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벌써 며칠이나 지난 일 임에도 내 팔을 잡아준 이성열의 손의 감촉이 너무 생생해서 인지 잊혀지지가 않았다. 수업 듣다 말고도 참 잘 자는 이성열의 손만 빤히 쳐다보는게. 변태도 아니고 남자손에 왜이렇게 집착을 하지.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깬 이성열과 눈을 마주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럴 때 마다 선생님이 깨우라고 했다며 말은 되는 핑계를 대었지만 믿던 안믿던 이성열은 이내 실실 웃고는 다시 자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에게 커다란 위기는 없었다. 어쩌면 내 짧고 뭉툭한 손에 비해 길다랗고 커다란 이성열의 손이 부러워서 쳐다본걸수도 있겠다. 동경? 아니 손도 동경하는 사람이 있나...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보니 머리가 복잡해져서 고개를 가로젓고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그 순간 수업이 끝나는 바람에 얼빠진 표정으로 수 초간 정지해있었지만. "야 꼴뚜기. 밥먹을 시간이다." "알아." "알면 빨리 와." 순간 내 팔을 끌어당기는 이성열의 손을 내쳤다. 이성열은 적잖히 당황한 듯 보였다. 아 이게 아닌데. "밥 먹기 싫어?" "...아니...그게" "우리 학교 급식이 좆같긴 해." "응...근데...." "내 얼굴 좀 보고 말하지? 상대적으로 오징어로 보이는게 싫어서 그런건 이해하겠는데 넌 누구랑 있어도 꼴뚜기니까 그런거 신경쓸필요없어." 도대체 어디가 위로라는 건지. 가시만 쏙쏙 뽑아서 내 뇌리에 모두 박히는데 그래 넌 인기도 많고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으니까. 뭐라 변명할 여지가 없어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만 있으니까 이성열이 큰 손으로 내 머리를 꾹 눌렀다. 으 오늘따라 왜이렇게 손을 많이쓴대? "그래서 밥 먹을거야 안먹을거야? 애들 기다려." "아..머...먹어..." "음... 그냥 애들 다 보내고 우리끼리만 먹을까?" 능글하니 웃어보이는 이성열의 말은 백퍼센트 농담일 것이다. 호의 한번 베풀어줬다고 이렇게 남자 손따위에 집착하는 변태같은 애를 누가 좋아할까. 점점 이성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먼저 먹으러가" "또 안먹어? 맨날 빵만 먹으면 돼지꼴뚜기된다. 여기서 더 못생겨지면 너랑 데.." "어?" "아니. 너랑 창피해서 같이 밥못먹는다고." 그럼 그렇지. 좋은 말이 나오길 기대한 내가 멍청이다. 솔직히 오늘은 밥을 먹고 싶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니 화들짝 놀란 이성열이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빨리오라며 뛰어갔다. 지금 상황을 피하고 싶은게 누군데. 아 얘기할때 얼굴 빨개졌을까. 밥을 먹는 도중에도 이성열은 자꾸 아프냐며 얼굴이 빨갛다느니 감기는 초기에 가봐야지 심하게 안걸린다느니 내 주치의인양 맘껏 떠들어대었다. 게다가 그 큰 손으로 열을 재보겠다며 이마에 갖다대어 줄 서는 도중에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성열이 만져서 그랬는지 그 상황이 너무나 창피한 상황이었던건지 내 얼굴은 폭발할듯이 뜨거웠다. 줄 서는 도중에는 아무말 없던 남우현, 장동우도 얼굴이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고 이성열은 그 상황이 생기고 나서 밥을 다 먹을 때 까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푸흡, 큭 내가, 너, 너 때문에, 끅, 아 개웃겨 진짜." "밥이나 먹어." "아 진짜..." "...뭐가" "귀엽다." 말하고 나서 나도 이성열도 남우현도 놀란 눈치였다. 장동우는 밥먹기에 바빠 눈치를 못챈거겠고 무슨 상황이 이러나 싶을정도로 이성열은 멋쩍게 웃다가 먼저 식판을 버리러 가겠다며 황급히 교실로 돌아갔고 남우현은 그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뭐야? 뭐냐고? 라고 자꾸 물었다. 내가 알면 놀랬겠냐고. 교실로 돌아가니 밥을 반 이상이나 남기고 돌아온 이성열이 어울리지않게 고독을 즐기고 있었다. 어울리지는 않았는데 멋있었다. 아마 요즘 생각하는건데 요즘의 나는 진짜 미친놈같다. 노는 애들 닮아가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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