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열X도경수
고딩게이
*
또다.
수업 중 찬열이 고개를 살짝 돌리자 자신을 보고 있던 경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경수는 뭔가 들키기라도 했는지 흠칫 놀라며 눈을 피했다. 찬열이 재미있다는 듯 턱을 괴어 뚫어지게 쳐다보자 아닌 척 교과서에 고개를 박은 경수의 얼굴은 9교시의 노을처럼 붉어졌다.
오빠 잘생겼지?ㅋㅋㅋ
경수가 책상위로 꺼내놓은 핸드폰 위로 찬열에게 온 카톡이 떴다. 경수에게 장난스레 카톡을 보낸 찬열은 핸드폰 화면을 손톱으로 치며 답장을 기다렸다. 이미 그에게 수업은 관심 밖이었다.
ㅗ
수업이나 들어
방금 전까지 당황하던 표정은 어디로 가고 경수가 보내온 답장은 찬바람이 부는 듯 쌀쌀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열은 뭐가 그리 좋은 건지 웃으며 자판을 두드렸다. 찬열의 얼굴에 흥이 잔뜩 올랐다.
너 자꾸 그러면 오빠 얼굴 뚫어져ㅋㅋ
병신이 뭐래ㅗ
답장은 여전히 까칠하지만 자판을 누르는 경수의 얼굴엔 살짝 미소가 보였다.
이상했다. 경수는 얼마 전부터 자꾸만 찬열이 신경 쓰였다. 저런 미친도비새끼가 뭐가 좋다고 마음이 가는지 의문이었다. 그 전에는 찬열이 어떤 행동을 하던지 당연한 듯 여겨왔는데 이제는 작은 스침에도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찬열이 뒤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폭- 안기라도 하면 심장이 터질 듯 바운스바운스 거렸다.
이런 경수에게 버릇이 하나 생겼는데 그게 바로 박찬열 쳐다보기다. 경수는 찬열을 쳐다보며 ‘내가 왜 쟤가 좋다고 이러고 있는걸까.’라던지 ‘그래 자세히 보면 잘생기긴 했네’ 등 온갖 잡생각들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찬열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머릿속까지 홍당무가 되어버리는 건 덤이지만 말이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쌓인 책 뒤로 비스듬히 놓인 경수의 핸드폰은 카톡 알림 없이 까만 화면이 유지되고 있었다. 일부로 까칠하게 보내긴 했지만 답장이 없으니 경수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핸드폰의 잠금을 풀었다, 잠궜다 무한 반복하던 경수는 슬쩍 찬열을 쳐다봤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찬열이 턱을 괴고 쭉- 경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주친 시선 사이로 찬열이 살풋 웃으며 입모양으로 소리 없이 말했다. 귀여워.
꺼져. 잠깐 뜸을 들인 경수가 정색한 채 맞받아친 뒤 찬열의 시선을 피했다. 계속 보고 있다가는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들켜버릴 것 같았다. 하. 미친도비새끼.
9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치고 학생들은 석식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야자를 하지 않는 경수는 집에 가기 위해 급히 가방을 쌌다. 그것도 잠시 책상위로 큰 그림자가 드리웠다.
“오늘 우리 집 가자.”
“싫어 나 바쁨.”
“부모님 여행가셨어. 혼자 자기 무서워.”
허. 그 큰 덩치로 혼자 자기 무섭다니, 경수는 헛웃음을 냈다. 찬열은 몸을 낮춰 경수를 올려다보며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장화신은 고양이 흉내를 내는 듯 보였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경수는 못 이기는 척 승낙했다. 사실 바쁘다는 건 다 씹구라였다. 바로 승낙하면 쉬워 보일까 괜히 한 번 튕긴 것이었다. 경수의 승낙에 찬열은 금세 불쌍한 고양이 흉내를 그만두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찬열은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부르며 경수에게 어깨동무까지 둘러 교실을 나섰다.
*
찬열의 집에 막상 오니 경수는 줄곧 핸드폰만 했다. 핸드폰에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는 건지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찬열은 뾰로통했다. 소파 한쪽에 콕 박혀서 찬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자 찬열은 경수의 무릎 위로 고개를 두고 벌러덩 누웠다. 소파가 짧아 찬열의 다리가 허공에서 접혔다.
“놀아줘. 나 심심해 경수야.”
“좀 꺼지고 말해.”
찬열의 갑작스런 행동에 짜증이 난건지 경수가 낮은 목소리로 쌀쌀맞게 대답했다. 순간 찬열이 두 손으로 경수의 볼을 감쌌다. 그대로 자신 쪽으로 당겨오자 경수의 얼굴이 찬열에게로 가까워졌다. 나 심심하다고. 경수는 찬열의 행동에 몸 전체가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당황한 경수는 큰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찬열을 있는 힘껏 밀쳐냈다. 찬열은 갑자기 소파에서 떨궈져 탁상에 머리를 찧은 건지 머리를 부여잡고 아파했다. 다친 찬열을 본 경수는 안절부절 못했다.
“야야.. 괜찮아?”
“으... ”
“아... 너가 갑자기 그러니까 그러지.... 미안.”
찬열이 진심으로 아픈 건지 한참동안 신음하며 고개를 못 들었다. 하지만 그의 가려진 얼굴 사이로 미소가 띄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경수는 계속 찬열을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뽀뽀 해줘.”
“응??”
“나 너 때문에 겁나 아퍼. 여기. 그러니까 호해줘.”
경수가 찬열의 옆에 앉아 눈동자만 도르륵도르륵 굴렸다. 뽀뽀? 호? 이걸 진짜 해줘야 돼?
“경수가 요기~ 뽀뽀해주면 금방 나을 것 같은데.”
찬열이 자신의 볼을 두들기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경수의 눈엔 이젠 찬열이 전혀 아파보이지 않았다. 경수는 장난스러운 말로 자신을 흔드는 찬열이 얄밉게만 느껴졌다.
“그냥 그대로 평생 아파라, 미친도비야.”
경수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말하며 소파로 다시 올라 앉았다. 찬열이 아쉬운 듯 입맛만 다셨다. 아직도 아프긴 한 건지 머리를 잡고 있는 손은 놓질 않았다. 경수는 자신의 아래서 씁쓸하게 앉아있는 찬열을 내려 보았다. 미안한 마음이 다시 샘솟았다. 그래도 저 때문에 다친지라 찬열에게 마음이 동했다.
경수가 찬열이 머리 위에 올린 손을 내리고 뒤통수를 작은 두 손으로 움켜 잡았다. 그 위로 경수의 입술이 빠르게 붙었다 떨어졌다. 찬열이 토끼 눈을 하고 뒤를 돌자 경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핸드폰만 쳐다봤다. 하지만 얼굴은 아무 일이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빨랑 치킨이나 시켜. 배고파.”
찬열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느껴지자 경수가 치킨으로 화제를 돌렸다. 치킨이란 소리에 급 반응해야 할 찬열은 가볍게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으이구. 찬열이 경수의 두 볼을 아프지 않게 잡아당긴 후 살짝 흔들었다.
“우리 경수 누가 데려 가려나~”
“없으면 혼자 살지 뭐.”
“우리 불쌍한 경수. 독거노인 되는 거 아니야?”
“지랄 마.”
“연탄은 오빠가 갖다 줄게~”
경수가 찬열의 오빠란 호칭에 기분 나쁘다는 듯 오바이트 하는 흉내를 내자 찬열이 웃으며 경수의 머리를 헝클었다. 후에 경수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을 뺏어 든 찬열이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 치킨을 시켰다. 305호에 파닭 순살이랑 치즈스노윙은 뼈로 갖다주세요~ 경수는 찬열이 가볍게 헝큰 자신의 머리에 묘한 기분이 들어 얼굴을 구겼다. 경수의 눈동자는 편히 둘 곳을 잃어 티비로 향했다.
*
덩치 차이는 크지만 결국 혈기왕성한 남고생이었던 둘은 사이좋게 닭 한 마리씩을 깨끗이 비웠다. 배가 부르니 경수의 큰 눈꺼풀이 자꾸만 감겼다. 옆에서 찬열은 무한도전을 보며 숨이 넘어가도록 웃어댔다. 시계를 보니 자려면 이른 시간이었지만 피곤함이 두 배가 된 경수는 잘 준비를 하러 욕실로 향했다. 찬열의 집에서 뻔질라게 자고 간 경수는 자연스레 찬열의 칫솔 옆에 있는 자신의 칫솔을 집어 들었다. 치약을 짤 때쯤 열린 욕실 문으로 찬열이 들어왔다. 찬열은 경수를 안 듯이 손을 뻗어 자신의 칫솔을 집었다. 찬열이 치약을 찾다가 치약을 들고 있는 경수를 보더니 자신의 칫솔을 내밀었다. 경수는 군말 없이 자신의 칫솔을 입에 문 채 찬열의 칫솔에 치약을 짜주었다. 기분 좋게 양치질을 시작한 찬열이 변기커버를 내리고 그 위에 앉아 경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뭘 그렇게 봐.”
“그냥. 너도 나 이렇게 자주 보잖아.”
“안 봤거든.”
“너 얼굴에 김 묻음.”
“잘생김?”
“아닌데, 우리 경수 얼굴에 못생김 묻었는데.”
“꺼져, 도비야.”
양치질을 하느라 웅얼웅얼 댔지만 둘의 대화는 대충 이러했다. 둘 다 입에 하얀 거품을 묻히고는 별 거 아닌 대화에 피식피식 웃었다. 찬열과 경수는 좁은 세면대에서 번갈아가며 입을 헹군 뒤 대충 씻고 찬열의 방에 들어섰다. 찬열이 먼저 침대 위로 몸을 눕히자 경수가 문 앞에서 머뭇머뭇 거렸다. 찬열이 의아하다는 듯 몸을 일으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피곤하다며, 안잘거야?”
“아... 아니.”
“도경수 변했어. 예전에는 오빠가 팔베개 해주면 잠도 잘 자고 그랬는데. 하. 속상하다, 속상해.”
“그런 적 없거든! 졸려 나 잘거니까 이제 말 걸지마.”
경수가 잠깐 멈칫하더니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찬열의 침대에 누웠다. 찬열은 그런 경수를 보고 픽 웃었다. 경수가 자신의 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침대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누운 것이다. 찬열이 고개를 괴어 경수를 향해 누웠다.
“경수야.”
“...”
“야 도경수.”
찬열이 부르자 경수는 그새 잠든 척 말이 없었다. 찬열이 끈질기게 불러도 대답이 없자 찬열이 경수의 허리를 콕 찔렀다. 으악. 아슬아슬하게 누워있던 경수가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찬열이 헛웃음을 지었다. 살짝 찌른 것뿐인데 찬열은 무안해졌다. 그것도 잠시 찬열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엉덩방아를 찧어 정신없는 경수를 안아들어 침대 한가운데로 옮겨 놨다.
“나 안방에서 잘 테니까, 거기서 혼자 편하게 자.”
이 말을 끝으로 찬열이 방문을 닫고 사라졌다. 경수는 침대 위에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너무 과민반응을 해 찬열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았다. 미안해진 경수는 거실로 나와 안방에 누워있는 찬열을 불렀다.
“한번만 말 한다. 빨랑 들어오던가 말던가.”
“됐네요. 혼자 주무세요.”
“그럼 나도 여기서 잘 거야.”
경수의 눈엔 찬열이 단단히 삐진 듯 보였다. 빨리 침대로 돌아오라는 말을 경수어로 차갑게 말해서 그런지 찬열은 단번에 거절했다. 경수는 에라 모르겠다 안방의 침대에 누워버렸다. 말 그대로 大 자로 누워 잠을 청하는 경수를 보며 찬열은 일어나 어이없는 웃음을 보였다. 알다가도 모를 도경수야. 근데 한 가지는 알겠다.
“도경수.”
“뭐.”
“나 좋아하지.”
“...아니거든.”
“난 너 좋아하는데.”
“...뭐 그럼 그렇다고 하던가.”
경수는 감은 눈을 뜰 수 없었다. 차갑게 말을 하긴 했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찬열은 옆에서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한참을 웃던 찬열은 경수를 향해 누웠다. 찬열이 경수의 손을 잡으니 경수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경수의 감은 눈에도 힘이 들어갔다.
“경수야. 눈 좀 떠봐.”
“싫어.”
“도경수, 나 좀 봐봐.”
“싫다고.”
“너 계속 눈 안 뜨면 키스할거야.”
경수가 키스라는 소리에 반응해 눈을 뜨려고 하자 순간 찬열의 입술이 경수의 입술을 먹어들어왔다. 놀란 잇새로 말캉한 혀가 들어와 경수의 혀를 감았다. 경수는 반항하지 않고 찬열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녹였다. 한참을 그렇게 얽히고 가벼운 뽀뽀를 끝으로 찬열이 경수에게서 떨어졌다.
“널 진짜 어떻게 해야 되냐.”
찬열의 말에 경수가 눈을 키워 말똥말똥 쳐다봤다. 잠이나 자자. 그 말을 끝으로 찬열이 자신의 품으로 경수를 쏘옥-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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