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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BGM 추천
B1A4 - 짝사랑 (산들 Solo)
김태형
010 - xxxx -xxxx
수락 거절
와, 미치겠네.
/
“ 진짜 전화하면 어떡해...! “
“ 그럼 진짜로 하지 가짜로 전화해? “
“ 지금 시간이, “
“ 아... 지금 통화 힘들어? 끊을까? “
“ 아니! 나 지금 전화 완전 잘 받을 수 있어. “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새벽에 나지막히 들려오는 김태형의 목소리는 어딘가 간지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계속 듣고싶었다. 혹시 통화하기 곤란하냐는 질문에 먼저 끊길세라 황급히 대답하자 그게 뭐냐며 푸스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 때가 되어서 그런지 살짝 잠겨있는듯 슬쩍슬쩍 긁혀오는게, 마치 연인끼리 잠자기 전 서로의 일과를 보고받는 기분이 들어서 괜히 심장이 콩콩거리는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들을 때와는 다르게 낮게 귓가를 울리는 파동이 기분좋게 낯설었다.
“ 그래서, 누구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어서 나한테 그렇게 물어봤어? “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덥썩 받아버리고 말았는데, 본론으로 들어오고나니 이제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껏 학교 다니면서 김태형 말빨에 안 말려든 적이 없었는데, 내가 대체 왜 받았지. 내가 안 말리고 잘 대처할 수 있을까? 근데 얘가 끝까지 무대포로 밀고 나오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할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냥 받지 말 걸.
“ 아니, 그게... “
단언컨대, 짝사랑중인 애한테 내가 화장실 칸 안에서 그 애한테 나는 방해만 된다는 뒷담을 듣고 있으면서도 쫄려서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있다가 수업에까지 늦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김태형에게 말 못할 이유를 나열하라면, 첫째. 쪽팔려 죽을 것 같으니까. 둘째. 괜히 김태형을 쓸데없는 일에까지 신경 쓰이게 만들까봐. 셋째. 언제나 너에게 좋은 기억으로만 남고 싶으니까.
김태형이 얼마나 굳건한지 모르겠지만, 나도 만만치 않았다. 죽어도 못 말해.
“ 치, 친구한테 전해들은 거라서... 걔가 곤란해져. “
“ ... 그거만 해결되면 말해줄 수 있는 거야? “
“ 어? “
“ 그 친구한테 피해 안가면 되는 거냐고. “
“ 그으...렇지...? 근데 이제 피해가 안 갈 수가 없는게, 내가 말하면 이게 막 퍼져서... “
나의 친구 스킬이 조금 먹히는 듯 했다. 그래, 나 김여주! 다독상 짬바 어디 안 간다 이거야. 이제 슬슬 자연스럽게 얼버무린 다음에 김태형이 졸려하는 틈을 타서 전화를 끊자. 만약에 안 졸리다고 하면 그냥 잠든 척 해야지. 시계를 쳐다보니 슬슬 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요즘 일찍 자는 것 같았으니까 이 정도면 졸리다고 말하겠,
“ 나 못 믿어? “
“ ... 믿어. “
“ 내가 다 책임질게. 누구야. “
오, 주님...
어떻게든 대답을 피하려 이리저리 말을 돌리던 내가 결국 꼬리를 잡히고 마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조금은 화가 난 것 같은 김태형의 차가운 말투에 꾹 눌러 참고있던 서운함과 억울함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내가 까였는데 왜 김태형이 화를, 그것도 나한테 내고 있는 거야. 슬슬 몰려오는 잠기운은 입술의 필터까지 몰아냈다. 왜... 왜 나한테 화 내... 개미같은 데시벨에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또 살살 달래오는 김태형에 결국 나는 두손두발 다 들었다. 자기가 가서 혼내주기라도 할 거야 뭐야.
“ 여주야. “
“ 으응... “
“ 진짜 나한테 안 알려줘? “
반칙이다. 우리 사이에 이런 포근한 말투는 명백한 반칙이다.
“ 내 일이기도 하잖아. 그치. “
“ 그게 왜 네 일이야... 내 일이지... “
“ 사실 예상되는 사람 한 명 있긴 하거든. “
“ 그럼 너가 생각하는 걔 맞아... “
“ 나는 네 목소리로 듣고 싶은데. “
너 진짜 반칙이야.
그리고 그날 밤, 죽어도 말 못한다고 했던 과거의 나는 두 번 죽었다. 나는 두 번 죽어서 말하게 된 거야. 암.
/
열두시 반에 시작된 통화는 결국 1시를 훌쩍 넘긴 다음에 김태형의 승리로 끝났다. 김태형의 성공적인 확인사살 후에는 절대 아무 짓도 하지 말으라는 나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는데, 다행히 김태형은 나와 약속한대로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계획인듯 했다. 솔직히 찍힐까봐 좀 많이 무서웠다.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나를 찾아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김태형의 얼굴은 참 반가우면서도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꼭 그 새벽에 전화를 해서 캐물어야겠냐며 째려보는 나에게 여전히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대답하는 모습이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했다. 내가 말발은 좀 딸려도, 현피에는 자신있지.
마침 뒷짐을 지고 있어 무방비한 김태형의 정강이가 마침 눈에 띄었다. 뚱한 표정으로 서있다가 갑자기 샐죽 웃어보이는 내 모습에 당황해 왜 웃냐며 말을 더듬는 김태형의 정강이로 발끝을 조준했다. 자, 준비하시고.
“ 악! “
쏘세요!
/
“ 아, 여주야 잠깐만... “
내 신발코와 김태형의 정강이가 만나자마자 짧은 탄성을 뱉어내는 김태형을 보고 히죽히죽 웃은지 1분도 되지 않아, 그대로 다리를 부여잡고 복도 벽과 하나가 되어 스르륵 주저앉는 김태형에 내 얼굴은 순식간에 당황으로 물들었다. 너무 세게 찼나? 힘 진짜 많이 안 줬는데! 그냥 툭 건드린 정도였는데!
“ 어디 봐봐, 괜찮아? “
“ 만, 아! 만지지 마봐... 으... “
상처라도 났나 싶어서 교복 바지를 걷어올려 확인하려는 나의 손목을 순식간에 채어가서는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에 나는 정말로 패닉이 올 것 같았다. 그러게 성질은 왜 부려가지고...! 아직 놓지 않은 손목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어떡해, 진짜 아픈가봐...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님... 제가 다 잘못했어요. 앞으로 김태형 정강이 절대 안 찰게요, 제발 김태형 안 아프게 해주세요. 그 짧은 순간, 무교였던 나는 생각나는 온갖 신을 다 불러제끼며 3분 전의 내 결정을 후회했다.
“ 보건실 같이 갈까? 응? “
“ ... “
“ 우, 울어...? “
아까 상태 그대로 아직까지 고개를 들지 않는 김태형에 나까지 잔뜩 울상이 되어 미안하다는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꺼내놓고 있었다. 갑자기 들썩이는 등에 정말 너무 아파서 울기라도 하는 건가 싶어 잡힌 손을 빼내지도 못한 채로 안절부절하며 억지로라도 일으켜 보건실에 가려던 그 순간,
“ 아니, 웃음 참는 중. “
“ 야!!!!! “
/
지나가는 애들이 다 쳐다볼 만큼ㅡ사실 아까부터 쳐다보고 있긴 한 것 같다.ㅡ 놀랐잖아, 하고 소리치는 내 목소리가 시끄럽지도 않은지 마냥 웃기만 하는 얼굴이 오늘만큼은 정말로 미워보였다. 내가,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씨이... 순식간에 안심이 되어서 그랬나,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내 눈에는 울망울망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히트곡의 가사가 생각나 고개를 들은 다음 살짝 웃었다. 또르르. 눈물 방울이 아주 스무스하게 옆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젠 노래 가사에도 속는구나, 내가...
내가 죄 없는 작사가를 원망하는 동안, 김태형은 이것까진 예상을 못했는지 줄곧 잡고있던 나의 손목을 놓고 당황하는 얼굴로 내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닦아주려는 건가. 이번만큼은 나도 안 봐줄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다가오던 큰 손을 뿌리치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들어와보니 전에 그 칸이잖아. 내가 앞으로 여기 들어오나 봐라.
“ 김여주, 좀 나와... 나와 봐... “
여자 화장실 앞에서 잔뜩 당황해서 내 이름을 부르는 김태형의 목소리가 들렸왔다. 막상 들어와서 생각해보니, 김태형도 김태형이었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갑자기 울어버린 나한테도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존나, 존나 수상했어. 거기서 울어버리면 어떡해. 이 정도면 눈치 챘을지도 몰라...
“ 종 쳤는데... “
“ 어쩌라고! 들어가등가! “
“ 아냐, 기다릴게... “
운 것도 쪽팔려서 김태형이 없을 때 나가려고 했지만, 종이 친 다음에도 계속 내 이름을 불러제끼는 김태형에 그것마저 실패하고 말았다. 눈 엄청 빨개져서 지금 완전 못생겼는데. 김태형을 좋아한 이후부터는 정말 단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구나.
/
“ 김태형, 김여주. 왜 늦었어? “
“ 죄송합, “
“ 제가! “
“ ... “
“ 저 때문에 늦었습니다! 여주는 잘못 없...! “
“ 진짜야? “
“ ... “
얼추 울음을 그치고 조용한 복도를 걸어 뒷문을 조심스레 열자, 수업 중이시던 선생님이 날카로운 눈매로 이유를 물으셨다. 김태형이 놀려서 우느라요, 라고 대답할 수 없으니 그냥 벌점이나 받고 끝내려던 계획은 갑작스러운 김태형의 변호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진짜냐고 물어보셨고, 당황해 가만히 있던 나의 머리를 김태형이 부드럽게 잡아 두어번 꾹꾹 눌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끄덕였다.
“ 그래? 그럼 김태형 벌점 2점, 둘 다 뒤로. “
“ 아... “
“ ... “
“ ... 미안. “
나의 끄덕임을 정상 참작 하자고 결정하셨는지, 우리 학교 최고 쿨가이로 소문나신 선생님은 깔끔히 내 몫의 벌점까지 김태형의 이름 밑에 달아놓으셨다.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뒤를 돌아 칠판에 적던 수식을 이어 적으시는 선생님의 뒤로 교과서를 챙겨 교실 뒤편의 키높이 책상 앞에 섰다. 1m 정도 떨어져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는 모양새가 웃겨 웃음이 터지고 말았는데,
“ 어? 웃었다. 이제 화 풀린 거지? “
“ 아닌데. “
“ 에에? 아닌게 아닌데. “
“ 아니라고. “
“ 어쭈. 늦어놓고 떠들기까지? 김여주 벌점 1점. “
“ 아 선생님...! “
“ 왜 불러. 김태형이랑 하던 연애 마저 해. “
금트흥...
“ 오, 우리반 공식 커플~ “
“ 고삼이 무슨 연애냐!!! “
“ 누구인가. 누가 썸 타는 소리를 내었는가? “
즌쯔 그믄은든드...
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시간은 빠르게 흘러, 3학년의 1학기가 끝나갔다. 방학이라는 기쁨도 잠시, 시작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여름방학 보충 수업을 들으러 학기중과 비슷한 시간에 기상해 등교해야했다. 작열하는 태양에 매 등굣길마다 속으로 욕을 짓씹으며 삐질삐질 땀을 흘려 도착한 학교에 와서 얻는 것은, 딱 2가지였다.
“ 여기서 자유 곡류 하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거야. 보이니? “
“ 네에... “
열심히 수업하시는 선생님으로부터의 얕은 지식과,
“ 쌤, 그러면 그 옆에 C는 선상지인 거죠? 선단쪽에 용천이랑 거주지역 있으니까? “
항상 착실하게 교복만을 챙겨입는 FM의 정석같던 김태형의 사복. 김태형은 가끔 방과후 프린트도 두고 왔다며 나와 함께 앉아 수업을 들었다. 자기 관리는 제일 꼼꼼할 것 같던 애가 뭘 자꾸 깜빡하는지. 쟤 진짜 건망증 아닌가. 그렇게 한 번 내 옆에 앉았던 김태형은, 다음 날이 되고 다음 주가 되어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인기 없는 강좌라서 빈 자리 많았는데.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나와 김태형 사이엔 여전히 묘한 기류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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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덕분에 나름 행복(?)하고 재미있게 열아홉을 보내고 있긴 했지만, 대한민국 고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굳이 특별한 무언가는 없어도 고삼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느껴지는 압박감과, 그 와중에 험난한 짝사랑. 잘 풀리는 것 같으면서도 풀리지 않는게 참 답답했다. 학교 내의 내신 우수반 안에서도 상위권이었던 김태형은 수능 최저가 있어 수능 준비반에 갈테고, 예체능을 전공하는 나는 실기 연습을 위해 2학기부터는 매일 조퇴를 해야 하는 운명이었으니.
짧은 방학이 끝나 2학기, 한창 자소서를 쓰고 원서를 넣을 즈음. 그러니까, 그냥 나만 조퇴하지 않고 그냥 교실에 잘 붙어있으면 김태형을 마음껏 볼 수 있는 학기초. 자소서 좀 봐줄 수 있겠냐는 김태형의 부탁에 실기 연습을 미룰 수 있는만큼 미루며 착실히 수행하던 것도 잠시, 점점 수능 날이 가까워지자 학교에서 수능을 챙기는 아이들을 챙겨 다른 교실로 보내주기 시작했다. 수능 준비 반과 조퇴생의 만남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던 모양인지,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아침 조회 때와 쉬는시간에 어쩌다 두어번 마주치는게 다였다.
“ 야!!! 안 때릴테니까 멈춰라!!! “
“ 아무나 잡고 물어봐!!! 그렇게 말하면 누가 멈추냐!!!!! “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이젠 내가 바로 등 뒤를 지나가도 너는 예전과 다르게 뒤돌아 나를 찾지 않았다. 김태형의 행동이 변했다는 건 정말 뼈저리게 느껴졌지만, 아무 사이 아닌 입장이라 서운해하기도 뭐했다
아니, 사실 어쩌면 이게 원래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그냥 지구를 도는 달처럼 너를 바라보기만 하던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갈 뿐이야. 그냥 잠깐동안 달콤했던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자. 아주, 아주 달콤한 꿈.
/
다시 돌아온 중간고사 시즌, 내가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실기를 위해 점심 급식을 먹고 하교하거나 여유가 있는 날은 7교시까지 학교에 붙어있던 예전과 달리, 점심을 먹기 전에 조퇴하는 날도 하나둘 늘어가기만 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선 당연한 거긴 했지만... 막상 부딛혀보니 현실은 생각보다 더 슬펐다.
학교에 오래 있어야 대학에 가는 김태형과, 학교에 적게 있어야 대학에 가는 나. 아깝다. 아까워 죽겠어. 졸업해서 더 못보기 전에 김태형 많이많이 봐야하는데. 김태형을 좋아하기 전에 그려왔던 신나는 조퇴는 온데간데 없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김태형의 얼굴에 매번 조퇴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렇게 다가온 중간고사의 첫 날, 나의 첫 실기 일정과 겹쳐서 공결 처리를 하고 시험을 보지 못한 채 학교에 빠져야만 했다. 분명 맞게 수험장으로 가고있는 중이었지만, 기분이 자꾸만 이상했다. 항상 학교에서 교복을 입고 펜을 놀리던 시간에 낯선 옷과 구두를 신고 지하철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있어서는 안될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실기를 마쳤다. 반갑게 맞아주는 엄마의 잘 봤냐는 물음에 대충 웃으며 대답하곤 꺼두었던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아... 와중에 뜬금없이 김태형 보고싶다.
■ 박지민 : 나는 기둥찍고 잤음 ㅋㅋㅋㅋ 방금 전
■ 박지민 : 수고했어 방금 전
■ 박지민 : 너 오늘 실기지 1분 전
■ 엄마 아들 : ㅅㄱ 13분 전
■ 엄마 아들 : 아 실기도 잘 하고 오셈 12분 전
■ 엄마 아들 : 올 때 붕어빵 좀 사와 슈크림으로 12분 전
■ 엄마 아들 : 야 12분 전
■ 윤가인 : 헉 실기구나 실기 잘 보고 와! 화이팅 ㅎㅎ 19분 전
■ 윤가인 : 여주야! 오늘 학교 왜 안 왔어? 22분 전
■ 은슈 : 떨지말고! 1시간 전
■ 은슈 : 잘하고와 1시간 전
■ 은슈 : 말럽 여쥬킴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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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태 : 아 맞다 실기 잘 봤어? 1시간 전
■ 김태태 : 혹시 화학 필기 있냠 1시간 전
데이터를 켜자마자 쏟아지는 연락들에 새삼 괜찮게 살아왔구나, 하며 뿌듯해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카톡, 문자, 페메... 다양하게도 왔다. 박지민, 동생, 반장, 절친을 지나니 갑자기 눈에 채이는 보고싶었던 이름에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내 실기 날은 어떻게 안 건지. 본론은 필기를 빌리려는 용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게 내용은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네 이름 석 자가 얼마나 설레이고 반가웠는지, 넌 알까.
확실히 말투가 예전보다는 딱딱해진듯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아직 완벽히 끝내지 않아서 집에 들어간 다음에 마무리 하고 보내주겠다고 대답했다. 빠르게 귀가해 노트를 펼친 뒤 펜을 들었다. 이 정도면 오늘 안에 끝낼 수 있겠지.
/
실기에 시험공부까지, 여러모로 피곤한 하루였다. 드디어 정리를 끝내고 기지개를 한 번 켠 다음, 사진 전송을 위해 공부한다고 엎어놓았던 핸드폰을 무심코 확인했다가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해놓고는 기다리다 지루했는지 띄엄띄엄 보내놓은 카톡들이 눈에 띄었다.
여튼 그래서 좀 늦어 괜찮?
김태태
당근이지
김태태
이번에 범위 저번보다 넓어? 오후 10:34
김태태
주무시나요? 오후 11:12
얘는 뭘 믿고 이렇게 자꾸 이렇게 귀엽지, 사람 곤란하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말풍선만 가득한 대화창에 사진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고맙다며 이모티콘을 김태형에게 고마우면 매점 쏘라며 농담을 쳤는데, 현금이 없다고 고민하던 김태형은 매점 대신 기프티콘을 쐈다.
김태태
센스 쩐다 ㅇㅈ?
그리고 그놈의 센스는 다 얼어죽었던 것이 분명하다.
기프티콘도 너무 고맙고 좋지만, 그냥 예전처럼 너랑 단 둘이 매점 다녀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정신없이 실기를 보러 다니고 수시가 겨우 끝나자,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져가는 모습을 보니 함부로 잘 되고 있냔 말도 건네기 조심스러웠다. 매점은 수능반에 있는 친구랑 허구한 날 가는 것 같더니 왜 자꾸 살이 쪽쪽 빠진담. 하루하루가 흘러가다가 결국 D-1, 얼핏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나는 김태형과 같은 학교에 배정된 모양이었다. 수능날에도 얼굴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해야하나, 수능날에도 김태형 생각에 심란할 것 같아서 망했다고 해야하나.
지금껏 봐왔던 모습 중 가장 날렵한 턱선을 선보이던 수능 당일 아침에 얼굴에 '나 긴장했어요'를 써붙인 김태형에게 무작정 다가가 쪽지 5개를 쥐어줬다. 뭐냐면서 펼쳐보려는 너를 제지하고 그냥 매 쉬는시간마다 숫자 맞춰서 열어보라고 했다. 시험 잘 봐. 심플한 응원에 너도. 하는 만만찮게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배치된 고사장으로 들어와 앉아있다가 드르륵 열리는 교실문에서 선생님이 들고 들어오는 시험지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잘 보자. 너도 나도. 둘 다가 안된다면, 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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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나고 만난 김태형에게 잘 봤냐고 물어보는 눈치없는 행동은 않았다. 한결 가벼워보이는 표정에 그냥 수고했다고 웃어보였다. 교문이라도 같이 나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기대를 했으나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까지 살뜰히 챙기고 사람들 사이로 묻혀 사라지는 모습만이 눈에 들어찼다. 음... 잘 본 것 같으니까, 그걸로 됐지 뭐.
각자 친구들이랑 따로 놀던 우리는 다저녁에 우연히 만났다. 어색하던 것도 잠시, 같이 갈까? 하는 물음에 목도리를 동여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도 맨날 가는 곳이 달라서 한 번도 같이 걸어보지 못한 곳을 드디어 걸어보는구나. 집으로 가는 길엔 여러개의 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우리 둘 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 말 없이 못본 척 지나치며 걸었다. 아침부터 3사의 뉴스들이 역대급 한파라며 앞다투어 보도했을 정도로 추운 날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순간만은 그렇게 춥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걸으며 둘 다 양 볼과 코, 그리고 귀가 새빨개졌지만, 별 대수가 아니라는듯 우리는 꿋꿋히 실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길을 걸었다.
“ 크흥, 콧물 나온다. “
“ 휴지 줄까? “
“ 어... 괜찮아. “
“ 그냥 써. “
“ ㅋㅋㅋ 땡큐 “
비염이 있어 훌쩍거리던 김태형이 생각나 언젠가부터 들고다녔던 티슈가 드디어 빛을 보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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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마다 가로수 조명이 있어서 나름 운치있긴 했다. 날 집 앞까지 바래다준 김태형에게 오랜만에 예전의 느낌이 났던 것 같았다. 하지만 설렘을 느끼기엔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기절하듯 잠든 다음 날, 왜인지 축축 처지는 몸에 몸을 더 웅크리며 교실에 있다가 나와 비슷해보이는 김태형에게 다가가보자,
" 어, 여주야... "
음, 완전 똑같아.
“ 으으... 야 나 열 나나봐... “
“ 나도... “
첫째는 고열,
“ 나 휴지 좀. “
“ 어제 내가 너 주고 안 받았었능데. “
“ 아 맞다. 여기. “
“ 땡큐. “
“ 너 다 쓰고 나도... “
둘째는 콧물,
“ 쟤네 둘 상태가 왜 저래? “
“ 쌤, 저 보건... 엣츼! “
“ (콜록) 저두요... “
마지막으로 기침.
김태형도 나처럼 등교까진 어찌어찌 한 것 같았는데, 우린 결국 2교시를 채 넘기지 못하고 사이좋게 보건실에 칸막이 하나 두고 앓아누웠다.
3. 우리의 끝
수시에 모두 광탈한 후, 나는 대학도 못간 고삼이 감히 짝사랑을 할 수 있는가 등의 죄책감에 휩싸였다. 심지어 수능 날 같이 걸었던 김태형은 사실 신기루였던 건지 갑자기 또 무심의 끝판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대로 마음을 접어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망할 예체능... 진작에 때려치고 공부나 할 걸.
수시에 붙었으면 수능 끝나고 걷던 그 날 고백 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애석하게도 난 이렇게 정시까지 오고야 말았다. 다행히 최저를 맞추고 면접을 앞두고있는 김태형에겐 딱히 티 내려고 하진 않았다. 그냥 별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 사이 아니니까.
아니 어제 박지민 자빠지는 거 봤냐고 ㅋㅋㅋㅋ
김태태
ㅋㅋㅋ ㅇㅇ 봤어
나 진짜 너무 놀랐잖아
걔 너무 정면으로 엎어져서
김태태
ㅇㅈ... 나도 개놀람
그리고 나의 걱정은 우연히 이어진 카톡에서 현실이 되었다.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오는 것 같은 김태형의 답장을 몇 번이고 곱씹어봤다. 더 이어져봤자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넌 대답은 꼬박꼬박 해줘도 먼저 대화를 이으려고 하지는 않더라.
처음 김태형을 좋아한다고 깨달은 날부터 보건실에 누워 벽 하나를 두고 소근대다 잠들던 수능 다음 날 까지의 기억들이 머리 속을 계속해서 헤집어놓았다. 정말 나 혼자만의 감정이었을까, 그간 유난히 자주 마주치는 것 같았던 눈동자는 그저 내 착각이었을까. 수없이 떠오르는 각각의 김태형을 애써 떨쳐내며 나는 정시에 열중했다. 나쁜놈, 이유라도 알려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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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정시를 준비하던 와중 어쩌다 여유가 생긴 날, 나는 연습실이 아닌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정리를 할 거면 깔끔히 하자는 다짐을 하고 생각 정리를 위해 혼자 집 근처 카페에 앉아 궁상을 떨며 빈 노트에 동그란 너의 뒷통수를 끄적거리며 어떻게 하면 김태형 생각을 그만할 수 있을까, 어떻게 김태형을 그만 좋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와중에도 김태형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기어나와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답답한 마음에 테이블 위에 놓인 민트초코 라떼를 쭉 들이킬 즈음,
딸랑.
정말로 김태형이 왔다.
“ ...어? “
“ 아... “
“ 아, 안녕. “
“ ... 안녕. “
한껏 어색한 몸짓과 표정으로,
“ 너 왜 안들어... 여주? “
반장을 데리고.
첫 화부터 초록글이라니요 ;ㅁ;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도 너무너무 감사해요 엉엉
2018.11.11
: 망개찜니, 키딩미, 깜비, 17, 라벤더허브, 미대누나, 현, 라온하제, 주디, 얍, 1101, 1013, 미피, 홀롤로, 단델, 카루시파, 욤, 뀨잉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 만약 제가 빠트린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혼내주세요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머리박)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