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망했어요.
동아리 개강파티 날 거하게 취한 후 통으로 날아간 기억 덕에 주말은 골골대며 보내야 했었다. 물론 외롭게 혼자 보낸 건 아니고 이성열이 옆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애인도 아니고 시발… 이성열 따위가 주말동안 내 몸뚱아리를 보살폈다니…. 그래도 술에 취한 나를 집에까지 데려와 준 정성이 갸륵해서 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쨋든 술병이 나서 속이 더부룩한 와중에 자꾸 눈 앞에서 알짱거리는 이성열 얼굴은 썩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내 황금같은 주말을 술병과 이성열 따위에게 홀라당 날리고 난 후 어영부영 일주일을 보내고는 겨우 다시 돌아온 금요일은 이제 곧 다가 올 주말을 바라보며 기뻐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꾸리꾸리했다.
"아 짜증나게 왜 비는 오고 난리야…."
자꾸 축축 처져 얼굴에 달라붙는 머리를 헝클이며 자취방 문을 열고 나왔다. 비를 맞는걸 원체 싫어하는 터라 파라솔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검은 우산을 폈다. 끙끙대며 우산을 어깨에 약간 받친 채 천천히 걸었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비 오는 날 외출은 정말 딱 질색이었다. 꿉꿉하고… 바짓단이 축축하게 젖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머리가 축축 처지는게 가장 질색이었다. 원체 머리가 생머리인데다가 완전 직모라서 안그래도 푹푹 처지는데 비가 오면 습기를 머금어 더욱 처지다 못해 얼굴에 자꾸 들러붙는 느낌에 괜히 기분이 나빠진다. 머리 들러붙으면 얼굴 커보인단 말야…. 언젠가 비가 심하게 오던 여름 날 내가 투덜거리는 소리에 이성열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었다. 머리도 조막만 한게 어디서 큰머리 드립이야. 뭐 어쨋든. 큰머리 드립이든 뭐가 됐든 싫은 건 싫은거다. 머리가 달라붙는 느낌도 싫고 거울을 봤을 때 왠지 못생겨 보이는 기분도 싫고…. 얼굴도 좀 부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넌 늘 빵떡같았어. 또 이성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자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에라이 이성열 같은 자식….
"야아!! 남우현!!"
역시 저 치타새끼는 양반은 못된다. 내가 이성열 생각을 하자마자 뒤에서 방정맞은 목소리가 들리며 두다다다 뛰어오는 소리도 옵션으로 들렸다. 타이밍 맞게 뒤를 돌자 내 코앞에 멈춘 이성열이 시야 가득히 들어온다. 왁! 오히려 자신이 더 놀라 눈을 뚱그렇게 뜨고는 뒤로 후다닥 몇 걸음 멀어진다. 파닥대는 꼴이 우스워 피식대자 몇 걸음 물러선 상태로 씩씩거린다.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뜬 채로 삿대질까지 해대며 따지고 들려는 모습에 흥! 콧방귀를 뀌고는 뒤 돌아 갈 길을 갔다. 어차피 알아서 쫓아오겠지 뭐….
"야!!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 그렇게 뒤를 돌면 어쩌라는거야!"
굳이 자신의 우산을 접고는 내 큰 우산 아래로 들어오려는 성열을 매섭게 노려보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에 눈에 힘을 풀었다. 앓느니 죽지…. 이런 놈을 상대로 감정소비를 해 봐야 피곤해지는 건 내 쪽이라는건 이미 오래전에 깨달은 사실이다. 내 손에 들려있던 커다란 우산 손잡이를 잽싸게 낚아채 간 이성열은 자신의 키에 맞게 우산을 올린다.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지자 조금은 욱신거리려던 어깨가 가벼워진 건 좋은데….
"야 나한테 물 다 튀잖아."
너무 높게 올라간 우산 때문에 우산 끝에서 떨어지는 물이 슬쩍슬쩍 내 어깨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똑바로 들라는 듯 이성열의 옆구리를 강하게 가격했다. 으억! 휘청이려는 몸을 겨우 지탱한 이성열이 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다. 아프잖아!! 흥. 알게뭐람. 니 옆구리 사정은 내게 하등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이 말씀. 지금 중요한건 젖어가는 내 어깨라고.
"그니까 넌 니 우산 쓰라고 개새끼야…. 왜 자꾸 내 우산 못 들어서 안달인데."
"그거야. 키도 작은 게 지 몸뚱이 만한 우산을 쓰고간다고 들고가는게 우스워서 그러지…. 야 너 그거 모르냐? 너 이거 쓰고 가는 거 뒤에서 보면 무슨 우산에 너 짓눌려서 가는…엌!!"
앞에서 쫑알쫑알 말 하는 이성열의 발을 세게 밟았다. 내 썩어가는 표정을 인지하지 못 한건지 계속 내 심기를 건드리던 이성열은 발을 밟히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뭔가 할 말이 잔뜩 있는 표정이었지만 깔끔히 무시하고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냉큼 우산을 똑바로 들거라.
"네네. 알아 뫼시죠."
아프다고 오만상을 쓰던 표정을 풀고는 다시 뭐가 그리 좋은시 허허실실 웃으며 우산을 똑바로 드는 이성열을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래봤자 금방 관심을 돌렸지만…. 자꾸 축축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휙 쓸어넘기자 앞을 보던 이성열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왜 머리 거슬려?"
"어 졸라."
"그럼 묶어보지 그래?"
"…숨질래?"
진지하게 물어보길래 진지하게 답해줬더니 한다는 말이 저모양이다. 이래서 내가 너랑은 대화를 안하려는거야 이 치타새끼야. 짜증난다는 듯 표정을 구기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여튼 저 놈은 갱생의 여지가 보이질 않는다. 내 기억속의 이성열은 항상 저런 헛소리만 해대고 뭐가 그리 좋은지 맨날 허허실실 웃고다니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모습은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성열 그대로 이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는 분명 내가 더 컸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뭘 처먹은 건지 갑자기 쑥쑥 커버린 이성열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이미 180을 훌쩍 넘어버렸고 나는…. 뭐 굳이 따로 얘기해야되나. 중요한 건 키가 아니야. 사람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씨가 중요하다고.
"너 오늘 그거냐? 생활과 건강?"
"엉. 왜 부럽냐?"
씨익 웃으며 이성열을 바라보자 쩝 입맛을 다신다. 그래 부럽다…. 마지못해 하는 말인 듯 꼬리가 질질 늘어졌지만 그래도 놀려먹고 싶은 마음에 계속 실실 웃었다. 그래 부럽겠지. 이거보다 꿀강의가 어딨다고…. 저도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독강인 줄 알고 좀 걱정했었지만 첫 날 부터 꽤 괜찮은 파트너도 만났고 이게 왠 걸 같은 동아리 선배라니…. 님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건가…. 너무 일일 술술 잘 풀리는 게 좀 불안하기도 했지만 단순함이 인생의 모토인 나는 이 상황을 더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암 물론 즐겨야 하고 말고.
"그. 왜 있잖냐. 그 교양 같이 듣는 동아리 선배."
"누구?"
"그 왜. 개총때 같은 테이블 앉았었잖아. 눈 쭉 찢어지고…. 좀… 째려보는 거 같이 생긴…."
"…별로 째려본 건 아니었는데."
아아, 규형? 라고 말하려고 입을 동그랗게 벌리는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여전히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 뒤를 돌아봤다. 천천히 돌아가는 나와 이성열의 목에서 드드득 소리가 나는 것도 같고….
"ㄱ…규…규형?"
"안녕."
"……."
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 한건 나였고 여상하게 손까지 들며 인사를 하는건 성규형 그리고 아무 말이 없는건 이성열이었다. 그나저나 규형? 처음듣는 별칭에 약간 눈썹이 억울한 모양이 된 성규형이 고개를 갸웃한다. 아 망함. 규형은 그냥 내가 다른 애들 앞에서만 친한 척 하려고 만들어낸 별칭이다. 성규형 앞에서는 깍듯하게 형. 형. 성규형. 하고 더 심할때는 선배…. 까지 했었는데…. 그런 내 입에서 튀어나온 친근한 별칭인 '규형'에 좀 이상함을 느낀 거겠지…. 내 팔자야. 왠 친한 척이냐고 속으로 싫어하면 어쩌지? 이 형 좀… 은근히 뒤끝 쩔거 같은데.
"아…. 그게…."
"뭐 어쨋든. 규형이든 뭐든. 째려본 건 아니야. 그냥 눈이 이렇게 생긴거지. 혹시 오해한 거면 그러지 말라고."
괜히 오해하면 귀찮아 지니까. 뒷말은 거의 들리지 않은채 성규형은 커다란 검은 우산 아래 나와 이성열을 좀 이상하다는듯 바라본다. 그리고 이성열의 손에 들린 또 다른 장우산을 보더니 표정이 더 묘해졌다. 그러다가도 금새 세상 다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휙휙 흔들어 인사 비슷한 것을 하고는 우리를 앞질러 먼저 걸어간다. 여전히 멍한 표정의 나와 이성열은 성규형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 쫓다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서로를 바라봤다.
"……뭐야."
"……몰라 나도."
영구 박 터지는 소리를 하며 나와 이성열은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근데 그래서 니가 나한테 하고자 했던 말은 뭔데. 몰라… 기억안나. 에라이 병신. 김이 팍 죽은 듯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다시 걸음을 학교로 옮겼다. 파드득 내 걸음에 맞춰 움직인 이성열이 머리 위를 우산으로 잘 가려준다. 오해는 우리가 아니라 성규형이 한 거 같은데요…. 뒷담이라도 까는 줄 알면 어쩌지? 망했다….
겨우 사회과학대학 건물에 도착해서야 남우현 몸뚱이 만한 우산을 접을 수 있었다. 어후. 절로 입에서 곡소리가 났지만 혹시 옆에 서있는 우현이 들을까 입을 꾹 다물었다. 괜히 무거운 거 티내면 안되니까…. 슬쩍 눈치를 보자 다행이 남우현은 눈치를 채지 못 한것 같았다. 우산을 탈탈 털어 물기를 털어내고는 우현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그러자 뚱 한 표정으로 우산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는다. 뭐, 뭐가 불만인데.
"들고 가기 귀찮은데…. 니가 좀 들고 있으면 안되냐?"
"…야 나도 내 우산 있거든?"
"아 좀. 한 개나 두 개나 들고있는 건 똑같잖아. 좀 부탁하자."
진심으로 우산을 들고가기 싫다는 듯 발까지 탁 굴러대며 말하는 우현의 모습에 잠깐 멈칫했다. 아…. 큰일날 뻔 했다. 순간적으로 본능이 앞설 뻔했다. 얘는 내가 지 이런 모습에 껌뻑 죽는 거 알고 저러는 거겠지…. 좀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먼저 반한 내가 지는 입장이니 군소리 하지 않고 우산을 내밀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래 알았으니까. 너 오늘 몇 시에 끝나는데."
"난 2시에 끝나지."
"…나 2시에 수업있는데."
"오 진짜? 그럼 잘 됬네. 수업 들어가기 전에 나한테 우산 주고 들어가. 오케이? 그럼 된거지? 끝. 끝."
내 의견 따위는 묻지 않겠다는 듯 혼자서 박수까지 짝짝 쳐대며 끄덕이는 남우현을 보는 내 입꼬리 자연스레 축 처진다. 그래…. 어차피 이럴 줄 알고 일찍 나온건데 뭐. 입꼬리를 다시 씩 끌어올리고는 오냐. 하며 끄덕였다. 그래도. 아까 집에서 나왔을 때 보단 기분이 좋아보여 다행이다. 역시 남우현은 웃는게 예쁘지.
"그럼 나중에 보자. 나 수업가야 됨. 너 몇층이야?"
"어? 나 1층. 너 6층아니냐? 얼른 가."
"어씨. 부럽다 1층…."
투덜투덜 자신은 왜 6층이냐며 나에게 손을 휙휙 흔들고는 투다닥 사라지는 뒷꽁무니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거야 니가 6층 수업을 신청했으니까…. 으이그. 하여튼 아직 애기다. 평소와 달리 정수리 부근에 둥둥 뜨는 머리 하나 없이 착 가라앉아있던 우현의 뒷통수가 총총대며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자 그제서야 그쪽으로 향하던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언뜻 우현이 흔들던 손에 끼워져 있던 익숙한 반지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이 참…. 끼고 있었네. 그냥 형식적인 거라면서 딱 선 긋더니 그래도 끼고 다니네. 괜히 쑥스러운 맘에 내 손에도 끼워져 있는 똑같은 반지를 보고는 아이 참 따위의 소리를 하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한 손에는 커다란 검은색 우산과 내 장우산을 들고 있었으면서도 마냥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 야 이성열. 너 오늘 2시수업이잖아. 왜이렇게 일찍와서 혼자 쪼개고 있냐? 아직 12시도 안됬구만…."
"어…. 뭐 그냥…. 어쩌다 보니."
"푸하하하. 야 이 병신아. 이렇게 큰 우산에다가 장우산 까지 들고서 어깨에 비는 쫄딱 맞고 다니냐? 우산이 아깝다 우산이 아까워…. 우산은 폼으로 달고다녀?"
폭삭 젖어버린 오른쪽 어깨를 가리키며 박장대소를 해대는 주환에게 로우킥을 날렸다. 시끄러 임마! 요령있게 피하면서도 낄낄대는 모양새가 꼴 보기 싫어서 인상을 찡그렸다. 하여튼 허우대는 멀쩡해서 웃는건 영 별로다. 꼭 뭐랄까…. 내가 가끔 남우현 웃겨보겠다고 흉내내는 까마귀 소리를 듣는 느낌이랄까…. 교수님과 면담이라도 다녀오는 길인건지 각종 연극 오디션 전단지를 손에 들고있는 주환이 젖어있는 내 어깨를 탁탁 내리친다.
"앞으론 우산 좀 잘 쓰고 다녀라 엉? 꼴 사납게 이게 뭐냐. 우산은 무슨 파라솔마냥 큰거 들고 있으면서…."
"아 진짜. 오늘따라 왜이래? 진짜 더럽게 추근거리네…."
"얌마. 추근거린다니. 니가 연영 먹칠하고 다닐까봐 그런다. 우리학교에 너 연영인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 새꺄. 그러니까 어디서 무슨 여자친구 우산씌워준다고 어깨젖은 남자 코스프레 하고 다니지 말라는 거야. 뭐 혹시 이거 우산 하나도 여자친구거냐? 아서라 병신아. 니가 남자 망신 다 시키고 다니네."
하는 말들이 죄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더 대거리하지 않고 입을 합 다물었다. 우산 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이 조금씩 튄다는 우현의 말에 우현쪽으로 완전히 우산을 기울였던 터라 내 어깨가 젖는걸 막지를 못 한게 사실이니까…. 또 우산이 두 개인 거랑 2시 수업인 내가 12시도 안 된 시간에 학교에서 방황하는 것도 그 비슷한 이유고….
"야 너 할 거 없으면 나랑 좀 놀자."
"얘가 뭐라는 거야. 내가 얼마나 바쁜데. 이거 안 보이냐? 오디션 준비하러 다녀야 된다고."
"그거 어차피 교수님이 나한테도 주실 거니까 같이 좀 보자? 엉? 같이 준비하면 되잖아."
도망가려는 주환의 뒤를 쫓아 손에 들린 전단지 중 몇 개를 뺏어들었다. 한 손에는 우산 두 개를 대충 꿰어 잡고는 어깨가 여전히 축축히 젖은 채 주환과 과방으로 향했다. 어차피 남우현 수업마치러면 2시간 남았으니까…. 그 때 까지 과방에서 시간이나 죽이고 있어야지. 머리 속으로 남우현이 수업이 끝나면 좀 살살 구슬려 내 수업까지 끝나면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할 생각을 하면서 또 혼자 실실 웃었다. 물론 주환은 날 미친놈 보는 냥 바라봤지만…. 알게뭐람….
"저…. 형…."
분명 나보다 늦게 학교에 왔을텐데 왜 먼저 와있는거지. 강의실에 들어오자 마자 보이는 익숙한 둥글한 뒷통수에 잠깐 걸음을 멈췄다. 과사에 다녀오는 동안 그새 들어온 건가. 그 키 큰 친구랑 걸어오는 속도를 보아해서는 이렇게 빨리 올 리가 없는데.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있는 우현의 옆에 가방을 내리고 앉자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낑낑대며 말을 걸어온다. 왜. 입모양으로 말하며 바라보자 눈꼬리가 축 처진채 검지 끝을 서로 톡톡 부딪히며 날 바라보는 눈동자가 보인다. …진짜 개 같네.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뭔가를 말하려고 옴죽거리는 입술을 가만히 봤다. 뭐. 왜 그러는데.
"아까…그. 성열이랑 형 뒷담이나 그런거 깐게 아니고…."
"아까? 뒷담?"
여전히 자꾸 쭈그러들며 말하는 우현의 모습을 보다가 학교로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 냈다. 아. 아까…. 눈 쭉 찢어졌다는 건 나도 인정하는 거니까 별로 기분 안나쁘고 째려본다는 건…. 좀 오해가 있으니 억울하긴 하지만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닌데. 그리고 내가 정정까지 해줬잖아. 줄줄이 말을 늘어놓자 우현의 쭈그러들었던 어깨가 슬슬 펴진다. 꼭… 그거같네. 물 부으면 부풀어오르는 물수건. 속으로 생각을 하며 무던히 시선을 돌렸다.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옆에서 우현이 마구 달라붙어오기 시작한다.
"형. 형. 나 형 규형이라고 불러도 되요?"
"뭐?"
"규형이요. 규형. 규우혀엉."
헤헤. 웃으며 말하는 우현의 얼굴을 좀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봤다. 얘는 뭐 이렇게 실실 흘리고 다니나…. 접힌 눈꼬리를 보다가 맘대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뭐. 규형이든 뭐든 니가 하고 싶은 대로 불러라…. 어차피 이호원이랑 바퀴벌레 커플인 장동우도 규형이라고 부르고….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호칭이라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는다. 다만…. 굳이 한가지 신경 쓰인다면….
"아까 그 친구. 키 큰 친구 이름이 뭐더라?"
"키 큰…? 아. 성열이요. 이성열."
"아. 그래 성열이. 그 친구 원래 좀 인상이 그래?"
"……걔 인상이 왜요?"
"…아니. 그냥 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의 우현을 보자마자 김이 팍 샜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추정되는데도 저런 반응인 걸 보면 내가 괜히 예민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리 개총때 부터 어쩐지 나한테 들러붙는 시선이 묘하게 날카로웠었는데…. 단순한 착각이겠지.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는 혼자 수긍했다. 착각이라면 다행이고. 괜히 사람한테 원한사는 걸 좋아하지 않는 터라 혹시나 성열이가 나한테 뭐 기분나쁜거라도 있나 싶어서 걱정하고 있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걔 왜요? 좀… 부엉이 닮아서 그래요?"
"…부엉이?"
"네. 좀 안닮았나? 부엉이…."
"……전혀."
그렇구나. 민망한듯 뒷목을 문지른 우현이 슬슬 고개를 끄덕인다. 왠 부엉이. 눈이 똥그랗던 성열의 얼굴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부엉이를 닮았나…? 잘생긴 편이었던 거 같은데. 기억속의 이성열은 분명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남우현에게는 샐샐 웃어대고 나랑 눈만 마주쳤다 하면 정색하는 그런 이미지였다. 근데 부엉이라…. 묘한 이미지 매칭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그냥 포기했다. 그래 옆에서 오래 봐 온 애가 부엉이 닮았다고 하면 닮은거 겠지….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휴대폰을 들어 만지작 거리다가 교수님이 들어오시자 힐끗 앞을 보고는 휴대폰을 천천히 엎어놨다. 끙. 수업듣기 싫어. 별거 하지도 않는 수업임에도 옆에서 남우현은 듣기 싫다고 끙끙대기 시작한다. 끙끙대는 꼴이 진짜… 똥강아지 같네.
폭풍과도 같던 1시간이 지나갔을 때 쯤 교수님은 하시던 말씀을 마무리 하려는 듯 마이크를 고쳐잡으셨다. 오 끝내시려나봐. 수업이 끝날 것임을 직감한 남우현은 옆에서 부산스레 제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부스럭부스럭 옆에서 알짱대는 소리에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진짜 동네 똥개같네…. 어렸을 때 집 앞에서 종종 보이던… 이름이 뭐더라. 누렁이? 바둑이? 하여튼 동네에 살던 똥개가 꼬리치며 알짱거리던 모습과 비슷한 우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하지만 살짝 올라갔던 입꼬리는 이어지는 교수님의 말에 천천히 내려가다 못해 딱딱하게 굳었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쳐드릴 테니까. 오늘 일찍 끝내는 대신 집에 혹은 기숙사에 가셔서 스트레칭 하는 법 뭐 이런거 인터넷에 한 번 검색해 보시길 바랍니다."
…스트레칭?
"그리고 다음시간 부터는 여기가 아니라 건체실에서 강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거…건체실?!
"아 참. 다음 시간 부터는 이런 이론수업은 치우고 요가 수업을 할 테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몸 많이 풀어서 오세요. 마치겠습니다."
……오 하느님.
요가라는 교수님의 말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나온다. 아니 의사양반 이게 무슨소리요. 요가라니…. 아 참. 요가매트는 학교에서 제공해 드릴거니 기뻐하세요. …퍽이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교수님을 바라보다가 아득히 멀어지는 뒷 모습에 결국 고개를 떨궜다. 머리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걸 드랍해버려야 한다는 마음과 함께 최소학점이 모자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강의를 신청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눈을 꽉 감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아…. 망했어요.
"아아…. 망했어요오."
옆에서 남우현 또한 꽤 절망적인 목소리로 나와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고개를 슬쩍 들어 남우현을 보자 저도 이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너 학점 모자라냐? 네…. 이거 드랍하면 최소학점 안돼? ……. 말없이 끄덕이는 우현의 눈꼬리에 눈물이 살짝 맺혀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망했네…, 너나 나나…. 하아…. 둘이서 동시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망했어요 우리…. 그러다가 문득 이호원 얼굴이 떠올랐다. 자네 생활과 건강이라는 교양 들어 볼 생각 없는가. 귓가에 이호원의 정직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호원…. 이를 악문채 낮게 읊조렸다. 만나기만 해봐라 진짜 확. 이호원이 진정 쥐어 터지고 싶어서 나한테 이딴걸 추천한건가….
+늦어서 너무죄송합니다ㅠㅠ 스차...ㅋ 오늘부로 쓰차가 풀렸지만 시험은 내일까지이므로.. 내일부터 미친듯이 성실연재 하겠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ㅠㅠ
+피드백주시면서 암호닉 신청해주신 호이호이님, 빠삐코님, 엘여님, 레이튼님, 병뚜껑님 그외 모든 익명독자분들 모두모두 제게 너무 소중하십니다ㅠㅠ 부족한 글 신알신 해주시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 신청 언제든지 받습니다! 이제부터 어마어마하게 달릴 테니까 함께 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