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과 난 항상 막무가내였다. 사소한 약속 하나를 잡더라도 서로의 일정은 확인도 안하고 한쪽이 통보형식으로 약속을 잡았고, 심지어는 한달가까이 갔었던 해외여행 날짜 또한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때문에 항상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돼서 서로에게 욕을 퍼붓고도 우린 참 우습게도 그 통보에 가까운 약속을 한번도 어긴적이 없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서로 연락을 끊었던건 내가 처음으로 약속을 어긴 날이였다. "어디야" "........못갈거 같아" "장난해?" "...........음......못갈것 같아, 미안" "왜 못오는데" ".........미안해" "왜 못오냐고" "...........미안.진짜 미안..." "아 알겠으니까 이유라도 좀 알자고" 이제와 생각해보면 녀석은 내 상황을 대충 눈치를 챘던것 같았다. 녀석이 화난 이유는 내가 처음으로 약속을 어긴다는 사실이 이니라, 내가 처음으로 약속을 어길정도의 일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어떤 이야기도 없이 "미안하다"라는 말로 함축시켜버렸다는 사실 때문이란 것을 난 뒤늦게야 알아차렸었다. "최승현" "................진짜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물을께, 왜 못와" ".............미안해......" "....하-" 녀석은 답답한 듯 깊은 한숨을 쉬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 "꺄아아악-!!!!!!!!여보!!!!!!!!" "당장 저 새끼 내보내!!!!!!!!!!!!! 뭐?!!! 남자를 좋아해???!!!!!!!! 뼈빠지게 일해서!!!!!먹여주고 재워주고!!!!!!! 저자식 좋은 학원,좋은 학교!!!! 좋은 옷!!!! 대학 등록금 대주겠다고!!!!한푼이라도 더벌려고 야근하느라 당연스럽게 잠도 못자면서 몸도 다버리고 일하고!!!!!!! 그렇게 고생하면서 키워놨더니!!!!!!!! 호모????!!!!!!! 나가 개새끼야!!!!!!!!!!!" 와장창창창. 쨍그랑. 온집안에 유리란 유리는 다 깨지는것 같다. "여보-!!!! 어엉엉엉엉 여보, 애 죽어요. 여보, 여보오-!!!!!!!" "당장 이집에서 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던지면 던지는데로 다 맞고 있었더니 온몸에 상처가 장난이 아니다. "승현아, 잘못했다고 그래. 응? 얼르은- 응? 다신 안만나겠다고, 응??? 제발...제발 승현아...." "다 필요없어!!!!!!! 나가라고!!!!!당장!!!!!!!!!!" "여보 진정해요 애 죽어요, 엉엉엉 우리 애 죽어-!" 잘못했다고 말하긴 죽어도 싫다. 잘못한게 있어야 잘못했다고 하지. 엄마,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거야. 엄마아빠도 연애 결혼이라며. 그럼 잘 알거아냐-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놀러다니고, 맛있는거 먹고, 그 사소한 일들이 얼마나 행복한건지. 난 잘못한게 없어,엄마. 쉭- 쨍그랑! 귀 옆으로 지나간 접시 하나가 또 깨졌다. "여보-!!!!!!!!!!" 그리고, 아빠가 쓰러지셨다. ".......엄마" "승현아- 119 응? 얼른 119불러 얼른!!!!!!" "..응" 가만히 일어나 전화기를 들고 119에 전화를 하고, 다시 엄마한테 다가갔다. "........엄마" "아이고, 아이고오- 승현아 니 아빠 어쩌니, 응? 니 아빠. 니 아빠 불쌍해서 어째 아이고오-" "............엄마," 나 하고싶은 말이 있는데,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삐용삐용삐용- "......구급차 왔나보다. 내가 나가볼께." "119 신고하신 분입니까? 지금 바로 치료-" "아, 아니요 제가 아니라 저기 집 안에.... 빨리 가주세요." "아-.... 상처 치료는....." "전 괜찮아요. 빨리 가주세요. 고혈압 환자라..." "네..알겠습니다" 엄마,아빠, 안녕히계세요. 전화하러가면서 유리를 밟았나- 따끔따끔 거리네- 눈 비비다 눈에 작은 조각이 박혔나- 따끔거린다 아빠가 던진 접시에 가슴팍도 맞았던가- 아아아- 되게 따끔따끔하다- 따끔따끔따끔따끔. 엄마, 아빠.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해. 근데 난, 잘못한게 없어. 근데. 이게 엄마아빠한텐 너무 큰 짐이야. 그러니까, 내가 혼자 그 짐 지고 갈께. 엄마아빤 그냥 잊고 살아. 나는 그냥, 잊고 살아. 그리고 우리 예쁜 늦둥이. 영은이. 오빠가 미안. 더 못놀아 줘서 미안. 영은이 오빠가 진짜 진짜 좋아하는데, 인사도 못하고 가서 미안. 온몸에 피칠갑을 한채로 한걸음.한걸음. 힘겹게 걸어간다. 강하지만 강하지 못한 아이. 여리지만 여리지 않은 아이. 난 항상 모두의 선망이였다. 왜일까, 왜그랬을까. 난 정말 그들의 선망의 대상이였나..? 내 이 처참한 모습을 보고도 그렇게 생각할까? 한걸음.한걸음.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 이게 내가 홀로 맨 짐의 무게일까. 아, 다왔다 딩동- "누구ㅅ-...." "안녕" 너를 본 순간 깨닳은 세가지. 하나, 혼자가 아닌 너와 내가 짊어질 짐. 너와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세상의 무게. 하나, 강하지만 강하지 못한 아이. 여리지만 여리지 않은 아이. 아니, 이젠 아이가 아닌 성인. 그리고 또 하나, 우린 영원히 하나에서 벗어나질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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