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듯이 날뛸것같던 이재환이 얌전했다. 다만 나와 한상혁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오전내내 그렇게 우린 보이지않는 신경전을 벌였고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 이재환은 학생무리들에 섞여 교실을 나갔다. 난 휴대폰을 꺼내들어 전원을 끈채 가방에 던져넣었다. "밥 먹으러 안 가?" "그러는 너는?" "너가 안가니까 나도 안갔는데?" "나 밥 안 먹어. 너나 가서 먹어." "너가 안간다면 뭐, 나도 안갈래." "그러던가." "뭐야. 왜냐고 안 물어봐?" "물어봐야해?" 나에게 말을 걸어온 한상혁이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너 생각보다 재밌는애인거같아. 실컷 웃더니 나에게 저런말을 한다. 살다살다 재밌는애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웃는게 생각보다 예뻐서. "김여주. 전화 왜 안 받아." 학생무리에 섞여 나간줄 알았던 이재환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온다. 그러면 그렇지. 조용하게 지나갈리가 없지. 이재환의 물음에 내가 아무말이 없자 이재환은 내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나와 한상혁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다짜고짜 내 손목을 잡았다. "대답안해?" "배터리 없어서. 나 아파. 조퇴할거야." "일어나." "내가 알아서 할수있어. 그러니까 이것 좀 놔." 점점 내 손목을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진다.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날 보는 눈이 무심한듯 보이지만 내 손은 피가 통하지않아 하얗게 변해갔다.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아픔을 참았다. 이재환 앞에서 더이상 바닥을 보이고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만해. 그러다 애 잡겠다." 그때, 한상혁이 내 팔을 자신쪽으로 잡아끌었다. 그와 동시에 이재환의 손아귀에서 손목이 풀려났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손이 저릿저릿했다. 나는 손을 털며 이재환을 올려다봤다. 이재환도 나를 보고있던건지 마주친 눈이 차갑기 그지없다. 그런 우리 둘을 보며 한상혁은 장난스럽게 웃고있다. 틈만나면 웃는걸 보니 웃음이 생각보다 헤픈애인것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태평하게 이런 생각을 하는걸 보니 이재환에게 생각보다 많이 익숙해진것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김여주. 빨리. 두번 말하는거 싫다." "얘가 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챙겨. 알아서 하겠다잖아." "잘 모르면 가만히 있는게 어때. 생각보다 오지랖 넓네." "글쎄,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않나." "김여주. 마지막이야. 일어나." 한상혁은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이재환을 쳐다봤다. 마치 다 안다는듯이. 그와 반대로 이재환은 초조해보였다. 둘이 아는 사이인건가? 나는 느릿느릿 가방을 챙기며 괜히 책상속을 뒤지는척 했다. 그런 나에게 손을 뻗으려던 이재환보다 한상혁이 더 빨랐다. 내 가방을 빼앗듯이 들어올린 한상혁은 내 팔을 잡아끌며 날 일으켜 세웠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이재환도 당황한듯 나에게 뻗으려던 손을 그대로 허공에 두었다. 한상혁은 이재환을 지나쳐 날 앞문까지 끌고갔고, 나는 그대로 끌려갔다. "이재환. 오늘은 내가 김여주랑 놀거야." 오늘 나랑 놀거지? 나에게 물어온 한상혁에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한번도 이재환에게 이런식으로 덤비는 애는 없었는데. 허공에서 손을 거둔 이재환은 나와 한상혁을 보며 어이없다는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한상혁은 이재환을 잘 안다는듯 익숙하게 이름을 불렀다. 아는 사이인게 확실하다. 우리 나가자! 내 가방을 메고서 내 팔에 팔짱을 껴오는 한상혁에 나는 교실을 벗어날수밖에 없었고 이재환의 표정은 미묘했다. - "어디 가는거야." "배고프지않아? 점심 안 먹었잖아." "됐어. 집에 갈거야." "에이, 나랑 놀기로 했잖아." "너랑 놀겠다고 대답한적 없어." "싫다고 대답한적도 없잖아."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거야? 너 나 알아? 내 가방이나 내놔." "김여주.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들어왔잖아. 이재환이랑은 애증 뭐 그런 관계 아닌가? 아, 애증이 아니라 그냥 증오라고 해야하나?" ".... 니가 어떻게 알아?" "너가 생각하는것보다 이재환이랑 꽤 깊은사이거든." 나와 이재환 사이에 대해 알고있다. 그것만으로 한상혁에게 충분히 경계심이 생겼다. 기분이 나빠졌다. 이재환에게 벗어난것이 좋았던것도 잠깐, 더 큰 적을 만난 느낌이다. 나는 한상혁의 등에 메어져있는 내 가방을 뺏았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런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한상혁은 날 다시 자기쪽으로 돌렸다. "어디 가려고? 집에 가는거야?" "알거 없잖아." "지금 가봤자 이재환이랑 마주칠거 뻔한데 그래도 갈거야?" "너랑 있는것도 나는 싫어." "그럼 같이 가. 데려다줄게." "혼자 갈수있어." "같이 가. 곧 차 올거야. 차 타고가. 너 아프다며." 곧 한상혁 앞으로 차 한대가 멈춰선다. 누구의 차와는 다르게 새하얀 색이다. 누가봐도 참 삐까번쩍했다. 내가 평생 알바를 해도 타보지도 못할 그런차였다. 정말 나만 빼고 모두 잘 사는구나. 사회배려자란 위치에 대해 다시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재환의 강요에 의해 얻은 위치지만. 씁쓸한 기분을 떨칠수 없었다. "타." 차 뒷문을 친절하게도 열어주는 한상혁에 나는 차에 올라탔다. 이재환을 마주하는것보다야 이게 더 나을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차에 타자 내 옆자리에 올라탄 한상혁은 또 나를 보며 웃는다. 분명 한상혁을 경계해야하는데. 저 웃음에 나도 모르게 스르륵 풀어진다. 웃는게 이쁜건 몇년전 보았던 이재환의 웃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에 못지않게 한상혁도 웃는게 예쁘다. ...조금 설렜다. - 기적 노래 너무 좋아요ㅠㅠ 그런데 빅티종영에 마음이 아픕니다ㅠㅠㅠㅠㅠ 애증의 젤피같으니라고! 쓸쓸하지마님, 아찔아찔님, 여니님 감사합니다♥ 읽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분들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