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와 카라멜마끼아또
Written by.비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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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거였다. 외투에 깊게 배어있는 그의 향수냄새가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루, 이틀, …일주일 벌써 일주일이나 되었는데도 자주 입던 외투에서 나던 그의 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함께 하던 시간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일까? 일상에서도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거리를 건너도, 신호등을 건너려 멈춰선 순간에도 항상 그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봤다. 멍하게 있다가, 눈을 또렷하게 떠 그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면 그건 백현이가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 낯선 사람, 백현이가 아닌 타인이었다.
“…백현아.”
자주 가던 카페에 앉아 나지막이 백현의 이름을 불렀다.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백현의 이름에 옆 테이블의 눈치를 살폈다. 평범한 연인들의 즐거운 대화, 서로 마주보고 있는 여자와 남자. 경수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듯 했다. 경수는 제 테이블 위에 다 마셔버린 커피를 바라보다가 카운터로 갔다. grande 사이즈 리필이요. 말하고 지폐를 올려놓았다. 제 뒤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경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얼마 되지 않아 빈 잔에 커피가 채워져 나왔고, 경수는 Take out이라고 써진 곳 앞에서 커피를 받았다. 카운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메리카노 grande size하나요. 낯익은 그의 목소리에 경수는 뒤를 돌아봤다. 그럴 리가 없지. 백현은 아니었다. 들려왔던 목소리를 다시금 떠올려보면 확실하게 백현의 목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변백현은 이런 나를 알기나 할까. 차이고, 남겨진 제 자신만 이렇게 백현을 그리워하는 건가 싶어서.
뜨거운 커피를 불지도 않고 입을 뎄다가 혀를 데였다.
“아, 뜨거.”
저도 모르게 또 혼잣말을 한 경수가 머쓱해져 뒷목을 긁었다. 또 백현이 생각이 먼저났다. 한두 번 데였던 게 아니라, 백현은 그럴 때마다. 경수의 머그잔을 들고 호호- 바람소리가 겉으로 들릴 정도로 세심하게 불어주곤 했었다. 일상 속에 배어있는 변백현과의 추억 하나하나에 가슴이 저며 왔다. 보고 싶다. 미치도록 그리운 그의 이름을 되뇌며 핸드폰에서 그의 번호를 찾아내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전화번호입니다.
역시나 예상했던 바가 맞았다. 백현은 다시 되돌아올 일말의 가능성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백현의 집은 비어있었고, 또 어제까지만 해도 이번호는 수신정지였다. 모든 걸 다 바꾸어버릴 정도로 그렇게 내가 싫었니? 갑작스레 떠난 너는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나를 괴롭히는데 몰두했다. 분명 변백현은 한 번도 나를 괴롭혔던 적이 없는데.
떠난 뒤에야 이렇게 괴로운 걸 보면 아마도 너는 이것조차 내게 사랑이었다고 되뇔 수 있을까?
우울함이 극에 달했다. 도저히 이대로는 혼자 카페에 앉아있을 수 없을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피가 반쯤 남아있는 채였다. 얼음을 비워내는 곳에 커피를 부어내고 뒤돌아서서 단념하듯,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멍한 시선과 힘없는 발걸음으로 밖으로 걸어 나오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햇빛에 눈이 부셨다. 잔뜩 눈을 찡그리고 눈 위에 손을 올렸다. 그늘 진 시야에 더 이상 눈이 부시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너무 밝았다. 렌즈를 껴서 그런지 눈이 시렸다. 눈에 눈물이 절로 고여, 시야가 흐릿했다.
지나가던 행인과 부딪히면서 한 방울 흘려낸 눈물에 경수는 고개를 절로 숙였다.
힘없는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집이었다. 집 가서 한 숨 자야겠다.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셔놓고 잠을 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경수는 진심으로 깨어있는 이 순간이 원망스러웠다. 자꾸만 제게 없는 백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현실에선 견딜 수 가 없었다.
잠을 자야,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울 수가 있었다.
“잠 안 오잖아….”
짜증 섞인 혼잣말을 내뱉은 경수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남자가 혼자 사는 집에 있는 거라곤 없었다. 단지, 오른쪽 마실 것을 놓는 공간에 놓여진, 캔 맥주와 소주더미.
사실 이렇게까지 사다놓진 않았는데, 백현과 마지막으로 이별했던 순간에, 혼자 마트에 들러 주류만 잔뜩 사왔다. 그 중엔 언젠가 백현과 같이 마셨던 와인도 있었다.
소주를 꺼내들어, 잔에 따랐다. 투명한 잔을 투영하듯, 무색의 액체가 일렁였다. 안주도 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아까 마셨던 커피 향과 알코올이 뒤섞였다. 금세라도 토기가 올라올 것 같았다. 그러나 몇 번을 따르고, 더 따르며 잔을 비웠다. 술버릇, 혼자 있을 땐. 그런 거 없는데. 자꾸만 예전 생각이 나서 미칠 노릇이었다. 정신이 하나 없는 멍한 상태인데, 그럼에도 또렷한 백현과의 기억에 미칠 것만 같았다.
‘경수야, 그만 마셔.’
‘아, 딱 한잔만 더.’
‘너 또 집 가서 토한다고 찡찡거리면서 전화할 거잖아.’
‘…히, 아니거든?’
술을 먹어 잔뜩 늘은 애교에 백현이 경수의 볼을 두드린다. 집에 가자. 데려다 줄게. 말하는 백현에 떼를 쓰며, 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경수를 보며 아이 다루듯 어르고 달래는 백현이 옆에 딱 붙어서 경수의 귀에 입술을 붙이고 귓속말을 했다.
“그럼 우리 집 갈래?”
“싫어, …나 피곤해.”
“그럼 집 가서 자.”
“너랑 같이 있고 싶은데….”
우리 집 가서 잠만 자자. 잠만. 타이르는 백현의 목소리에 경수가 나른해진 몸을 백현에게 기댔다. 백현이 경수의 어깨를 감싸고 일어섰다. 백현의 행동, 말투, 자상하기 그지없었던 그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날 밤, 백현의 집에서 짤막하게 나눴던 버드키스. 침대위에 누워 몇 번이나 입을 맞추다가, 자신의 등을 토닥여주는 손길에 쉽게 잠에 들었던 그 순간. 백현아, 나는 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넌 아무렇지 않니?
하긴, 내가 네게 해준 건 아무것도 없었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술잔에 톡하고 떨어지는 눈물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의 시초가 되었다.
목 놓아 울었다. 백현아, 내가 잘못했어.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서. 매일 투정만 부려서.
“흡, …으흡, 흐으, 흑.”
남아있는 술을 모조리 마신 후, 얼마나 꺽꺽거리며 울었을까. 밖이 어두워져, 부엌은 어두컴컴해져있었다. 술을 마시고 있어, 시간가는 걸 느끼지 못했었는지도 모른다. 잠을 자려했는데, 피곤해지기는커녕 울어서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왔다.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테이블에 팔을 괴었다.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도어 록 소리에 경수는 옆집이겠거니. 했는데, 제 집 가까이서 선명히 들려오는 도어 록 소리에 경수는 절로 고개를 들었다.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는데 주저앉아버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말없이 누군가가 신발을 벗고 들어온다. 엄마인가? 형인가? 아니면 백현이? 아니, 백현인 아니겠지. 일주일동안 연락도 끊고.
“…백현아.”
“…혼자 술 마셨어?”
“…흡, 백현아.”
“울지 마, 경수야….”
겨우 멈췄던 눈물이 또 한 번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한 번 흘렸던 눈물은 이토록 쉽게 흘러내렸다. 눈물샘은 마를 새가 없이 흘러내렸다.
미안해, …미안해. 등을 두드리며 안아주는 백현의 손길에 경수는 그리웠던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 날처럼. 백현의 어깨에 기대어서.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
“우리 사귀는 거, 부모님이 알았어.”
“…….”
그냥 친구라고 둘러대면서 버텨왔는데, 물증이 잡히니까 어쩔 수 없더라. 말하는 백현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어려 있었다. 당장 방 빼래. 서울 살지 말래. 그 녀석과 연락할 수단을 다 끊어버리라더라. 페이스북도 미니홈피도 핸드폰도. 다. 너무 갑작스러웠지만 이걸 전할 새도 없이, 나는 아버지의 본가에 끌려가 있었어. 당장 핸드폰을 내놓으라기에 피를 보고 싶진 않아서 바로 드렸지. 알잖아. 아버지 성격, 그리고 내가 그런 아버지의 외동인 것도.
“…회사는?”
“회사도 지방에 있는 지사로 발령받았어.”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너 이러고 있을 거 같아서. 몰래 빠져나왔어.”
돌아와서 다행이다. 안도의 한 숨, 그리고 뒤섞인 눈물, 재회의 기쁨, 모든 게 꿈처럼 느껴지는 몽롱함. 경수는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백현아, 돌아 와줘서 고마워.”
“너한테서 떠난 적도 없어….”
떠난 적도 없고, 안 떠날 거야. 잠시 못 본 거 뿐이야. 백현의 목소리에 또 한 번 울컥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에, 백현이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여, 경수의 등을 토닥였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에, 백현이 경수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우리 경수, 뚝."
다정한 그의 말에 오히려 눈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자꾸만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에, 백현의 손이 경수의 볼을 쓸어내렸다.
엄지로 볼을 쓸어내리는 반복적인 일련의 행동에 정말 백현이 옆에 있음을 실감케 했다.
“경수야, 나 서울에 오래 못 있어.”
“…다시 가?”
“금방 못 올 거야.”
“…어떡해.”
너 보고 싶어서 어떡해?
“우리는 헤어진 게 아니라, 잠시 못 보는 것뿐이야.”
그의 말에 경수가 기다릴게. 하고 대답했다. 전처럼 자주 볼 수 없더라도 백현이 떠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까. 불안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차분하게 누그러졌다.
백현이 다시 올게. 뒤돌아서는 그 순간에도 경수는 백현에게 잘 가하고 눈물 없이도 인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고 도어 록이 잠기는 소리가 날 때, 경수는 다시 한 번 울었다. 매일매일 봐왔던 백현인데, 일주일에 네 번이상은 꼭 보던 백현인데. 이틀에 한번은 꼭 봤는데. 경수에게 일주일이란 시간은 너무 가혹했다. 또 오랫동안 못 본다는 생각을 하자. 서글퍼졌다. 그보다도 가장 큰 건, 백현이를 못 믿었던 제가 미웠다. 말없이 차였다고만 생각했다. 제가 해준 것 없이 받기만해서. 그것도 연애하던 내내. 고등학생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까지.
나는 하루, 하루, 백현과 헤어졌다는 기분을 떨쳐낼 수 가 없었다. 그건 백현과 있던 일상이 너무도 익숙해졌기 때문이겠지.
너와의 재회를 꿈꾸며, 나는 오늘도 또 한 번 너와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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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면서 소름돋기는 처음이네..
도경수캐릭터-저=0...
술먹으면 집가기 싫다고 떼쓰는 것도 저.,,,
그리고.. 그럼 우리집갈래? 물어보는 건.. 세륜전남친..(백현이 캐릭터에 묻어계시네요...)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하고 전 항상 집에 돌아왔답니다..^^
야심한 밤에 그런데 가면 위험해여^^(겉으론 순수 정신적으론 음마)
무튼.. 글을 쓰면서.. 경수가 저같아서 소오름... ^^;; 심지어 잘 우는 것도 닮았어..^^;;;;;
아련함은 백도가 갑이죠.
백현아. 근데.. 너 브금좀 불러주면 안되겠니?ㅠㅠㅠ
너한테 참 어울리는거 같어..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