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왜 이렇게 쉽게 납득하는 거지.
원래 내가 시한부라니 무슨 소리에요, 하면서 미쳐 날뛰거나 발악하는 게 정상 아닌가.
아직 납득을 못한 걸까.
아니 어쩌면 안 했을 수도 있다.
남아있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라고 이성을 멋대로 쥐고 흔드는 것일 지도 모른다.
가슴이 너무 아릴까봐.
심장이 찢어지는 듯 아파서 죽는 것보다 더 힘들까봐.
지독하게도 이기적이다.
남우현 생각은 안 하고, 내 생각만 하고 있고.
아니면 아예 말이나 해주고 잠적할걸.
후회도 되는 것같고, 그냥 맘이 먹먹하다.
혼자 구석에서 울 때, 주위가 조용하고 울먹거리는 소리만 들릴 때 그 먹먹한 기분의 열댓 배는 되는 것같은데.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심장에 쥐가 난 듯 저렸다.
너무... 아프다.
남우현도, 나도 아프다.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사랑이, 지금까지 내가 그에게 품은 애정이 싹 날아가는게 두려워서 일까.
아니면 단순히 우현이에게 많이 미안해서일까.
또는 내가 그냥 겁쟁이인걸까.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나 보다.
"흐읍.. 우현아.."
울기 싫은데.
우는 순간 이 빌어먹을 현실을 다 납득해버리는 것같아서, 싫은데 진짜.
"남우현.. 우현아.."
회상때문일까.
가득 고인 눈물 때문에 앞이 흐리다.
흐린 시야 사이로 남우현이 살풋 보이는 것도 같았다.
넌 왜 내 앞에 나타나서.
조용히 살다 가면 되는데..
*
몽롱하다.
무의식과 꿈, 또는 죽음 사이에 다다른 느낌.
어두운 물결로 가득 찬 강가에 나는 서있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어가듯 걷는다.
누가 나를 억지로 잡아 끌듯, 가면 안 될 것같은데 어느새 발걸음이 반대편 강가로 향하고 있었다.
우현이 목소리가 뒤에서 얼핏 들리는 듯했다.
도착하면 죽어버릴 것같다.
파스락 파스락 소리를 내며, 천천히 죽음이란 게 나를 잠식시킬 것만 같은데.
두려운데.
그런데 돌아갈 자신도 없다.
신이 만약에 있다면,
나중에라도, 아주 나중에라도 나랑 우현이 사랑하게 해줘요.
남우현 기다려도 되고 더 아파도 되니까,
우리 둘이 이쁜 사랑하게 좀 놔둬요.
남우현, 다음 번에는 내가 너 찾을게.
내가 너한테 무지무지 좋아한다고 고백할게.
그러니까 나중에 같이 행복하자.
무지무지 좋아해 남우현.
진짜진짜 좋아해 남우현.
꼭.
*
성규형이 죽었댄다.
못 믿겠다. 아니 믿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3일 전에 비참하게 나를 두고 떠나간 사람이 시한부였다니.
그리고 3일만에 죽어버리다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속으로는 부모 잃은 아이처럼 펑펑 울고 있는데, 애써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성규형 얼굴마냥 응시한다.
그냥 잊고 싶다.
그런데 내 모든 게, 내 삶의 모든 게 성규 형으로 꽉 찼는데.
침대를 보면 거기 누워서 재잘대며 웃던 김성규가 보이는데.
카메라를 보면 서로 찍어주겠다며 난리 아닌 난리를 피우던 우리 모습이 생각나는데.
모든 기억이 다 김성규인데.
쏟아지는 장대비와 함께 나도 내렸다.
그제서야 눈물이 난다. 빗방울에 기대서라도 울고 싶었다.
현실이 싫었다.
왜 울어 남우현.
지금 성규형 보러가는거라고.
지금.. 은 그냥 길이라고. 골목길같이 평범한 길.
어디론가 향하는 길.
근데 왜...
이대로 끝나면, 무의식 중으로 사랑했던 봄날이 흩날릴 것같은데.
이젠 멈출 수도 없어.
성규형, 보고싶어.
무지무지 사랑해.
진짜진짜 좋아해.
너무너무..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