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슙민] 씨스루 통통한 입술, 미끄러운 웨이브, 그리고 초콜릿 같은 목. 그게 박지민의 첫인상이었다. 물론 내 주관적인 의견에 한해서겠지만, 박지민 목은 세상에 존재하는 목들 중에서도 단연 가장 예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존나 앙증맞고 귀여운 이목구비나 동그란 얼굴선은 조물주가 내 취향을 저격하고 조물조물 빚었을 게 분명하다. "야." "왜요?" "너 배 안 고파?" "고파요! 맛있는 거 사 주시게요?" 말을 붙이면 금세 싹싹하게 굴어오는 꼴이 꽤 살갑다. 동그란 머리통을 쓸어내리면서 어. 하니까 눈을 풀고 웃는다. 내가 저 웃음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한 마음은 한 켠에 접어두고 뭐 먹고 싶은데? 하고 묻자 의외로 소박하게 떡볶이요, 하고 대답한다. 떡볶이 정도야 정국이도 사 줄 수 있겠다. 말은 안 했지만 정말 그런 생각은 했다. 나를 지금 정국이 정도로 보나 싶기도 했는데 신이 나서 웃는 얼굴을 보니 또 그럴 만큼 생각이 있는 애 같지도 않고. 마냥 순수한 얼굴이 귀엽기만 하다. "알았어, 사 줄게." "그럼 지금 나가요?" "어." 헐, 형이랑 데이트하는 건 처음이야! 떨린당. 말투도 꼭 동글동글 귀여운 게, 카메라 앞에서 등판 다 비치는 씨스루 입고 꿀렁꿀렁 춤 추는 애가 맞나 싶기도 하다. 뭐 카메라 앞에서도 충분히 귀엽지만. 먹고 나중에 단 둘이서 심야 영화나 보러 갈까? 박지민이라면 로맨스 영화 보고 내 옆에서 질질 짜는 불상사가 생길 확률도 있다만, 그런 거 다 제쳐 두고 둘이서 두 시간 같이 앉아있고 싶다. - "야, 너 왜 이렇게 젓가락질을 못 해?" "아! 나도 모르겠어요! 나도 잘 집고 싶은데!" 떡볶이 먹는데 괜히 젓가락을 가져왔나. 누군 박지민이 저렇게 젓가락질을 못 할 줄 알았냐고, 진짜. 숙소에서 볼 땐 젓가락으로도 잘 먹는 것 같더니만, 떡이고 뭐고 다 흘리고 난리도 아니다. 울상을 짓고 젓가락 하나로 떡을 콕 찍은 박지민이 그걸 입에 넣고 또 좋아라 웃는다. 저렇게 단순하니까 맨날 김태형이 놀려 먹지. 쯧 혀를 차고 떡 하나를 집어 먹으니까 박지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와, 형 지금 나 젓가락질 못 한다고 막 혀 차고, 그러면 돼요? 진짜 못 됐다." "그런 거 아니거든." "아, 그래요? 아니면 됐어요." 또 흐흥 웃으면서 떡을 집어먹는 게 이젠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삐졌던 거 아닌가? 삐진 게 저렇게 쉽게 풀려? 참 웃긴 놈이다. 또 떡 하나 가지고 전쟁을 벌이는 박지민 덕분에 탁자에 떡볶이 국물이 다 튀었다. 야, 뭐하냐? 물으니까 머쓱한 얼굴로 헤, 웃는다. "솔직히 젓가락질 너무 어려워요." "초딩도 하는 걸 니가 왜 못 하냐? 입 벌려 봐." 에? 하는 박지민의 입 사이로 떡을 하나 집어 밀어 넣어 주니 또 웃는다. 쟨 뭐만 하면 쪼개고 난리야. 그래도 웃는 낯이 꽤 귀여워서 잠자코 있었더니 모이 주는 어미 기다리는 새끼 새 마냥 입을 벌린다. 뭐? 내가 묻자 시선을 돌려 떡볶이를 가리킨다. 아오, 이게 눈에 뵈는 게 없나 진짜. 투덜거리면서 떡 하나를 더 집어 입으로 가져다 대자 으으응, 하면서 고개를 젓는다. 또 뭐? 내 물음에 박지민이 어묵이용, 하고서 흐흐흐 웃었다. 저 미친 것……. 내가 착하니까 하나 더 먹여 준다. - "아악! 형! 무서워요! 무서워요!" 제 팔에 찰싹 달라붙어 감정을 생중계로 전달해 주는 지민을 보고 윤기는 괜히 좀비 영화를 택했나 싶었다. 사실 지민의 반응이 궁금해서 선택했던 건 맞는데, 이렇게까지 부들부들 떨 줄이야 알았겠냐고. 근육 키워봤자 다 헛 짓이다. 어쩜 그리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떨어지질 않는지, 헛웃음이 다 나온다. 사시나무 떨 듯 떠는 지민이 우습기도 우습고, 안타깝기까지 해 윤기가 리모컨을 든 순간 장면이 바뀌었다. 평범하게 남자가 출근하는 장면을 보고 지민이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무서워? 다른 거 틀까?" "실컷 다 봐 놓고……. 뒤 궁금하단 말이에요." "아, 알았어 그럼. 너 무서워 해도 난 몰라." 맥주 가져올 테니까 앉아서 보고 있어. 덧붙이는 말에 지민이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 혼자 두면 또 무슨 반응이 나올까 궁금해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꺼내며 고개를 돌린 윤기의 시야에는 베개에 파묻히다시피 얼굴을 묻고 덜덜 떠는 지민이 들어왔다. 아, 귀여워. 안주로 먹을 과자 몇 개와 지민의 입에 물려 줄 젤리까지 챙겨 원래 앉아 있던 자리에 앉자 자연스레 지민이 팔에 매달려 온다. "먹어, 젤리 가져왔어." "무서워서 베개를 못 치우겠어요." "아오, 내가 이 나이 먹고 너 젤리나 먹여 주리?" "아, 한 번만 먹여 주세요." 우는 소리를 내는 지민의 입에 젤리 하나를 집어 넣어 주니 화면에서 눈도 안 떼고 오물오물 젤리를 잘도 먹는다. 그 광경이 신기해 아예 지민이 안은 베개에 얼굴을 고정 시키고 젤리 먹는 지민을 구경ㅡ이라 쓰고 관찰이라 읽는다ㅡ하던 윤기가 젤리 하나를 더 꺼냈다. "아." "아앙."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입을 벌리는 지민이 우스워 젤리 하나를 더 넣어 주자 그대로 야무지게 젤리를 씹어 삼킨다. 아이고 예뻐라. 윤기가 추임새를 끼얹어 주자 또 금세 사르르 녹는 웃음을 짓는다. 아깐 무섭다더니 이거 순 변덕쟁이 아니야? 지민이 손을 뻗어 봉사마냥 베개 너머를 더듬다 걸리는 젤리 봉투에 또 녹는 웃음을 지었다. "맛있어?" 탐문하듯 묻는 윤기의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여 준 지민이 입에 젤리를 물고 영화에 집중했다. 폐 건물에 몰려드는 좀비들을 주인공이 때려 잡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하여간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는 장면쯤일 거였다. 이미 지민과 보기 전에 벌써 개봉하자마자 남준과 한 번, 또 정국과 한 번 본 영화라 내용을 거의 외워버린 윤기가 속으로 생각했다. "하나 더 줄까?" 에.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지민의 입 안으로 젤리와 함께 손가락 하나가 쏙 들어갔다. 놀란 지민이 입을 벌리자 윤기가 그 사이로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넣었다. 혀에 착 감기는 손가락의 촉감이 묘한 건 두번째고, 일단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윤기의 어깨를 두어 번 팡팡 치자 혓바닥에서 입천장으로 손가락을 옮겨 간다. "혀, 머헤오." "영화 계속 봐." "혀니 송카라글 빼하 보조." 뭉개지는 발음으로 겨우 대답한 지민은 꼭 침이 흐를 것 같아 윤기의 어깨를 밀어냈다. 아냐, 그냥 봐도 돼. 정작 안 괜찮은 건 지민인데 윤기는 그렇게 매듭 지어 버린다. 혀어. 지민이 말꼬리를 늘이며 윤기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그제서야 윤기가 휴지를 한 장 뽑아 지민의 턱 밑을 닦아올린다. 턱 밑부터 입가까지 대충 휴지로 훑은 윤기가 제 손에 묻은 지민의 침도 닦아냈다. "박지민 침 더러워." "그러게 누가 손 넣으래요?" 당돌하게 말한 지민이 아예 베개로 윤기와 제 사이를 가로막고서 영화에 집중한다. 사실 새침하게 고개를 돌린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윤기의 시야를 가리고 나니 정작 티비 스크린을 가릴 만한 도구가 사라졌다. 맨 눈으로 저걸 보기에 지민은 겁이 많고, 그렇다고 윤기를 가린 베개를 거둬 제 시야를 가릴 수도 없고. 지민이 고민하는 사이에 윤기는 저 미친 도도함은 무엇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고개를 팩 돌리더니 제 눈 앞에 베개까지 올려둔다. 저래 놓고 또 무서운 장면 나오면 백퍼 내 팔에 다시 매달리겠지? 애써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삼킨 윤기가 언제쯤 매달리나 싶어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고 누웠다. 아마 일 분도 안 가겠지만. 아, 일 분은 너무 길었나? 삼십 초? "아악! 형!" 삼십 초는 무슨, 십 초도 안 있어 제 손을 꾹 잡아오는 지민에 윤기가 피식 웃었다. 내가 얘 이럴 줄 알았어. - "야. 아파?" "네." "많이?" "형이 말 시키시면 안 될 만큼 아파요." 그러면서 대답은 잘 하네. 일어나, 업어 줄 테니까. 지민은 제 앞에 쪼그리고 앉은 윤기를 멀뚱히 쳐다봤다. 허리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 하는데 어떻게 업히라는 거야. 아, 맞다. 아파서 못 일어나지. 윤기가 독심술이라도 한 듯 중얼거리더니 옆에서 소세지를 까 먹는 태형을 불렀다. "야, 얘 좀 일으켜봐. 또 오바하다 넘어졌어." "또요? 이 새끼 이거 순 또라이네." "내 말이." 뭐라 반박하려 해도 배에 힘을 주면 허리가 아파 입을 꾹 다문 지민의 어깨를 태형이 조심히 들고 일으켰다. 근육이고 뭐고 다 쓸모없네. 중얼거린 태형이 윤기의 등에 지민을 천천히 걸쳐 줬다. 창피한 건 둘째 치고 아픈 건 아픈 거라 아, 아, 했더니 태형이 지민의 엉덩이를 톡 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엄살 부리지 마라." "엄살 아니거든!" 빽 소리 지르는 지민이 귀여워 태형이 입을 네모지게 웃었다. 하여간 박지민 저거 존나 단순해 가지고는. 아 씨 쓰루 유.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는 태형에게 정국이 눈을 휘어 웃으며 물었다. 형 또라이에요? 아니, 걍 불러봤다. 아, 그래요? 근데 윤기 형 은근 힘 좋네요. 저 근육덩어리도 업고 다니고. 아, 저거 걍 다 보이는 거 삐다. 내가 방금 들어 보니까 별 거 없드라. 진짜요? 어. 빡찌 하는 짓하고 무게하고 똑같다. 웃는 태형을 따라 정국이 웃으며 흥얼거렸다. 씨 쓰루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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