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죄송합니다!"
"아.."
"어떡해,정말..죄송해요!배상해드릴게요."
북적이는 지하철 안, 커피를 들고 서있다가 순간 중심을 잃어 앞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커피를 쏟고 말았다.아, 진짜 바보같아...얼른 가방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쪼그려앉아 청바지에 얼룩지듯 묻은 커피를 닦아냈다. 어쩔줄 몰라하며 어떡해만 연신 내뱉는데 상대 남자도 날 흘긋흘긋 보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죄송해요. 세탁비 드릴게요. 제가 지금 현금이 얼마 없어서 그런데, 일단 이거라도 받으세요."
"아니..저 괜찮아요.하하.진짜로요."
"아녜요.혹시 세탁비 더 필요하시면 계좌번호 알려주세요.꼭 드릴게요!"
염색한듯 밝은 갈색 머리를 한 그 남자는 당황하면 웃는 타입인지, 지갑에서 2만원을 꺼내 주는 내 손을 정중하게 밀며 괜찮다고 웃음짓는다. 아니 이러면 내가 더 불편한데..웬만하면 남에게 신세지고는 못사는 성격이 바로 내 성격이다. 남들은 내 성격이 어떻게 보면 가장 피곤한 스타일라고들 한다. 물론 그 말에 반은 공감하고 반은 공감하지 못한다. 남에게 신세지는건 정말 정말!!! 별로니까. 그렇지만 내 성격을 모르는 남자에게 거절당해 초라하게 들려있는 내 손안의 2만원은 힘없이 다시 내 지갑속으로 들어간다.내가 풀죽은채 다시 죄송합니다만 연발하며 이미 커피로 물들어 버린 연분홍빛 손수건로 다시 남자의 청바지를 닦자 남자의 손이 내 손위로 겹쳤다.
"정 미안하시면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바지에서 커피향이 나니까, 갑자기 그 쪽한테 커피 좀 얻어먹고 싶네요."
남자가 노란 개나리처럼 싱글싱글 웃으며 말한다.
지하철 훈남 上
"아 네, 저 지금 건대입구역이예요!"
농담처럼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내 번호를 따간 그 남자는 그저께 점심즈음 전화를 걸어 정말 약속을 잡았다. 일이 겹쳐 조금 늦을 것같다고 미리 언질은 줬지만 진짜 일이 많이 늦은 탓에 20분 정도 늦을 것 같다. 말했다시피 남에게 피해주는거 진짜 싫어하는 성격이라 약속시간도 저의 늦지 않는데, 이 남자는 내가 미안해야할 일 투성이 같다. 왜 이렇게 이 남자에게는...어휴..
새로 산 샌들이라 발뒷꿈치가 까지는 것 같았지만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약속장소인 카페까지 부랴부랴 뛰어가다 거의 다다르고, 문 앞에 서서 숨을 몇번 고르다가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일층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 때 그 지하철에서 본 남자가 보였다. 다시 그 앞까지 뛰어가 앞자리에 털썩 앉았다.
"죄송해요! 늦어서. 커피값얼마죠?"
"어, 왔어요?"
"네 왔어요! 커피값 얼마예요? 드릴게요."
내 다급한 말에 남자는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눈까지 휘어지도록 웃어댄다. 내가 영문을 모른채 왜 웃으세요..하며 살짝 물음을 던지자 진짜 뭐가 웃긴지 더 크게 웃어대다 결국 꺽꺽대며 눈물을 보인다.진짜 왜 웃지..
"하아...진짜 웃긴다..아...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안했네요. 이름이 뭐예요?"
"예?아,전 OOO이예요."
"이름 예쁘네요. 저는 김민석이라고 해요."
왜 웃냐는 내 물음에 답도 하지 않은채 통성명을 하자는 남자의 말에 얼떨결에 이름을 말했다. 남자의 이름은 김민석이라고 했다. 김민석...이름이랑 얼굴이랑 잘 매치가 되는 것같다고 혼자 생각해본다.평범하면서도 예쁘다. 민석이 미리 사놓은 건지 내 앞자리에도 커피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표면에 차가운 물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만지다. 한 입 쭉 들이켰다. 으,좀 쓰다..내 표정을 살피던건지, 많이 써요? 라고 조심스레 묻는다. 기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뇨 맛있어요!하고 웃어보였다. 남자도 싱긋 따라 웃다가 말을 꺼낸다.
"아,아까 웃은건 기분나빠하지 말아요. OO씨가 저 보자마자 커피값얘기하는게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계속 웃었네요."
"아.."
그것때문에 웃은거구나.좀 창피하다.하긴 아까 너무 커피값얘기만했어..무슨 돈얘기만 하는 여잔 줄 알았을거야. 속으로 자책하며 한숨짓고 있는데, 민석이 내 한숨에 놀란듯
두 손까지 들어 저어보이며 '신경쓰지 말아요!'라고 말한다. 그를 보고 픽웃어보이며 말했다.
"늦어서 커피는 못샀으니까. 밥이라도 살까요?"
"아 그럼 밥먹고 제가 술살게요!"
밥을 사겠다는 내 말에 민석의 얼굴이 밝아진다. 많이 배고팠나?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덧붙여 말하는 말에 기가 차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되게 진자하고 또랑또랑하게 얘기하는데, 다 큰 남자가 귀엽다고 느꼈다는건 좀 오바인가.... 이런 만남이 떨리기도 하고, 말도 안했는데 흔쾌히 술을 사겠다는 그의 말이 내게 호감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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