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사장님
05
부제 : 이러는 이유
어젯 밤, 어쩌다 보내졌는지도 모르는 그 문자가 발송되고 한 30분은 잠에도 못든 채 정신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봤던 것 같다. 물론 답장은, 없었다.
1분에 한번씩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답장이 오면 어쩌고 또 안오면 어쩌나. 별 걱정 다하다 불편한 자세로 자고있던 아침의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얼굴을 찌푸렸다.
안그래도 괜히 경수씨라고 해서 씹힌 것도 민망한데, 지금 더 민망한건 이 놈이 웬일로 오늘 하루 내내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는 점이다.
벌써 시간은 7시를 훌쩍 넘어가는 와중, 도경수는 퇴근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어째 얼굴 한번 마주치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매일 우리 가게 출근 도장 찍던 사람의 행방이 갑자기 묘연하니 신경이 안쓰일리가 있겠는가. 하필 내가 어제 문자도 보낸 차에 말이다.
내가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너무 오버한건 아닌지, 혼자 괜히 마음 쓴건 아닌지. 오늘따라 손님이 더 없는 카페에서 혼자 한숨만 포옥, 연신 쉬었다.
애써 도경수 생각을 지우고 내 퇴근 시간이나 기다리려는데 또 시간이 그렇게 안갈 수가 없다. 족히 10분은 지난 것 같아 시계를 보면 고작 3분 지나있고.
심심한 와중에 또 핸드폰은 배터리가 없어 꺼지기까지 했다. 어제 보낸 문자 때문에 수시로 핸드폰만 들여다봤더니 아주 초고속으로 꺼져버리네, 아, 진짜 망할.
"땅 꺼지겠네."
".....어?"
"뭡니까, 그 표정. 혹시 나 기다렸습니까."
심심해 죽겠는데 너까지 없으면 어쩌라는거야. 다시 켜봤지만 배경화면 불만 잠깐 들어왔다가 이내 금방 꺼져버리는 핸드폰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그 한숨을 채 다쉬기도 전에, 땅 꺼지겠네, 고나리 기질이 다분한 도경수 목소리가 들렸다. 얼른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보니 정말 "나왔어요" 하는 도경수가 서있다.
올 시간도 아닌데, 어쩐 일이냐는 질문보다 기다렸냐는 도경수 말에 부정도 못하게 만들버린, 어? 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태연하게 내 앞을 지나가 카운터와 마주보고 있는 테이블에 앉는 도경수를 따라 졸졸졸, 그의 앞에 섰다. 내 문자를 보긴 한거야?
"퇴근 시간 훨씬 지나셨잖아요,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커피 마시러 왔습니다."
".....아..."
도경수 앞에 서서 최대한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우며, 자연스럽기도 하고 약간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 시간엔 어쩐 일이냐고.
앉아서 또 책을 읽을 모양인지, 본인 가방을 뒤적거리던 도경수는 내 말을 듣고 테이블에 놓여있는 메뉴판을 한손으로 흔들며, 커피 마시러 왔습니다, 했다.
그러세요, 그럼.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 앉았다. 근데 쟨 뭔 놈의 사람이 저렇게 아무렇지가 않아? 계속 지켜본 도경수는 정말 마냥 책만 읽었다.
중간에 한번 주문하러 오고, 가끔 시간 확인하려 핸드폰을 본 것 말고는 정말 마냥,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에만 시선을 꽂고 있었다. 독한 인간.
핸드폰도 저렇게 들고다니는 걸 보면 내 문자를 못보진 않았을텐데, 역시 빼박 읽씹이겠거니. 괘씸한 마음에 다가가서 말 걸 마음도 사라졌다.
핸드폰도 없고, 신문도 도경수 차에서 버리고 오고. 미칠 지경의 심심함에도 도경수에게 말은 절대 걸지 않았다. 사람 자존심이 있지.
그냥 손톱 정리 하고, 화장이나 고치고 뭐 정말 의미없는 행동들의 행진이었다. 거울이랑 가위바위보라도 하라고 거울을 주면 할 의향까지 있었으니 그 정도가 짐작이 가는가.
도경수 사장님
"마감 시간 됐어요."
"정리된게 하나도 없는데요."
"그 쪽 가면 해야죠, 마지막 손님이신데."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 9시. 무슨 책을 읽길래 그렇게 몰두를 하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은 마감시간이 다가오자마자 그를 가차없이 내쫓기로 했다.
마감 시간됐다는 내 말에 오랜만에 고개를 든 도경수는 카페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정리된게 하나도 없는데요, 내 말을 믿지못하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퇴근을 같이 하자는거야, 뭐야. 됐으니까 꺼져. 단호한 말투로 그를 거절헀다. 그 쪽 가면 해야죠, 누가봐도 정없는 말투였음을 확신한다.
그런 내 태도에 눈을 꿈뻑꿈뻑,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도경수는 이내 갑자기 몸을 움직여 말 없이 카페의 블라인드와 조명들을 끄기 시작했다. 뭐하는거야.
"뭐하세요?"
"마감 시간이라면서요, 마감 도와주고 있는데요."
"그걸 왜 그 쪽이 하냐구요, 그러니까."
"빨리하고 집에 좀 갑시다."
혼자 분주하게 블라인드를 쳐대는 도경수에게 뭐하냐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마감을 너가 왜 도와줘.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도경수를 올려다보니 거들떠보지도 않던 도경수는, 빨리하고 집에 좀 갑시다, 다시 블라인드를 치는데 몰두했다.
"아니, 이봐요." 도경수의 팔을 잡았다. 오지랖? 관심? 그냥? 뭔진 몰라도 이러는 이유가 뭔지, 슬슬 짜증이 올랐다. 좋은것도 하루 이틀이지.
단순히 씹힌 문자에 화가 난다기 보단, 차근차근 되짚어 생각해봤을 때 모든 것에 이유가 없었던 그 동안의 도경수가 이제와서 의심스러웠다.
"제가 할게요." 내 표정에 당황한 도경수가 행동을 멈춘 동안 대충 조명만 끄고 짐을 챙겼다. 언제부터 마감이 이렇게 힘들었는지.
"안녕히가세요."
"저기요,"
"....."
"ΟΟΟ씨."
"....."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눈도 안마주친 채로 가벼운 목례만 하고 뒤를 돌았다. 저기요 하는 도경수의 부름도, 잠깐만요 하는 그의 다급한 목소리도, 불리는 내 이름도 외면했다.
나로선 빨리 걷는다고 걷던건데, 성인 남자의 뜀박질에는 역시 역부족인가. 얼마 안가 그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왜이래요." 도경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왜이래요?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 아닌가, 너야 말로 요즘들어 나한테 왜그래요. 언제 봤다고 이래요. 목 끝까지 따지고 싶은 충동이 차올랐다.
"그냥, 제가 사람을 잘 못믿어요."
"......"
"성격이 그래요, 이제와서 깨달았네요. 도경수씨가 이러는 이유를 아직까지 파악 못하겠어요,"
"......"
"이해하실거라 믿어요. 본인이 더 잘 아실거아녜요, 본인 행동으로 인해 우리 사이가 얼마나 급속도로 가까워졌는지."
"......"
"가까워지는건 좋은데,"
"......"
"이유가 없는건 싫어요, 별로예요. 믿음이 안가요."
"ΟΟΟ씨."
"아무튼 그동안의 선의는 감사했어요. 행동 자체를 의심하는건 아니니까 기분 나쁘지 않으셨으면 좋겠...."
"내 말 들어요."
언제부터인지 속으로 느끼고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도경수에게 말했다. 당신이 싫은건 아니고, 이 갑작스러움이 불편할 뿐이야.
어렸을 때 있었던 일도 있고, 그 일이 내 현재 생활에까지 미치는 영향도 있고. 오래 전부터 그냥 원래 사람들을 잘 믿지못하고 잘 따르지 못했다.
도경수라고 별 반 다를 것도 없었다. 어쨌든 나한테는 낯선 이에 불과했고, 이유없는 그의 행동들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불쾌해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최대한 나른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쨌든 감사한 일이 더 많기 때문이라면 이유가 되겠다.
공손히 던진 돌이니 맞아달라는 소리일지는 몰라도 내 최대한의 배려였음을 알아줬음해서 기분 나빠하지는 말아달라고 얘기하려했는데
내 말 들어요, 화난 듯 차분한 도경수의 말에 끊겨버렸다. 표정이 많이 굳어보이는데, 기분이 나빴나.
"이유가 왜 없습니까."
"....."
"이유가 없으면 누가 이럽니까."
"....."
"그 쪽한테는 모든 남자들이 이유도 없이 얼굴보려 찾아오고, 연락해달라고 명함도 넣어놓고. 그럽니까?"
"....."
"내가 급했던건 맞아요, 반가운 마음에 급했던건 맞는데,"
"....."
"이유가 없다는 말은, 생각보다 슬프네요."
기분이 나쁜가 싶어서 사과를 하려던 마음이 도경수의 억울함 가득한 그 말에 벙쪄서 텅 비어버렸다.
도경수 사장님
도경수의 긴 말이 끝나면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냥 도경수가 호출한 비서가 끌고온 차에 자연스럽게 둘이 올라탔을 뿐. 정적의 연속이었다.
대화를 주욱 이어나가려고 타긴했는데 어째 대화는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대화가 있어야만 이해가 가는 상황같지도 않았다. 상황 파악이 되기때문에 더 어색한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빨간 신호에 걸릴 때 마다 입술을 앙 물었다. 진짜 어색해서 차 뚜껑을 열고 어디로든지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미치겠네.
도경수의 표정은 또 아무렇지 않아보이는데, 이새끼는 뭐 어디 포커페이스 이런거 배우러 다니나. 나만 혼난다, 나만.
창 밖을 보다가 아주 가끔 살짝 눈을 돌려 도경수 표정을 확인하면 여전히 평온한 표정, 혼자 그런 도경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힐끗힐끗, 한 번 쳐다보니까 계속 쳐다보게 되는 인간의 심리를 아는가? 씨발, 정도를 모르고 너무 쳐다봤는지, 한숨을 푹 내쉰 도경수가 라디오 소리를 줄이고는
나를 쳐다보며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했다. 아,아뇨. 하하. 전혀요. 멋쩍게 웃는 내 표정에 도경수도 씨익 웃었다. 분위기가 조금은 풀려 다행이다. 후.
도경수한테 안들리게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있으면 곧 도경수가 또 입을 열었다.
"문자, 봤습니다."
"....네?"
"ΟΟΟ씨가 보낸 문자, 그거. 봤다고요."
"......"
"특별보관 기능 압니까. 그거 해놨는데, 막상 답장을 안했더라고요."
"......."
"그냥, 바보같이 좋아하다가."
"......."
"명함 줬다고 연락이 그렇게 바로 올 줄은 몰랐거든요."
"......"
"그럼 이제 우편물 주면 되는 겁니까."
"....예?"
"거기 주소 써있잖아요. 우리집 주소."
음란마귀 씌인 경수를 많이들 좋아하셔서 음란마귀 도경수 선생을 또 데려왔습니다 : )
폭풍전개...는 아닙니다.
얘네 본격적으로 사귀려면 멀었어요.
아무튼 얘네가 사귀든 말든, 작가는 여러분들의 댓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제 글보다 댓글 읽는게 더 재미있는 듯.... ♡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