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교육과 박성진 짝사랑하는 썰 2
선을 그어주던가
w. 랑데부
6.
"동방으로 갈 건데 너도 갈꺼지?"
"어, 그래"
"그럼 니 먼저 가 있어라, 나 맥주 쫌 사가지고 갈게"
"어, 빨리 와"
방학을 하곤 학기 중보다 편했어, 싫은 얼굴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이리저리 미팅이네 뭐네 끌려 다닐 일도 없어지고. 대신 알바가 늘었지, 저녁 알바 전에 좀 쉬고 가려고 아무 생각 없이 동방 문을 열었는데
"어,"
시선이 밟히는 곳엔 항상 선배가 있더라고. 기타줄이 끊어졌는지 앉아 조율하고 있었어, 네 저 왔습니다 하곤 선배 옆 소파에 기대 누웠어. 그 종강날 술에 떡이된 날이 계기였는지 조금 더 가까워져서 윤도운 다음으로 좀 편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거든.
그렇게 관계가 적당히 정리 되고, 솔직히 동방에 온 건 여기 소파가 좋아서 온 거였거든,, 선배랑 몇 마디 주고 받다가 너무 졸려서 그냥 잠들어버렸어.
그리고 얼결에 깨니까 동방에 사람 좀 차 있었는데 나는 또 선배 과잠 덮고 잠들었던거야, 내가 담요인줄 알고 덮었나해서 부스스한 머리 정리하고 두리번거렸어.
"아 그거 에어컨 때문에 니 추울까봐. 와, 다 잤나 이제"
선배 다정함에 나만 치인 거 아니지,, 으슬으슬하게 틀어둔 에어컨이 왜 하나도 안춥나 했더니 이거였던거야. 아 감사합니다 하고 시계보는데 아 알바 늦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뛰쳐나왔거든, 근데 누가 팔을 확 잡아 돌리는 거야 복도벽으로. 그래서 그 힘에 밀려서 뒤돌았어.
"..아 미안"
"니 치마 올라갔다, 팔 붙잡은 건 미안"
아 급해서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선배가 귓가에 조용히 붙어서 말해줘 알았어. 그 말 듣자마자 뭐라 답도 못하고 말려올라간 치마부터 손으로 쭉 내리고 그제야 감사합니다, 하고 뛰어 나왔어. 조금 당황스러워서 스탭도 버벅거리면서 가방끈만 꾹 쥐고 나왔는데, 딱 생각이 스치는거야. 내가 뭐 때문에 당황스러워한거지. 말려 올라간 치마 때문인지 선배 때문인지, 끅 또 딸꾹질하며 멍하게 급브레이크 밟고 서 있다가 우선 뛰었어. 어, 그냥 그랬던거 같아.
*
"ㅇㅇ씨, 이제 들어가야지"
'"네, 거의 다 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호프집 일 진짜 힘들어 죽을 거 같았어,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담배연기 때문에 눈도 따갑고 서울 상경해 하는 일이 뭐 다 그렇겠지만, 꼭 퇴근할 쯤 되면 괜히 외롭더라고. 지방에 있는 가족들도 괜시리 보고 싶고, 마감한 뒤에 택시 잡으려 했는데 할증 붙는 시간이라 타지도 못하고 막차 타고 집에 가는데 힘이 쭉 빠지더라고. 지금 시간에 누구한테 전화하기도 뭐하고, 그래서 계속 이리저리 눈 따갑게 지나는 빌딩을 보다 눈 감고 있었어.
"...자나"
선배 목소리도 환청인가 그렇게 들리더라고, 아 꿈인가보다 했어.
근데 왜 선배 꿈을 꾸는 거지.
7.
"아니 그거 널지 말라고"
"그러니까 왜 내 빨랫감에 집어 넣어가지고, 눈 쪼까 부었드만 앞도 안보이나. 어디 함 봐봐"
"..어ㅏ"
"와"
지금 들고 있는 거 속옷인데
"형 여자 데려와?"
"돌았나"
인간은 본래 실수에 의한 창조물이라 하지 아니했는가. 그가 들고 있는 그게 뭐,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ㅇㅇ의 실수, 단지 귀까지 붉게 물든, 바닥으로 툭 추락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브래지어. 우리는 가끔 실수를 하곤 한다.
8.
그래도 할 말 한 삶이었어, 월급 들어온 잔액보니 기분도 좋고. 말 못할 고민 같은 거 다들 가지고 사는데 좀 복잡한 건, 그 애가 여직 따라다닌다는 거. 그거였어. 방학하고 연락 없길래 진짜 끝났구나했는데 자꾸 술 먹고 전화 오고, 동기한테 술 취했으니까 니가 좀 데려다 주라는 연락이 오고, 알바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자꾸 찾아오더라.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마냥 피해다니는 것도 힘들었고, 이젠 그 애가 나쁜 기억의 일부와 꼭 겹쳐보여서 더 괴로웠거든.
"내 다시 보면, 그때는 경찰서에서 보자캤는데 니는 말이 말 같지가 않게 들리나"
밴드 공연 끝나고 내가 일하는 호프집에서 회식한 게 화근이었어. 뜬금없이 윤도운이 문 붙잡고 내 이름 부르면서 들어오더니 뒤이어서 기타 맨 선배가 들어오더라고, 아 회식이구나 했어. 비도 오는 날이라 손님도 없고 사장님 덕에 일 도중에 합석할 수 있었지. 근데 자꾸 전화가 울리는 거야, 그 애더라.
자꾸 울리니까 불편해서 밖으로 나갔는데 찾아왔더라고, 또 말도 안돼는 언쟁에 실랑이하고 지쳐가는데 뒤에서 약간 언성 높은 목소리가 훅 들려서 놀래 돌아보니까 선배더라고. 담배 때문에 나왔는지. 손에 담배갑 들려 있고 좀 어두워진 얼굴로 그 애한테 이야기하는데 왜 복잡한 실타래를 누가 풀려고 끌어당기는 기분일까. 그리고 둘 이야긴 안 들렸어, 좀 떨어진 곳에서 말해서. 그리고 선배가 그 애 폰 받아 몇번 화면 두들기더니 옆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어. 깜짝 놀래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그 애가 뛰어가버리더라고.
"들어가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선배가 나서서 이런 일 해결해주는 게 어쩌면 피해잖아 그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려 했는데
"내 한 대만 피고 들어갈게, 그냥 들어가라"
선배 목소리가 조금 달라서 우선 그냥 들어왔어.
안에선 보이지 않았는지 분위기가 같이 뜰더있어서 거기에 맞추면서 한참 이따 들어온 선배 눈치 좀 봤는데, 언제 그랬냐는듯이 또 웃더라고.
그렇게 자리도 마무리가 되고 일어나려하는데 더 퍼부을 건지 비가 세차게 내렸어, 그렇게 왔는데. 각자 우산 쓰고 같이 걷는데, 둘만 있으니 꼭 이야기 해야 할 거 같아서 내가 먼저 입을 뗐어.
"계속, 이런 일 말리게 해서 죄송해요"
"아이다. 앞으로 이런 일 없으면 되는 거고, 괜히 지난 거까지 미안해 하지 말고"
"아, 그리고 담엔 너 정말 예뻐해주는 사람 만나라. 저런 삐리한 애 말고"
비에 묻혀서 대화가 잘 들리지 않았는데, 저 말은 귀에 꾹 내려앉더라. 됐제? 하고 또 내 얼굴 확인하는 선배한테 그냥 고개 끄덕였어. 다음 연애는 없을 거 같아서. 그 날 비 엄청 내리더라, 나는 다시 연애 같은 거 할 수 있을까 그런 잡생각도 같이 흘려보내줄 수 있을만큼. 세차게 내리더라고.
9.
"나 휴학할래"
"계절학기 듣다 휴학하는 사람 너뿐이겠네"
"아 진짜, 답이 없다. 답이"
애써 기다려주니 죽는 소리로 강의실을 나오는 윤도운의 목언저리를 쥐고 끌고 가다 익숙한 기타케이스에 멈칫했어, 그러니까 같이 브레이크 걸린 윤도운이 왜 뭐 하고 고개 쑥 돌아 같은 시선으로 두 사람을 보더라. 익숙한 기타케이스 앞에 정말 예쁜 여자가 서 있었거든.
"어, 성진이형이네. 형!"
"야 부르지마 부르지마 부르지말라고, 그냥 가자. 윤도운"
"와, 나 할 말 있는데. 형!"
"는 으 세상으스 제일 느쁜 노미으"
(넌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야)
굳이 저 두 사람 사이 앞까지 가고 싶지 않았으나 윤도운은 신나게 꼬리 흔들며 주인 찾은 강아지마냥 달려가며 내 손목을 쥐고 달려가 함께 딸려갔어. 윤도운 세상 제일 필요없는 놈, 아니 친구. 공연 회의 몇시에요? 그거 카톡으로 물어도 되잖아. 합주 내일 할 거에요? 그것도. 옆엔 누구에요? 그것도 윤도운 제발.
"후배, 여기로 편입할까 티오 나서 잠깐 왔다고 해서"
"선배 그럼 나중에 제가 밥 살게요"
"오야, 가라"
선배는 그 여자애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줬어 아 친한가보다 둘이, 많이. 그닥 궁금하지 않은 사이에 짧게 꼈다가 궁금해져서 마른 세수하곤 뒤로 빠지려는데 세상 참 안도와주는 윤도운이 또 말을 꺼내는 거야.
"와, 햄. 음층나게 이쁘네"
"예쁘제"
누가 등에 날카로운 걸 콱 꽂은 거 같은 느낌이었는데, 거기서 또 등신 같이 책을 쏟아서 시선 집중 제대로 시켰지. 어? 괘안나 곧장 책 주워 건네는 거 받고 선배 올려다보았는데, 기분이 좀 그랬어. 아니 좀 많이. 그래서 먼저 가보겠다고 하곤 본관에서 튀어나왔는데 등이 확 식으면서 쎄하더라. 왜 그랬을까.
*
"어디 아프나"
"..네? 아뇨. 아니요"
"진짜?"
"아, 네. 괜찮아요"
내 성격에 어쩌다 공연 스탭을 자청해가지고 꼭 일을 만들어버리곤 했어. 회의 중간에 자꾸 머릿속에 그 여자애가 자꾸 재생돼서 얼빠져 있으니 선배가 손에 이마 짚는 모양새 하면서 열 좀 짚어봐라 얼굴 안 좋아보이는데, 해서 정신이 돌아왔지. 진짜 미쳤나봐 여러모로. 회의 끝나갈즈음에 너무 갑갑했던 차라 슬슬 일어나려고 빠르게 가방 챙기고 있었는데 누가 동방으로 노크하고 얼굴 쏙 들어오더라고.
"니 안 갔나"
"껴도 돼요?"
"응 안됀다. 오늘은 이만 가자, ㅇㅇ야 아프면 말하고. 잘가라"
그러고 선배는 그 여자애 어깨 꾹 밀며 나가라 나가라 하며 기타 메고 사라졌어. 열은 안나는데 몸이 좀 아픈 거 같아, 그럴 이유가 없는데. 니 뭐하냐 가자, 윤도운이 가방끈 쥐고 끌어서 그때 다시 정신 들어 따라갔지. 나 어디 아픈 거 맞나.
그리고 공연날 그 여자애가 다시 왔더라고, 물이나 잔심부름 조금 하고나서 출입구 옆에 기대서 선배 얼굴 찾다가 그 앞쪽에 서 있는 그 여자애가 보여서 사실 집중은 잘 안됐어. 두 시간 정도, 귀엔 목소리가 분명 들리는데 눈은 자꾸 그 여자애한테 가더라고. 그리곤 공연 끝나고 사람 빠질때쯤 자연스레 다들 모여서 얘기 좀 나누는데 선배 옆에 자연스레 그 여자애가 앉더라. 잔 장난도 치면서, 너무 사랑스럽게 웃길래 어,음 기분이 오묘했어.
"나도 스탭할래, 다음 공연엔 껴줘"
"됐다 마, 넌 학교나 잘 다녀라"
"별로 하는 일 없잖아. 나도 저정돈 할 수 있어서 그래"
"넌 편입이나 신경 쓰세요"
그 애가 선배 품에 안기는데 너무 편하게 장난치고 뭔가 나는 기름 같았어. 물에 둥둥 떠다니는, 막 껴들면 안될 거 같아서 아무 말도 않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본 건지 그 사람이 날 노골적으로 바라보더라고. 당연히 쫄아서 눈을 수건 쥔 손에 고정했어, 그냥 착각인가. 그 날은 회식 없이 파하기로 하고 나는 뒷정리 좀 하고 짐 챙기려는데, 가방이 누군가의 접촉으로 추락하더라. 아, 처음엔 내 잘못인가 해서 급하게 가방이랑 짐 하나하나 집어넣는데 앞쪽에 구두가 보이더라고. 아, 고의구나.
"데려다 줄거지? 늦었잖아"
"오빠 부려먹는데 도가 텄지? 가자"
그 날은 혼자 집으로 왔어. 관계의 깊이 같은 거 잘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눈에 그 구두가 담길 때 어이없게 그때 알겠더라고. 나 그 사람 좋아하는구나.
연애 같은 거 할 자격도 없고, 아니 연애가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나한테 그리 허락된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집에 오는 길이 엄청 복잡해서 그 날은 방 안에서 맥주 두 캔 까고 잠들었어. 그리고 그냥, 방금 안 그 사실은 착각으로 치부하기로 했어. 두번 호구될 수는 없잖아.
10.
여름을 작정을 한 건지 미친듯이 직사광선을 흩뿌리다, 뜨문뜨문 거친 빗줄기를 쏟아 부었다. 알바를 제외하곤 당분간 밖으로 나가는 일은 자제해야지, 쓸모도 없는 손부채질을 하며 문을 닫고 들어오자마자 정말 날씨가 미쳐버린건지 갑작스레 천둥과 함께 지나친 소나기가 내리는 거야. 타이밍 잘 맞춰 들어왔다 싶어 우선 창문 닫았지. 그리고 샤워한 뒤에 할 것도 없고 거실에 아무도 없길래 이때다 싶어 젖은 머리 탈탈 털며 소파에 앉아 영화 트는데, 꾹꾹 도어락이 풀리는 거야. 집 안 조용하길래 다들 온 줄 알았는데, 완전 젖어서 앞머리 탁탁 털면서 선배가 들어오더라고.
"ㅇㅇ가 안 잤나"
"아, 이제 들어오세요?"
"어. 아 비 음층 쏟아지네, 넌 비 안 맞았나"
"..아 네, 저는"
타이밍 운운하는 게 아니었어, 선배는 금방 씻으러 들어가고 나는 수건으로 좀 물기 남은 바닥 훔쳤지. 그리고 막 튼 영화에 집중하려하는데 왜 자꾸 선배방으로 눈길이 따라가는지. 어거지로 영화만 보려고 눈을 강제로 티비에 고정하는데 선배 다시 방 밖으로 안 나오더라고. 결국 재미있었는지도 모를 영화를 보다가 거기서 잠들었어,,
"다녀왔습니다"
"그래, 저녁은 먹었니?'
"네 먹고 왔어요"
"그럼 들어가기 전에 성진이 좀 깨워서 아줌마가 저녁 차려놨거든, 좀 먹일래? 오늘 통 안나오네"
"네. 다녀오세요"
알바 끝나고 그냥 생각나서 아이스크림 사 봉지 달랑 거리면서 들어왔는데 오늘 한번도 안 나왔다는 거야, 물론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주인집 아주머니 나가시고 바로 선배방 노크했는데 답이 없길래 집에 없나?했어. 다시 한번 노크했는데도 답이 없어서 진짜 없나해서 살짝 문 열어봤거든.
"...선배?"
침대에 제대로 누워 있는 것도 아니고 반쯤 걸쳐져서 자는 건가 하고 고개 빼꼼히 보니까 목 뒤가 완전 땀으로 젖어있었어. 너무 놀래서 급하게 쭈구려 앉아서 이마에 손 대봤는데, 엄청 뜨거운거야. 그리고 자는 건지 아파서 그런 건지, 뜨문뜨문 앓는 소리 들려서 막 어떻게 해야하지 혼란스워서 입술 잘근거리다 지갑 챙겨서 밖으로 나왔어. 편의점 근처 약국에서 약 먼저 사고, 좀 빨리 뛰는데 내가 그렇게 크게 아파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손에 막 땀차고 그러더라.
"선배, 잠깐만 일어나봐요. 땀 좀 봐, ㅇ,어떡하지"
진짜 조심히 침대에 걸친 선배 제대로 눕히고 깨우는데, 한참 있다가 아으 하고 앓는 소리 내면서 상체만 일으키더라고. 뭐 허둥지둥 하다가 우선 사온 약이랑 물부터 쥐어줬어, 선배는 대답할 것도 없이 약 먼저 삼키고 벽에 기대는데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더라고. 어제 그 비맞아서 그런 건가, 다음에는 물수건 가져와서 보이는 부분만 땀 어떻게 닦아줘야하는데 손 덜덜 떨리더라. 제대로 작용해야지 쓸데없이 놀란데다가 남자랑 가까히 있으니까 벌벌 거리는 손 내가 팍 때리고 정신차려서 얼굴이랑 목 이런 데만 우선 찬수건으로 닦아줬어.
"누,누울래요? 누워있는게 낫겠다"
그때 진짜 사람 간호 한 번 안해봐서 너무 어설픈 내가 싫더라, 사람 다 죽어가는데 앞에서. 선배는 다시 한마디도 못하고 눕고, 수건 새로 빨아와서 이마에 올려둔 채로 나왔어. 근데 나도 땀 한바가지 흘렸더라고, 허. 그리고 식탁에 식사는 우선 다시 넣어놓고 빈속에 약 먹을터라 죽이라도 끓여놔야겠다 싶었지. 다행히 냉장고 차있어서 죽은 쉽게 끓이고, 그제서야 내가 긴장 풀려서 내 상태도 노답이라 씻고 나왔지. 막 머리 말린 후에 나왔는데, 선배가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거야, 나 수건 그대로 떨굴 뻔했어.
"괜찮아요?"
"니가 올려줬나, 수건"
"...아 네. 죽 좀 먹을래요? 빈 속에 약 먹어서.."
선배가 고개만 끄덕이길래 나는 또 허겁지겁 죽 데워서 선배 앞에 놓아주는데 얼굴에 정말 핏기가 하나 없길래 수저는 들 수 있을까 해서 물었지.
"떠먹긴 할 수 있겠어요?"
"..내가 얼라가, 괜찮아"
질문이 웃겼는지 선배가 살짝 웃으니까 그제야 살 거 같더라. 그래도 혹시 몰라서 맞은편에 앉아 있었어.
"..니가 끓였나"
"ㅇ,아 네"
"맛있네"
거짓말도 잘하시네, 나 요리 못하는ㄷ, 조용히 하자.
그래도 다 먹어주더라고, 바로 들어가길래 쉬려고 하나 식후 약 있는데 약 먹은지 몇 시간 안돼서 언제 먹어야하지 머리 막 굴리고 있는데
"같이 있을까"
묻더라고.
그래서 약봉지 들고 바닥에 앉으니까 선배가 의자 위에 남방 집어 건네서 덮고 좀 괜찮은가 얼굴 살폈지. 그러게 어젯밤 비는 왜 쏟아져서, 말도 안돼는 거 가지고 나는 속으로 탓하고 있더라. 그리고 뜨문뜨문 기침하는데, 내가 움찔거렸어.
"생각해보니까 너 옮겠다, 방에 갈래?"
"아뇨. 괜찮아요, 저 건강해서"
"아, 알았다"
건강해서가 왠말일까.. 내 입에서 아무말이나 튀어나가더라고. 그리고 그냥 말 없이 선배 보고 있었는데 선배가 갑자기 살짝 웃는거야, 그순간 내가 뭐했지 뭐했더라 두뇌 풀가동했잖아.
"아니 그냥,"
"귀여버서"
땀 쓱 훔치면서 말하는데 누가 심장 패대기 친 것마냥 덜컹거렸어. 그냥 던진 말에도 몸이 흠칫하더라, 그리곤 좀 오랫동안 대화했어. 술도 안 먹고 그 작은 방에서 얼만큼의 크기의 이야기를 했더라, 그러면서 웃기도 하고 진지하게 듣기도했어. 그렇게 조금은 깊어졌을까, 나는 선배에게. 그런 거 같다, 조금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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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좋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들숨에 건강을 얻고
날숨에 재력을 얻기를 바래요
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