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자주가던 피씨방에 들러 가이딩 사이트에 ‘가이더 렌탈 후기’를 뒤적거리며 나재민을 가이딩했던 가이더들의 후기를 찾아보는데, 대부분 ‘호구같다. 물면 다퍼줄듯’ 으로 시작해 ‘연장계약 할 줄 알고, 돈 다썼는데 바로 버리더라’ 로 끝났다. 병신들 S급 센티넬을 빨아먹을 생각을 하니 내쳐지는 것이다. 나처럼 한번 단물빨면 발빼는게 상책이지 B급만 가도 인간 수준을 넘는 기본 능력치가 있는데, 가이드들이 호구로 보는 순간 눈치채는게 당연하다. 그와중 S급을 호구잡아 발뻗고 살 생각을 하다니.. 멍청한데도 도가있는것이다. 어느 순간 전세가 역전되어 가이드들이 대접받으며 살고있지만 결국 가이드도 가이딩을 받는 센티넬이 없으면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같은 눈치 빠르고 머리좋은 일반인도 있지만 말이다. 나재민이 준 돈으로 주말동안 사우나도 가서 땀도빼고, 마사지도 받고, 피씨방에서 밤샘도 하다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월요일이 되었다. 앞서 말 했겠지만 집없이 여기저기 떠돌며 사는 노숙자에 가까운 나는 딱히 옷도 없었다. 이유라면 매일 옷 사서 입으면 되니까(으쓱) 회사 근처 옷 가계들을 둘러보니 죄다 정장이었다. 돈도 십만원 언저리 정도밖에 안 남았고, 어차피 벗을건데, 입고 벗기 편한 추리닝이나 사자 하고 근처 대학가로 이동해 저지 세트와 검정 티셔츠를사서 매장에서 갈아입고, 입고있던 옷은 근처 쓰레기통에 쑤셔박은채 회사로 출근을 했다. 온통 검정으로 도배한 추리닝 차림의 인간이 당당하게 회사 로비를 걸어다니니 사람들의 시선이 모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들어가다 경비에게 붙들렸다. 이럴 줄 알았지 하지만 이럴때 일어날 일은 뻔하지않은가 클리셰란 말은 괜히 생겨난게 아니다. “ 성이름씨, 딱 맞춰왔네요? 느긋하게 올줄 알았는데.” 나재민이었다. 경비는 나재민을 보자 짧은 목례를 하고는 길을 비켜 주었다. 가이드라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하긴 눈치가 발바닥에 있지 않는이상 알겠지만은 나재민은 내 어깨에 자연스레 손을 두르고 씨익 웃으며 할게 많으니 서두르자고 말했다. 그래 너도 센티넬이지 뭐, 어깨에 올려진 손을 슬쩍 피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왜인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나재민과 내가 탄 엘리베이터에 오르지 않았다. 뻔하다 센티넬과 가이드가 어깨동무를 하고있으니 뭐라도 하겠지 라는 느낌으로 자리를 피한것이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구석에 붙어 팔장을 낀채 눈을 감고있으니 나재민이 주말동안 어디 놀러갔다 와서 피곤하냐며 올라가서 좀 쉬라고 말했다. 쉬긴 뭘 쉬어, 할거 많다면서 임마 사장실 문을 열어주며 들어가라는 나재민을 사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손목을 잡아 끌어 당김과 동시에 문을 쾅 닫고 잠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한듯 나를 내려다보는 나재민의 얼굴을 붙잡아 입을 부딪혔다. 키스할 때 딱히 눈 감아야 하나 싶은 나는 놀라서 커진 나재민의 눈을 바라보다가 잠시 입을떼고 말했다. “ 뭐해? 입벌려.” “ 아니.. 갑ㅈ..”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다시 입을 맞춰 혀를 섞는데 나재민이 내 어깨를 잡고 살짝 떼어내며 어버버 거린다. 풀 가이딩을 할 수 있는 가장쉬운 방법이 이건데 왜 저러나 싶어 의문스런 얼굴로 나재민을 보니 한숨을 푹 쉬었다. “ 아니.. 피곤하면 좀 쉬랬더니 갑자기 뭐 하는 거에요..” “ 뭘 피곤해, 곧 너랑 뒹굴건데 어색하기 싫으니까 마인드컨트롤 한거에요.” “ 뭘 뒹굴어, 나 뭐 안할거에요.” “ 뭐? 아니 풀 가이딩이 어쩌고, 할일이 많으니 어쩌고 하던사람 어디갔어?” “ 월요일엔 결제서류가 밀려서 많으니까 할 일이 많다고 하죠.” “ 뭔... 풀 가이딩은 뭐 옆에 앉아서 손이라도 잡고있자고?” “ 정답입니다.” “ 두달동안 그 지랄을 하면 손에 짓물나겠다.” “ 천천히 시작하자는거죠~” “ 마음대로 하쇼, 지름길 두고 구불구불 가기는..” 나재민은 그저 씩 웃더니 내 전용 의자를 샀다며, 대충봐도 기깔나게 좋아보이는 의자를 드륵드륵 끌고 사장자리 옆에 두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이리 오라며 손짓하기에 휘적휘적 걸어가 옆자리에 앉았다. 오른손에 펜을 쥐고 서류에 싸인을 시작하는 나재민을 보고 고개를 갸웃 했다. “ 나 스물다섯, 너랑 동갑인데 말 놔도 되지?” “ 이미 놨네 뭘. 좋을대로 해요.” “ 너도 놓으라는 소린데.” “ 그래그럼, 할 말 있어? 엄청 꼼지락거리네.” “ 나 그냥 지금부터 가이딩하면 되는거야?” “ 응 옆에서 가이딩해줘, 받으면서 일하게.” “ ........” “ 왜? 심심해? 게임기 같은거라도 들여줄까?” “ 아니, 그건 폰으로 하면 돼. 야 손이라도 잡자.” “ 응? 왜? 내 손이라도 가지고 놀게?” “ 야, 몸 한 곳이라도 붙어있는게 가이딩하기 훨신 쉬워. 그리고 가이딩할때 그냥 뿜어내기만 하면 얼마나 피곤한지 아냐?” “ 나는 잘 모르지, 센티넬인데. 자 손.” “ 말 참 얄밉게 잘해~” “ 내가 잘하는게 좀 많아~” “ 와 진짜 재수없다. 넌 얼굴만 아니었으면 나한테 벌써 맞았음.” “ 내가 또 한 얼굴 하지?” “ 입닫고 일해라.” 그렇다고 세시간 넘게 한마디도 안할줄이야 사장실에는 그저 나재민이 펜을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했다. 점심때 쯤 잠깐 나가서 바람좀 쐴까 하는 생각중, 누군가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나재민이 들어오라고 말하자 비서 같아보이는 남자가 화려한 도시락 통 두개를 들고 들어오더니 중앙 테이블에 셋팅을 하고는 쌩하니 나가는 것 이었다. 바람을 쐐긴 개뿔 다 틀려먹은 것 같다. 나재민은 손에 잠시 힘을주고 꽉 잡더니 ‘나 이것만 읽고 밥먹자. 기다리게해서 미안해’ 하며 엄지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훑었다. 잠시 기다리니 나재민이 펜을 내려놓고는 활짝 웃으며 밥먹고 잠깐쉬자 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한것도없이 앉아만 있던 나는 배도 별로 안 고팠고, 입맛도 없었다. “ 왜이렇게 못먹어? 입맛없어?” “ 어, 한게 없으니 배도 안고프네” “ 가이딩 계속 해놓고, 뭘 한게없대..” “ 육체 노동이라도 할 줄 알고, 아침 엄청 먹고 왔거덩.” “ 아하핳! 그럼 뭐라도 할래? 배고파지게?” “ 됐어, 아까 거절당해서 자존심상했다.” “ 뭘 또 자존심까지 상해, 이리와봐.” “ 내가 개새끼냐,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게?” “ 그럼 내가 가지 뭐.” 앞에서 밥을 먹던 나재민이 옆으로 와 앉았다. 어깨에 손을 두르더니 키스라도 할 것 처럼 얼굴을 가까이하기에, 고개를 휙 돌려 피했다. “ 미친놈이, 밥 처먹다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대?” “ 너도 거절했다? 쌤쌤?” “ 야, 이게 왜 쌤쌤이야? 이거 양아치네?” “ 나도 지금 엄청 자존심상했어, 그럼 쌤쌤이지 뭐야?” “ 인성... 할거면 양치하고와서 하던지... 개드러.” “ 야이씨! 드럽다니! 피할줄 알고 장난친거지!” “ 변명 안사요~ 안사~” “ 와 나 진짜 자존심 상해;;;” “ 안물안궁~” 잠깐 투닥거리다가 정리를하고 삼십분만 쉬다 오라며 등 떠미는 나재민에게 밀려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했다. 막말로 몸파는 직업인데, 아무것도 안하고 (뭐 키스도 할뻔하고 손도 잡았지만) 가만히 앉아만 있다니. 진상들 상대하는것 보다야 편하고 좋았지만 너무 쉽게 돈버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 뒤로도 일주가 가고 이주가 가고 삼주차에 돌입할때까지 그저 손잡고 앉아있기만을 반복했다. 존나 지루했다. 일주일차 까지는 가만히 앉아있다가 꾸벅꾸벅 졸았고, 이주차에는 목베게를 가져와 거의 누워있었다. 가끔 하는 대화를 제외하고는 나재민과 말 섞는일도 거의 없었고 그 상황이 삼주차에 돌입하니 지루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옆에 앉아 손을잡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나를 보고는 “ 지루하지? 바쁜시기여서 그래. 오늘 일만 끝내면 여유로우니까, 조금만 참아.” 하는 것 이다. 오늘만? 오늘만 같은 소리하네 삼주를 참아왔는데 말이다. 순간 열이받았다. 이럴거면 차라리 덥치라고, 그게 더 재미있겠다 이새끼야 속으로 고래고래 소리치며 ‘퉤,시발’ 했다. 오늘은 퇴근까지 약 7시간 남짓 남았다. 심심했다. 너무 미친진짜 세상에서 내가 제일심심했다. 그래서 나재민을 긁어보기로했다. “ 억.. ㅁ, 뭐해?” “ 장난치는데 왜. 할거해.” “ 아니 남 위에 올라와놓고, 뭘 할거해야..?” “ 십분만 놀자. 나 진짜 너무심심해서 정신병 걸릴것같아.” “ 하... 진짜.. 오늘만 참자 내일부터 잔뜩 놀아줄게, 응?” “ 그래 그럼, 넌 할거해.” “ 서류가 안보이는데...” “ 아 맞네, 이러면 보이지?” “ 보이긴 하지.. 그래.. 맘대로해라..” 나재민의 의자에 마주보고 올라가 허벅지 위로 앉았다. 안 보인다기에 허리를 끌어안고 한쪽 어깨위로 머리를 기대어 괜히 목에 바람이나 휘휘 불었다. 별 반응이 없기에 간지럼도 태워보고 귀에 대고 흥얼거려보기도 했는데 이새끼는 감각이 없는 인간마냥 펜을 휘두르는 오른손을 제외하고는 어디하나 까딱 않는것이다. 어디까지 해도 가만히 있나 보자 싶어 목에 대고 입을 쪽쪽 부딛히니 그제서야 움찔 한다. “ 헤헿ㅎ헤헤헤, 드디어 반응을 하는구만 목석새끼.” “ 야 이건 심하다, 이건 하지마 바람 부는거랑 간지럼도 금지야.” “ 그런 계약사항 없었는데요. 나사장님?” “ 아이~ 일좀하자 이름아.. 나 진짜 내일부터 놀거라니까?” “ 그건 니사정이고, 난 지금 심심해.” “ 아주 그냥 확! 어떻게 해버릴수도 없고 진짜..” “ 어떻게좀 해주세요 그럼, 둥가둥가라도 해주든지.” “ 너 지금 십분 논다고 안비켜줄거지.” “ 언제들킴? 처음부터 들킴?” “ 뭘 들켜 다 티냈으면서..” “ 아, 그럼 함 놀자! 엉?!” “ 잠깐으로 안 끝날 것 같으니까 그러지.” 나재민이 손으로 이마를 툭 밀며 말했다. 이새끼 자신감 보소, 뭘 잠깐으로 안끝나? 말을 듣자마자 픽 웃으며 ‘오늘 참으면, 내일 뒤질때까지 놀아주냐?’ 했다. 나재민은 잠시 내 얼굴을 뚤어져라 보더니 내 입에 입술을 쪽 하고 붙였다 떼더니 특유의 능글거리는 얼굴로 웃었다. “ 뭘 처 웃어.” “ 뒤질때까지 놀아보고싶어?” “ ㅋ크흫흑.. 자신감 뭐야? 내가 뭐하고 놀자할줄알고?” “ 뭐, 성인 남여 둘이 방안에서 뒤질때까지 놀만한게 하나밖에 더있나?” “ 논리봐라. 반박을 못하겠네..” “ 심지어 센티넬, 가이드야. 뻔하지뭐.” “ 근데 뭐? 뒤질때까지 놀아보고싶어? 아주 자만은..” “ 자만 할 만 하니까 자만하지?” “ 뒤질때까지 못 놀기만 해봐, 정성을 다해서 폭주시켜드림.” “ 야.” “ 뭐, 새끼야.” “ 너 체력 좋냐?” “ 그런 편.” 나재민이 보기드문 진지한 얼굴을했다. “ 감당할 수 있겠어?”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뭐, 일단 해보면 알겠지.” 나재민은 내 말을 듣고 생긋 웃으며 이마를 맡대왔다. “ 일단 내려와. 지금 못참을 것 같으니까.” 나는 주섬주섬 내려와 다시 내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날 저녁까지 흥얼흥얼 거리며 내일 놀 생각에 신이나 휘적휘적 발장구를 쳤다. 가끔 들려오는 나재민의 피식거리는 소리가 오늘은 나쁘지 않게 들렸다. 그리고 내일이 왔다. 둘이 출근함과 동시에 사장실의 문이 굳게 잠겼다.
시상에 초록글 올랐네여... 부족한 실력인데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심심할때 마다 러프한 단편들 올릴게요! 예쁘게 봐주세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