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몇일 후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밴드부실에서.
밴드팀을 2개로 나눌 때 다행히 같은 밴드가 되고 또 같은 보컬이 되어서 따로 연습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보다 작은 키 때문에 나를 올려다 보는 눈도 말할 때 오물오물 거리는 입술도 걸을 때 마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도 너무 좋았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빠질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을 때 쯤 이미 난 탄소를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연습이 끝나고 같은 버스 정류장에 서 있길래 어디에 사냐고 물어봤더랬다.
탄소의 말을 듣자마자 난 내 귀를 의심했다.
학교 갈 때 한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나랑 같은 아파트에 산다니
그땐 정말 모든 걸 다 가진듯 한 기분이 들었다.
"아 오빠도 거기 사시는구나!"
"연습 끝나고 같이 가면 되겠다. 밤이라 안그래도 걱정했는데"
"그러게요 ㅎㅎ"
특유의 웃음 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너무 예뻐서 하마터면 와락 안아버릴 뻔 했다.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이게 당연한 감정인지 내가 탄소를 많이 좋아하는 건지 헷갈리고 알 수가 없었다.
[일요일]
"어? 오빠 어디 가요?"
피곤해 죽겠네 란 생각을 하며 가까운 마트로 향하던 내 귀에 탄소의 목소리가 들렸다.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걸 알기 전에는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엄마가 심부름 좀 해오래서 나왔지 넌?"
"저두요 ㅋㅋ 두부 사오래서요. 아침부터 심부름이라니 ㅠㅠㅠ 잘 자고 있었는데에.."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칭얼거리는 탄소가 너무 귀여웠다.
"난 목록도 있다.. 짱 길어 ㅋㅋㅋ 여기 마트 온적 없어서 뭐가 어디있는지도 모르는데.. ㅋㅋㅋㅋ"
내가 엄마가 적어준 목록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도와줄까요? 나 여기 자주 와서 금방 찾을 수 있어요 ㅋㅋ 카트만 끌고 따라오세요."
내 손에 들린 목록을 슬쩍 뺏어가며 앞서가는 탄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카트를 끌고 뒤를 따라갔다.
"오이는 여기 있고... 머스타드는 저기 있고... 아! 마늘은... 여기... 음.. 또 뭐있지..."
종이를 한 손에 들고 입을 살짝 내밀고 고민한는 탄소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렇게 탄소 덕분에 빨리 끝난 장보기를 마치고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조심해서 들어가 또 넘어지지 말구 ㅋㅋ"
"맨날 넘어지는거 아닌... 어? 오빠 나 자주 넘어지는거 어떻게 알아요?"
"잘 생각해봐 ㅋㅋㅋ 나랑 밴드부실에서 처음 만난게 아닐거야 ㅋㅋㅋㅋㅋㅋㅋ 조심해서 들어가"
손을 흔들고는 물음표를 머리 위에 한가득 띄우고 있는 탄소를 뒤로한 채 집으로 들어왔다.
[탄소ver]
'지옥같은 월요일...' 이란 생각을 하며 학교로 가는 도중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았다.
뒤를 돌자 눈에 보인건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는 정국오빠였다.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 뛰어오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헉헉거리는 정국오빠의 말에 웃음이 픽 하고 났다.
"왜 웃어! 진짜 힘들었다고! 언덕이잖아!!"
웃는 나를 보며 변명하듯 소리치는 정국오빠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 학교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문득 생각이 났다.
오빠가 토요일에 했던 말
"근데 오빠 나랑 밴드부실에서 처음 만난게 아니라는 말 진짜에요?"
내 말을 듣자마자 빙긋 웃으며 말을 한다.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왜 해 ㅋㅋ 나 몇반인줄 알아?"
"그야 1반....????? 오빠 공찬식이랑 같은 반?????"
이제야 생각 났다. 무릎을 다쳤던 날 급식실 앞에서 공찬식을 만났었다. 그 때 누가 옆에 있었...
"아!!!!!!! 급식실!!!!"
"이제 기억 났어? ㅋㅋㅋㅋㅋ"
"아 헐... 오빠 공찬식이랑 친구에요?? 허...."
"그걸 이제 알면 어떡해 ㅋㅋㅋ 난 너 바로 알아봤는데"
정국오빠가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뛰지 말아야할 심장이 또 뛰어온다.
그때 저 멀리서 다은이와 소연이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탄소!!! 너 얼른 안오냐!!!!!!!!!!!"
"오빠!! 나 친구들이 불러서 먼저 갈게요 나중에 밴드부 연습 할 때 봐요!"
빨개진 볼을 들키기 싫어서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오빠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는 그 쪽으로 뛰어갔다.
뛰어서 다은이와 소연이의 앞에 도착하자 둘이 나를 붙잡고는 추궁하기 시작한다.
"저 사람 누구야?"
"누군데 같이 오냐????"
"있어 ㅋㅋㅋ"
내가 웃으며 학교 쪽으로 가려고 하자 내 손목을 붙잡고는 땡깡을 피운다.
"아 누군데에에에엥에ㅇ에에ㅔㅇ!!!"
"너 말 안할거면 못감요"
아 진짜 이것들... 잘못 걸렸네... 라는 생각을 하며
"일단은 지각은 안되잖니?? 반에 가서 얘기해줄테니까 좀 가자 ㅋㅋㅋㅋㅋ"
라고 말하자
"아 헐? 지금 몇분이야?!"
"55분 헐 뛰어"
이러며 미친듯이 뛰는 내 친구냔들... 인생에 도움이 안되요 암튼... ㅋㅋ
[교실]
우사인볼트로 빙의해 미친듯이 달려 겨우 지각은 면했지만 내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아 그래서 누구냐고오!"
등교할 때 없던 천혜원까지 얘기를 듣고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알려준다며어어어!"
"알겠어 알려줄게"
내가 한숨을 푹 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있었던 모든 일을 말하고 나자 3명이 눈빛교환을 하더니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한다.
"뭔데 니들끼리 말하냐 나도 말해줘!!!!"
"그 오빠? 애? 암튼 그 사람 너 좋아하는거 같은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ㅋㅋㅋ"
내가 말도 안된다는 듯 웃자 고개를 젓는 소연이다.
"노노놉 생각을 해봐 한번 스쳐지나가면서 본 애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안그래?"
잠시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금세 생각을 지웠다.
"내가 좋아하는거면 몰라 그 오빤 아닌거 같음 ㅋㅋ"
"너 그 오빠 좋아하냐.. ㅋㅋㅋㅋ"
"아.... 내가 잠시 미쳤었나 봄 ㅎㅎㅎ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니~"
딱 걸렸다. 눈치백단 천혜원 피해갈 수가 없어요 ㅡㅡ
결국엔 걸려서 한참을 놀림 당했다는 후기..
[몇일 후 목요일]
친구들과 시내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려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니 정국오빠가 있었다.
"탄소 맞네? 너 왜 여깄어?"
"오빠야말로 왜 여기 계세요?"
당황해서 되묻자 대답은 하지 않고 말한다.
"잘됐다. 나 영화표 생겼는데 보러갈래?"
"네??"
"나 친구랑 헌혈 했는데 영화표 나 주고 자기 학원가야된다고 갔어 ㅋㅋㅋㅋ 보러 갈래?"
마침 할거도 없고 심심했던 나는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물론 같이 있고 싶기도 했고
"네 좋아요!"
라고 말한 후 같이 영화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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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분량이 좀 많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ㅎㅎ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은거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역시 내님들이 짱짱이에요 ㅎㅎ 혹시 암호닉 하고 싶으신 분 계시면 댓글에 달아주세요!!
다음 5화는 화요일 저녁 쯤에 올리게 될 것 같아요! 그때까지 안녕히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