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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총 로맨스시리즈#2

 

김종현좀 데려가라는 진기선배의 전화에 아직도 졸음이 묻어나는 몰골로 대충 가운을 걸쳐 입고 도착한 포장마차 안엔 파란 테이블에 머리를 꼬라박고는 한손으로 술잔을, 나머지 한손으론 뻘건 양념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나무젓가락을 꼭 쥐고 잠들어있는 애시키 하나와 그 앞에 피곤에 찌든 얼굴로 앉아 야 김종현, 좀 일어나봐라 쫌 우는소리를 내는 선배가 있었다.

 

본격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

낭만


과연 나는 무슨 꼴을 당하려고 이 늦은 밤..아니 이른 새벽에 할증이 붙는 택시씩이나 잡아타고 이곳에 왔는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이미 벌어진 일. 저따위로 널브러져있으면서도 안주 몇점이라도 술 한 방울이라도 혀끝을 축여보겠다며 술잔이며 젓가락을 쥐고 있는 사뭇 결연한 의지까지 담긴 듯한 저 앙증맞은 손에 피식, 헛웃음이 먼저 새어나왔다.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곤 한참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pda소리가 들려왔다. 아, 진기형꺼구나. 선배가 액정에 뜬 번호를 보더니 어, ER 콜이네.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기범아, 형 콜 들어와서 먼저 갈란다. 쟤좀 잘 업어다 놔라"

"네, 선배 수고해요."


오냐,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린 진기 형에게서 떡실신남에게로 시선을 옮기는데 얼씨구, 오늘 날짜를 보니 오프도 아닌 게 배 째라 술을 들이부은 듯 싶다. 넌 아침에 일어나면 시원한 꿀물 대신에 뜨거운 피눈물 꽤나 흘릴 것 같구나 생각하며 낄낄 비웃어대니 포장마차안에 있는 사람들이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나 그런사람 아니에요,

 

"야, 야. 일어나봐."

"..."

"야, 김종현 얼른 일어나라고 쪽팔리니까."

 

툭툭 건드려도 전혀 반응이 없는 게 이건 완전 인사불성이네. 아무래도 정말 진기형 말대로 업어다 놔야할것 같아서 끙차 하고 들쳐메곤 포장마차 안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탈수 있는 곳까지 김종현을 들쳐업곤 무작정 걸었다. 에이씨, 쥐꼬리만한 레지 월급 쓸데도 많은데 완전 적자. 그렇게 큰 도로가 보일때까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데 등에 짐짝처럼 업혀 코마상태였던 김종현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하며 옹알옹알 무슨 말을 하는가 싶더니 잔뜩 꼬이고 늘어지는 발음으로 나를 불러댔다.


"야."

"뭐."

"야, 깝기버엄."

"이 말라깽이가 진짜 죽을라구."

"야, 이새끼야 넌 시발 선배한테.."

"선배님께선 지금 술떡이 돼서 후배한테 어화둥둥 업혀가고 있거든요?"

"뭐, 그르네. 히히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내 말좀 들어봐. 엉?"

 

그래, 어디한번 지껄여봐. 시크하게 대답하자마자 뒷통수에 퍽 하고 김종현의 주먹이 꽂혔다. 아이씨 쪼끄만게 손만 매워갖고, 이걸 그냥 확 길바닥에 버려? 내일쯤이면 한국대 의대 떡실신남으로 뜰텐데 ㅋㅋㅋ 생각만해도 꼬숩네.

 

"뭘쪼개, 맞으니까 좋냥? 이거 변태아냐?"

"할말있다면서, 얼른 말이나 하시지?"

"아 참참. 그래, 할말 음..그러니까, 김기범.."

"어, 그래."

"딱, 한번만 말한다아. 잘들어라 선배님 말씀."

"뜸들일래? 바닥에서 말하고싶음?"

 


그러니까

좋아해.


어, 그래. 어, 엉??? 경끼를 일으키듯 물으니 그렇게 뒤지게 뜸을 들이며 시간을 끌던 김종현은 좋아한다구 병신아 라는 한마디만을 남긴채 내 목덜미에 들큰한 숨을 색색 내뱉으며 정말로 떡실신해버리고 말았다. 새근새근 잠잘때만은 정말로 천사같은 김종현의 달랑거리는 다리를 다시한번 팔로 추켜올리며 읏쌰, 물에 젖은 빨래처럼 축축 늘어지는 몸을 고쳐업고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등에 업힌 김종현이 갑자기 가벼워진것도 같고 발걸음이 사뿐사뿐 꽃잎 위를 걷는것도 같다. 심장께에서 근질근질 뭔가 움직이는것 같은 기분에 피식피식 입에선 웃음마저 새어나왔다.


아, 뭔가 이상하다. 나도 취했나?

 


***

 

"악, 악! 아프다구요 악, 시발."

"사내새끼가 엄살은."

"이게 엄살이야? 엉? 그리고 파스좀 제대로 붙여봐요 쫌."

"뭐, 이정도면 훈늉하구만."

"자꾸 뗐다 붙였다, 무슨 포스트잇이야 파스가?"

 

왜이렇게 시끄러.


김종현의 칼같은 wake up time은 과음한 다음날도 역시 칼같구만 허허허. 할아버지처럼 웃는 진기선배에게 뭔소리야 저건, 이라 말하며 마치 버러지라도 보는듯한 눈빛을 쏴대던 종현이 이내 내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웃통을 벗고있는 나의 상체랄까...어떠냐,오빠 몸 좋지? 새삼 또 반하겠지?


야,김깝..아니다, 깝기범. 너좀 잠깐 나와봐.


기대했던 반응과는 달리 별 감흥이 없다는 표정으로 내 몸을 슥 눈으로 훑어내린 김종현은 이내 몸을 돌리곤 밖으로 나가며 나를 불러냈다, 굼벵이같은게 빨랑빨랑 안텨오냐? 빽빽 소리를 지르는데 왜또 저러나싶어 군말않고 따라가기로 결심하곤 옷을 대충 챙겨든채로 문밖을 나섰다.

 

"야 깝.아니, 김기범."

"왜."

"너, 솔직히 말해."

"뭘."

"그러니까 그 뭐냐..음.."

"아 뭔데, 시발 나 덥거든? 할말없으면 들어간다. 엉?"

"아니 근데 이새끼가."

"뭐, 뭔데 왜, 악. 때리지마 악!"

 

야무진 손길로 내 등짝이며 머리를 사정없이 찰싹찰싹 때려대는 김종현을 참다못해 양 팔목을 꽉 움켜쥐고선 코끝이 닿을듯 말듯한 거리에서 으르렁거리니 이내 김종현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르는것이 눈에 들어왔다. 얘,얘가 왜이래..안어울리게, 아..맞다. 쟤 나 좋아한댔구나. 이제야 뭔가 질문의 가닥이 잡히는것 같아 숨도못쉴 지경으로 당황한 김종현의 손목을 놓아주곤 내가 할수있는 최대한의 거만한 태도로 물었다. 왜, 뭔데? 말해봐.


내가 어제말이지..


오케이, 맞네.

 

"그러니까, 혹시 내가. 어제 술먹고.."

"어"

"실수같은거 안했냐..?"

"..."

 

어??했어? 막 이상한말 지껄이고 그러든? 물어도 대답없는 내 얼굴을 보며 허옇게 질려버린 얼굴을 보는데 이건 백만년에 한번 환자 어레스트시에 0.5초정도 볼수 있다는 당황의 극치인  김종현의 표정에 재미가 동하기도 하고, 뭔가 귀엽기도 한 맘에 장난끼가 일었다. 이대로 내가 정색을 하고 거짓말을 한다면 이 쪼끄맣고 기만 더럽게 센 4년차 레지던트 김종현씨가 어떤 반응을 보이며 쩔쩔맬지 구미가 당겨온다.

 


"기억 안나?"

"어??"

"기억 안나냐고, 어제 너 아주 장난 아니었다?"

"뭐,뭘 어쨌는데."

 

이렇게 불러내서 묻는거 보니까 니가 뭔가 감은 잡은거 같은데, 그게 니가 예상하는것보다 한 열배는 심할거야. 너 나한테 어제 열렬한 사랑고백에 등에 업힌채로 둥가둥가 노래까지 부르더니 갑자기 너 업느라 고생에 뼛골빠지겠는 내 목덜미에 쪽쪽 뽀뽀까지 하다가 겨우 침대에 눕혔더니, 울렁거린다고 화장실가서 오바이트까지..와우, 진상 진상도, 어우 진짜.. 나 다크서클 광대까지 내려온거 보이냐? 나 파스 붙인건 이제 보여?? 하며, 있는말 없는말을 죄대 쏟아내니 곧 실신이라도 할것처럼 얼굴이 더 창백하게 질린다. 아, 재밌어 죽겠다. 초점이 흐려진 두 눈 앞에 휘휘 손을 내보이며 정신을 차리게 만든뒤 웃음을 꼭 참곤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이거 어떻게 했음 좋겠냐?"

"..."

"콧대높은 김종현선생님이 한낱 김기범 나부랭이한테 고백했다, 그것도 취중에. 라고 말하면.."

 

야야야, 안돼. 절대 안돼!! 니가 이걸 입싼 진기한테나 병동 간호사 누구한테라도 말하기라도 하면, 내가 이날까지 쌓아왔던 이미지나, 내 사회적 위치나 위신은 어떻게되냐고. 어? 만약에 이게 병원에 퍼져봐. 그럼 난 식당에서 밥알 한톨도 못먹어, 회진같은건 돌지도 못한다고!! 잘생각해봐. 너 그러는거 아니다. 인간적으로 너..

난 세상에 태어나 병원에 들어온 이래로 저렇게 횡설수설 말하는 김종현은 처음이다.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너 그러는거 아니라며 말하는걸 보니 얘가 얼마나 똥줄이 타고 다급한지 느껴져서 이제 이 장난을 꼭대기까지 솟아오르게 만든뒤 끝을 봐야겠다 생각하곤 손가락 하나를 편채로 까딱까딱 김종현의 얼굴 앞에 좌우로 움직였다.

 

"그럼, 조건을 하나 걸겠어."

 

조건은.

 

두구두구두구두구

 


"너, 나 없을때 우리집 와서 빨래도 하고, 오프땐 아침밥도 하고 집안일좀 해. 말하자면 가정부라고 해야하나..?"

 

말을 끝내자마자 허옇게 질려있던 김종현의 얼굴이 금새 발갛게 달아오르더니 안그래도 평균 사이즈보다 조금 커보이는 콧구멍이 족히 세배는 팽창해서는 스팀을 훅훅 뿜어냈다. 뭐이새끼야? 너 나 레지4년차인거 모르냐, 전문의 시험이 몇달 남았다고 내가 너도 잘 못들어가는 니집에 들어가 잡일을 해야하느냐. 차라리 불어라 이 짐승만도 못한놈아, 내가 미쳤었구나. 온갖 역정을 내며 곧이라도 날 씹어먹어버릴것 같은 김종현의 두 뺨을 양손으로 쥐곤 그대로 입술을 들이밀었다. 쪼옥, 소리가 날만큼 진-하게 입을 맞춘뒤 얼굴을 보자 안그래도 발그레 달아올라있던 얼굴이 마치 터질것처럼 빨간색으로 물들어있다. 마주친 두 눈이 까맣게 반짝반짝 거렸다.

 

"아직도 모르겠냐 둔팅아? 나 지금 너한테 프러포즈하는데."

 

도톰한 입술이 살짝 벌어진채로 뭐라 어버버 말을 잇지 못하는걸 보니 다시 웃음이 터졌다. 눈은 어찌나 크게떴는지 까맣고 큰 눈동자가 전부 다 보일정도니 놀라긴 놀란것 같아 정신이라도 차리라고 손가락 하나를 들어 이마에 콩 하고 두드렸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건지 고개를 휙 돌리곤 빨개진 귀를 숨기지도 못하곤 조그맣게 옹알거린다.

 

"뭐야, 그게."

 

뭐긴 뭐야, 나도 너 좋다는거지.

 

 

***

야, 비밀번호는 168로 해놓으마.

그게 뭔데

니 키 ㅋㅋㅋㅋㅋㅋ

이 시발롬이!!

 

 


아, 맞다. 그리고 쫑 아까그건 다 뻥이지롱. 넌 나한테 코꿰인거야, 알간??

 

 


어찌저찌 마주한 얼굴에서 웃음이 퐁퐁 터져나왔다.

 

-
워,이걸 내가 언제써뒀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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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좋다....
12년 전
낭만
헐 고마워....
12년 전
독자2
헐 탬쫑도 잘 읽엌ㅅ는데..ㅎ홀 키쫑도 조아..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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