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of nightmare
01-2.
이성열이 울다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단순하고 쿨한데다 워낙에 낙천적인 애고, 여리여리한 얼굴과는 다르게 남자다운 성격이라 원체 울지 않는 아이다.
그런데 저렇게 울다니. 내가 바보천치도 아니고 안 운다고 잡아떼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통화 할때도 계속 이상하다 그러고.
생각이 여기까지 뻗치니 발이 절로 빨라진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밖에 하지 않는다던 원래의 명수 였으면 30분은 족히 걸릴 거리가,
무려 15분으로 단축 될 정도로 그에게는 심각한 일이었다. 처음으로 학교 가는 이 길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산 바로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학교라 오르막길도 만만치 않지만 오르막길 오르고 나서도 가로수 길을 조금 걸어야 비로소 교문이 보인다.
아 평소에 운동 좀 해 놓을걸. 헥헥대며 가로수길을 걸어 교문을 향하던 명수의 발걸음이 점점 늦춰지더니, 교문 앞에서 우뚝 멈추었다.
그는 손을 뻗어 쇠창살로 되어 있는 교문을 슥 흝어내렸다. 쇠 특유의 차가운 감촉이 손에 퍼졌다.
찬찬히 손을 내려 보이는 자물쇠를 아예 움켜잡았다. 묵직한 자물쇠가 쇠창살이랑 부딪쳐 철컹 소리가 났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파악도 되기 전에 교문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공허한 학교 앞에 요란한 소리만 울려퍼지고 굳건한 자물쇠 덕에 열릴 생각을 안하는 교문에,
명수는 아예 발로 차기 시작했다. 씨발, 씨발!!!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거칠게 욕을 뱉으며 교문을 발로 차고 흔들어 보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폰을 켜 시간을 보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10시까지 야자를 하기 때문에 절대 이 시간에 문을 잠글 이유가 없다. 초조한 마음에 성열에게 다시 전화를 해보지만 전화가 꺼져 있다는
안내음만 차갑게 들려올 뿐이었다.
월담은 할 수 없게 교문과 담을 엄청난 높이로 쌓아올렸다는 건 이 학교 학생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국가에서 작정하고 만들어낸
종합학교는 성벽 속에 학교마을이라 칭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와 퀄리티를 자랑했다. 자신이 설사 체육특기생이라고 할지라도
이 담은 넘을 수 없을게 분명했다. 어쩌지..어쩌지... 굳게 닫힌 교문 앞에서 돌아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 명수는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애꿎은 머리만 쥐어뜯었다. 교문을 지나 들어간다 해도 꽤 긴 벚꽃나무 길을 지나야 비로소 학교 본관이 나오는 이 거지 같은
학교 지리 때문에 학교 안 상황이 어떤지 보지도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욕만 내뱉던 명수는 불현듯 든 생각에
뒤돌아 지나왔던 가로수 길을 다시 되돌아 뛰어갔다.
학교 뒷편.
학교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공식적으로 저 교문 하나 뿐이지만, 이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 중에 극소수는 다른
은밀한 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좋게말해서 은밀한 문이지 어느 학교에나 비밀스러운 곳에 하나씩 있다는 개구멍이었다.
학교 뒷편 담은 앞쪽이나 옆쪽 보다는 조금 부실한 편이었다. 뒷쪽으로 가 봤자 바로 산이라 안일한 생각으로 부실공사를 한 것 같은데
그 덕분에 사람 한명은 기어들어갈 수 있을만한 구멍이 생겼다. 이호원이랑 자신이 들키면 안된다고 수플을 한가득 가져와 연막이랍시고
그 구멍을 가려놓기도 했었는데. 이 개구멍이 이럴때 쓰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개구멍을 지나면 바로 어떤 문이 보이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창고, 또 보이는 문을 열면 계단과 또 다른 문이 보이고,
문은 1층 본관 복도와 연결되고, 계단을 오르면 2, 3, 4층 순이었다. 4층 문을 열면바로 맞은편에 9반, 그러니까 자신의 반이었다.
거의 쓰지 않는 문이라 녹슨 쇠 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창고를 지나쳐 계단을 올랐다. 아까부터 뭔가 음산한 느낌이 드는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층마다 지나치는 철문 너머가 숨막히게 조용했다. 아니, 조용을 넘어서 적막했다. 저절로 자신의 발소리도 줄였다.
4층에 다다라 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괜히 문에 귀를 대봤다. 뭔가 소리가 나는 것 같았지만 그냥 기분탓이라
생각하고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팟 튀는 무언가를 의아해 할 새도 없이 바로 굳어버렸다.
웬 여자가 다른 여자의 뱃속을 막 헤집고 있었다. 저 두손을 시뻘건 덩어리를 휙휙 던진다. 무거운 덩어리들은 철벅철벅 시체 옆에 떨어졌다.
긴 머리카락을 미친년 처럼 헝클여 놓고 뱃속을 헤집다 못해 그 머리르 잡고 그대로 으득 씹었다. 그 주위는 이미 피로 질척해져 있었다.
게걸스럽게 찹찹대는 그 입가로 피와 침이 섞여 바닥으로 주륵 흘렀다. 이미 머리 한쪽이 씹혀 한쪽 밖에 없는 그 눈이 자신과 딱 마주치자
온 몸에 벌레가 기어 올라오는 듯한 소름에 명수는 자신도 모르게 윽 하는 억눌린 신음을 뱉었다.
그러자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그 여자가 고개를 홱 돌려 명수 쪽을 봤고,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서 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시뻘게진 두 눈이 자신을 보며 쫙 찢어진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으득으득 씹히는 소리가 넓은 복도에 조용하게 울렸다.
그 여자는 입을 천천히 벌려 입 안에 있던 것들을 뱉어내더니 그것만큼 빨간 혀로 입가를 쓱 핥았다.
더 볼 것도 없었다. 너무 끔찍한 장면에 명수는 재빨리 문을 닫고 문을 잠궜다. 콰앙!! 그 여자..아니, 그 괴물이 문에 부딪혀 큰 소리가 났다
읍. 신물이 확 올라와 명수는 입을 손으로 막고 비틀비틀 뒷걸음질 쳐 문에서 멀어졌다. 씨발,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게 성열이가 말한 그것인가.
아직도 진동하는 듯한 피비린내와 귓가에 웅웅 울리는듯한 뼈 씹히는 소리에 명수는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너무 갑자기 마주한 말도 안되는 상황에
공포감을 넘어서 그냥 멍해졌다.
쾅!쾅!쾅!쾅!쾅!쾅!쾅!
지속적으로 문에 제 몸을 부딪히는 저 괴물은 분명 이 문을 부수려 하는 것이다. 명수는 아예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콰앙!!!!!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에, 명수는 아예 뛰듯이 계단을 두,세칸 밟으며 내려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 몇번이고 휘청였다.
힐끗 뒤돌아 보니 눈 뜨고 보기 힘든 '괴물'이 제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그 괴물이 두 다리로 성큼성큼 내려오다 덜렁거리는 발목 때문에 엎어지더니, 그대로 미친듯이 기어내려오기 시작했다.
딱딱한 화강암 계단에 배부분이 쓸려 괴물이 지나온 길마다 피로 흔적을 남기었다. 잔뜩 뒤틀려 흰 뼈가 툭툭 튀어나온 팔과
발목이 부러져 덜렁거리는 다리로 다다다 기어내려 오는 꼴은 가히 공포를 넘어서 엽기 수준이었다. 살을 뚫고 튀어나온 뼈들이
바닥과 부딪치면서 딱딱딱 소리가 났다. 거기다 검은 머리카락이 잔뜩 엉킨 그 사이로 슬쩍 보이는 얼굴과 낼름거리는 뻘건 혀는
호러 그 자체였다.
명수는 자신이 본 광경이 머릿속에서 도저히 사라지지 않아 제 머리를 퍽퍽 쳐대었다. 사라져! 사라지라고, 씨발!!!!!
애쓰면 애쓸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잔상에 다시금 토기가 솔려 명수는 머리를 때리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으...욱...
헛구역질을 할 수록 제 입에서 붉은 피가 쏟아지는 상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힘이 풀려 계속 휘청이는 다리를 억지로 붙잡고 내려오는 명수도 거의 제정신은 아니었다.
어쩌지...어쩌지!!!
혼란과 두려움, 끔찍함, 역겨움. 이제서야 극심한 공포심이 현실적으로 확 끼쳐왔다.
제대로 된 사고도 안된다.
어느새 1층이 보이고, 자신이 갈 수 있는 곳은 두 곳 밖에 되지 않는다. 1층 본관과 창고.
명수는 망설임 없이 창고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다다다 기어내려오던 괴물이 펄쩍 뛰어 명수에게 길고 끔찍한 팔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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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이 생각보다 용량이 길어서 나눴네요.
1화, 2화로 생각해봤는데 그렇게 되면 스토리 밀리고 꼬이더라고요;_;
브금 찾기가 참 힘드네요. 내용과 안어울릴지도 몰라요...(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