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구두 한 번 신어볼랍니까?
w. 랑데부
4.
그렇게 대차게 까였다. 아니 그럼 사람 헷갈리게 하질 말던가. 사람을 막 안아주고, 끊어진 신발 버리고 새 신발 신겨주고. 한참 침대에 박혀 구르다 ㅇㅇ는 문득 몸을 일으켰다. 그 사람 연락처가 어디 있었는데. 아 어디있더라. ㅇㅇ는 캐리어에서 옷을 끄집어내 기어이 영현이 내밀었던 쪽지와 명함을 찾아냈다.
쓸모는 있겠지.
*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며 거리는 차근차근 붉은 옷을 하나둘 입어갔다. 크리스마스를 스위스에서 보내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에 떨어진 여행이었으니 오늘의 계획 같은 건 세워 놓지 않았다. 이 일곱 시간을 어떻게 버티고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혼자 남겨지는 시간은 자잘했고 잠시 눈을 붙이는 것 이외 해본 일이 손가락으로 꼽았으니 이 공허를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ㅇㅇ는 알 수 없었다.
"엄마, ..죄송합니다"
"창문에 대고 사과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점심이 다가올때까지 늘어지게 잠들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나오다 부딪힌 인영에게 한다는 인사가 영현에게 할 인사였다니. 나 미쳤지 진짜. ㅇㅇ는 영현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몸을 재빠르게 돌려 눈 주변을 손가락으로 박박 문질렀다. 하씨 세수라도 하고 나올껄.
"..어디가요?"
"어, 여보세요?"
그리고 물은 질문은 가차없이 씹혔다. 이 남자 내 질문을 점심거리로 먹을 셈일지도 모른다. 진짜 재수탱, 아니 아니다. ㅇㅇ는 영현을 쌜쭉 흘겨 보았다 이내 오늘 역시 선이 곧게 떨어진 수트를 차려 입고 코트를 걸친 영현의 차림새를 살폈다. 잘츠 부르크 공항에서 봤을 때를 합쳐 삼일 간 수트를 차려 입고 돌아다니다니. 원래 디자이너들이 다 그런가? ㅇㅇ는 금방 멀어지는 영현이 점이 될 때까지 가만히 서 바라보았다. 근데 내가 왜 이 남자를 쳐다봐?
"..세상에 칼로리"
편의점에 들어오자마자 나가는게 맞겠다는 생각이 급하게 든 ㅇㅇ는 몸을 틀었다.
"..어, 응?"
뭐야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정말로. 문을 열자마자 시끄럽게 매장 안을 삑삑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제 앞으로 다가와 이것저것 따져 묻는 직원의 응대를 하나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영어를 써보려 해도 통하지 않고 매장을 더 시끄럽게 삑삑대는 사이렌에 놀란 심장이 펄떡댔다.
"Was ist los?"
(무슨 일이죠?)
영현이 ㅇㅇ를 제 뒤로 세우고 서 날카롭게 물었다. 뭐야 그쪽?
"Ich habe sie gesehen, aber sie hat nichts dabei. Ich muss es uberprufen"
(아까부터 이 여자 보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어. 확인 시켜줘?)
"Wir konnen nach der Bestatigung raus"
(확인 후에 나갈 수 있습니다)
"주머니 좀 보여줄 수 있어요? 경보음이 울렸대"
"네? 아, ㅇ, 아 네"
근데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영현의 눈치를 살금살금 보며 주머니를 털어 보여준 ㅇㅇ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거기까진 됐어요.
"뭐라고 대화한 거에요?"
"별 말 안 했습니다"
이런 것도 비밀이야? 연예인이네 아주. 샌드위치를 베어 무는 영현을 빤히 올려다 보았다. 그와중에 점심도 거르고, 되는 일도 없었다. 아무런 대화 없이 ㅇㅇ는 영현의 뒤를 쫓았다. 그러니까 겁이 없었다. 그런 것을 한국에 집어 던져 두고 왔으니까.
"고마워요"
"아, 네"
고맙다는데 아 네? 그나저나 이 남자 대단하네. ㅇㅇ는 영현의 대답에 잠시 눈을 꾹 감았지만 다시 큼지막한 눈을 뜨고 영현을 올려다 보았다.
"오늘 나랑 같이 다녀줘요"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먼 타국에서 만난,"
"인연 같은 거라고 말하면 지금 가요. 나"
영현은 단호했다. 철벽이 아니고 이건 뭐 아이슬란드에서 공수한 얼음인가. 저 재수탱이. 한참 머리를 굴려보아도 충동적인 발언을 뒷받침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ㅇㅇ는 잠시 연기를 위한 시선을 바꿔 끼운 뒤 영현을 붙잡았다.
"제가 길을 잘 몰라서.."
"어제 잘만 다니던데"
이 남잔 그 누구의 말도 끝까지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세상 살이가 모두 자기 기준으로 돌아가는 축이겠지. 아니 근데 어디가? 금새 택시를 잡아 타는 영현에 급히 달려가 문을 잡았다.
"빚! 비, 빚 갚아야죠"
영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화했다. 여직까지 차가운 얼굴의 인상이 바뀐 것은 아니었으나 영현은 잡았던 손잡이에 힘을 조금 풀어냈다. 혹시 치한이라도 만나서 호되게 일이라도 터졌나. 사람을 못 믿어, 사람을. 말려 올라간 원피스 자락을 끌어 내리며 기사와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는 영현을 톡톡 손가락으로 눌렀다.
"우리 어디가요?"
"빚 갚는다면서요"
"그러니까 어디 가냐구요"
"호텔이요"
오 끝까지 같이 다닐 생각은 없다 이거지? 영현에게 반문을 하려 입을 열다 끝내 오물거리며 닫았다. 비엔나를 잘 아는 것도 아니었고 이렇게 냉철한 영현을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늦은 점심이나 사는 게 맞겠지.
"스위스엔 무슨 일로 가는지 물어봐도 돼요?"
"출장입니다"
"크리스마스에도?"
영현은 당연한 일에 무엇을 물어보냐는 얼굴이었다. 이 남잔 크리스마스고 빨간 날이고 없구나. 워커홀릭아냐? 모든 말이 두 마디 내지 세 마디에서 뚝뚝 잘려 나가니 원, 근데 나 왜 이 남자한테 쩔쩔매고 있는 거지?
"더 먹을래요?"
"네? 아, 아 안 드시면.."
"잘 먹길래"
영현은 음식이 앞에 놓이자마자 삼분의 일쯤 잘라 놓았던 스테이크를 조각조각 잘라 ㅇㅇ의 앞접시에 놓아주었다. 참 애매모호하게 구네. 관심은 단 일 퍼센트도 없는 것처럼 굴다가 또 다정한 행동 한 두개씩 하는 게.
원래 사람이 다 이런 건가?
5.
-스위스야. 26일 비행기로 돌아갈게.
도운이는 카톡을 읽고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 편이 마음이 놓였다. 아마 그래서 안 보냈겠지. 또 여러 말을 늘어 놓았다간 다시 도망칠 걸 분명 꽤뚫고 있을테니.
비엔나에서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계획 같은 것은 들고 오지 않았으니 주머니에서 흘러 넘치는 게 시간이었다. 근처 호텔을 잡아 짐을 풀고 나니 정말 공허함만 호텔 방 안을 그득그득 채웠다.
"..어?"
그 남자다. 다시 그 남자였다. 강영현.
할 일 없어 뒹굴던 일을 내팽겨치우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견뎌내기 위해 온통 축제 분위기인 거리로 나오자마자 맞은편 빌딩으로 들어가는 영현을 발견한 ㅇㅇ는 영현이 사라진 빌딩 앞을 하염없이 맴돌았다. 아는 사람이라곤 이 남자 뿐이니까. 영현을 마주하고 뱉어낼 변명 덩어리나 생각하며 시간이라도 떼울 참이었다.
"하씨 배고파.."
뭘 먹었어야 했다. 이미 해는 귀가하고 저녁 때가 차근차근 다가오는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으려니 다리는 저렸고 배는 아우성이었다. 어, 어 강영현.
"저기, 아!"
내 다리 눈치있냐. 빳빳하게 굳어 아리게 당기는 다리를 부여잡고 주저 앉았다. 아 저 남자 불러야 하는데, 어, 어어. 온다 온다.
"따라온 게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가 본 거에요"
"그게 몇 시간 전이죠?"
"...3시간?"
"나를 왜 기다렸어요"
"나도 몰라요"
내가 모르면 안 되지만 몰라요 진짜. 영현은 아주 매정하게 내치진 않았다. 적어도 내 다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프지 않게 주물러 주었고 쥐가 거의 풀렸을쯤 몸을 일으켰다.
"저녁 먹을래요?"
"먹었습니다"
먹었다면서 영현은 의외로, 나름의 매너를 보여주었다. 깨작되는 젓가락질 옆에서 다 먹을때까지 힐을 슥슥 그리며 재촉 않고 ㅇㅇ를 기다렸다. 다 먹었는데, 정말 한 입도 안 먹네.
"오늘은 적게 먹네요"
"아, 습관이에요"
"특이한 습관은 다 가졌네요"
근데 계산을 왜 그쪽이 해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니 지갑을 안주머니에 넣고 이내 먼저 가게를 빠져나가는 영현을 붙잡으니 영현은 태연했다. 그냥요. 그냥이요? 참 알다가도 모를 남자다. 이런 것에 방금 설렌 나도 알다가도 모르겠고. 어 눈, 눈 온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어 펴니 금방 손에 쌓이는 입자가 특별했다. 처음으로 눈을 맞는 곳이 스위스길거리 한복판인 것도, 이것저것 꽁꽁 둘러매고 눈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몇 번이나 나도 이해못할 행동을 번복하며 따라다니던 이 남자와 맞는 것도. 모두 특별했다.
"Hallo? Ich bin es"
(여보세요? 어 나야)
"Brian!"
그때였다. 재빠르게 영현에게 달려와 와락 안긴 여자는 영현의 뺨에 진한 입맞춤을 남겼다. 뭐야 여자친구 있었어?
"Wie geht es dir?"
(잘 지냈어?)
"Gut gemacht. Weißt du, wie sehr der Professor dich sehen wollte?
(잘 지냈지. 교수님이 널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지 알아?)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서 빠져 주는 게 맞겠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밝은 얼굴로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꽤나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 여자친구가 있음 있다고 말을, 아니 내 멋대로 오해한 내가 등신이지.
"난 갈게요. 그동안 저엉말 고마웠어요. 잘가요"
ㅇㅇ는 말을 늘어뜨리곤 퍽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영현에게서 등을 돌렸다. 강영현 재수 없어 개 싫어.
6.
"이봐요"
"어제 화났었잖아요. 내가 뭐 실수했어요?"
"그건 왜요?"
"했으면 사과하게"
그게 전부에요? 와, 아니 그래도 용케 화가 난 건 알았네. 오늘도 역시 수트를 입은 뒤 넥타이를 멘 영현은 ㅇㅇ를 내려다 보았다. 어제 좀 마음에 걸려서 호텔 침대에 누워돌이켜 보았다. 뭘 실수 한 거지. 그 여자에게. 그래 모를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아니 그래도 여자는 내 앞에서 어? 혼자 쌩쇼한 게 너무 창피하잖아. ㅇㅇ는 어제 영현의 모습을 회상하고 약간의 깊은 숨을 내뱉었다.
"없어요"
"정말이에요?"
"없다구요"
용건 없죠? 이제 갈게요. 누가 보아도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발걸음도 그랬고. 영현은 그런 ㅇㅇ를 바라보다 다시 한 번 앞을 막았다.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괜히 어제처럼 잠 못 자는 일은 어색하고 또 별로였으니까. 안 비켜요? 영현을 올려다 본 ㅇㅇ는 다시 한번 지나쳐 걸었으나 영현은 다시 따라와 앞을 막았다.
"뭐하는 거에요 지금?"
"화 났잖아요"
"아니라구요"
그렇게 연기를 했는데 왜 이 상황은 좀처럼 연기가 되질 않는지. ㅇㅇ는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올리며 금새 전화를 받는 영현을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영현은 방금까지완 다르게 옅은 미소를 품고 영어로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전화가 와서"
"가서 여자친구랑 놀아요"
"네?"
"그쪽 여자친구는 그쪽이 막 다른 여자랑 호텔방에서 밥도 먹고 밤늦게까지 데이, 아니 돌아다니고 신발도 신겨주고 그런 거에 아-주 개방적이신가봐요? 아무 여자한테나 막 골라서 그러는 거보니까"
"예의 차려요"
이 사람이 뭐라는 거야. 금새 미소를 지운채 냉랭한 표정으로 ㅇㅇ에게 대꾸하는 영현에 ㅇㅇ는 당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야 내가 지금 예의를 차리게 생겼냐? 내가 왜요. 후회할 말은 안 하는 게 좋으니까요. 당신이나 후회할 짓 하지 말아요. 영현은 기가 찼다. 이 여자 진짜 뭐야?
"여자친구 같은 거 없습니다. 오해사게 말 하지 마요"
"그럼 어제 본 그 여자도 그렇게 만난 거에요? 이거 완전 양아치,"
"뭐 양아치?"
"그래 양아치!"
영현 역시 머리를 쓸어올리고 ㅇㅇ를 매섭게 내려다 보았다. 무슨 병있나 이 여자, 아까부터 말도 안 되는 행동만. 영현의 삶에서 퍽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이었다. 함부로 넘겨짚고 함부로 거칠게,
"당신은 병있어요?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들어요"
"뭐 병? 야"
"야? 하 진짜.."
"다 됐고 우리 다신 보지 맙시다. 응?"
"바라던 바에요. 제발 좀"
와 진짜 끝까지 재수없어. 머리 끝까지 화가 오른 #ㅇㅇ는 영현에게서 홱 몸을 돌려 발걸음을 떼었다. 내가 다신 저 남자랑 말 섞나 봐라. 내가 개다, 개. 막 크리스마스 행사가 시작된 거리로 나서려던 ㅇㅇ는 순간적으로 저를 향해 휴대폰을 들고 있는 무리를 보고 다시 뒤를 돌았다.
"맞는 거 같은데?"
"야 모르면 올려봐. 빨리 찍어"
"야 맞아 맞아. 싸인 해달라고 해도 되나?"
망했다. ㅇㅇ는 점점 가까히 들려오는 대화에 급하게 반대방향으로 유유히 걸어가던 영현을 붙잡았다.
"미안한데 나 좀 안아, 아니 키스해요"
"뭐요?"
"빨리. 아 지금요"
"진짜 미쳤습니까?"
아니 안 미쳤고 지극히 정상이에요 나. ㅇㅇ는 다시 한 번 뒤를 돌려 빠르게 확인하고 영현의 팔을 꽉 붙잡았다. 제발요, 제발. 그러나 영현의 표정은 어이만 찼을뿐 ㅇㅇ를 굉장히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제발 크리스마스에 선행 하나 한다치고 빨리 좀.."
"내가 그쪽한테 선행을 왜, 아니 자꾸 대화하는데 뒤돌아보지 말아요. 기분 나쁘니까"
조급하게 자꾸 뒤를 돌아보는 ㅇㅇ에 열이 오른 영현은 ㅇㅇ가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쳐다 보았다. 저 사람들은 대체 뭔데.
"진짜 재수없는데 한번만 부탁할게요 빨리"
"뭐? 이봐요"
ㅇㅇ의 표정이 점차 울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영현은 당장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고 합리적이지 못하며 굉장한 손해였다. 그리고 몇 번 봤다고 키스를 하라니. 자신이 돈 건 아니니 이 여자가 돈 게 분명하다. 이 여자가 어떻게 되는 무슨 상관인가. ㅇㅇ는 간절히 영현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거렸다.
"으 즈블 좀.. 진짜 그쪽 싸가,"
영현은 ㅇㅇ의 뺨을 감싸고 깊게 입을 맞추었다. 입을 열라며 톡톡 치며 작게 벌어진 입 안으로 들어와 부드럽게 헤집었다. 동시에 영현은 ㅇㅇ를 끌어 안아 돌렸다. 완전히 영현의 넓직한 등에 가려 얼굴이 아예 감추었다. 뒤로 조금만 가요. 영현은 ㅇㅇ를 골목 안으로 이끌었다.
"팔 좀, 갔어요?"
영현은 ㅇㅇ의 우왕좌앙하는 팔을 제 목에 두르고 다시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미치겠네. 영현은 ㅇㅇ의 턱을 쥐고 다시 입술을 감쳐 물었다.
이봐요, 나 힘힘. 이쯤이면 가겠거니 해 영현은 한참을 물다 고개를 떼었다. 숨이 좀처럼 모자른지 헥헥 대는 ㅇㅇ에 괜시리 얼굴이 화끈거려 더 물러선 영현은 뒤를 확인하고 골목 벽에 기댔다.
"설명하죠. 이제"
"..그게"
"이것도 비밀이에요?"
미안하지만 그래요. ㅇㅇ는 숨을 몰아쉬다 영현의 눈치를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대미친 여자로 생각하는게 이해가 빠를 걸요. 영현은 소매로 입가를 닦고 ㅇㅇ를 내려다 보았다.
"없으니까 갈 길 가던가"
아니 나 못 돌아다니겠는데, ㅇㅇ는 주저했다. 아씨 또 만나면 어떡해. 크리스마스의 악몽이야 뭐야. 자꾸 길거리를 살피고 숨고 살피고 숨는 모습에 영현은 잠자코 바라보다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차피 구경 나와서 할 것도 없는데. 근데 저 여자 왜 자꾸,
"나 때문이에요?"
"네?"
"땀이"
ㅇㅇ는 영현을 올려다보았다 이마에서 흐른 땀을 훔쳐 내며 고개를 저었다. 꼭 그쪽 때문만은 아니에요.
"같이 있어줘요?"
"네?"
"말 그대로에요"
ㅇㅇ는 두 눈을 끔뻑이며다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싸가지가 웬일, 아니 싸가지 취소해야겠다. 영현이 금방 거리로 나서자 ㅇㅇ는 종종 걸음으로 걸어다니며 조금씩 주위를 살폈다. 다행이 전과 같은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온갖 트리와 차근차근 들리우는 벨소리가 기분을 금새 회복시켜주었다. 눈도 오는데? 와 눈 온다. 영현을 놓친 줄도 모르고 어느새 펑펑 내리기 시작한 눈을 멍하니 서 보고 있는 ㅇㅇ의 손이 차가운 온기와 맞잡혔다.
"놓칠 뻔 했잖아. ..요"
"네? 아,"
"번잡스러워서 놓치면 못 찾아요. 특히 그쪽은 작아서"
"뭐에요?"
뒷 마디 안했으면 좀 감동할 뻔 한 거 알아요? 그닥 알고 싶지 않아요. 아 저 싸가지. ㅇㅇ는 영현에게 잡힌 손을 바라보다 그가 이끄는 거리로 따라 나섰다. 몇 번 와본 모양인지 퍽 이리저리 길을 잘 찾아 퍼레이드의 중심축까지 데려온 영현은 ㅇㅇ의 뒤에 섰다.
"연예인이에요?"
"내가요? 설마, ...그렇게 보여요?"
"빚쟁이는 아닐 거 아니에요"
"당연하죠"
"그럼 고쳐요. 그것도 병이야"
뭐에요? ㅇㅇ는 영현의 말에 반론하려 하였으나 금방내 시작한 퍼레이드에 다시 등을 돌렸다. 아 드럽게 안 보이네. 그래도 산타만 보면 되는데, ㅇㅇ는 연신 뒷꿈치를 올리고 콩콩대며 순서를 기다렸다.
"이건 오해 하지 마요"
뭘요? 응? 지금 뭐하는 거에요?
ㅇㅇ를 번쩍 안아든 영현을 보고 ㅇㅇ는 말이 앞뒤로 꼬였으나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고조되는 분위기에 함성을 터뜨렸고 퍼레이드는 작은 불꽃을 쏘아 올렸다. 어어, 불꽃 축제.
"봤어요?"
"네. 봤어요"
영현은 상기된 표정으로 묻는 ㅇㅇ에게서 대강 답변을 하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잔뜩 신이나 영현의 어깨를 붙잡는 ㅇㅇ의 손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모습을 ㅇㅇ는 보지 못했지만. 이제 내려줘요. 그래도 돼요? 다 봤어요.
"..지금,"
"메리 크리스마스"
"미쳤다고 생각해요. 분위기 상 너무 신나서 그러는 거니까"
나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거에요. 그쪽도 알아서 생각해요. ㅇㅇ는 영현이 허리를 꽉 끌어 안고 웅얼거렸다. 한참을 껴안고 붉은 뺨을 띄며 영현에게서 떨어진 ㅇㅇ는 다시 영현에 의해 품에 안겼다. 동시에 영현의 입술이 맞닿았다. 입술을 잘근 깨물고 들어와 급하게 ㅇㅇ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그럼 나도 미쳤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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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렇게 부족한 글을 즐겁게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분량,스토리,캐릭터에 대해 노력하고 반성하며 좋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