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of nightmare
01-1.
콰앙-
아까부터 어디선가 들리는 굉음에 아이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잠시 다시 한번 들리는 굉음에 동우도 귓가에
꽂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빼고 고개를 들었다.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지. 상황파악도 제대로 되기 전에 다시 한번 들리는
굉음과 함께 책상이 밀리는 소리, 의자가 넘어가는 소리, 뛰는 발 소리, 누군가의 비명소리,
비명소리?
누가봐도 이상한 상황에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어폰 한 쪽은 귀에 꽂고
한쪽은 손에 들고 있던 동우도 이게 무슨 일인가 머리를 빠릿빠릿 돌렸다.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찰나, 앞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한 여학생이 비틀대며 들어와 살려달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부들부들 떨리던 다리에 결국 힘이 풀려 풀썩 쓰러진 여자는 아예 기어들어오며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여자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분명 학교 교복일게 분명한 그녀의 옷은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심상치 않은 그녀의 꼴에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자, 보다 못한 동우가 한쪽에만 끼고 있던 이어폰도 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 뒷자리였던 동우가 앞으로 가려고 한발자국 나서자 마자 일은 일어났다.
그 존재를 무어라 설명 할 수 있을까.
그냥 '괴물'이었다.
그 괴물을 말로 형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잔뜩 헝클어져 있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얼굴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뭉게져 있었다. 누가 염산을 뿌린 것 처럼 피부가 흘러내린듯 축축
처져 있었고 갈색빛을 띄었다. 과일이 잔뜩 썩어 뭉게진 것 같았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엔 그저 큰 구멍 두개가 숭숭 나 있었고, 그 밑에 입가는
양쪽으로 크게 찢어져 이가 다 보였다. 이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검은 머리카락이 잔뜩 엉킨채 끼여 있었고, 그 늘어진 머리카락에서 검붉은 피가 타고 떨어져
바닥에 방울방울 붉은 점이 뚝뚝 생겨났다. 그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자 시뻘건 덩어리가 철벅철벅 바닥에 떨어졌다.
그게 뭔지 알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몸은 더 가관이었다. 배 한가운데는 뻥 뚫려 장기가 반쯤 튀어나와 덜렁거렸다. 긴 팔은 멋대로 꺾여 있었고 발목 한쪽도 꺾여 오른쪽은 발 등으로
서 있었다. 잔뜩 비틀린 몸에 흰 뼈가 드문드문 살을 뚫고 나와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그 괴물은 순식간에 다다다 달려가 바로 앞에 있는 남자의 머리를 잡고 입을 크게 벌려 입 안에 넣었다. 으드득 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머리가 씹힌 남자는 머리 반쯤이 뜯어진채 힘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의 일부분이 그 끔찍한 괴물의 입 안에
남았다. 이 모든일은 여자가 교실에 들어온지 1분도 채 안되어 일어났다.
교실은 순식간에 공포로 물들었다. 반쯤 정신이 나가 서로 이 곳을 벗어나려고 몸싸움을 벌였다. 대부분은 괴물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몇몇은 공포와 역겨움에 속을 게워냈다. 온 교실에 피비랜내와 괴성, 우득우득 씹히는 소리가 가득했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나가려는 사람에게 무참히 짓밟혀지고 발에 차였다. 동우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두 귀를 막고 눈을 꼭 감았다.
아비규환이었다.
이건 악몽이야. 이건 꿈이야. 누가 이 악몽에서 깨워 주면 좋겠다.
빨리 호야가 이 악몽에서 빼내 주었으면 좋겠다.
이호원. 호원아, 제발!
"동우야!"
어디선가 들리는 제 이름에 동우는 꾹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고개를 팍 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이 누군지 미처 보지 못한채
누군가의 악력에 정신없이 끌려갔다. 우왕좌왕 갈피를 못잡고 그저 괴성만 난무하는 그 복도에서, 혹시나 놓칠까 혹시나 잃을까, 제 손목이 으스러질 듯
꽉 잡고 인파를 헤쳐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자연히 알았다. 제 손목을 잡고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제 이름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한참을 뛰다 자리에서 멈추자 마자 동우는 그의 품에 얼굴을 쿡 박았다. 팔을 들어 그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숨이가빠 몰아쉬는 그 숨소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 가슴팍이, 제 어깨와 허리를 감싸는 그 팔이, 너무도 익숙한 것이라 안심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화들짝 놀라 어깨를 잡고 떼어내 자신의 얼굴을 확인 하는 그의 표정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호원이었다.
"왜 울어? 괜찮아? 어디 아파? 다쳤어? 어디 다쳤어?"
다급히 물어보는 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허리를 숙여서 제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는 그의 얼굴이, 붉은 눈가가,
제 어깨를 꽉 잡은 그 두 손이, 그 손에서 느껴지는 그 떨림이, 모든것이 제게는 큰 안심이 되었다.
"흐....호원아...으..."
"그래, 괜찮아. 괜찮아, 나 여기 있어."
팔을 뻗어오는 동우에 호원은 다시 그를 꼭 안아 등을 일정하게 토닥여 주었다. 동우의 흐느낌은 더욱 커졌다.
동우는 무서운 것을 못 봤다. 호러영화는 물론이고 액션이나 스릴러 등, 혈이 낭자하고 누군가를 폭행하는 잔인한 것 역시 못 봤다.
흉기를 휘두르거나 피를 쏟아내는 장면만 있어도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동우가 저런 장면을 생 라이브로 봤다는 것은
꽤나 큰 정신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호원만 해도 그랬다. 호러나 스릴러를 꽤 즐겨보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끈적한 피가 뿜어져 나와 바닥을
적셨던 그 상황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비릿한 피냄새가 자신이 서 있던 곳 까지 퍼져 헛구역질 까지 했다.
컴퓨터 그래픽과 현실과는 너무 달랐다. 눈 앞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그 영상과 생생히 귀에 박혀오는 그 소리가 주는 공포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동우가 정신을 잃지 않은 것 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으...욱.
헛구역질 하는 동우에, 호원이 걱정스레 그를 바라보며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괜찮아? 호원의 물음에 동우는 애써 고개를 끄덕여 보이지만 표정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한쪽 손으로 벽을 잡고 헛구역질만 웩웩 하던 동우는 손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에 접었던 허리를 피며 일어나서는,
천천히 벽을 짚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피가 손바닥과 벽 사이에 끈적하게 늘어져 바닥으로 투둑 떨어졌다. 으아악!!!!!!
손을 털며 경악 하는 동우에, 호원이 재빨리 그의 손목을 잡아 제 옷에 슥슥 닦아냈다. 으아아..피, 피가...으...
아직도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동우가 말까지 더듬으며 손을 벌벌 떨었다. 그 피 특유의 느낌이 아직까지도 손에 남아있는 느낌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안되겠다, 손 씻으러 가자. 호원의 말에 동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Rrrr...
아, 진짜 대체 누구야...
침대 옆 콘솔 위에 올려뒀던 휴대폰이 쉴새없이 울리자 결국 명수는 짜증이 섞인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한창 집중해서 과제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집중력을 흐트린 사람이 누군지 죽여버리겠다 중얼거리며, 깜깜한 방 안에 눈부실 정도로 밝은 화면을 바라보던 명수는
화면에 떠 있는 수신자 이름에 놀라 눈이 번쩍 띄였다.
이성열? 성열이가 왜 이 시간에... 지금 이 시간이면 한창 야자에 열을 올릴 시간이란 걸 매우 잘 아는 명수는 전화가 울리는 이 상황이
의아스럽긴 했지만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굳이 무시하지 않은채 전화를 받았다.
"우리 성열이 왜 저,"
[야..어떡해? 씨발, 우리 학교 이상해..]
"뭐? 너 지금 그거 얘기 하려고 이 시간에 나한테 전화한거야?"
[진짜 이상해..씨발 나 진짜 무서워서..흐...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윽..]
"뭐야, 이성열 너 울어? 왜 울어?"
[울긴 씨발..안 울어...]
"구라치지마! 뭐야, 너 지금 학교지? 왜 그래, 뭐가 이상한데! 나 지금 간다."
[안돼 오지,]
.
.
.
.
.
뭐야, 왜 안들려.
갑자기 끊긴 전화에 명수가 폰만 내려보다 바로 집을 박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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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가 야자시간에 듣고 있었던 노래는 Before the dawn.
'동이 트기전에'라고 해석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