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이런 삼각관계는 개나 줘버려
망했다.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수습을 해야 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감이 1도 잡히지 않았다. 친구 말대로 나랑 김원필이 소개팅을 한 사이인 건 맞다.
맞지만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소개팅 했을 때에는 정말 다른 남자를 만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만난 거였고, 만났지만 그런 감정으로
일이 잘 될리가 없었다. 그 대신 가끔 연락하고 만나서 노는 사이가 되었다는 점. 장담한다.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였다. 하지만, 도운이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게 또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분명히 자기를 다시 좋아하게 만들거라고 말하던 애가 그 사이에 소개팅을 했는데 그게 같은 과다? 심지어 아는 사이?
(아는 사이인건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혹시 모른다. 같은 과잖아.) 이걸 알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화를 낼까. 사실 화내는 건 별로 겁 안나는데, 무반응. 그건 쫌 겁난다
정말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도운이한테 너를 다시 좋아할거라고 말을 했고 도운이 반응이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고 오늘은 영화도 같이 볼, 정말 완벽한
기승전결이었는데 이게 무슨. 영화 약속을 취소해야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안될때 최후의 보루로 남겨둬야지 이렇게 쉽게 선택할
사항이 아니었다. 그래.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거 내가 잘 해결하면 된다.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럴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내가 배운 건 딱 하나. 정면 돌파였다.
[김원필]
야
어디야
나랑 좀 만나 할 말 있음 10:45
김원필한테 비장의 톡을 날렸다. 내가 이 톡을 어떤 심정으로 날리는지 얘가 알까. 근데 내가 이 상황에서 제일 짜증나는 건, 정말 얘랑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만약에 정말 얘랑 썸같은 뭐 애매모호한 거시기 그런 게 있었으면 내가 억울하지도 않을 텐데. 나랑 얘랑 그날 같이 한건 피방에서 게임이 전부였다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도운이의 여사친을 보면 약간 멜랑꼴리한 감정이 드는 것처럼 도운이도 그럴 테니까. 그랬으니까. 온갖 잡생각으로 빠져드려는 순간,
누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양반은 못된다고 내가 그렇게 찾던 김원필이였다.
"전화하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마중 나온거?"
"야. 너 윤도운 알아?"
"어. 알지?"
"나랑 걔랑 썸타."
"뭐? 너 저번에는 그런 얘기 없었잖아."
"내가 저번에 말했던 이상형, 그게 윤도운이야."
"어떻게 아는 사인데?"
"전남친이야."
"잉? 썸타는데 전남친이라고?"
김원필의 얼굴에 온갖 감정이 스치다가 다 이해한 듯이 활짝 웃는데 정말 무서웠다. 내가 얘랑 친구밖에 안된 이유는, 얘가 정말 정말 장난기가 너무 많아서기도 했다.
근데 그 장난기 많은 놈이 눈치는 드럽게 빨랐다. 그래서 소개팅이 그렇게 빨리 깨진 것도 있었는데, 그런 애가 내 앞에서 그렇게 활짝 웃으니까 오 잘생겼다 하는
생각보다는 망했다라는 생각이 앞서는게 당연한거다. 수습을 했는데, 수습할 거리가 또 생겼다.
"그래서 우리 소개팅 한거 비밀로 해달라는 거지?"
"응."
"근데 비밀 안 될 것 같은데?"
"아 왜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네 뒤에 윤도운 있는데. 방금 전부터."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보면 꼭 주인공들이 비밀 얘기하고 있는데 누가 와서 엿듣는다. 그래야 전개가 빨라져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이해는 안됐다. 사람 없는데서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 싶어서. 하지만, 앞으로 그 주인공들 욕하면 안 될 것같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아. 윤도운 과 건물 앞에서 윤도운 얘기를 하고 있었잖아.
뒤를 돌았고, 도운이는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나를 쳐다보는데. 아, 진짜 뭐라고 대답하지? 너도 소개팅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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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판다입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