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구남친 윤도운? 썸남 윤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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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운이한테 널 꼬시겠다!고 당차게 선언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전화번호에 있는 이름을 바꾼 일이었다. 뭐, 이름을 바꿔야 티가 나지 않겠어?라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그냥, 설레잖아. 막 두근두근 거리고 썸타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고. 그렇게 이름을 바꾸고 나니까 너무 행복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몰라도
내 상황에 제일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나는 이제 한발짝 내딛었을 뿐이지만, 저 다리 건너편에서 도운이가 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기분이었으니까. 윤도운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데, 연애하면... 이쯤만 상상하기로 했다. 이러다가 오늘 밤은 잠을 못 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도운이를 꼬시기 위해 내가 제일 먼저 계획한 일은 도운이 집 앞에 가는 것이였다. 어, 일단은 새롭게 시작하는 연인들이니까 설레는 모습으로 함께 등교를 하고 싶었다.
뭐, 사귀었을 때는 그놈의 비밀연애가 뭐라고 못한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좋은 거를 왜 아무 것도 안했을까. 아니다. 과거를 원망하기에는 과거의 내가
이끌어낸 기적같은 순간도 있었다! 그래. 앞으로가 중요한거야. 앞으로가.
"너 여기서 뭐해?"
"너랑 학교 같이 가려고 왔는데? 왜? 오면 안돼?"
"아니. 누가 오면 안된대. 그냥, 물어본 거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귀가 빨개지는데, 아 진짜 윤도운 너무 귀엽잖아. 웃음이 너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진짜 시작이 반이라고 끝도 얼른 왔으면 좋겠다. 얼른 도운이
손 잡고 걸어다니고 싶은데, 이렇게 예쁜 윤도운이 내꺼라고 세상에 널리널리 퍼트리고 싶어서 죽겠다 정말로. 그래, 손 못 잡을 게 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두 내 손 잡고 싶어서 안달나봐야 나랑 사귀고 싶지 않겠어?라고 생각한 게 내 이론이었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럼 더 좋구. 마음 급하게 먹을 것 없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아, 너 오늘 수업 몇시에 끝나?"
"나? 5시."
"그럼 오늘 영화 볼래? 너가 좋아하던 영화 재개봉하던데!"
"아, 나 오늘 늦게 끝날 수도 있는데? 합주 있어서."
"기다리면 되지. 끝나구 연락해."
"응."
여기서 반전. 사실 나는 영화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서로의 얼굴을 마음 편히 쳐다볼 수 없으며, 그 시간에 얘기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운이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도운이는 뭐든 혼자서 잘한다. 혼자서 밥먹고, 혼자서 영화 보고, 혼자서 쇼핑하고. 그래서 나를 기다리면서 뭐했냐고
물어보면 혼자서 카페에 있거나, 쇼핑하고 있다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왜 그 사람의 취미나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겠나. 다 자기도
좋아한다는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다. 이럴 때는 내가 악기를 못 다루는 것이 천추의 한이였다. 내가 박자감각만 있었어도 드럼 배운다는 핑계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신나는 데이트 약속을 잡고 강의를 들으려는데,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뭐지.
[야 근데 걔 실음과라고 안 했어?]
"누구?"
[아, 그 나 대신 너 소개팅 대신 나갔을때 그 상대 있잖아. 이름이 무슨 필이었는데, 원필?]
"김원필!"
[맞아 걔도 실음과라고 하지 않았어?]
헐. 지금 깨달았다. 나는 과거의 나를 죽여버렸어야 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