作.개아님
“죽여버리고 싶어.”
“죽여.”
“…….”
“기꺼이 죽어줄게.”
너는 하늘이다. 나는 새다. 너와 맞닿기 위해 허공을 가로지르며 올랐다. 산소가 줄어들었다. 몸에 압력이 가해졌다. 벗어나려는 나를 감지한 듯 족쇄 같은 중력이 끌어당겼다. 도망가고 싶어 더 높이 날아올랐다. 날개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고통을 감지 못하고 더욱이 높이 올라갔다. 눈이 잠시 감겼다. 눈을 떠보니 몸이 추락하고 있었다. 날개가 찢겨 떨어져 나갔다. 그제야 고통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날지 못하는 새
“어제 왜 전화 안 받았어.”
“왜 내가 네 전화를 받아야 해?”
“왜 안 받았냐고 물었어.”
“왜 내가 네 전화를 받아야 하냐고.”
짝. 볼에 이르는 마찰과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맞은 볼이 시큰거렸다. 괜히 억울했다. 난 잘 못 한 것이 없었다. 고개를 다시 돌리고 공허한 눈으로 전정국을 쳐다보았다. 전정국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왜. 전화. 안 받았냐고. 물었어. 끊으며 말을 잇는 전정국은 꽤나 화나 보였다. 곧 폭발할 것 같았다. 괴물을 보는 거 같아. 속으로 속삭였다. 아린 볼을 어루어 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대답해.”
“우리 헤어졌어, 세 달 전에.”
“대답하라고 했다.”
“정확히 얘기해줘? 우리 헤어진 지 정확히 84일 되는 날이야, 오늘.”
“누가 헤어져.”
기가 막혀왔다. 혹여나 내가 잘 못 들은 것이 아닐까 싶어 정국의 말을 곱씹었다. 누가, 헤어져. 누가. 헤어져. 헤어져. 헤어져. 내가 분명, 84일 전에 똑같이 말했었는데 말야. 한 어절도 틀리지 않고. 머릿속으로 생생했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전정국은 농담인 줄 알았는지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었다. 그래, 헤어져. 헤어지고 내일 다시 만나. 언제적 설레어 하던 말인지. 아직도 홀로 연애 초기에 사는 정국이 너무나도 질렸다. 내가 너를 제일 처음 사귈 때는 정말 좋아해서, 그런 말에도 얼굴이 붉어졌었는데. 괜히 늙은 기분에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은 네가 너무 질린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일일이 간섭하는 전정국이 질렸다. 네가 나에 대한 신경을 반만 줄였더라면. 되돌리기엔 내가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아. 홀로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고 입을 땠다.
“그래, 네 말대로면 우리 안 헤어진 거네.”
“…….”
“그럼 지금 헤어져.”
전정국은 어이가 없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곧 빡돌아 또 손을 들어 올릴 것 같았다. 아, 오늘도 한대 쥐어 터지겠다. 미리 눈을 감았다. 어차피 전정국의 행동은 눈에 읽혔다. 욕을 하고, 헤어지긴 누가 헤어지냐며. 그딴 좆같은 일방적인 통보로 헤어질 생각일랑 절대 말라며. 붙잡고, 늘어지다. 저 혼자 화를 주체못하고 손을 날리겠지. 구질구질하다, 정말. 좆같아. 말라오는 입술을 혀로 축였다. 이쯤이면 이제 고통이 느껴져야 할 텐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나의 몸에 눈을 다시 떴다. 전정국이 피실이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곧 나를 저승으로 끌고 갈 저승사자를 보는 것 같아 괜스레 소름이 돋아 올랐다.
“난 네가 왜 자꾸 나보고 헤어지자고 하는지 모르겠네.”
“무슨 뜻일까, 그게.”
“잘 알잖아.”
피실이며 곡선을 그리던 입꼬리가 일직선으로 바뀌었다.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지금 모습은 꼭 흡혈귀 같네. 내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아먹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정국을 쳐다보니 정국이 뒤통수를 잡으며 얼굴을 끌어당겼다. 삽시간에 가까워진 얼굴에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정국이 얼굴을 점차 가까이하며 말을 이었다.
“네가 암만 나를 피한다고 해도, 넌 내 손바닥 안이라고.”
“안타깝네, 정말. 현실이 참 좆같아, 그지?”
“그래, 좆같지. 나도.”
뒤통수가 아려왔다. 전정국이 손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곧 뜯길 것 같은 기분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며 입이 벌어졌다. 전정국이 입술을 깊게 빨아들였다. 토기가 밀려왔다. 뒤통수가 잡힌 탓에 고개가 들렸다. 혀를 섞는 행위에 집중하는 전정국을 내려보았다. 전정국의 속눈썹은 여전히 길었다. 변함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행위가 끝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속이 들끓었다. 입안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전정국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귓불을 빨아들이며 낮게 속삭였다.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하면, 그땐 진짜 죽여버릴 거야.”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을 낮게 내뱉고 뒤통수를 잡고 있던 손을 신경질적으로 뗐다. 입안이 껄끄러웠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정국의 말에 고개를 옅게 끄덕였다. 그래, 진짜 죽여버려. 정국이 뒤를 돌았다. 정국의 뒷모습이 보였다. 평생 네 뒷모습만 보고 살면 좋겠다. 작게 내뱉었다. 못 들었는지 그대로 사라지는 정국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전정국의 뒷모습을 보니 괜히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다. 옅게 실소하며 발걸음을 뗐다. 진짜 좆같은건, 그저 한낱 꿈을 꾸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아, 날아가고 싶다.
어둠이 세상을 삼켰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눈앞이 캄캄하다. 귓가에 욕지거리가 꽂힌다. 입을 다물었다. 소리가 점차 커지더니 손찌검이 날아왔다. 그제야 눈을 감고 있음을 인지했다. 눈을 떴다. 눈을 마주쳤다. 전정국의 귓가가 시뻘겋게 익어 있었다. 전정국이 고함을 질러댔다. 마치 한 마리의 괴물이 분을 못 이기고 포효하는 것 같았다. 아, 무서워라. 또다시 날아오는 손에 눈을 감았다. 온 세상이 검게 빛났다. 다시 눈을 떴다. 전정국이 보였다.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뜨기 싫었다. 내 앞에 있는 이 괴물이 당장에라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 어둠이 곧 내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눈을 떴다. 전정국이 보였다. 전정국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고개를 숙였다. 발목에 족쇄가 묶여있었다. 발을 흔들었다. 족쇄가 흔들렸다. 잡혀있는 발목을 끊고 싶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괜히 코끝이 시큰거렸다.
반강제적으로 들어오게 된 전정국의 집에선 할 일이 없었다. 멍하니 앉아 무료히 시간만 보내다, 주머니를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리다 나온 이어폰을 휴대폰에 꽂았다. 노래 목록 속 노래는 한 곡 뿐이었다. 자우림, 새. 가사가 참 마음에 들었다. 노래를 재생시키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어폰으로 새어나오는 가사를 속으로 흥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전정국이 옆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파가 살짝 일렁이더니 옆에서 숨결이 느껴졌다. 귀에 꽂힌 이어폰 한쪽을 빼내더니 저가 꽂곤 몸을 기대온다. 감은 눈을 뜨지 않자 정국이 노래를 듣다 입을 땠다.
눈물이 쏟아져 앞을 볼 수 없어. 가슴이 아려와 숨도 쉴수 없어. 왜, 왜, 왜, 왜 그럴까?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야.”
가슴이 아려와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나의 회로는 전부 폐쇄됐어. 그래 이제 나는 다 망가졌어.
가사에 심취한 것도 있었고 전정국과 말을 섞기 싫은 것도 있었다. 조용히 입을 닫고 계속해서 노래를 듣자 또다시 입을 열었다. 듣기 싫은 목소리에 볼륨을 키웠다. 가사가 좀 더 분명하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네가 다 망쳤어. 네가 나를 망쳤어. 네가 우릴 망쳤어.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씨발 이딴 것도 가사라고. 이어폰을 거칠게 빼낸 정국이 나의 이어폰까지 뽑아내더니 휴대폰을 뺏어 노래를 끄고 말했다. 너는 씨발, 노래를 뭐 이딴 걸 들어? 이어폰이 빠지며 귓가에 영롱히 울리던 노랫소리가 사라짐에 눈을 뜨니 눈을 마주한 정국이 괜히 흥분해 분노를 표출하였다. 그 모습이 가소로워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몸을 편히 기댔다. 없으면, 내가 부르지. 뭐. 작게 허밍 하듯 노래를 흥얼였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너에게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할게. 낮게 흥얼이는 노래가 듣기 싫었는지 곧장 거칠게 입을 맞춰오는 정국에 응해주면서도 속으로 흥얼였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정국이 갈증이 나는 듯 더 깊이 갈구했다. 질척이는 소리에 정국이 흥분했는지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반쯤 뜬 시야 사이로 옆에 놓인 휴대폰이 보였다. 대충 더듬어 이어폰을 잡았다. 흥분한 정국의 귀에 이어폰을 양쪽 꽂고 노래를 켰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너에게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할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발작을 일으키듯 이어폰을 거칠게 빼낸다. 그 꼴이 꽤나 웃겨 웃음을 터트렸다. 정국은 미친놈을 본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정국과 눈을 마주한 채 낮게 허밍 했다.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정국이 쥐고 있던 이어폰 줄을 목에 감았다. 줄을 세게 잡아당기자 목이 졸려왔다. 얼굴에 점점 피가 쏠렸다. 정국을 바라보며 낮게 웃었다. 죽은 나를 선물할게. 점차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목을 졸라오는 이어폰 줄이 느껴졌다. 곧 눈이 뒤집어져 숨이 끊어지기 딱 직전, 용케도 알아챈 정국이 줄을 풀었다.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죽은. 나를. 선물할게.”
속사이듯 노랫말을 내뱉은 정국이 푸스스 웃음을 내뱉었다.
“좆 까, 네가 죽기 전에 내가 너 죽일 거니까.”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을 내뱉은 정국이 뺨을 아프게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주머니에 손을 꽂고 뒷모습을 보인 채 집을 빠져나갔다. 현관문이 닫히며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에 그제야 들이켰던 숨을 내뱉었다. 네가 죽기 전에 내가 너 죽일 거니까. 내 인생까지 네가 모두 좌우할 생각이구나. 넌 끝까지 나의 우위에 서서. 엿을 먹이고 싶었다. 이가 으득 갈렸다. 전정국의 절망하는 표정이 보고 싶었다. 내 앞에서 네가 무릎을 꿇었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 우는 네가 보고 싶다. 나로 인해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네 숨통을 조이고 싶어. 내 운명을 네가 아닌 내 손으로 끝내고 싶어.
죽고 싶어.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이제 나는 다 망가졌어. 네가 다 망쳤어. 네가 나를 망쳤어.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 죽일 거야. 아니다. 내가 죽어야지. 죽어버릴 거야.
가사를 곱씹었다. 태형은 생각했다. 나는 새. 나는 새야. 이 가사는 나의 인생을 토대로 만들어졌어. 아아, 내 인생의 결말이. 이토록 비참하다니. 이게 내 인생이야? 나는 죽어버려야 하는 거야? 전정국을 엿 먹여야 해. 전정국을 죽여? 아니야. 내가 죽어. 죽어버려야지. 죽어버릴 거야. 한참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생각을 하던 태형은 문뜩 혀끝으로 느껴지는 비린 피 맛에 정신을 차렸다. 살점이 뜯겨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태형이 재생목록에서 정지되어있는 노래를 재생시켰다. 간주소리를 들으며 무언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허밍 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부엌에 꽂힌 칼을 들고 소파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 정면을 즉시 했다. 귓가론 노래가 들려왔다.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티비 속 비치는 모습이 마치 티비가 방영되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방영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 태형이 리모컨을 집어던졌다. 티비에 금이 가 얼굴이 두 개로 나누어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귓가에 노래가 맴돌았다.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네가 준 상처 잘 받았어.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너에게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할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아.”
복부가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숙여 배를 쳐다보니 배에 칼이 꽂혀있었다. 노래가 계속해서 흘렀다.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노래를 따라불렀다. 복부를 누군가 불로 지지는 기분이 들었다. 배에 피가 흥건했다. 눈앞이 흐려졌다. 소파가 피로 물들어갔다. 땅에 피가 흥건했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눈꺼풀이 자꾸 축축 쳐졌다. 손에 힘이 빠져갔다. 마지막으로 칼을 빼내 손목에 깊숙이 찔러넣었다. 몸이 자꾸 옆으로 기울어졌다. 눈을 감았다. 노래가 막바지에 흐르고 있었다. 죽은, 나를 선물할게. 볼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려 갔다.
정국아. 내가 너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넌 매번 나의 우위에 있었으니까. 내 날개가 찢어져서, 비록 너에게 날아가진 못했으나.
다음 생엔, 내가 너로 태어나고. 네가 나로 태어나면 좋겠다.
죽여버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