 안 돼요? 호시 멍 때리다가 여주의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머릿속도 정리할 겸 나가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았다.
궁전 밖에서는 마치 지하 세계도 축제인 것마냥 사람들이 춤도 추고 그랬다. 여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어디론가 향했다. 그곳은 꼬치를 파는 곳이었다.
이거 저희 먹어요.
- 무슨 고기인지도 안 궁금해?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아요... 그게 뭔 상관이야.
- 그래, 하나씩 먹자.
호시 하나씩 사서는 여주 손에 쥐어주고 제 손에도 들고 있었다.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그 기억을 떠오르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주는 꼬치가 달콤한데 끝에는 쓴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예쁜 핀을 파는 곳에 들렸다. 형형색색의 핀들이 눈에 들어왔다. 핀에 정신이 팔린 여주를 쳐다보던 호시, 결국엔 말했다. 예쁜 거 있음 사도 돼, 부인. 여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실제 꽃이 달린 거같은 핀을 집어 들었다. 호시 알겠다며 계산을 끝내자 여주 신이 난 듯 해맑게 웃었다. 호시 여주 손에 든 핀을 제가 쥐고선 말했다.
- 내가 꽂아줄게, 부인.
제가 할 수 있는데...
-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호시 여주 볼을 살살 쥐고선 핀을 살살 꽂았다. 정말이지 닮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호시 입꼬리를 천천히 올리더니 낮게 웃으면서 말했다.
- 예쁘다, 정말로.
부끄럽게.
- 좋으면서.
당연하죠, 그걸 말이라고.
여주의 말에 호시 빵 터져선 하하, 호탕하게 웃었다. 여주 그런 호시를 보고서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다, 행복해보여서. 뭔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여주는.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이제라도 행복하게 살아라고 하고 싶었다. 그게 제 바람이기도 했으니깐. 여주 호시 손 잡고선 말했다.
저희만 아는 곳에 가요. 인간 세계에서 축제한다고 들었어요.
- 누구한테?
그건 비밀. 불꽃놀이 같은 거 모르죠?
- 응?
아니에요, 보면 알아. 얼른 가요.
****************
펑, 퍼펑. 폭죽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만 아는 곳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불꽃놀이가 시작 됐을 때였다. 조그만한 구멍 사이에 보이는 까만 밤하늘에 예쁘게 불꽃들이 터지고 있다. 호시 신기하다는 듯 빤히 쳐다보았다. 눈 앞에서 황홀하게 불꽃들이 터지는 밤하늘, 모를 희열감이 올라왔다. 정말로 예뻤다. 이런 장면을 생애에서 처음으로 보다니, 인간들은 이런 걸 자주 보는 건가? 호시 머릿속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호시의 반응을 본 여주 뿌듯함이 밀려왔다.
- 인간 사람들은 이걸 불꽃놀이라 그래? 별들 같아.
이런 것도 다 과학이에요, 과학. 막 초능력 그런 게 아니라. 마법 그런 거 아니라.
- 신기해. 엄청.
다행이네요. 저것 밖에 못 터트리나, 막 이런 생각하는 줄 알았어요.
- 그게 뭐야, 부인.
나도 몰라요. 그냥 아무 말?
호시랑 여주 웃으며 밤하늘을 쳐다봤다. 정말 예뻤다. 왜 이렇게 예쁜 풍경을 이제서야 알았을까. 불꽃놀이를 보던 호시 여주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 인간 세계 가고 싶음 말 해. 데려가줄게.
...안 된다고 할 땐 언제고.
-...예쁜 거 보여줬잖아. 그거 보상이야.
그럼 내일 가요, 우리.
- 그래.
여주 호시 얼굴 바라보며 웃었다. 느끼고는 있었다, 호시가 절 배려한답시고 하는 사소한 행동들 말이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낯선 땅에 온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들, 사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여주에겐 크게 다가왔다. 여주 밤하늘 바라보던 호시를 툭툭 쳤다. 호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여주 쳐다봤다. 행복한 거같은 서로의 얼굴을 둘은 쳐다봤다. 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가 행복했음 좋겠다, 라는 똑같은 생각. 여주 까치발을 들고 호시 입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호시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데 여주 부끄러운지 다른 곳 쳐다보고 있다.
- 방금 뭐야, 여주야?
아 갑자기 또 이름 부르면 돌아보게 되잖아,
쪽, 이번엔 호시가 먼저 입을 맞췄다. 여주 놀라서 떨어지려는데 제 볼을 쥐는 호시의 손에 눈을 감았다. 호시 정말이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여주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불꽃놀이가 한참인 밤하늘을 조명 삼아 둘은 길게 입맞춤을 나눴다. 펑, 퍼펑, 펑. 폭죽이 터지는 소리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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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제가 써놓은 게 다 날라가서 첨부터 다시... 쓴 거라서 약간 허접할 수도 있는데 봐주심... 감사하겠고. .. . .
진짜 ㅜㅜㅜ 다음화까지 구성 다 해놨었는데... 암튼 당황해서 다음엔 스핀오프 데려올게요. . . . ㅜㅜ
스핀오프는 폰에다가 먼저 적어놔서...ㅜㅜ
암호닉분들 다 날라가버려서. . . ㅜㅜ 진짜 아 댓글도 아ㅜㅜㅜㅜㅜㅜ 열심히 적어주셧는데 ㅜ ㅜ ㅜ ㅜ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롬곡. . . . ㅜㅜㅜㅜ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