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우리학교에 빵자판기가 생긴것은 김명수의 덕택이다. 물론 지랄은 내가 했지만. 학기중반에 전학을 온 나는 특출난 사교성으로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김명수를 제외한 내 친구들은 질이 좋지 않았다. 담배는 전학 오기 전부터 피고 있던 터라 이런것에만 눈치가 빠릿한 김명수가 담배를 피냐고 조심스레 물어봤고 그것이 적신호인것을 알아채고는 한달만에 담배를 끊었다. 나는 김명수가 하지 말란것을 꼴뚜기란 별명을 아직도 쓰는것을 제외하고 한 적 이없다. 반대의 상황에서도 김명수가 하고싶다라는것을 이뤄주지 않은 적이 없다. "야 꼴뚜기, 급식 먹으러 가자." "꼴뚜기 아니라니깐..." 급식실에서 김명수가 꼴뚜기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소심한 반항을 한 후 한 열일곱 시간정도는 김명수는 자기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김명수의 관심을 받고 싶어 미쳐있는 인간이었기때문에 김명수는 다시 꼴뚜기라 불리게 되었다. 김명수는 이제 체념한듯 작은 한숨과 축처진 어깨로만 대답을 한다. "나 오늘 밥 안먹을래." "왜? 내가 꼴뚜기라고 해서?" "아니, 오늘 밥 맛없어." "돈 많냐?" 내가 이렇게 비꼬는 이유는 김명수를 놀릴때 김명수의 표정이 맘에 들어서도 한몫하지만 사실 김명수와 밥을 같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못하게 하는 김명수가 미워서 조금 심술이 난 것이다. 멍청하게도 김명수는 아니. 라고 대답했고 멍청한데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김명수는 그 날 결국 밥을 먹지 않았고 그 고집만 더럽게 센 김명수를 굶기고 싶지 않았던 나는 점심을 먹고 뭐가 예쁜지도 모를 김명수에게 빵을 사다 날라주었다. 이게 뭐가 예쁘다고 진짜... "아 또 꼴뚜기네." "아니야..." "이거나 처먹고 자." 눈이 부은 김명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빵을 한가득 부어주었다. 우리 학교는 공부위주로 돌아가는 학교가 아니었음에도 학생들에 대한 단속이 심했고 청결을 중시했다. 하지만 사춘기 청소년들의 비양심적인 쓰레기 투척은 매점주위를 포함하여 온 교정을 더럽혔고 그 때문에 교장이 칠년전에 매점을 없애버렸다. 그래서 김명수에게 빵을 사다 나르려면 학교 앞 왕복 십분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와야했다. 정성도 이런 지극정성이 없지. "야 오늘도 급식 안먹을거야?" "응. 빵 안사줘도 되는데..." "지랄마. 니 또 쫄쫄 굶고있을거잖아." 김명수는 당연하게도 나의 지극정성을 부담스러워했다. 나로서는 왕복십분거리의 편의점을 왔다갔다 하는 것 부터가 짜증났지만 김명수가 나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사실이 더 짜증났다. 씨발 편의점이 멀리있어서그래. 병신같지만 무언가 괜찮은 논리로 나는 교장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글이라곤 초등학교 방학숙제인 밀린 일기 이후로 열심히 쓴 적이 없지만 나름 최선의 예의를 다해 편지를 썼다. 물론 그 편지는 탄핵으로 받아들여져 버릇없는 학생으로 오인받아 나의 교내봉사시간만 늘려주었다. 입에 씨발 씨발을 멈추지 못하며 밀린 교내봉사를 채우는 나는 선생님들에게 씨발전학생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난 어차피 있는 교내봉산데 더 늘었다고 뭐가 문제가 될까 생각하고 매주 편지를 써냈고 결국 그것은 설문조사가 되어 돌아왔다. '빵자판기 설치 동의 설문조사' 나는 그 설문지를 받자마자 동의에 동그라미를 치고는 온 학교를 휘저으며 반협박 식으로 아이들에게 동의에 표시할것을 강요했다. 나의 못한일이 하나 없는 지랄은 김명수의 웃음을 자아냈고 나도 그제서아 웃을 수 있었다. 진짜 좋아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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