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살이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먼저 눈을 뜬 종대가 몸을 살짝 일으켜 제 옆자리를 확인하고서는, 만개한 꽃 같은 미소를 띄웠다. 눈을 감은 채로 가슴에 두 손을 접어 올리고 잠에 들어있는 나의 정인(情人). 자는 모습도 그저 곱고 예뻐보여, 아예 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누웠다. 넓기도 한 침상이 한 번 흔들렸다. 다행히 잠시 표정이 흔들렸을 뿐, 커다란 눈은 보이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살이 뚫고 지나간 상처가 아직 욱씬거리기는 하였으나. 이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아픔까지도 다 잊곤 하였다. 사모하는 마음. 그것이 얼마나 깊으면, 내 통증까지도 멎게 해주더냐. 가만히 바라보아도 애뜻하여, 볼도 한 번 쓰다듬었다, 투영한 손목에도 입맞추었다, 그리 만지작거리니 어느덧 실눈을 뜨고 저를 바라보는 제 정인의 모습이 보였다.
"마마." "깼어?" "저를 깨우시지 그러셨습니까."
이렇게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도 좋더구나. 하며, 단단히 내 몸을 끌어 안는 종대였다. 풀썩하고, 품 안에 파고든 기분이 달콤했다. 이리 꼬옥, 안고 있으니 간밤이 생각났다. 침상에 함께 누워, 그저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가 꽃잎을 닮은 입술을 포개고 유유자적 장난을 치기도 하고, 너른 품에 안기어, 팔을 베고 누워 고운 자장가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곡조에 고개를 갸웃하자, 목젖이 다 드러날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는 종대였다. 왜 웃으시냐, 볼멘소리를 하니 그런게 있다며 다시금 꼬옥 안고 콧잔등과 이마에 입을 맞추어오는 바람에, 그 답은 듣지 못하였으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행복했던 그 시간이 스치어, 피식 하고 웃음이 새었다. 나도 같이 웃자며 왜 그러냐 묻는 종대에게, 차마 대답하기 민망하여 가슴팍을 살짝 밀고 고개를 숙였더니, 목 뒤에 손을 넣고 나를 제 몸 위로 안아 올리는 그였다. 부끄러운 마음에, 입술이 꼬옥 깨물어지며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으니, 이래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나며, 온 몸에 간지럼을 태워왔다. 제대로 말도 못 할 정도로 웃다, 이러다 숨이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을 때, 손이 떨어졌다. 눈물까지 송글송글 맺힌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니, 그제서야 미안했던지 뒷 목을 긁적이며 쓰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다, 몸을 숙이어, 얼굴 근처까지 가까이 다가갔다. 누가 보아도 놀란 표정의 그 얼굴을 두 손으로 가벼이 쥐고, 어여쁜 입에 쪽, 하고 입맞추었다.
"행복하여 웃었습니다." "......" "믿기 힘든 만큼 행복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이 샙니다." "....아..." "이리 돌아와주시어 감사합니다."
꽃같은 입술로, 꽃 같은 말만 내뱉는구나. 나의 여인은. 저를 내려다보는, 아리따운 얼굴을 손을 올려 쓰다듬으며 생각하였다. 왕족으로 태어난 제 운명이. 매일 밤 원망하였던 모진 인연이. 다 그대를 만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고. 이 순간 만큼은. 세상의 순리가 다 나와 그대를 위해서인 것만 같아, 오로지 저 혼자였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다.
따사로운 햇살을 쏟아내는 저 하늘에 대고 빌었다. 이제는 제발. 우리에게 함께 이겨낼 수 있는 고통만을 주시라고.
성균관 스캔들 11
일사천리도 진행되고 있다 여겼던 계락이, 결국 제 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말았다. 아들의 마음조차 파악치 못한 채 이 지경까지 만들어버린 제 자신을 탓하다, 결국 앓아 눕고만 중전이었다. 아름답기 그지없던 얼굴에, 수심이 하나 가득 들어섰고, 늘 붉던 입술 색마저 투영해지었다. 입 안으로 단 한 숫갈의 음식도 허용치 못해, 앉아있을 힘조차 없는 중전이었으나. 죄책감과 비통함이 잔뜩 눌러앉은 중궁전에 찾아온 객(客)으로 인해, 힘겨이 몸을 일으켜 꼿꼿이 앉았다.
"중전마마. 옥체는." "제 꼴을 보고서도 지금 옥체의 평온함을 물으시는 것입니까. 예판." "아. 송구하옵니다. 마마." "됐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예판과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마마. 왕자마마의 일은 정말 송구스럽게 되었습니다. 왕자마마 마저도 그 계집에게 연정을 품고 계실 줄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그만. 그만하시라 했습니다. 예판." "마마." "나는.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내 하찮은 욕심 때문에, 내 아이가 대신 벌을 받은 것 같아. 어미로서 너무 힘이 듭니다. 이젠 그저 그 아이가 하고자 하는 데로. 놓아줄 것입니다.
확고한 중전의 의지에, 예조판서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중궁전을 빠져 나와, 가마에 올라탔다. 가마에 올라타자 마자, 잇새를 뿌드득 갈았다. 객기라 욕하고, 독하다고 혀를 차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것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 왔으니. 늘 꿈꿔왔던 목표는 달디 달았고, 그것을 맛보았으니 더욱이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사람이란 이토록 어리석어 더 커다랗고 더 풍성한 것을 꿈꿨다.
사내가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끝을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 . .
왕자의 방. 그 뒤로 조그맣게 마련된 나의 거처. 왕자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궁궐의 모든 왕족들이 그를 찾아오는 탓에, 더 이상 침소에 함께 있을 수 없었기에 종대가 마련해 준 작은 방이었다. 평소 머물던 방보다, 단연 작은 크기였지만. 그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하였다. 얇은 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어, 서로 마주보고 있지 않아도, 목소리로 서로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적어도, 그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전하와 중전마마가 다녀가신 뒤로, 한바탕의 평화가 찾아온 시점이었다. 밝은 햇살을 불빛 삼아, 서책을 읽고 있던 제 손이. 저 멀리서 아득하게 호명되는 이름에. 뻗뻗하게 굳어왔다.
"왕자마마. 세자저하 드십니다." "어서 드시라 하거라."
서책을 내려놓고, 양 손을 올려, 입을 꽉 틀어막았다. 혹여나 터져나올지 모를 울음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리 다시 마주하니, 기쁘구나."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들려오는 나직한 음성에 눈물이 터진다.
"형님...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네가 미안할 것이 무에 있느냐. 하나뿐인 아우조차 보호치 못한 내 탓인게지." "형님..." "이리 깨어나주어. 고맙다. 진심으로."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묵직하다. 약간 쇳소리가 섞인 것이 잠을 깊게 이루지 못한듯 하여, 못내 안타까웠다. 혹, 그 곱고 흰 얼굴이 수척해지진 않았을까. 통통하게 살이 올라 귀여웠던 볼이 볼품없이 움푹 들어가지는 않았을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그 얼굴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허나. 이제 제 처지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그 모습은. 들리는 목소리에 의존하여. 상상에 맡길 뿐.
"그 날, 네가 구한 여인이. 네 정인이냐." "네. 그러합니다. 형님." "어여쁘더구나."
우윽, 하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소리를 안으로 머금으려 애를 썼다. 심장의 통증은. 평소의 배가 되었다.
"꼭. 잘 해주거라." "..." "네 목숨을 바쳐 구할만큼 소중한 사람이니." "..." "꼭 잘해주고." "..." "울리지도 말고." "..." "네 생이 다할 때까지. 예뻐해주거라." "..." "그 여인보다 더 많이 사랑해주거라."
내 몫까지. 라는 말을 안으로 삼켜내는 민석이다. 담담하게 말을 내뱉는 제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기하였다.
너무 아프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하였던가. 제 자신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 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하나는 가슴으로 품은, 애닳은 제 동생이었고. 하나는. 제 빈이 되어주기를 바랬던.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쓰러진 두 사람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였다. 먼저 발견치 못한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가, 어찌하여 저희 형제에게 이리 가혹한 운명을 내리셨나 하늘도 원망하였다가, 하필 같은 여인을 사랑한 제 아우를 탓해보기도 하였다, 결국 너무도 어여쁜 게 탈 인. 제 정인마저 탓하였다. 한 나라의 세자라는 자가 이리도 한심하다.
매일 밤, 제 어미의 정원으로 가, 수면 위로 비친 달 빛에 대고 물었다.
'어머니,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두 사람 다.. 놓지 못하는. 제 자신이 답답하고 한심합니다. 어머니.' '제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까.'
수면 위로 떠오른 달이, 제 마음을 달래주는 것 마냥. 아름답게 흔들렸다. 그 아름다운 달 빛 위로, 제 푸른 곤룡포가 비추었다. 이 나라의 세자로서,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는. 그저 받기만 하는 삶을 살아왔다. 허나, 제 아우는. 달랐다. 같은 왕족으로 태어났음에도, 모든 것을 잃으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잃으려 한다. 제가 잃는 것이 맞다. 그리 생각한다.
맞는 일을 하는 것인데. 왜 내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인가.
왕자의 처소에서 나와 동궁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멀었다. 민석이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마다, 그에게만 보이는 피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사랑했던 나의 그대여.
시간이 지나, 너를 편히 마주하게 될 수 있다면. 내게 말해주겠느냐.
단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나를 사랑했었다고.
내 연정(戀情)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고.
. . .
세자저하까지 다녀가고 나자,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몸을 일으켜, 제 정인이 머무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종대였다. 말벗조차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심심하지는 않았을까 하여 빠르게 문고리를 잡아당긴 종대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저 때문에 매일 밤을 울며 지새웠을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더더욱 울게 하고 싶지 않았던 제 여인이, 심장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 그저 꼭 안아주니,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제 옷깃을 꼭 잡고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눈물을 흘린다.
"왜 또 이리 우는 것이냐. 응?"
"흐으..흡..마마..."
"말을 하여야 내가 알지."
"으어...흐...으읍.."
"울지마라. 응? 나 좀 보고."
"마마..."
"응?"
"안아. 안아주시옵소서."
이 아픔이 멎을 수 있도록. 제 정이 온통 마마에게만 향할 수 있도록. 뜨겁게 안아주시옵소서.
우쮸쮸쮸입니다 :)
그렇습니다. 다음 편은. 호호호,
ㅂㅁㅋ 입니다. ♥
아, 그리고, 이대로 종대가 남주 확정인 것이냐, 물어보시는 독자님들이 많으신대요. 음... 글쎄요? 종대일수도? 민석일수도? 경수일수도? 종인이일수도? 음..준면이는ㅋㅋㅋㅋㅋㅋㅋㅋ 막판에 꽂히면 불륜막장극 만들어 버릴 수도 있어요 저ㅋㅋㅋㅋㅋㅋㅋ 이제 겨우 제 글은 11편이라는 거! 엔딩은 25~30 정도가 될 거라는 거! 고 정도만 힌트를 드리고 갈게요 (찡긋) 흥미진진할터이니 떠나시면 아니됩니다요! 끝까지 함께 해주실 거죠? *.*
+) 저번 부터 궁금했던 건데요... ☞☜ 제 글에 추천을 눌러주신 단 한 분! 사랑스러운 추천 요정님? 어디계신가요? 언제부턴가 한 분이 추천을 계속 눌러주시는 거 같아서.. 궁금했어요...ㅎㅎㅎㅎㅎ... 제가 이뻐해 드릴게요 이리 오세요 ♥
아, 그리고 저 엑독방에서 맨날 노는데요.... 헤헤.. 요새 들어 제 글 재밌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진심으로 너~~~~~~무 행복해요ㅠㅠㅠㅠ엉엉ㅠㅠㅠㅠ 사랑해요 추천요정님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제 사랑이라도 좋으시다면 마음껏 가져가세요!!!!!!!!!!!!!!!!!!!!!!!!!!!!!!!!!!
제가.. 사담이 길었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앞에 이렇게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전 그냥 제 글 꾸준히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님들이 너무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 정말 글 쓰다 문장이 안나와서 화날때면 0편부터 쭈르륵 댓글들 한 번 다시 읽고온답니다ㅠㅠㅠㅠㅠㅠㅠ 제 글의 원동력은 여러분이에요!!!!!!!! 사랑합니다!!!!!!!!!!!!!
그럼 이제 사담 끄읕, 다음 편에서 만나요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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