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BGM //www.youtube.com/watch?v=xCJcBMwHG2Q Wouter Hamel - Breezy
나는 그의 대답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에게 대답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자신의 재킷 주머니에 우리의 손을 넣었다. 손이 차네, 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는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우리는 영화에 대한 얘기를 했다. 물론 내 머릿속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아마 내가 그의 손을 잡았을 때 그가 내 감정들을 다 눈치 챘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는 항상 내 생각보다 몇 수는 앞서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또, 만약 그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더라면 아마 손을 잡지 않았겠지. 20대 남자 두 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손을 잡는다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는 게이인걸까? 아니 나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을까? 나는 이 생각들에 갇혀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이끄는 대로 버스를 탔고, 집으로 향했으며 그와 102동 앞에서 헤어져 집에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집, 거실 소파에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분명 지금부터라도 내 생각을 정리해야했다.
사랑의 감정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되는 것일까? 이것도 학교에서 배워서 아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개념을 모두 머릿속에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나는 그제야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고민에 빠졌다. 대체 사랑한다는 것은 뭘까.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감정일까? 나는 내 감정들을 무엇이라고 이름 지어야 할지, 아니 누구에게 내 감정을 설명할 때 뭐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이 질문들이 해결된다면 아마 내 감정을 정확히 알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보고 싶어 하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그 사람이 생각나는, 좋은 것들을 보면 나누고 싶어지는 이런 감정들이 사랑이라면 나는 찬열이를 사랑하는 것이 맞았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이라고 부를 이 감정들은 두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백현이를 만나면서, 이러한 감정들을 온전히 그를 생각하면서 주었던 적이 있는지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우리가 3년 동안 나누었던 감정들은 내게 무엇이었을까. 지금에 와서 이런 것을 생각하는 내가 너무 미웠다. 분명 백현이가 내게 주었던 마음들은 사랑이었다. 그래. 내가 백현이에게 받았던 그 느낌들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라면 나는 3년 동안 그에게 제대로 사랑의 감정을 주었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 비해서 항상 모자랐으며, 그의 감정의 깊이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니 아주 많이 우울해졌다. 지금까지 내가 한 생각이 맞았어도, 그리고 틀린 답이라고 해도 두 가지 경우가 다 문제였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나는 그에게 아주 오래 죄를 짓고 살았던 것이다. 틀린다면, 나는 두 사람을 모두 사랑하는 아주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어느 편에 서더라도 나는 아주 많이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주방에서 물을 마시다가, 꿀이 담긴 통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보았다. 백현이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 속이 안 좋으면 꼭 꿀물 마시고 나가! 사랑해 경수야!’ 라고 써져 있었다. 아마 내가 술을 먹고 들어온 날 아침에 붙여놓았을 것이다. 나는 그 메모를 이제야 본 것이다. 내가 아주 그에게 무심했구나. 그리고 나는 그제야 백현이가 내게 그 날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지마 경수야.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그는 아마 내가 하는 말들을 들으며, 내 표정들을 보며 내 감정을 이미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자신의 어머니와 같아지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알아채주기를 바라며. 그의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며. 그의 어머니와 같은 감정을 가진 나를 보며 그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는 그를 위해 그 자리에 서서 아주 오래 울었다. 미안했고, 미안했으며 또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무서웠다.
감정의 소모는 체력의 소모와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 나는 정말 빠르게 지쳤다. 그렇게 오래 울고 나니 어떠한 힘도 낼 수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났다. 백현이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렁거렸다. 나는 침실에서 나와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오늘이 혼란들이 내일에는 다 정리되기를. 내가 오늘 겪은 이 기분들, 감정들이 말끔히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불을 얼굴 쪽으로 끌어 당겼다. 그에게 엉망이 된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해가 뜨려고 하는 새벽이었다. 부엌에 선 백현이는 약통에서 약을 꺼내 아주 예쁜 상자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약 한 봉지를 그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일어난 나를 보며 아주 맑게 웃었다.
“ 일어났어? 왜 소파에서 자고 있었어?”
“ 아. 누워 있다가 잠들었어. 무슨 약 먹는 거야?”
그는 조금 생각하더니 말했다. 부모님이 비타민이랑 이것저것 보내주셔서, 먹고 있어. 그리고 그는 나에게 같이 먹을래? 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온전히 그의 몫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내 팔을 잡으며 들어가서 더 자자, 하고는 나를 침실로 이끌었다. 우리는 항상 서로 마주보고 누웠다. 그 것은 우리가 고등학교 때 처음 같이 누워서 잘 때 백현이가 부탁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무도 없는 것이 싫다고, 만약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네 얼굴이 있다면 아주 기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래서 항상 그와 함께 누웠을 때 그의 얼굴을 마주보며 잠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그의 얼굴을 마주볼 수 없었다. 아니, 나에게는 그럴 용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누워 그를 쳐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백현이는 먼저 등을 돌렸다. 나는 그 몸짓을 보며 이해했다. 그가 아주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참 못된 사람이었다. 아니 그냥 개 같은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항상 용기가 부족했다. 무엇을 나서서 하는 것을 힘들어 했고, 어느 단체에서 앞에 선다는 것은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다 망쳐버리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에 나는 어느 것도 선뜻 나서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칼자루를 쥐었다. 내가 어떤 것도 행동하지 않으면 백현이에게도, 나에게도, 더 나아간다면 찬열에게도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내 마음을 확인해야 했다.
나는 생각의 끝에 서서 결론지었다. 찬열에게 가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백현이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아주 이기적이게도 나는 먼저 찬열에게 나에 대한 감정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만약 찬열이 나와 같은 감정이라면, 백현이와 헤어져 주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백현이에게 내가 그와 만나는 모습을, 내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또, 아니라면, 백현이 옆에 서서 서투르지만 사랑을 주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아니 줘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이 내가 백현이에게 그가 주었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백현이가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면, 내게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면 나는 그의 뜻에 따를 것이다.
나는 그날 밤, 백현이가 들어오기 전 찬열에게 전화했다. 할 말이 있으니 놀이터 앞으로 나와 줄 수 있느냐고. 그는 나오겠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밖을 바라봤다. 밖에는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산을 들고는 밖으로 나섰다. 아마 지금의 감정과, 내가 집으로 들어갈 때의 감정은 많이 다르겠지. 내가 떨지 않고 말을 잘 할 수 있었으면 참 좋을 텐데. 나는 할 말들을 연습하며 놀이터 앞에 섰다. 그는 까만 우산을 쓰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나한테 할 말이 뭐야? 중요한 거 같은데.”
나는 머뭇거렸다. 대체 이 말을 어떻게 해야 그가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그는 나에게 물었다. 내가 먼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는 내 두 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 너 백현이라는 친구랑 사귀니?”
“ 어떻게 아셨어요?”
“ 네 핸드폰 봤는데. 문자도 보고 카카오톡도 봤어.”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고, 조금은 화도 났다. 그래서 나는 왜 훔쳐보셨냐고 물었다. 사실은 따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내가 은근하게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우산을 내려놓고는 내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 말 해줄 테니까, 네가 그 친구한테 주는 감정, 나한테도 주면 안 돼?”
“ 그럼 이제 제가 하나만 물을게요. 저 좋아하세요?”
그는 내 뒷머리를 감싸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빗속에서 키스했다. 아마, 내 심장 소리가 그에게 들렸을 것이다. 빗방울이 내 우산에 부딪히는 소리보다, 내 귀에는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렸으므로. 그는 그의 혀로 내 입안 구석구석을 핥았다. 그리고 숨결이 닿을 만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말했다.
“ 경수야 너 우리 집 와서 살아라.”
-
BGM을 글 안에 넣고 싶었는데... 이것저것 만지다보니까 글 전체가 사라졌네요 ㅠ_ㅠ... 저는 .... 컴맹인가봐요 ....
다음편은 아마 백현이가 백현이의 언어로 얘기하는 백현이 얘기가 나올 거에요. 아주 곧, 오늘 안에 올릴 예정입니다 ^_ㅠ
경수가 나쁘다고 생각하시면 많이 화내주시고, 백현이가 불쌍하다면 많이 불쌍해 해 주시고, 찬열이의 생각도 많이 해주세요.
그리고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으시겠지만, 백현이는 한국외대에 경수와 찬열이는 경희대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글 썼어요.
두 학교 후문은 진짜... 걸어서 5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있고, 서로 학교 건물이 보이는 거리에 있답니다. 물론 그 후문과 후문 사이에 아파트도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