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너는 처음부터, 우리 집안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때묻지 않은 그 순수한 미소,
열정.
눈빛.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네 눈을 볼 때면
염세적인 모습의 나는 심장이 떨려
억지로 고개를 돌려 너를 피하곤 했다.
"아가씨, 이건 어떻게..."
"네가 알아서 해. 그 정도도 못해?"
날카롭게 말하고는 내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데.
방 밖의 너는 아마 예의 그 여린 눈으로 어쩔 줄 몰라 숨만 고르고 있겠지.
가슴이 찢어지고, 또 무너진다.
주주총회가 끝나면 너와 내 엷은 종이 속의 부부관계는 끝이 난다.
억장이 무너지고, 안에서부터 뜨거웁게 나를 재우쳐 눈물이 나게 하는 이것.
이것을 사랑이라 명명한다면,
나는 너를 아주 오래부터 사랑하는 것이다.
허나 너는, 나를... 아주 많이 싫어할테다.
집안만 믿고 못되게 구는 내가 뭐가 좋겠니.
너에게 해 주고 싶은 것 이리 많은데,
정작 네게 주는 것은
상처가 되는 말이며, 네게 주는 모욕과 수치심.
상처받은 네 눈을 볼 때면
가슴이 미어져서 견딜 수가 없는데.
나는 어찌하란 말이냐.
곧 떠날 너에게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단 말이냐.
"아가씨, 왜 이렇게 취하셨어요."
못난 내 꼴에 취한 모습이 겹쳐 얼마나 우스울까.
울컥 화가 치밀어 비틀대는 손길로 너를 끌고 쇼파에 앉힌다.
"야, 박찬열. 말해봐. 내가 싫지? 너는, 너는 나를,"
"아가씨?"
하지 마라. 그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라.
뜨거웁게 울리워서 줄줄 흘려대는 내 눈물을, 너는 보지 말아라.
"나도 알아, 내가 뭐가 이쁘다고, 너는 나를 미워하잖아. 나도 알아. 그만해, 다 필요없어."
뺨을 붙들어 눈물을 닦아주는 네 손을 뿌리치고 또 새카맣게 타버린 마음을 고한다.
"네까짓게, 왜 그렇게 힘든거야. 넌 고작 데릴사위야, 넌 주총만 끝나면 쫓겨날 몸이라구.
됐어, 이 손 놔. 적당히 한 몫 챙겨준다고. 애초부터 우리 거래가 그랬잖아. 넌 남편노릇 잠깐 하다가 버려질 거야. 저리 가버려."
쇼파에 일어나 너를 밀치고
나는 다시 방 안으로 숨어버린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자존심은 꺾일대로 꺾여버리고, 눈물은 질질 흘러내고.
한참을 고개를 숙여우는데,
내 뒤로 네가 와 포근히 덮어진다.
"왜 그래, 징어야, 왜 울고 그래."
실상은 떨리우는 몸 주체 못하고 발개진 볼에 눈물을 얼룩덜룩.
"저리 가! 네가 뭘 안다고! "
또 너를 거세게 밀치워내는데,
너는 또 사내라고 그 힘으로 나를 더 끌어안는다.
"어째서 진작 알지 못했을까. 네가 미웠다면, 내가 어떻게 지금 널 안고,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또 기쁘겠니.
나도 너를, 사랑해왔다고. 이 말, 정말이야."
아아- 그토록 달콤한 말이 있더냐.
"나와 같이 떠나 살자. 네 아버지 피해, 우리 시골에 내려가 살자."
그래, 좋다고. 너를 향한다면 난 뭐든 좋다고.
상상도 차마 할 수 없던 네 말.
그렇게 우리는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다.
"여보! 다녀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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