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교육과 박성진 짝사랑하는 썰 3
선을 그어주던가
w. 랑데부
11.
"나 징짜 휴학할거라꼬! 마, 와 안 믿는데!!"
"..조용히하고 빨리 나와. 윤도운 진짜"
미치겠다, 나 술 쳇슴 데리러 올거야? 라는 쓸데없는 문장을 보고 한달음에 뛰어나오니 얼마나 마신 건지 아주 지 세상 납셨다. 계절학기 듣다 휴학하는 인간 말리고 싶진 않지만, 지금 상태로 봐선 윤도운을 말려야 할 거 같아 저 거구의 팔을 억지로 잡으니 더 난동부리는거야. 이 개,
다들 모르는 동기뿐이라 억지로 눈을 접어 인사하고 나와 질질 끌어가려니 윤도운은 끝까지 멍멍이 하, 나한테만 연락을 한게 아닌지 밴드 멤버들이 하나 둘씩 뛰어오더라고. 윤도운 인기 많네. 근데 그 사이에 선배가 있는게 문제지 도운아 그치,,,
"마, 윤도운 너.."
다들 오실거면 좀 빨리들 오시지 하하, 윤도운한테 말려 진빠진 내 모습에 더 놀란 기색들이었어. 선배는 빠르게 상황 파악하더니 나에게 와 앉더라고, 고맙게
"아까 나갈때 말하지, 어딜 그래 급하게 가나 했네. 점마 막 휘둘러가지고 다친덴 없고?"
"..아, 아 네"
고성방가하는 윤도운은 입막힌채 저멀리 끌려가고 있더라고, 걱정스레 보다 또 예쁘게 웃는 선배 얼굴을 피해 시선을 땅에 처박았어. 그러니 와 하고 더 가까히 오는데 왜인지 무섭지가 않더라. 왜 그랬을까. 식은땀이 덜 났는데, 나 진짜 왜 이럴까.
*
- 대강당으로 온나, 올 때 맛있는 거 사온나
윤도운은 낯짝이 정말 두꺼웠어, 그렇게 깽판을 쳐놓고 활발한 이모티콘과 함께 보낸 메시지에 휴대폰을 꾹 쥐고 음료를 계산했지. 도서관에 있을 애가 또 왜 거기로 기어 들어간건지, 동기들이랑 같이 있으나 여러개 사오라는 추가 메시지에 이마를 짚고 몇 개 더 꺼내 계산했어. 묵직한 봉투를 쥐고 낑낑 대며 강당 문을 여니 농구공이 팡팡 튀고 있더라고.
아, 그리고 선배도. 농구공 쥐고 여기저기 패스하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처음이었거든, 아 선배 체교과라 했었지. 매번 기타를 메고 있거나 마이크를 쥐는 모습에 익숙했던 터라 멍하게 선배를 봤어. 확실히 턱으로 땀 툭툭 떨어지는데 슥 닦고 바로 다시 농구공 쥐고 골 넣는데, 정말 멋있더라,, 윤도운이 너무 빨리 달려와서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햄들, 음료수 먹고 해요!"
"심부름 시키려고 불렀지 너?"
"당연한 거 아냐? 아 맞다, 나 이따 니랑 할 말 있다. 가지 말고 딱 기다려"
"마, 넌 좀 보면 받지. ㅇㅇ가 들고 오는 거였나, 마이 무거웠나"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이상한 눈초리로 시그널을 보냈는데 미안하게 오류다 도운아. 선배는 내가 든 봉지를 금방 받아갔고, 나도 뒤따라 자리에 앉았는데 조금 익숙한 인영이 있더라고. 그 여자애였어, 자주 와본 건지 금새 선배 옆에서 음료 받아 마시고 있더라고. 나는 조금 떨어져 앉아 손톱 때문에 캔이랑 싸우는 중이었는데,
"안 따지나. 도"
"네? 아, 아 네. 감사합니다"
손에 살짝 스쳐 캔을 받아 바로 선배가 따 건넸어, 우선 목을 축이고 선배 보는데 머리칼도 땀에 흠뻑 젖었는데 왜 이렇게 훈훈해보일까. 다들 어느정도 쉬었는지 다시 또 농구공을 들고 장난을 치다 금방 경기를 시작해서, 흩어진 캔만 정리하고 경기에 집중해 봤거든. 근데 왜 옆에서 뚫어져라 시선이 느껴지는지, 기가 약해서 그런가 나는 기에 팍 죽어서 죽어도 옆으로 고개 안 돌렸거든. 그러다 후반부에 코트를 바꿔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는데, 그 예쁜 눈이 오롯히 나를 쳐다보고 있더라.
"같은 과?"
"네? 아, 아뇨.. 다른 과"
"친해요?"
"..아니요"
정말 예쁜데 목소리도 또랑또랑 하고 예쁘더라고, 근데 그 목소리로 몰아붙히는 질문의 주어가 선배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조금 무섭더라고. 더이상 묻지는 않으나 나는 쫄아서 괜히 폰만 만지작거렸어, 그러다 뭐가 퍽 얼굴로 떨어져서 아 뭐지 싶어서 얼굴 살짝 문지르는데
"야! 수건을 누가!, ..괘안나. 얼굴 들어봐라"
윤도운이 던진 수건에 맞은 거였어, 아 그냥 고개 수그렸다 올렸는데 너무 가까운 거리에 선배가 마주해있어서 힉 하고 놀래서 고개 뒤로 뺐거든? 이젠 선배가 웃더라고.
"..놀랐나, 미안"
기분 나쁠 법도 한데, 놀란 얼굴이 웃겼나 그냥 웃어주고 진짜 다친데 없냐고 묻길래 정말 빠르게 고개 끄덕거렸어. 그러는 사이에 경기는 끝났는지 하나둘 수건 챙겨서 샤워실 들어가더라, 나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데 윤도운이 딱 기다리라고 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선배가 가면서 손바닥에 놓아준 초콜릿만 보고 있었어. 이거 가져가야 하나, 그냥 ABC초콜릿 한 개인데 그냥 천천히 보고 있었어.
"그거 안드실거면 저 주실래요?"
"..네?"
"달라구요"
세상에 초콜릿 맡겨놓은줄,, 굉장히 당당하게 말하는데 주긴 싫더라고. 그래서 그냥 당황해서 쳐다보고 있으니 그 또랑또랑한 눈이 위아래로 훑어 보고 짐 챙기더라, 마주치기 싫은데 왜 자주 마주칠 거 같지. 우선 그 문제의 초콜릿은 주머니에 넣고 의도치 않은 기싸움에 머리 아파서 이마 짚는데 다시 우르르 동기들하고 부원들 쏟아져 나와서 그냥 주변 정리나 하려고 쓰레기 주워 넣었지. 집에 가고 싶다.
다들 다음에 한번 더 하자고들 말만 남기고 하나둘 가길래 이제 좀 가나 했는데 윤도운이 이거 아직도 안 나온 거야, 선배가 먼저 목에 수건 걸고 나와서 옆자리에 앉자마자 순간적으로 그 여자애보고 끅 딸꾹질 나오더라.
"와, 갑자기 딸꾹질하네. 물 주까"
"아뇨, 끅, 괜찮아, 꾹,요"
오늘 왜 이러나 싶었어, 아 진짜 모양 다 빠지고. 어지러워서 손사레 치면서 다시 이마 짚으니까 엄청 천천히 바람이 스쳤나 싶게 누군가 토닥이는거야.
"이래 해도 괜찮나"
아, 아 네. 얼결에 고개 끄덕거리니까 그제야 등 좀 살살 쓸어주더라고, 선배가. 진짜 아픈건 아닌데 왜 이러지 싶은데 또 토닥이니까 진정돼서 숨 후 하고 뱉었어. 선배는 계속 걱정되는 눈치로 보고 있고, 진짜 괜찮아질때쯤에 그제야 머리 헝클이더라.
"불편할까봐, 아니다 싶음 말해라"
"ㅇ,아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이가 이게, 아 글고 같이 가려했는데 기다리까?"
"아, 저 그게"
"오빠"
저 분이 먼저인 거 같은데, 거절할라치니 틈새에 쑥 들어와 선배를 쥐고 당겨서 할 말 없이 그냥 인사만 했어. 그리고 둘이 앞서 걸어가는데 어, 솔직히 잘 어울리더라. 투닥투닥, 즐거운지 되게 환하게 웃기도 하고. 이런 증상은 그냥 좀 아팠던 걸로 넣어두는 게 맞는 거 같았어. 아님 티 내지 않고 단단히 묶어서 어디 버리던가
"다 갔나"
"무슨 말인데, 나 오늘 죽겠다. 할 말만 하고 가자"
"이야기 꺼내면 술 먹자고 할낀데"
"죽어 진짜"
대체 무슨 말이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뒤늦게 수건 목에 메고 털레털레 걸어와 한 칸 밑자리 앉은 윤도운이 눈을 가늘게 뜨고 텀을 두고 바라보는거야. 그냥 한 대 치고 빨리 말하라 하려했는데
"누나 니 좋아하제"
딸꾹질이 다시 올라왔어.
눈치가 백단인 건지 그만큼 티를 내고 흘리고 다닌 건가, 복잡해져서 어떻게 알았냐 물으니 그냥 알았다는 거야. 이걸 확, 제대로 말하라고 속 타 죽을 거 같았어.
"아니 와 모르겠나, 누나 니 공연 스탭 한다고 한 것도 그런거 할 성격이가? 글고 볼 때마다 쩔쩔 매는데, 내가 모르겠나. 내한텐 말도 안하고, 내 좀 서운할라 그러네"
"...접을거야"
"와"
"그냥, 그럴거야"
"와 접을라 하는데"
"너 알잖아"
내가 누굴 좋아할 처지냐고. 괜히 일 벌리는 거 상대방한테 실례 되는 일 밖에 더 돼?
갑갑한 건 난데 윤도운이 마른 세수를 하고 쳐다보는거야 쳐다봐서 바뀔 일도 아닌데. 단순한 대답 몇가지는 못 마시는 술을 부르는 걸 윤도운은 알았나보다,
"술 땡기제"
"가자"
*
가자마자 둘 다 말도 없이 술잔만 맞부딪혔어. 누가 먼저 이 얘길 꺼내야하는지, 선수칠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너랑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너니까 했잖아 그것도 오래 걸렸고, 근데 내가 뭘 어떻게 더해"
"니가 좋아하는 건 처음 아이가"
"다를수도 있제"
뭐가 다를 수 있을까. 남들 눈엔 그저 단 한번의 연애 실패였지만, 그건 단면이었지. 그 이별에 굳이 잘못을 따져들자면 내 지분이 더 클 거였으니까. 술이 좀 더 달았어 오늘은.
그리고 사실 도운이와 함께 다니게 된 것도 정 많은 도운이의 성격 덕이었어거든, 엠티 가서 술 진창 먹고 토하다가 엉엉 울며 쏟아낸 말을 어떻게 잘 골라 듣고 윤도운은 위로를 해줬으니 망정이지.
"누나 니 그런게 잘못은 아니잖아"
"진짜 잘못이 아닐까"
평범한 사람, 평범한 일상, 평범한 연애.
진짜 나 그 사람 좋아하는 거 같은데, 말그대로 어쩌지.
12.
"ㅇㅇ야"
"묵자. 이거"
눈 떠보니 골목길이었어, 중간 중간 끊긴 필름만 재생될 뿐 왜 여기 주저 앉아있지 싶었고. 뭔지도 모르고 받아 마시자마자 엄청 쓴 맛에 으억 하고 고개 그대로 박을 뻔 했는데, 이마에 손이 탁 내려앉아 다시 제자리리로 돌아왔지. 이것도 묵자, 안 머거여. 먹어야 될 낀데, 안 먹는다구여. 진짜 안 물래? 아 그냥 먹고 말지, 또 뭔지도 모르고 받아 먹으니 또 단거야, 진작 이걸 주던가. 사실 선배도 두세개로 흩어져보였어 그러다 다시 하나로 합쳐지고 다시 흩어지고, 그와중에 먹은 건 맛있더라.
"으으어,"
"..하나 더 물래?"
그리고 다시 훅 올라오는 쓴 맛에 급하게 고개 끄덕이고 받아 먹었는데 다시 달더라. 순간 나 술처먹고 지금 뭔지도 모르는 거 받아먹고 있는 건가 잠시 제정신 퓨즈가 돌아왔다 꺼져서 선배 손 퍽 쥐고 맞지도 않는 초점 맞춰가며 보니까 작은 껍질이더라고, 저게 뭐더라. 이거 먹고 죽는 건 아니겠지 싶어서 말도 막 내뱉었어.
"...선배도 먹어봐여"
안 죽나 볼라구.
거기서 선배가 진짜 엄청 웃더라, 왜 웃는지 나만 모르는 거야,,? 그리고 그게 또 끝이었어. 일어나니 방 안이었고 집까지 어떻게 왔나 막 고개 돌려서 이리저리 보니까 옆에 가방이랑 폰 가지런히 올려져 있더라고. 그리고 초콜릿 포장 껍데기, 나 창문 열고 뛰어내려야 할까.
13.
결국 그 날 대체 무슨 이야기를 어느 깊이까지 이야기했는지는 못 물어봤어. 정말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건 아닌지 눈치도 보였는데, 선배는 똑같더라고. 그리곤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하루 하루를 지나게 뒀어. 또 똑같이 공연 회의에 같이 앉아 이것저것 듣고 적어내리고 있는데 그 날따라 에어컨 온도를 너무 내린 건지 동방이 꽤 추운 거야. 그럴만도 한 게 밖에는 거의 불가마 온도랑 맞먹으니 그리고 다들 들어올때마다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고 들어와서 말도 못하겠고, 티 안내고 있으려니 입술 부들부들 떨리더라.
한번씩 고개 털고 계속 회의 내용 듣는데 머릿속에 왜 나시 입고 왔을까로 자꾸 집중력을 헤치고, 미치겠어서 더 볼펜 꾹 쥐는데 선배가 아무렇지 않게 말 이어 가면서 뭐 꺼내오더라고. 그건 제대로 못봤고 장소 이야기라 선배랑 도운이 대화 듣고 있는데 선배 손에 불쑥 회색 옷가지 들이밀어서 얼떨결에 받았어.
"아 어어, 우선 그래 할 거고. 입어라, 그리고 다른 건 어느정도 준비되는대로 다시,"
아무렇지 않은 대화에 불쑥 입으란 말을 껴서 뭐지 싶어 펴니까 집업이더라고. 아 가끔 입고 다니던 그거구나,하고 입고 다시 집중하는데 정말 얼어 죽을뻔 했는데 좀 지나니 몸이 천천히 녹았어. 소매는 질질 흘러서 계속 끌어올리고 더 적을 내용 적었는데, 따뜻했어 엄청. 회의가 끝나곤 갈 사람은 가고 도운인 스틱 챙기면서 나만 뚫어져라 보더라, 그래서 눈짓으로 이상한 짓 하지말고 빨리 가라고 하는데 선배가 기타 케이스에 넣다가 불쑥 말 꺼내더라.
"좀 추웠제"
"네? 아 조금.."
"그거 그냥 괜찮아지면 암데나 던져놔도 된다"
그러곤 선약 있다고 먼저 가버렸어. 나는 암데나 못 던져 놓고 결국 집에 가져왔고, 그냥 두고 올 껄 하는 생각이 나중에 덮치는 거야. 왜 이걸 가지고 와서, 진짜 으유. 캐비닛 딱 보이는데 곱게 접어서 두고 오면 될 걸 일을 만든다 정말.
*
그리고 문제는 나중에 터졌어. 작게 여름이니까 놀러갈 계획 세우는 가운데서 졸고 있었는데, 그 여자애가 그 옷을 찾더라고. 그때 나만 빼고, 아니 나랑 윤도운만 비상 걸린 눈초리로 서로 쳐다봤어. 끝났다, 내가 뭘 어째. 나한테 있다는 걸 듣고도 알겠다고 넘어가는 목소리에 왜 칼이 들어올 거 같던지,, 정말 걸려서는 안돼는 큰 비밀이 까발려진 거 같아서 눈 앞이 깜깜하더라.
그리고 왜 하필 영화보잔 이야기에 빠지겠단 주장 한 번 못세우고 휩쓸려 온 건지. 이젠 나도 이 동아리 부원인가, 발권할 때도 멍하게 서 있다가 윤도운이 급하게 일 있어서 먼저 간다고 어깨 흔들어서 정신이 들었는데 아 나는,,? 그때 나도 따라 나갈 껄, 어어어 하다보니 자리에 앉았는데 또 그 시선, 그래 그 시선이 느껴지더라. 내가 자리를 고른 것도 아닌데 어찌해 앉으니 선배 옆이었던 게 화근이었던 건지, 영화 시작 전에 계속 선배랑 대화 주고 받으며 틈틈히 보더라고. 두시간만 빠삭 견디고 튀자 생각하고 갑자기 조명 꺼지길래, 나는 거기에 시선을 고정했어.
"...욱"
무슨 영환지 좀 제대로 보고 올 껄, 왜 맨날 내가 일을 망치는 걸까. 어쩌면 아무렇지 않을 흐름에 낀 영화의 씬이었어,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엄마가 나를, 아니 그 애를 때리고. 감정을 꾹꾹 동요시켜서 참으려 했거든 근데 자꾸 눈물은 눈에서 비집고 튀어나오려 하고 안되겠다싶었어. 나중엔 너무 메스꺼워서 선배 반대편으로 돌아 영화관 건물 뛰쳐 나왔어. 나오자마자 전봇대 쥐고 토악질이 나오더라, 먹은 건 없어서 위액만 올라오고 손도 부들부들 떨리고. 괜히 구두 신고 나와서 중심도 안잡히고, 식은땀 계속 흐르더라. 폰은 계속 울리는데 신경 쓸겨를도 없이 계속 그런 상태로 엉거주춤하게 있다 종국엔 엉엉 울었어. 누가 지나가던 엉망인 상태를 보던, 그런 것도 신경 못쓰고 눈물 튀어나오더라고.
"야, ...니"
그때 선배가 야라고 처음 그랬어. 사실 선밴지도 몰랐는데 누가 꼭 안아줬거든, 훅 끼치는 익숙한 향이 선배더라고. 너무 울어서 화장도 번지고 위액까지 막 뱉어냈는데, 상관없이 머리 쓸어주면서 숨 엄청 몰아 쉬더라. 뛰어왔나, 그런 것도 조금 지나서 정신이 돌아와서 들더라고. 울음도 잦아들고 숨도 어느정도 일정해지고 덜덜 떨던 어깨도 괜찮아졌는데 그래도 계속 안아 쓸어줬고, 아 그때 나 진짜 선배 얼굴 어떻게 보지 그 생각 탁 들었어.
14.
그 이후엔 내가 계속 피했어. 일부러 동방 가는 발걸음도 끊고, 이참에 마음도 정리해야지 싶어서 최대한으로 선배 마주치지 않는 루트로 다녔어. 근데 왜 그 루트에 자꾸 그 여자애가 불쑥 불쑥 나타나는 건지, 그 날 이후로 그 예쁜 얼굴에서 정말 매서운 눈빛으로 마주했어 되게 자주. 선배를 피하면 그 여자애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 그 여자앤 자주 보였을까. 그리고 공연 스탭도 관두려 말하려 했는데 윤도운이 오늘따라 동방에서 안나오는 거야. 폰도 안 보고, 결국 동방 앞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렸나 문 벌컥 열리길래 윤도운인가 했는데 아 선배였어.
"아,"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안 튀어나오더라. 도망이라도 칠 수 있음 치고 싶었는데 발걸음도 안 떨어지고, 망했다 싶었지. 그런데 그 여자애가 딱 팔짱 끼고 데려가더라고 선배를. 처음으로 고마웠어 그 애한테, 근데 왠일로 웃으면서 인사하고 지나가더라. 사람을 잘못봤나 싶은데 그 예쁜 얼굴이 어디 흔한 얼굴도 아니고 분명 웃으면서 인사했는데 뭐지 싶었어.
"니 티나게 피하는 게 더 이상하다"
"누군 티내고 싶어서 내냐"
"그럼 좀 숨기면서 하던가, 아 그리고 누나 니 ㅁㅁ이랑 친구 먹었나"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졸지에 자주 불러내 술친구 해주던 윤도운이 뱉은 말에 물음표를 달았어. 그 여자애 이름이 ㅁㅁㅁ인 것도 지금 알았는데, 무슨 말인가 했지. 아니 자주 동방 와서 그 애가 나를 찾았다고 말하더라고 근 이삼주 동안. 친구인마냥,
"니 설마 형 얘기 말고,그 얘기도 했나"
"미쳤어? 나 그 사람이랑 제대로 마주한 적도,"
있구나.
그래도 모를텐데, 선배를 피해다니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진행된 건지 좀처럼 감이 안오더라고. 책 잡힐 일도 안했던 거 같은데, 그냥 제발 아무 일이 없길 기도해야 하는게 맞는 거지 싶었어.
15.
그 이후로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어, 선배랑 관계는 처음으로 돌아간 거 같았어. 티나게 불편해하니까 기분 나빴을테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했지,
근데 나는 왜 그와중에 이 불편한 동아리 모임에 껴야 하는 걸까. 그것도 알바를 빼고, 반은 윤도운의 책임으로 반은 그 ㅁㅁㅁ의 책임으로 반은 내가 거절하지 못해서 질질 끌려온 바닷가에 어어어 하다 물에 빠지고 어어어 하다 물 먹고 뭐하는 거지 나. 바람 쐴 겸 왔는데 왜 더 불편한 건지 모를 상황에 하도 지쳐서 겨우 물에서 나와 모래사장에 퍽 앉았어.
그때 잠깐 선배 봤는데 재밌게 놀고 있더라고, 근데 시선이 끝끝내 떨어지지가 않아서 그냥 보고 있었어. 얼굴 제대로 본 거 엄청 오랜만이었으니까, 지금보니까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사람 잘 챙기더라고, 그리고 잘 웃고. 턱 괴고 멍하게 보다 눈이 마주쳐서 그제서야 거두었어.
"너 오늘 진창 마시고 깽판 치면 나 진짜 혼자 서울 올라간다"
"말 엄청 서운하게 하네, 누나 니가 그러지 말아라"
우리 둘다 할 소리는 아닌데 말이야. 다들 모여서 고기 굽고, 하나둘씩 잔 채워가는 분위기에 구석탱이에서 분위기 맞춰서 몇 잔 먹었나 딱 취하지 않을만큼 먹고 있는데 이미 윤도운은 더 즐거운 대화 축으로 가버린 뒤였고. 이제야 좀 쉴 만 할 거 같아서 몰래 빠져나와 혼자 바닷가 걸었어. 아까는 몰랐는데 물도 좀 차고 그렇더라고, 아직 이렇게 더운 여름인데.
"아,"
"..놀랬나"
한참 혼자 샌들 쥐고 찰박거리는 물 보면서 걷다 슬슬 들어갈까 싶어 고개 드니까 조금 떨어진 거리에 선배가 마주 걸어오고 있었더라고. 왜 몰랐지, 놀라기도 했는데 어느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어서 입이 쉽사리 열리지 않는데 선배가 먼저 말을 꺼냈어.
"그 날, 그때 미안했다"
"...네?"
"너한테 내 불편하게 행동하면 바로 말하라하고 내가 그러고, 그거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고 ㅁㅁ이한테 들었거든. 내 딴에 안쓰러워가지고 그런 거 너 생각 못해서, 말도 못하고 미안했다고 이제 말하네"
"..아, 그게"
"내 먼저 갈게. 좀만 걷고 들어가라"
아, 그 애가 한 게 이거였구나.
그때 선배 행동이 불편했다는 건 절대 아닌 일이었어, 단지 그 상황이 지독히 미안하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모양 빠져서 피한 일이 이렇게 부풀려질 줄이야.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뭐라고 잡을까. 좋아해서 그런 모습 보인 게 너무 쪽팔려서 아예 피한거라고 대놓고 말하면 뭘 얻고 고백이나 다름 없는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이 돼버리고 바로 잡을 기회가 없다는 것도 알았버렸지.
바닷물이 순간 차가워지더라. 그리고 선배 발걸음이 그렇게 빠른지, 오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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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고 울퉁불퉁한 글을 좋아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당 못하는 힘든 일은 가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더라구요,
독자님들
들숨에 건강을
날숨에 재력을
꼭 얻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