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 줘봐.” 소주병 뚜껑을 돌리다 살짝 베인 손을보고 이민형이 냅킨을 꺼내들며 말했다. 손을모아 손목을 붙이고는 마치 쇠고랑을 차는듯한 손동작을 했다가 후다닥 손을 내렸다.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반사적으로 나간 손동작에 친구들은 의아해하다가 저건 또 무슨 행동드립이냐며 놀렸고 이민형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 실실거렸다. ‘ 아 이새끼.. 웃는것봐..’ 이민형과 내가 주종관계가 된 것은 약 세달전 (사실 주종관계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미묘하지만 아무튼) 서로 연애상담을 가장한 파트너 뒷담화를 하던중 술에 곱게도 취한 이민형이 자신의 성향을 입밖으로 흘리면서 시작됐다. 사실 이쪽 성향의 사람들중 아주 잘 맞는 파트너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하지만 역대급 쓰레기들에게 걸려 있는대로 고생을하고 연락처고 뭐고 싹 정리한채 만난 우리는 열이 받은만큼 술을 들이 부어댔고, 더불어 답답하다며 자신의 성향을 밝혀버린 이민형덕에 흐름에 취해 나까지 있는대로 씨부렸다. 그 뒤로는 블랙아웃 깨어나보니 이민형네 자취방 천장이 보였고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하며 옆으로 돌아누운 순간 다행은 무슨 세상에서 제일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눈을 감은채 색색거리는 살색투성이의 이민형, 그리고 이민형의 넥타이로 묶여있는 두손 이불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얽혀있는 서로의 다리 이 상황을 어떻게 유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며 눈알을 돌돌 굴려대며 그나마 걸쳐져있는 티셔츠를 허벅지까지 죽죽 내리며 다리를 빼내는데 왠걸 이민형이 깨어났다. “ 뭐야..?” “ 다시 자. 아니 깨어나지마.” 이민형이 베게에 부비적거리며 눈을 끔뻑이다가 이 망할 상황이 이해된건지 움찔거리다가 굳었다. 부끄럽고 민망하다기보단 좆됐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채워진 우리는 초단위로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가고있었다. 그대로 굳어서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는 이민형을 뒤로하고 상체를 일으키며 이민형의 다리 사이에 끼워져있는 내 다리를 빼내었다. 후다닥 일어나서 화장실로 도주하려던 나는 화장실에 가다말고 다시 이민형에게로 돌아가야했다. “ 손좀.. 풀어줘라....” “ 아, 응 줘봐.” 후들거리는 몸을 붙잡아 겨우 씻고나온 화장실 문 앞 이민형의 옷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민형은 옷입고 잠깐 기다리라며 화장실로 들어갔고 잠시후 미묘한 상황에서 멘탈이 나가있는 나를 보곤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며 손목을 잡고 일으켰다. 밖의 찬 공기를 쐐니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술기운도 날아가버렸고 멘붕의 단계를 지나쳐 자기합리화의 단계에 돌입할때쯤 이민형이 말을 걸어왔다. “ 너 어디까지 기억나?” “ ...야,나 좀만 더 놔뒀으면 싹 철판깔수있었는데.” “ 우린 이미 망했어, 정리라도하자 어디까지 기억나.” “ 너가 성향까고 사실 파트너랑 쌩깠다그래서.” “ 응.” “ 나도 까고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하고..” “ 그리고?” “ 그게 다야 미친 생각안나..” “ 비슷하네. 어쩔래? 없던일로하고싶어?” “ 물론 그럴수있다면 그러고싶지, 근데 백타못해.” “ 하긴 네 성격에 완전무시는 못하겠지.”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쥐어 짜댔다. 존나 맞는말이다. 이민형은 오래전부터 친구로 지내와서 근처 친구들도 다 엮여있고, 자취방도 가까웠으며 솔직하게 있는말 없는말 다 할 수 있는 친구는 안타깝게도 이민형이 유일하기때문이다. 다시한번 멘탈이 가루가 되어가고있는 나는 있는대로 말을 씨부렸다. “ 그냥 우리가 파트너 하면 되는거아니야?” 따위의 막말을 사실 나의 개노답 막말에 얼굴을 구기며 욕지거리를 할줄알았던 이민형은 나의 그지같은 파트너 드립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차라리 그게 나을수도 있겠다며 개 헛소리를 했다. 그 후로는 이상하리만큼 평소와 다를것 없게 개드립이 가득한 카톡을 했고 퇴근후에는 회사 뒷담을 깠다. 아무튼 그러던 어느날 비도오고 꿀꿀하니 막걸리에 파전을 먹자는 이민형의 말에 이민형의 작업실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일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하는말이 거기서 거기인만큼 나는 회사사람들 욕, 이민형은 클라이언트 욕을 하던도중 오늘 회사동기들이 연애자랑을 그렇게 하더라, 외로워서 살겠냐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더니 이민형이 눈만 올려뜨곤 나를 보았다. 내가 먼저 뱉어놓은 말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건지 싸그리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아무 표정없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이민형의 얼굴을 보자 정말 개같게도 블랙아웃된 기억까지 전부 돌아와버렸다. 갑자기 돌아와버린 기억에 귓가가 홧홧해지는 것을 느끼곤 이민형과 마주친 눈을 굴리며 헛기침을 했다. 민망해서 괜히 비어있는 술잔을 집어드는데 이민형이 고개를들어 무표정도 웃는표정도아닌 미묘한 얼굴을했다. “ 야성이름, 내가 그냥 모르는척 넘어가려고했는데.” “ ....뭐.” “ 말 잘못한거 알지? 우리 지금 그냥친구 아니야.” “ 하하.. 하! 춥네 날이 쌀쌀해요즘 히터틀자 힡,” “ 웃기고있네, 목까지 빨개졌어 너.” “ 야, 민망하니까 그냥 조용히해.” “ 파트너 어쩌구 하더니, 외롭다고 한숨쉬는건 뭐야?” “ 아니.. 그때는 그.. 선택지가 좀..” “ 그래서 싫어? 그냥 쌩깔까? 아님 맨날 내 눈치볼래?” “ 왜 사람 압박을하고 그러냐..” “ 확실히 하자는거지, 이미 우리 친구라는 선은 넘었고.” “ 내가 잘못했다.. 그럼 너는 어쩌고 싶은건데.” “ 난 확실한 관계가 좋지, 아직 우리가 서로 사랑하거나 하는건 아니고.” “ 그건 맞지.” “ 주변 사람들한테 연인인척 하기에는 연기력이 부족하고.” “ 내 얘기네 이새끼.” “ 서로 사귀는 사람도 없고, 네 말대로 파트너하자.” “ ...” 한참을 우물쭈물 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민형은 작업실 구석에 놓여져있는 간이침대로 저벅저벅 걸어가 눕더니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뭔가 조진감이 있지않아 없는 그런 기분이 들었지만 이게 다 병신짓을 한 내 업보려니 하는 심정으로 이민형의 앞에 섰다. 이민형은 상체를 일으키곤 목에 매져있는 타이를 풀었다. “ 손 줘봐.” 양손을 모아 손목을 붙인채 앞으로 내미니 면 소재의 타이가 손목을 감쌌다. 이민형은 다시 몸을 누이고는 자신의 배꼽 언저리를 두드리며 올라오라고 말했다. 평소와 다른 낮은 목소리였다. “ 아 이거 쓸리면 따갑겠다.” 저번에는 만취꽐라 상태였다지만 맨정신에 이러려니 괜히 민망하고 머쓱해서 묵여있는 손을올려 앞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 그래서.” “ .....” “ 대답안해?” “ 할게.” “ 그런거 신경써?” “ ....아니..” “ 나도.” 이민형이 묶여인는 손목을 한손으로 꽉 쥐었다. 몇주 뒤 동네 친구들중 한명의 생일이 다가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의 아침 얼마나됐다고 익숙해진 이민형네 자취방 천장을 보며 이민형을 깨웠다. 그동안 알게된 몇가지 사실은 이민형과 궁합이 상상 이상으로 잘 맞는다는것과 손목 묶는것을 겁나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질투가 심하다는것인데 그래서인지 몇일 전 부터 오늘 이야기를 하며 @@이가 예전부터 너한테 관심있었다는둥 그러니까 내 옆에만 붙어있어야된다는둥 고막에 딱지가 앉도록 세뇌를 시켜댔다. 사실 내 맘대로 굴어서 벌받는것도 나쁘지않지만 몇일동안 앵무새마냥 같은말을 반복하는 이민형에게 시달려 씨부린대로 끌려다녀 주었다. 카페에서 다 함께 모여 술집으로 이동했고 하루종일 내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고있는 이민형이 술집에서도 나를 질질 끌고 구석에 앉혀놓자 이민형이 말했던 @@이의 시선이 점점 따가워졌다. “ 야 이민형 이름이좀 놔둬라, 하루종일 끌고다니네.” “ 맞아 오늘 왜그랰ㅋㅋㅋㅋㅋ, 또 성이름이 뭐 잘못했냐?” “ 야 그냥 냅둬, 쟤네 붙어다니는게 하루이틀이냐.” 친구들이 떠들던말던 그저 비식 웃던 이민형이 나를 보곤 다 들으라는 듯 말했다. “ 그런거 신경써?” 미친새끼 이거 작업실에서 한 말.. 말없이 인상을 구기고 앞에있던 소주병을 돌려깠다. 그러다 병뚜껑 모서리에 엄지손가락쪽 손바닥이 베였고 작게 신음을 흘리자 이민형이 옆에있던 냅킨을 뽑아 손을 내밀었다. “ 손 줘봐.” 별 생각없이 손을모아 손목을 붙이고는 마치 쇠고랑을 차는듯한 손동작을 했다가 후다닥 손을 내렸다. 반사적으로 나간 손동작에 친구들은 의아해하다가 저건 또 무슨 행동드립이냐며 놀렸고 이민형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 실실거렸다. ‘ 아 이새끼.. 웃는것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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