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about you |
여름이라지만 차가운 밤공기에 몸이 떨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해가 지기 전부터 시작된 기다림은 자정이 넘을 때까지 계속 되고 있었다. 밤 10시를 넘길 때부터 점점 차오르기 시작하던 화는 걱정으로 바뀌어갔다. 혹여나 인적이 드문 골목을 지나다 험한 일을 당한 것은 아닌 지, 질 나쁜 친구들과 다니며 유흥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 지. 머릿속은 성열에 대한 걱정들로 가득했다. 후. 짧게 내쉰 한숨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오래 기다리고 서있던 탓에 다리가 저려왔다. 하지만 그 정도쯤은 제게 일도 아니었다. 해를 보내고, 달과 별을 맞이하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성열을 만나면 건네야 하는 인사말 때문에.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자신을 피하지 않을지에 대해. 그리고 어색하지 않게 인사를 하며, 예전의 이성열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간단하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기엔 왠지 모르게 우스웠다. 제 성미에 어울리지 않기도 했고. 1주일동안 연락 한 번 없이 잠적한 알바생에게 사장이 할 인사는 아니지 않을까. “ 많이 늦네. ” 시계를 들여다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거면 아예 늦었으면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성열에게 할 말이 정리 되지 않은 탓이 컸다. 서로 뒤엉킨 말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며 정리를 하던 와중에 단정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타박타박. 평소와는 달리 힘이 빠진 듯 힘없는 발자국 소리에 숨을 죽였다. 아무런 의심 없이 가방에서 열쇠를 찾는 모습에 힘이 빠졌다. 들킬까 싶어 숨어있던 제 자신이 한심했다. 들으란 식으로 헛기침을 해도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은 보이지도 않는 듯, 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는 성열에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 어디 다녀와. ” “ ……. ” “ 이제 나랑 말 안 하려고? ” “ ……. ” “ 이성열. ” 움찔. 성열의 몸이 흠칫 떨렸다. 하지만 등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성열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반응하는 모습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 우리 강아지. 어디 다녀와. ” 그 부름에 현관문을 잡고 있던 성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강아지라 불렀고, 성열이라 불렀기에.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단 생각에 다시 한 번 성열의 이름을 부르자, 감정을 누르고 있는 듯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상관이세요. ” 그 대답에 놀란 것은 자신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평소의 애교 많던 자신의 강아지가 아니었기에. 놀라움을 감추며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일인 걸까. 성열이 전부터 이야기하던 친구와 싸운 것은 아닌지. 저번처럼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투정을 받아줄 수 있었고, 기분을 좋게 해줄 수 있었다. 그러니 조금 전처럼 자신이 다가가지 못하게끔 벽을 쌓는 말만 하지 않았으면 했다. “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성열아? ” 다시 한 번 놀란 것은 자신이었다. 성열의 팔을 잡으며 다정스레 물은 그 말에 현관문만 바라보던 얼굴이 자신을 향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자신이 예상하던 것이 아니었다. 실망스럽다는 표정의 성열. 한동안 제 얼굴만 빤히 바라보던 성열의 얼굴이 푹 숙여졌다. 그리고 이내 어깨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 떨림이 울음에 의한 떨림이란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난데없이 눈물부터 터트리는 성열로 인해 놀라며 제 품에 안아 다독였다. 여렸지만 누구보다 씩씩했던 성열의 눈물에 온몸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우는 걸 보여주는 것이 싫은 건지, 안겨 있는 것이 싫은 건지 성열의 몸부림은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간간히 울음 섞인 목소리로 놓으라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말에 놓아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의 틈 사이에 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러면 지치는 것은 성열일 텐데, 가만히 있지 않는 성열로 인해 속이 상했다. 그에 안은 팔에 힘을 주며 속삭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 나 필요 없다면서요. ” “ 뭐? ” 하.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성열을 안고 있던 팔에서 힘이 풀렸다. 그에 기다렸다는 듯 빠져나간 성열이 교복 소매로 눈가를 북북 닦았다. 저러면 피부가 다칠 텐데. “ 필요 없다고 가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꺼져줬는데 왜 또 찾아오고 그래요? ” “ 가게는…. ” 요놈의 입이 방정이지. 분위기가 심각하지만 않았더라면 망설임 없이 제 입술을 때렸을 거다. 그 대답에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짓는 성열을 보며 한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본인도 기가 찬데, 성열이라고 그렇지 않을까.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명수를 물끄러미 바라본 성열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정하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비수 꽂을 말을 하고서. “ 고작 그 말 하려고 찾아왔어요? 진짜 미워죽겠어. ” 밉다는 그 말이 왜 이리도 아프게 들리는 건지. 씁쓸하게 웃으며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봤다. All about you 석식도 먹지 않고 우현과 함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교문을 향해 걸었다. 자신이 어딘가에 치일 것 같았는지, 제 팔을 쥔 우현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운동장에서 장애물이 될만 한 것이 뭐가 있겠냐만. “ 이성열. 너 무슨 일 있었냐? ” 그도 그렇게 말할 것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우현을 보고도 웃음은커녕 짜증조차 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귀엽게 받아쳤을 장난도 전부 다 귀찮았고 또 귀찮았다. 그저 귀를 틀어막고 갇힌 곳에서 생활하고 싶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매 시간마다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주된 이야기 거리가 되었을까. 선생님들의 평소와 같은 농담에도 웃지 않고 가만히 쳐다만 보자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반복되면 될수록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분명 우현이었으리라. 갑작스러운 모습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온갖 이상한 짓을 하는 우현의 행동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이렇게 있어야하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 보면 보기 좋게 뻥- 차인 것이니 그 후유증이라고 말하고 넘기면 됐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차였다는 그 사실을. 괜히 청승맞아 보이는 제 모습에 혀를 차며 마음을 다잡았다. 중식을 먹고 난 뒤,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자 눈에 띄게 좋아하는 우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걱정 많이 했네. 감동이 밀려와 괜히 툴툴거렸지만 그것도 좋다는 듯, 우현은 웃으며 받아칠 뿐이었다. 우현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도 마음 한 편은 무거웠다. 자신의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마음을 밝게 바꾸려니 꽤나 힘이 들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으니까. 미리 어른의 아픔을 맛보았다 생각하자. “ 나 살 거 있는 데 같이…아, 오늘도 알바 가냐? 누구한테 가자고 하지. ” “ 나랑 가. 왜 딴 애랑 가? ” “ 너 알바는? ” “ 잘렸어. ” “ 뭐?! ” 진심으로 놀란 듯, 우현이 소리를 빽 질렀다. 그에 화들짝 놀라며 우현을 흘기자, 미안하다는 듯 바보 같이 웃어보였다. “ 네 사장이 나가래? ” “ 뭐. 나 필요 없다고 해서 그냥 뭐. 몰라. 따라가 줄 테니까 떡볶이 쏠 거지? ” 그걸 말이라고. 튀김도 산다! 기분이 좋아져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술에 취한 사람마냥 덩실덩실 춤을 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의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누군지 맞출 수가 있어서. 코앞까지 와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향기가 훅 끼쳤다. 운동장 풀만 바라보는 자신의 옆구리를 우현이 쿡쿡 찔렀다. “ 야야. ” “ 아파. 찌르지 마. ” 우현은 바라봤지만 그가 있는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말이 맞았다. 마치 제 앞에 아무도 없다는 듯 행동하며 우현을 이끌었다. “ 나무. 가자. ” “ 어, 어? ” “ 아, 뭐해! 나 배고파! ” 자신의 힘에 못 이겨 결국 끌려오던 우현이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저를 바라봤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지. 김명수만 보면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방방 뛰어다니던 게 딱 1주일 전이었으니까. 두 눈 가득 하트를 담고 이야기하던 이성열이 김명수를 반기기는커녕 아는 척도 하지 않으니 궁금할 만도 했다. 그냥 집으로 간다고 할까. 떡볶이를 먹으며 추궁당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집으로 간다고 했다간 한동안 붙잡혀 살 것이 분명했기에 그러지도 못했다. “ 저기 네 사장 아니냐? ” “ 알게 뭐야. ” 아, 안 갈 거야?! 자꾸만 뒤를 돌아보던 우현은 성열의 짜증에 놀라며 황급히 달려갔다. 성열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명수도 명수였지만, 표정이 좋지 않은 제 친구가 먼저였다. 성열이 간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다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온 것을 알았음에도 모른 척 하는 성열을 붙잡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성열에게 미안했다. 모두 다 생각이 났다. 성열이 자신에게 밉다고 한 계기가 된 일이. 분명 자신이 한 말에는 진실과 거짓이 존재했다. 그 사이에 오해라는 아이도 있을 것이 분명했고, 그것을 풀어줘야 했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자신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성열은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모든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상. 때는 10일 전, 카페 회식 때였다. 알바생들과 회포를 푸는 자리를 만드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말만 번지르르 하게 회식일 뿐, 촛불 없는 촛불의식이 따로 없었다. 안주가 될 만한 것들을 카페로 배달시키고, 술은 직접 사러가지 않아도 제 방 냉장고에 가득했다.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사이에는 성열이 있었다. 막내답게 분위기를 살리며 형, 누나들에게 예쁨을 받았다. 스스럼없이 웃으며 말을 잘 듣는 것이 예쁘다던가. 강아지마냥 꼬리를 흔드는 것 같아 보이는 모습에 픽 웃었다. 강아지라. 강아지란 단어는 성열에게 꽤나 어울렸다. 그랬기에 자신도 성열이란 이름보단 강아지라는 말을 가장 많이 썼고. 그 때, 성열의 어깨에 팔을 얹는 알바생의 모습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누가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술을 입안으로 날랐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재미있을 때 쯤, 한두 명씩 자리에서 뜨기 시작했다. 막차를 놓쳤다간 택시비가 어마어마한 알바생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알바생들이 다 가고 남은 것은 가까이 사는 성열과 명수뿐이었다. 명수 자신마저도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사장님. 사장님. ” 여태껏 함께 먹었던 것을 다 치운 성열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자신이 아끼는 성열의 부름에 조금 전 나른했던 기분이 전부 날아갔다. 아주 멀쩡해졌다. 헌데 자신은 그것이 더 불안했다. 사장님, 집에 가요. 하지만 그런 성열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그런 제 행동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성열이 제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냥 가도 되는데. 제 마음과는 다르게 성열이 자신을 부축을 하기 위해 손을 뻗던 찰나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손을 세게 뿌리치며 말했다. “ 너…됐어. 필요 없어. 그만 가. ” 여기서 어긋난 것이 분명했다. 성열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앞뒤 다 잘라먹은 제 말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 금세 사과를 남기고는 카페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 성열을 카페에서 볼 수 없었고. 성열은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이 있었다. 정말 성열이 필요 없어서 내친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떻게 하면 우리 강아지 잘 구슬려서 한 입에 삼킬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자신이었다. 울상을 지으면 안아주고 싶고, 방방 뛰며 좋아하면 또 안아주고 싶었다. 옆에 와서 칭찬해달라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 그 땐, 진하게 키스를 해주고 싶을 정도로 성열을 원했다. 그런 자신이 술기운에 성열을 다치게 할까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물론 마음에서 끓어 넘치는 욕정이란 걸 억누르기 위해 다소 거친 말을 하긴 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어떻게 해야 성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아무리 웃으며 이름을 불러도 마주 웃어줄 것 같진 않았기에. 돌아가는 길, 자꾸만 성열의 표정이 생각나서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다. * * * 이로써 벌써 열 번째였다. 성열에게서 퇴짜를 맞은 횟수가 열 번. 만약 조금 뒤 퇴짜를 맞게 된다면 열 한 번이 될 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찾아갈 때마다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해명할 기회는커녕 인사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옆에 있던 성열의 친구가 너무하다고 했을까. 하지만 그런 싸늘한 반응에 포기를 할 것이었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기가 죽긴 했지만, 의지만은 여전히 불타올랐다. 그리고 며칠 전, 정신을 확실하게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 왔었다. 오해를 풀 시간은 없었지만, 몇 마디정도는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 그만 좀 오세요. ’ ‘ 응. ’ ‘ ……. ’ ‘ 이라고 하고 안 오면 네 맘이 편해? 불편할 텐데. ’ 하지만 성열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체념이라도 한 사람마냥. 그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 응이라고 해보시던지. 날아다닐 정도로 기뻐해드릴 테니까. ’ 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힌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 알고 있다면 지금보다 더 할 테지만. 할 말 없으시면 가볼게요.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성열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저 멀리 가 있었다. 제 시선을 느낀 것인지, 성열이 작게 웃음 짓는 것이 보였다. 장족의 발전이라 해야 하나. 뿌듯함에 입 꼬리를 말아 올리려던 찰나였다. 성열의 분홍색 혀가 수줍게 인사를 하고 제 집으로 쏙 들어갔다. 이걸 다른 사람들은 메롱이라고도 하고. 놀림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내적갈등을 심각하게 겪었다. 납치해서 덮쳐버리고 책임진다고 할까 하는. 내적갈등을 잘 극복한 뒤로 장기계획을 세웠다. 약 3주간 성열의 뒤를 조심스럽게 밟으며 동선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성열이 들리는 편의점, 그리고 주로 사서 나오는 것들까지도. 그런 제 계획에 찬사를 보내며 성열이 꼭 지나야만 하는 골목 어귀에 차를 멈춰 세웠다. 지금으로부터 15분 후에 성열이 이 골목으로 들어올 것이었다. 3주 동안 단 두 번을 제외하고는 전부 들어맞았다. 오늘도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좀, 위험하려나. ” 시동을 끄고 들어선 골목은 가로등 하나 없는 매우 캄캄한 곳이었다. 인적마저 드물어서 범죄가 일어나도 쉽사리 알 수 없을 정도로 위험했다. 이런 곳을 자신이 미행하지 않을 때에도 혼자 다녔단 걸 생각하니 괜히 소름이 돋았다. 여태껏 아무 일 없이 지낸 것이 감사하다 느낄 정도로 음산하기까지 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서있을 때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단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하고 시계를 봤을 땐, 이미 20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 이성열. ” 부름에 흠칫 놀란 성열의 발걸음이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를 돌아 골목을 빠져나가려는 성열의 발목을 붙잡았다. “ 오늘도 나 놀리고 갈 셈인가. 아니면 말을 안 할 건가? ” 그 말을 하며 재빠르게 성열의 앞에 마주 섰다. 혹시 모를 도망에 대비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물음에도 성열은 전과 같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그 시선을 묵묵히 받아내다 결국 한계점에 도달했다.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그럼 어쩔 수 없지. ”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성열의 팔을 세게 붙들고는 차로 이끌었다. 성열이 혼자 다니기에는 위험했지만, 자신이 납치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납치라고 하기에는 꽤나 많은 모순이 있었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성열이 자신보다 힘이 약하다는 것. 발버둥을 치고 소리를 꽥꽥 질렀지만 내다보는 사람 하나 없었을 뿐 더러, 제 몸에서 힘만 쭉쭉 빠져나가고 있었다. 금세 지친 성열을 보조석에 앉히고는 재빨리 운전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순식간에 차에 태워진 성열은 정신이 나간 사람마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차는 출발한 뒤였다. “ 뭐하는 짓이에요! ” “ 납치하는 짓. ” “ 나 뛰어내릴 거예요. ” 그 말에 코웃음 쳤다. 자신이 잘 아는 성열은 제 몸에 상처 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런 성열이 차에서 뛰어내리는 건 불가능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 문이라도 열 수 있으면 해보시던지. ” 운전석에서 잠금을 풀지 않으면 성열 또한 내릴 수가 없었다. 그 말에 난리를 부리며 힘을 빼던 성열이 순간 잠잠해졌다. 갑작스런 행동에 성열을 힐끔 쳐다보자, 하얀 강아지 같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힐끔거리는 것도 잠시,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제 집으로 데려간 후에 그 근심을 덜어주고 없애주어도 충분할 테니까.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 위를 마찬가지로 달리고 있던 중에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덥석- 다짜고짜 운전하는 오른팔을 꽉 쥐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지 않았다면 어디에 가서 박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놀랐다. 살짝 찌푸려지는 미간을 바로하고 성열에게 한마디 하려던 찰나였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살짝은 떨리는 성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아직도 눈치 못 채다니. 쯧. 혀를 차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 좋으니까. ” “ …에? ” “ 보고 싶어서 그냥 집에 가둬두려고. ” “ ……. ” “ 이렇게라도 안하면 안 봐줄 거니까. 더 듣고 싶어? ” 눈을 마주해오는 명수를 보며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역시 애는 애네. 솔직한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잔뜩 얼어있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멍한 얼굴을 한 성열을 보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자신의 팔을 놓지 않고 꽉 쥐고 있는 것은 꽤나 곤란했다. 이 상태로 집까지 갈 것인지, 성열에게 놓으라고 말을 할 것인지 잠시 생각했다. 아주 잠시. 정신이 든 듯 정면을 향하던 성열의 시선이 제 자리 창문 밖 세상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에 시익 웃으며 성열이 잡고 있는 제 팔을 힐끔 쳐다봤다. “ 덮치고 싶으니까 이 팔 놓지. ” 그 말에 1초도 되지 않아 떨어져나가는 손을 보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삼켰다. * * * 성열이 마실 코코아와 자신이 마실 커피를 양손에 들고는 거실을 몰래 염탐했다. 불편하기라도 한 듯,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있는 모습에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무섭겠지. 자신에게 다정하게 해주던 사람이 엄한 말을 뱉었으니. 자신이었으면 더한 반응이었으리라. “ 자, 마셔. ” 어정쩡하게 잔을 받아든 손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렇게 무서웠나. 혀를 차며 성열을 조용히 훑었다. 다행히 험하게 놀고 온 흔적은 어딜 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매사에 냉정하던 자신도 성열의 앞에서는 백지장마냥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갔다. 그런 자신을 알면 성열은 지금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귀엽게 웃을까. 귀엽게 웃는 모습을 못 본 지도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봤던 웃음이라곤 우현이란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 “ 참, 우현이란 애랑 많이 친하지? ” “ 나무요? 친하죠. 왜요? ” “ 딱 그만큼만 친하라고. ” 뭔 소리래.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린 것인지, 성열이 중얼거리기 바빴다. 하지만 그 말을 정정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면 손이 떨릴 정도로 질투가 났고 질투가 났으니. 자신도 놀랐다. 제 내면에 이런 집착과 질투가 있을 줄은 몰랐기에. “ 일단은 지켜줄게. ” 일단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라 했지만,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하지만 이 약속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 같은 것이었다. “ 그러니까 딱 그만큼만 친하게 지내. ” “ 왜요? ” “ 나 질투 심해. 당장이라도 덮쳐지고 싶으면 그러던지. ” 벙 찐 표정이 꽤나 볼만 했다. 성열을 보고 있으면 심심하지가 않았다. 워낙 다양한 표정들을 짓기에 심심할 수가 없었다. 기회만 된다면 몰래몰래 찍어서 표정 이름까지 지어주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아직도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지, 입만 벙긋거리는 모습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 너 나 좋아하잖아. 나도 너 좋아하고. ” “ ……무슨. ” “ 그러니까 지금부터 사귀는 거야. ” “ ……헐. ” 헐은 무슨. 픽 웃으며 성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3주 동안 성열의 뒤를 밟으면서 듣는 것들은 꽤나 흥미로웠다. 한 번씩 질투심이 고개를 들만큼 손 떨리는 말을 할 때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질투심 때문에 호기심을 포기하기엔 무척이나 아쉬웠다. 3주간 미행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운 좋게 얻어걸린 말이었다. ‘ 나 사실 사장님이 너무 보고 싶긴 한데…아, 몰라. ’ ‘ 보러 가면 되잖아. ’ ‘ 넌 몰라. ’ ‘ 내가 뭘 모르는데? 너보단 많이 알 걸? ’ ‘ 아씨. 그게 아니라…떨린단 말이야. ’ 성열과 우현이 자리에서 뜬 후에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고 매만지기도 했고, 꿈을 아닐까 볼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3주간의 계획이고 뭐고 당장이라도 제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 성열은 자신이 그 말을 들은 걸 모르겠지. 몰라야만 했다.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한 시위가 시작될 지도. 아직도 말도 안 된다는 듯, 헐이란 말만 내뱉는 성열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붙잡으며 끄덕이게끔 했다. “ 어쭈. 목에 힘 안 풀지? ” “ 싫어요. ” “ 싫어? 그럼 뭐 하는 수 없지. ” 머리에서 손을 떼자마자 시무룩해지는 표정을 보며 속으로 크게 웃었다. 대놓고 웃고는 싶었으나 이 여린 자신만의 강아지가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머리를 감쌌던 손을 다시 들어 두 볼을 감싸 쥐었다. 그간 마음고생을 해서인지 통통했던 볼에 살이 빠져있었다. 말랑말랑 해서 기분 좋았던 볼살을 위해 고칼로리의 음식을 많이 먹여야겠다고 다짐했다. 뭐하시게요. 성열의 두 눈이 저를 향해 물었다. 두 볼이 눌린 입술은 붕어 입 마냥 툭 튀어나와있었다. 그 입술에 시선을 두며 다시 한 번 웃었다. 귀엽네. 진짜 귀엽네. 쪽- “ 으?! ” 쪽- “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겠네. ” 성열은 능청스러운 명수의 말에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 카페는 분주했다. 성열이 다시 돌아온 뒤로 발길이 뚝 끊겼던 단골들이 들이닥쳤기 때문에. 단골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성열을 바라보던 명수의 미간이 좁혀졌다. 주변에 있던 알바생들이 혀를 차며 흉을 봤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눈웃음을 짓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볼 때면 심사가 뒤틀렸다. “ 강아지. 이리와. ” 저렇게 부른다고 해서 올까. 하지만 그건 성열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 이름이 불리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뜬 성열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쪼르르 달려가는 모습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제 사장이나 막내나 똑같은 인간이라고 자신들끼리 속닥였다. 하지만 그 누가 뭐라고 하던지 간에 둘은 자신들만의 세상에 푹 빠져있었다. 이곳에 카페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 누가 남한테 꼬리 흔들래. ” “ 손님이잖아. 화났어요? ” 짐짓 화난 척을 해보이자, 화들짝 놀라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했다. 애완견이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듯, 명수의 팔에 매달리는 것에 솟아오르려던 질투마저 푹 내려앉았다. “ 다음부터 그러면 혼낸다. ” “ 응. 알겠어요. ” 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성열의 등 뒤 손님들을 바라봤다. 건들지 말란 의미를 잔뜩 담은 채로. |
안녕하세요~.~ 뭘 했다고 벌써 토욜이 끝나가네요...
뭐...어제부로 여름방학이 시작된 저는 요일 개념정도는 살포시 잊어보는 걸로..
너무 갑자기 끝을 맺은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전 수류탄 투척하듯 투척하고 이만 가볼게여~
암호닉
케헹 바카루 무럭자라 규잉 구염 꾸꾸미 파비 사과맛규 감성 월백 라우 김난 렝도찡 테라규
남군 또모또모 석류 사과맛규 까또 쑥 우현성규 사모 잉피 소금 키세스 오백원 31 카카라
익명인 불맠 타라 혁거세 테라규 몽몽몽 윤얀 규지지 설륜 복자 허니 열총버섯 오일 눈누난나
쭈롱 여리 장자녀 폭연 팥 구름 데헷 국밥 테디 흥 미니쉘 연이
또 언제 나타날지 몰라용~ 다음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