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장면을 그저 멍하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정진영은 살짝 고개를 돌려 나에게 웃어보였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그 머리핀의 주인은 내가 아니였다.
습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혔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시원하게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마저도 바보같은년, 그렇게 우롱하는것만 같았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불청객이었던 나는 그 순간을 담아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가지 않는 시간을 탓할뿐이였다.
집에 가는 길, 어색해진 공기를 참지못한 정진영이 건네는 농담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조차 없었다.
더러운 생각들이 머리속을 가득 메웠고, 착각을 한건 나였음을 확실히 알고 있는데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탓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공기가 눌러오는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여름 진짜 싫다."
여름을 핑계로 설레이던 그 감정이 산산조각이 나 나를 찔렀다.
아무런 생각없이 중얼거리며 더러워진 실내화로 흙바닥을 푹푹 찼다.
작은 목소리도 들었던것인지 아니면 조용한 골목 때문에 잘 들린건지, 정진영은 나에게 왜? 라며 반문했지만 나는 입을 떼지 않고 정진영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라도 하면 바닥난 내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켜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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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김소정과 정진영은 사귀었다. 친구들의 축하 속에서 나는 아무말도 할 수없었다.
김소정의 머리에는 그 때 그 머리핀이 꽂혀져 있었고, 김소정과의 기념일에도 정진영은 더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때로부터 10년 정도 지났나. 아, 괜히 이런거 복구시켜가지고는.
사진폴더를 휴지통 안으로 드래그했다.
안그래도 답답한 집안, 창문까지 열어놓지말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힘입어 열어놓은 창 안으로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펄럭이는 커튼 틈새로 고등학생들이 보였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대화내용은 잘 들리질 않았지만, 투닥이다가도 웃으며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야자가 이렇게 늦게 끝났었나. 나땐 야자도 좀 째고 놀러다녔던 것 같은데.
문득 바라본 꺼진 모니터 화면에 나도 모르게 미소짓고있는 내 모습이 비추었다.
한동안 멍하니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나는 모니터를 키고 휴지통을 눌러 폴더를 복구시켰다.
스크롤을 내리던 도중, 한 사진이 눈에 박혔다.
아무의미 없는 영어와 숫자로 나열되있던 사진 이름을 수정했다.
'20xx년의 여름'
사진 속의 나는 여태껏 내가 본 내 모습 중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고있었다.
사담 |
감사합니다. :)
전에 투표해주신거 참고해서 차기작 구상중입니다. 자세한건 아직 모르겠지만 중~단편이라고 보시면 될 것같아요! 조각글 몇개도 완성해야하고, 해야할 일이 참 산더미네요ㅋㅋㅋ 암호닉분들, 읽어주신분들 전부 감사드려요! 댓글 달고 포인트 돌려받으세요(찡긋) 쓰고 보니깐 분량이 생각보다 많이 적어서 포인트걸기에 양심이 쿡쿡찔려요.ㅠㅠ
+ ) 간간히 글 수정중입니다. 문맥이랑 맞지않는 말부터 맞춤법 오류까지 제대로 쓴게 하나도 없네요. 앞으로는 절대 밤을 샌 후에 쓰지않는걸로..ㅁ7ㅁ8
마지막 숨겨져있는 글은 작은 번외? 외전? 입니다. 사실 10여년 전과 다른 진영이의 행동이 포인트인데 그게 잘 안드러난것같아 조금 마음에 걸려요..ㅋㅋㅋ |
외전인듯 외전아닌 외전같은 너
어쩌면 너에게도 그때의 여름은, |
[너 진짜 안볼거야?]
[야 니네 몇년친구였는데. 내가 다 답답하다.]
[아 몰라. 니가 답 안해서 그냥 알려줬다. 내 탓하지마.]
한숨을 쉬며 너는 휴대폰 전원을 껐어. 동창회랑 그놈의 술이 화근이지. 왜 하필 들켜도 얘야. 중얼거리며 친구의 말에 설득당해 동창회에 간 너 자신을 탓하다, 사장님의 잔소리에 테이블을 다시 닦는 너야. 카페아르바이트는 마냥 시원하고, 여름의 햇빛에서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일 것 같다는 너의 환상을 깰 정도로 그냥 막노동이였고, 너는 녹초가 되어 사장님의 눈치를 슬금슬금 봐가며 자리에 앉아.
맑은 종소리와 함께 열기가 카페안으로 들어왔고, 너는 손님이 들어왔다는 걸 눈치 채고 얼른 인사를 건네.
"안녕하세요."
동네커피전문점인데 인사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사장님이 토해냈던 열띤 언변에 의하면 이런 서비스 업종은 립서비스가 중요하다나 뭐라나. 허리까지 굽혀가며 인사하던 너는 고개를 들고, 한참동안 인상을 찌푸려.
내가 지금 환상을 보는건가. 사막에서는 오아시스의 환영도 나타난다던데, 너무 더워서 정신줄을 놨나. 이런저런 생각이 한순간에 너의 머리속에 돌아다니고, 그 생각에 따라 계속 표정이 바뀌어. 그런 너를 보던 손님은 웃음을 터뜨려.
"아이스모카 하나주세요."
약간은 굵어졌다 싶은 목소리에, 키도 좀 더 큰것같고. 그거 말고는 변함없는 진영의 모습이였어. 진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너는 고개를 끄덕이다 커피를 빠르게 서빙해. 쭈뼛거리며 쟁반에 있는 아이스모카라떼를 놓고 주방으로 사라지려는 너를 진영의 손이 붙잡았고, 너는 당황해 굳은표정으로 진영을 봤어.
"앉을래?"
진영은 너의 팔을 살짝 잡아 의자쪽으로 당겼고, 너는 고개를 끄덕이다 진영의 맞은편에 앉아. 갑작스럽게 온걸 보니 정말 알려준게 맞구나, 라고 생각하던 너는 진영을 이리저리 살펴. 고등학생때와는 다르게 염색도하고, 스타일도 좀 달라지고. 살도 더 빠진것같고. 추억속에 살던 진영이 눈 앞에 다시 나타나니 신기하기도하고, 사실 넌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았어. 너와 마주앉아 이런저런얘기를 꺼내는 진영을 보고서야 너는 정말 정진영이구나, 라는 생각을 말로까지 내뱉고, 그걸 들은 진영은 10여년 전과 같게 반응했지. 다른사람들이 본다면 십년동안 떨어져있을 친구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투닥이는 너희였어. 한참을 별거아닌 얘기로 떠들다, 진영은 쟁반에 있던 시럽을 커피에 잔뜩 뿌려. 앉은 자리에 햇빛이 내려앉았고, 하필이면 이자리에 앉았냐며 투덜대는 너의 목소리에 진영이 살짝 웃었어.
"아직도 여름 싫어해?"
잠시 생각하던 너는 10년도 전의 일을 기억하는 진영의 말에 놀라, 진영을 쳐다봤어. 커피를 쪽쪽 빨며 저가 한 질문인데도 약간은 긴장하고있는 진영의 모습에 너는 눈을 맞추며 웃었어.
"아니,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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