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소비정의 분분했던 꽃자락이 내려준 그가, 기성용이.
전하는 그의 부름을 들으시지 못하셨는지 적잖이 당황해하셨고 이미 흘러져내릴대로 내려진 윗속곳을 황급히 다시 덮어주시었다. 허나 난 그런 전하께 일말의 감사함도 느낄 수 없었다.
나의 눈엔 오직 성용의 갈 곳 잃은 눈빛만이 아스라이 밟혀 허공에 맴돌고 있었다. 한 손으로 옷을 추스른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성용은 원망스럽게도 차디차갑게 슥 지나쳐버렸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오직 그의 눈빛의 부재로 인해 내 마음은 크게 베어져버리고 말았다.
"주..중전은..나가보시오!!"
어린 왕은 한낮에 벌어진 자신의 과오에 '부끄러움'이라는 각인만을 새겨놓은 듯 했다.
내 가슴에 아직도 소란스레 느껴지는 어린 왕의 손자욱은 치욕스레 나를 구겨놓고 있는데 말이다.
"요사이 궁 밖의 태세가 심상치 ㅇ....."
시원스레 열어졎혀진 문 사이로 서있는 궁녀들의 숙인 고개가 나를 조롱하는 듯 했다. 그래서이다. 전하의 처소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겨울날 햇빛처럼 차갑게 떨어지는 눈물이 흘러내린 연유는 말이다. 전하께서 범하신 내 육신이 아닌 마음이 저릿저릿하게 아파와
우악스레 손으로 저고리께를 잡아 빼어 허리를 숙인채 울음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 무너질듯 쏟아지는 오열의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떼어 내가 온 곳은 결국은 소비정 밖엔 없었다. 누구에게나 알려진, 그러나 누구도 알 수 없는 나의 연모가 깃든 곳.
그래서 지금 애타게 기다리는 곳, 내가 너를 그리는 곳이 바로 여기다. 소비정 연못가 밑의 벚꽃나무, 어릴 때부터 약조해오지 않았더냐_
나에게나 너에게나 견디기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를 위로해주자고 약조하지 않았더냐...헌데 넌...지금 어디에 있길래 보이지 않는 것이냐....
".....마마.."
".....성..용아..?."
"......예..마마..."
"난...!아까본것은 모두 전ㅎ...!"
"쉿...구태여 말씀하시지 않아도...되옵니다.."
"그런것이..그런 것이 아니다....나는...난..."
애타는 이 마음을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너의 그 슬픈 눈빛이 개어질까해서 너에게 나는 갖은 변명은 다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벚꽃나무아래에 서있던 나에게
다가와 입술에 닿이는 너의 긴 손가락 하나 뿐, 게다가 그 잘 뻗은 손가락은 내게 침묵을 고하고 있지 않느냐_
참아보려 해도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를 너는 알고 있을까...넌 그저 아련스레 나를 내려다보는 일만 하고 있구나 내가 어째서 너의 중전이 아닌 전하의 중전인건지
모든 여인들이 부러워하는 고독한 이 자리가 나에겐 추운 바람이 스며드는 빙탑의 꼭대기와도 같구나.
"혹...혹......내가 더러워 보이느냐?"
"....마마는....전하의...여자이지 않사옵니까...."
내 입술에서 부드럽지만 거칠게 퉁겨나가는 너의 손가락이 떨구어진 너의 고개와 함께 나의 심장을 날카로운 비수로 찔러대는구나. 내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어도
내 너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였는데....나는....전하가 아닌 무사의, 성용 너의 여자이고 싶다
나의 나라가 너였으면 좋겠고 너의 나라 역시 나였으면 한다_ 너의 그 속절없는 한마디에 한없이 아스라지는 초 봄의 추위가 내 간절한 이 마음까지도 다 빼앗아가버리는 듯 하다....
"성용아...용아....정말로..그리 생각하느냐..?"
"하......."
"그저....아무말도 하지 않고...나를 한 번만...안아다오....제발..."
이 서러운 마음을 어찌 달랠 수 있을까 하면 그저 너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홀로 위로를 하는 수밖에 없구나_ 너와의 추억도 너에 대한 이 깊은 연모도 모두
궁 안에서는 수더분한 낙화가 되어버리는 것을.....
"저는 전하의 충직한 신으로.. 마마께..그런 죄를 범할 수 없사옵니다"
"이것이 이것이!!!어찌하여 죄라는 말인가!!!!!!너는 그러하지 않느냐?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게냐?내 너를 사랑함에 있어 거짓은 없었다!!"
***
다음화는 싱닝번외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