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of nightmare
02.
9:00
어두컴컴한 학교 화장실에 물소리만 들렸다 끊겼다. 동우가 손을 탈탈 털자 호원이 익숙한 듯,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아 주었다. 고마워. 넓은 화장실에서 동우의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막막했다. 갑자기 터진 말도 안되는 일에 뭐부터 해야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호원이 찌푸린 미간의 주름을 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동우가 그런 호원을 힐끗힐끗 눈치 봤다. 그 괴물이 어디에 있는지 뭘 하는지
아무것도 몰라 불도 마음대로 켜지 못한다. 불을 키면 자신의 위치를 들키게 되고, 그러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긴 힘들다.
일단은, 이 어둠에 익숙해져야 했다.
호야, 우리 안 나가?
깊은 생각에 잠긴듯한 호원의 셔츠 끝자락을 잡아당긴 동우가 작게 말했다. 이 상황에서 소리를 크게 높히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을, 동우는 눈치껏 알았다.
"일단 이 학교를 나가는게 중요한데..."
"그냥 교문으로 나가면 돼잖아."
"교문은 하나지만 본관을 나가는 문은 여러개잖아. 게다가 특별관이랑 예술관까지 합하면 너무 경우의 수가 많아.
아이씨, 이 학교는 쓸데없이 커서는..."
도대체 예술관이랑 특별관 구름다리는 왜 있는거야...
호원이 머리를 헝클이며 짜증냈다.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어... 동우는 아까의 충격에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해 머릿속이 멍했다.
"학교가 넓으니까 그 괴물의 행동반경을 전혀 모르겠다는 거야. 만약, 우리가 본관 오른쪽 문으로 나가려 했을때 괴물이랑 마주치면
정반대의 문으로 도망가야 하고, 그러다 또 다른 괴물이랑 마주치면? 그렇게 힘 빼면 우리만 손해야."
"도대체 그 괴물이 몇명이야? 너 9반 앞에서 봤다며. 그리고 우리반에서 나도 보고."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닌데 분명 괴물이 맞을거야. 그런짓은 괴물 밖에 못 해. 몇명인지는 몰라.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는게 급선무야."
"그런데 왜, 아!!"
"왜?!"
먼저 화장실을 나가려던 호원이, 동우의 외마디 비명에 놀라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봤다. 성열이! 동우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호원이 아차했다.
자신이 애초에 9반으로 간 목적. 그 끔찍한 광경을 보자마자 머릿속에는 동우 밖에 생각이 안 나 바로 동우에게 뛰어오느라, 성열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뛰어오면서 성열은 보지 못했다. 호야, 너 9반에 갔다며... 동우의 목소리가 점점 줄었다.
그..갔긴 한데... 호원이 답지 않게 머뭇거리자 둥우가 그의 셔츠자락을 약하게 잡아당겼다. 성열이는?
"나도 모르겠어. 난 피 튀기는 걸 보자마자 너한테 달려온거야. 이성열은..나도 못봤어."
"성열이 혼자 있는거야, 그러면? 성열이 지금 혼자 있잖아!"
동우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호원을 지나쳐 화장실을 성큼성큼 나왔다. 호원이 놀라 그의 팔을 잡아 돌렸다.
너 뭐하려고!
성열이 지금 혼자 있잖아!
"걔 지금 혼자서 얼마나 떨고 있겠어!"
"걔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야. 일단 나갈 방법 먼저,"
"아니. 난 성열이 먼저 찾고, 다 같이 나갈거야."
이 손, 놔. 동우는 제 손목을 잡고 있던 호원의 손을 세게 뿌리치고 9반으로 향했다. 갑자기 틀어진 계획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생각을 정리하려던 호원은 계속 눈에 밟히는 동우 때문에 작게 욕을 읊조리곤 빠른걸음으로 동우를 뒤쫒았다.
저 놈의 똥고집 누가 말리냐고.
하, 씨발 진짜 이게 무슨 일이야...
성열이 변기통 뚜껑 닫고 앉아, 차분히 상황을 되짚었다.
난 분명 어제와 다름없이 야자를 하고 있었어. 선생님이 내주신 퀴즈를 풀고 있었단 말야. 아 근데 그거 진짜 답이 뭐야, 너무 광범위 한데...
아, 아니 이게 아니라....아오씨!
자꾸 딴데로 새는 생각에 머리를 막 헝클였다. 불도 채 키지 못한채 급하게 들어오느라 어둡기 그지 없는 화장실 칸 안에서
혼자서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왠지 모를 소름도 돋고 적막함에 괜히 긴장되기 까지 한다.
하긴, 이 상황에서 태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까 제 눈으로 본 그 처참한 광경을 잊지 않는 이상.
어제와 별 다름 없는 야자시간이었다. 원래 공부하는 아이들, 책 보는 아이들, 엎드려 자는 아이들, 각자 하는 일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오늘은 드물게 전부 연습장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쟤네들도 퀴즈를 풀고 있겠지.
제일 뒷자리인 성열은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반 친구들을 쭉 둘러보다가 제 책상에 놓여진 공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뭔가가 낙서처럼 마구 휘갈겨 있었다. 오늘 낮, 선생님이 내주신 퀴즈 때문이었다.
그 선생님은 정말 독특하신 분이다. 한달 전 쯤에 출산휴가 내신 선생님 대신 오신 분이셨는데, 젊으신 분이라 그런지 학생들
마음을 그렇게 잘 아셨다. 단숨에 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끄는건 당연지사였다. 얼굴도 반반하고, 적당히 유머러스 하고, 수업도
잘 하시고, 무엇보다 제일 좋은건 이런 퀴즈를 자주 내주신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퀴즈를 내주시는 날이면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퀴즈에 달려들었다. 퀴즈를 맞추는 선착순으로 떨어지는 상품이 어마어마 했기 때문에. 저번에 1등 상품은 무려 수입과자 10만원어치였다.
이번에는 퀴즈의 난이도가 확 올랐다. 상품은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거라고 하던데 그래서 아이들이 더욱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성열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번에 그 수입과자 10만원어치는 제 친구 동우가 가져갔다. 부러워서 견딜수가 있어야지.
이번에는 난이도가 높은것을 감안해 답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웃길 수 있는 참신한 답이면 인정해준다고 했다. 성열은 그것을 노렸다.
공부만 하는 샌님들은 답을 찾을줄만 알지, 톡톡 튀는 창의성은 부족하단 말이야. 헹, 동우가 전교 1등이면 뭐하나 사고가 틀에 박혀 있는데.
성열은 지금쯤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동우를 놀리며 이것저것 막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창의력의 시작은 브레인스토밍 이지.
한창 집중하고 있을때, 저 앞에 있는 애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꽤나 요란하게 일어난 터라, 모두 앞쪽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벌떡 일어난 여자는 두 팔로 책상을 짚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멀리서까지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게 보여질 정도로 상태가 좋아보이진 않았다.
옆에 앉아있던 짝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그녀는 낮에 몸이 안좋다고 보건실도 갔다왔었다.
계속 몸이 안좋은건지 짝이 괜찮냐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보려는 순간,
순식간에 머리가 짤려 툭, 바닥을 굴렀다. 하얗던 벽과 깨끗한 바닥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버린 것도 모자라 열어둔 문 밖까지 피가 튀어 번졌다.
머리가 없는 몸뚱아리는 힘을 잃고 천천히 바닥으로 추락했다. 꺄아악!!!!!!!!!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을 시작으로 모든 아이들이 그 끔찍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 쳤다.
성열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멍하기만 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고 있던 반 친구가 순식간에 같은 친구한테
끔찍하게 살해 당했다. 아니,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맨 손으로 깔끔하게 사람의 목을 베었고, 다음 희생자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끌다
맨 손으로 뱃가죽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불쌍한 희생양은 소리도 제대로 못 지르고 꺽꺽대기만 했다.
성열은 뒤늦게야 교실 밖으로 뛰어나왔다. 어디, 어디로 가야해, 제길!!
극심한 공포심에 잔뜩 사로잡혀 어떠한 사고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길을 잃은 아기고양이 마냥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 하다가 가까운데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제일 구석에 있는 마지막 칸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아직 빛 하나 제대로 안 들어오는 화장실에, 어둠에 익숙치 않아 바로 앞도 잘 안보이는 상황이라 섣불리 행동하기 힘들었다.
이젠 뭘 해야 하는건...아. 성열은 주머니에 잡히는 물건을 꺼냈다. 휴대폰이었다.
그는 자연스레 번호 11자를 치고 귓가에 가져갔다. 길게만 느껴지는 신호음 끝에 자신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성열이 왜 저,]
"야...어떡해? 시발, 우리 학교 이상해..."
[뭐? 너 지금 그거 얘기 하려고 나한테 전화한거야?]
"진짜 이상해..시발 나 진짜 무서워...으...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윽.."
[뭐야, 너 울어? 왜 울어?]
"울긴 시발..안울어..."
[구라치지마! 딸꾹질 까지 하면서! 너 아직 학교지? 나 지금 나간다.]
"안돼 오지,"
뚝.
갑자기 끊긴 전화에 성열이 놀라 폰을 봤다. 제 폰에 베터리가 다 되어 폰이 저절로 꺼졌다. 아 시발 중요할때!!!
그는 폰을 잡은 손에 얼굴을 묻었다가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점점 어둠에 익숙해지는 눈에,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칸 안에서의 제한된 시야에 청각이 매우 예민해졌다. 문을 열기는 무서우니 문을 귓가에 갖다대고 나가는 타이밍만을 재고 있었다.
문 너머로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숨쉬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한 화장실에, 성열은 조용히 침 한번 삼키고
문 잠금장치에 손을 댔다.
끄아악!!!!!!!!!!!씨발!!!!!!!!
콰앙-
키아아악!!!!!!!!!!키이익!!!!!
성열은 화들짝 놀라 잠금장치에 댔던 손을 푸드덕 땠다. 저 멀리서부터 들리던 비명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화장실 문이 부숴질듯
열리고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도저히 사람의 목소리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괴성이 제 귀를 아릴정도로 강타해왔다.
자신이 있는 칸에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세게 화장실 칸 문을 여는 소리가 나더니, 거칠게 욕 하는 소리도 들렸다.
칸 너머 보이지 않는 싸움은 소리만 들려 성열의 공포심을 더했다. 영화속에서만 들었던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을 질렀다. 우드득 하고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성열이 있는 화장실 칸 밑으로 무언가 새어 들어와, 그의 슬리퍼 바닥을
끈적히 적셨다. 양말로 스며들어와 뜨뜻한 액체가 성열의 발까지 물들였다. 끔찍한 그 느낌에 다리가 벌벌 떨려 결국 변기에 철부덕 앉았다.
밖에 무얼 하는지 시끄러워 다행히 그의 작은 소음은 묻혔다. 이런 소리는 언제 들었지, 좀비영화에서 나왔었나, 액션에 나왔었나.
우득우득 하는 소리와 뭔가가 찢기는 소리가 났다. 화장실 칸 밑으로 더 많은 피가 흘러들어와 성열은 발을 들어 무릎을 끌어안았다.
한동안 듣고 싶지 않은 끔찍한소리만 들리더니 어느순간 멈추었다. 지익 지익 발을 끄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가나? 성열은 조용히 일어나
잠금장치를 천천히 풀었다. 소리 안나게 푸느라 이를 악 물었다. 작은 틈 사이로 얼굴을 살짝 들이밀어 입구쪽을 봤다.
눈이 마주쳤다.
헉.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 숨을 헙 들이 마셨다.
본능적으로 문을 쾅 닫고 재빨리 잠금장치를 걸었다.
쾅!!!
문이 덜컹거릴 정도로 세게 부딪힌 괴물은 곧 쾅쾅 제 몸을 부딪혀 댔다. 너무 놀라 소리 지를 생각도 안나고 히끅히끅
딱꾹질만 나왔다. 계속 몸을 부딪히다 못해 문고리를 잡고 흔들기 까지 했다. 잠금장치가 헐렁해지기 시작해 성열이 잠금장치를
손으로 꼭 잡았다.
아, 씨발 너무 무서워. 어쩌지. 씨발 어떻게 해야 여기서 나갈 수 있는거지. 사면초가다. 도저히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
깜깜한 머릿속에 성열은 정신이 없었다. 내가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
"끄아아악!!!씨발!!!!!!!!!"
성열이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괴물의 손이 화장실 문 밑으로 들어와 그의 발목을 콱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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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 실패..
어느날 갑자기 포인트가 들어와서 깜짝 놀랐네요.
애초에 포인트를 넣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괜한 것에 포인트를 쓰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제 글은 여러분의 소중한 포인트의 일부를 소비할 만큼 대단한게 아니에요. 말씀 해주시지ㅠㅠ
글잡에서 픽을 읽으면서 생각한게 내가 만약 글을 쓰면 포인트는 걸지 않으리라 였죠.
글을 보는 건 좋은데 적은 양의 포인트긴 하지만 아깝더라구요...
앞으로도 포인트를 걸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봐주시고 즐겨주시기만 하면 그걸로도 만족스러워요.
그리고 분량은...다음엔 좀 읽기 편할 정도의 분량으로 줄여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