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의 남편, 최고의 사업 파트너, 김준면.
3
'어, 나도 사랑해.'
버젓이 두 눈 뜨고 살아 있는 제 아내 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뱉은 그 말, 소매 자락의 커프스를 매만지며 설핏 웃고는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한 손으로는 차갑게 주먹을 쥔 내 손을 포개어 덮던 그 뻔뻔한 행동. 나는 실소를 뱉었다. 남다르게 귀한 집에서 자라 더 귀한 집 자식하고 살아 받는 대우이라곤 겨우 이거라니, 단지 그게 화날 뿐이었다. 내가 김준면이 사랑하는 그 여자를 시기해서, 질투를 해서가 아니라, 그를 사랑한 이유로 무참히 짓밟힌 내 자존심이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김준면을 가슴에 품고 있지 않았다면…, 그랬더라면….
'여보, 퇴근하고 본가에 좀 다녀 오자. 어머니가 저녁 먹으러 오라시네.'
그의 문자에 나는 아무 감정 없이 까맣게 꺼진 액정을 주시할 뿐이었다. 김준면이 나락으로 떨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증오하지 못하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의 남편, 최고의 사업 파트너, 김준면.
"본부장님."
"응."
"어디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왜?"
"그냥…, 오늘따라 낯빛이 많이 어두우시길래."
"언제는 밝았나 뭐."
"결혼까지 하신 분이 뭘…, 저같이 혼자인 사람은 울어요. 남편분이 되게 잘해줄 거 같던데."
사원들이 나더러 묻는다. 가사와 회사 업무의 중첩으로 빙자한 농땡이 휴가로 푹 쉬고 오더니 안 좋은 일 있냐고, 그걸 날 더러 물으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는가. 그룹간에 계약으로 맺어진 인연에 진력이 나 나를 역겨워하며 쳐다보기도 싫어하는 그 사람 탓? 아버지 손에 이끌려 생판 모르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내 탓? 아니면…, 그것들이 전부 애증이란 관계로 맺어진 우리 사이의 탓인가. 다들 태성그룹 예비 안주인 자리 앉은 내가 돈 많고,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 품에서 온갖 사랑 받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할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전혀 안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직원들을 퇴근시켜 돌려 보내는 그 시간까지도, 나는 아침의 그 비참한 기분을 잊을 수 없었다. 지금의 우리 관계를 만든 김준면. 그리고 그런 김준면을 애증하는 나. 둘 중에 더 미친 사람은 누굴까. 오늘도 맘 속으로 드는 의문은 깊어져만 갔고, 그것은 내가 시댁으로 향하는 김준면의 차를 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님은 요즘 잘 지내셔?"
"잘 지내셔."
"아버님은, 예전처럼 혈압 기복 안 심하시지?"
"안 심하셔."
"다행이네."
다 늙어빠진 호랑이, 얼른 죽어 유산이나 물려줬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김준면은 속내와 다르게 이면적인 내 말에 정이 떨어졌을 것이다. 표정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심기가 불편한 듯 자꾸만 머리를 매만지는 너의 행동을 보면 다 알 수 있다. 수납함에서 뒤적뒤적 담배 한 갑을 꺼낸 그는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듀퐁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남자 향 그윽한 향수 향기와 맡기 싫은 담배 냄새가 혼합 되어 코를 간질인다. 참 묘한 냄새다. 담배 냄새 싫어하는 날 뻔히 알면서도 입에 물고 있는 한 개피의 담배와, 내가 항상 좋다며 향수명을 알려달라고 졸라댔던 그 향기가 섞인 이질적인 냄새란.
"담배 좀 끊지."
"못 끊어."
"나 담배 냄새 싫어하는 거 알면서."
"자기가 싫어하잖아."
"…."
"그래서 못 끊지."
교통체증으로 인해 차로 꽉 막힌 도로, 산인지 빌딩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의 높은 빌딩들을 차창으로 바라보던 너는 입안에 머금고 있던 담배 연기를 후 뱉어낸다. 내가 싫어해서 못 끊는다니, 그럼 그 연기를 내게로 뱉어내는게 맞거늘, 참 이상한 취미다. 사람 면전 앞에서 이죽대고는, 말과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너의 그 취미.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의 남편, 최고의 사업 파트너, 김준면.
"입에 맞을지 모르겠구나, 우리 새아기."
"입에는 잘 맞아요,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님."
조개를 넣고 끓인 된장국을 중심으로 시어머니의 정성이 돋보이는 반찬들이 그릇에 옹기종기 담겨있었다. 시아버지와 아가씨, 형님, 아주버님과는 간단한 인사 후에 식사를 했고, 서로 아니꼬워 안달난 사람들이 식탁 하나로 머리 맞대고 밥만 먹으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은 입에 넣고 반찬을 씹은 횟수 만큼이나 곱씹게 되었다. 결국엔 또 일 얘기에 회사 돌아가는 얘기만 할 거면서. 식탁 앞에서 밥을 먹다가 백화점 주인이 바뀌기도 하고, 수백억원의 돈을 날리고도 아버지께 꾸지람 한 번 들으면 끝나는 곳.
"아직까지 애 소식은 없는 거니?"
뜻 밖인 어머님의 물음에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예, 애 낳을 생각은 없어요, 어머님."
가만히 식탁 위에 올려둔 내 왼 손을 그가 조심스레 잡으며 거들었다.
"ㅇㅇ이는 나랑 사는게 더 좋대요, 어머니."
방긋 웃는 그의 미소에 시어머니는 탐탁치 않은 표정을 거두었다.
서운한 거 아니시죠?"
"뭐…, 그래…, 너희 둘 끼리만 잘 살면…."
못마땅한 어머니의 시선이 한참 동안 내게 박혔다. 너희 둘 끼리만 잘 살면 되지. 말과 전혀 다른 표정과 말투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다. 차라리 머리채라도 잡고 악다구니를 써대지. 여태껏 내 식도로 넘어갔던 음식물들이 완전히 얹힌 기분이다.
"아, 참. 아가…, 준형이 말이다."
"예, 어머님, 삼촌께 말씀 드렸으니 조만간 처리 될 거에요."
"고맙구나, 매번 저 녀석 주위 사람들까지 신경 써주느라 고생이 많아."
안 봐도 뻔하지, 그이가 친 사고 뒷수습 하느라 잡혀 갔을 도련님이 불쌍할 뿐이다. 다들 침묵하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 또한 같지. 고맙다는 인사는 항상 지겨운 패턴에 진부한 치렛말들. 조용히 굴러가는 시곗소리와 수 꽤나 되는 가족들의 젓가락질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의 남편, 최고의 사업 파트너, 김준면.
"체했어?"
"응."
"일어나, 최박사님 부르게."
새벽 한 시였다. 아까의 불편했던 식사 자리 탓인지 위에 얹힌 것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명치부터 배 윗쪽까지. 장기들이 얽히고 섥혀 꼬인 듯 몸부림을 치게 만들었고, 옆에 곤히 잠든 김준면 옆에서 식은 땀을 흘리며 숨이 턱턱 막히는 가슴을 치며 배를 붙잡았다. 혹시나 깰까 소리는 내지 않고, 그렇게 장장 새벽 두 시까지 앓고 있다가는 죽은 시체처럼 눈을 감은채로 내게 체했냐고 묻는 그의 말과 몸을 일으켜주는 행동에 바로 눕게 되었다.
"위경련입니다. 오늘 사모님께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셨거나, 아님 신경쓰이는 일이 많으셨거나 하셨나 보네요. "
"…."
"그것도 아님…, 평소에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신경 안정제와 진통제를 맞은 팔을 내려다 보았다. 머릿속이 새하얬던 아까 전의 기분에 께름칙하다. 두 번 다시 겪고싶지 않은 증상이었다. 최박사의 긴 설명을 들으며 김준면은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침실을 빠져 나간 최박사를 배웅 해주고 온 김준면은 맥없이 축 늘어져 있는 내 모습을 내려다 보며 내 쪽으로 걸터 앉았다.
"여보,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
땀에 젖은 내 머리칼을 넘겨주는 김준면의 행동이 낯설다. 분명 가슴에 찌르르 전율이 전해져야 하는 것이 맞는 건데, 이상하게 그의 모습이 소름 돋을 만큼 차갑게 느껴진다. 나는 보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렸다.
"내가 현주 만나는 거 싫어?"
다정하게 '현주'라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너의 말에 나는 눈을 감았다. 너는…, 그 여자에겐 한결 같구나, 나에게도, 그 '현주'라는 여자에게도.
"아니."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줬음 좋겠어?"
순간적인 충동이 나를 휩싸고 돌았다. 분노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모든게 나약해진 인간은 참 볼 품 없다. 여태껏 이 집안에서 복수라는 목적을 두고 숨도 쉬기 싫은 인간이랑 한 이불까지 덮고 잤으면서, 이제 와서 이러는 내가 참 우습다.
"이혼 해줬음 좋겠어."
내 머리를 매만지던 그의 손길이 잠깐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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