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라는 게,
그래 참 나에게 이토록 직접적인 상처를 줄 줄은 몰랐다.
난생 처음 느껴본 이 간절함.
너의 아내가 되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그렇게 살고싶은 간절함.
별 것 아닌 작은 일들에 너를 엮어 떠올리면 자꾸 눈물이 나고,
펑펑 쏟아지는 그리움에 차라리 죽고만 싶다.
어떻게 사랑이라는 게 이토록 애절하고 속이 문드러지는지.
그날 밤, 모두가 잠들어 어두운 가운데에
홀로 임무를 수행하는 네 모습을 보고, 나는 네가 첩자라는 것을 대강 알았다.
그렇게 네가 내 조국을 해하고 정보를 캐러온 '나쁜 놈'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내 직책을 잊고 그냥 그런 너를 온전히 보내줄 생각밖에는 염두에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것이었다.
처음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입을 틀어막고
아니 나는 절대로 믿을 수가 없다고,
내가 짝사랑해온 사람이 내 적이라니.
그렇게 한참을 나 모르게 지내온 적이라니.
나는 고개를 흔들고
눈을 감았다 떴다,
현실을 부인하고만 싶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화가 나기도 했다.
네가 어떻게 그래.
너무나 멋진 선배로, 능력있는 내 짝사랑으로.
그렇게 한참을 지내왔잖아.
그런 그대가 모두를 속이고,
그럼 이 내 사랑은, 이건 어떻게 되는 거야?
내 사랑의 진심은 어떻게 되는 거야?
한참을 화가 나서 네가 거는 말에도 차갑게 응하고,
실장님께 말을 해버려서 널 아주 몰아내어버릴까,
그래 너는 우리가 감시하고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그렇게 너를 쫓아낼 버릴 생각도 하고.
그렇게 온갖 요동을 겪고 났는데도,
근 10여년간 내가 몸담고 배워왔던,
철저히 조국을 향하고
정확하고 이성적인 계산을 두드리며,
완벽한 처리를 해내는 그 공식들과 이론, 노하우들은
그냥 죄다 너 하나를 위해서만으로 떠오르더라.
참 우습지 않니.
네 그 작게 뱉어지는 겨울의 숨결을 보니,
입술에 하얗게 뜬 건조함에 안쓰러워지는 맘에,
그냥, 그냥 네가 참 안쓰러워서.
네 그 삶이, 내 사랑따위는 하찮아지고 버려져도 좋을만큼,
네가 행복해졌음 좋겠다고.
너의 그 거치르고 힘겨운 삶이 너무도 안쓰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어떤 것도 모르는, 오로지 너 하나 밖에 모르는,
그런 한심한 여자로 전락해버렸기에,
설령 네가 안전히 북으로 돌아간대두,
남은 나는 완벽하게 감시 및 통제를 하지 못한 죄목으로
어떤 것이든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를 위해 조용히 입을 다물고 널 도왔다.
"선배, 나, 알고 있어요. 선배가 뭐하는 사람인지.
이유는 묻지 말아요, 쪽팔리니까.
그냥, 선배 가는 길 다 도와줄게요."
와르르 내가 하고픈 내 맘의 고백 채 다 뱉지는 못하였어도
이정도면 네 그 객지에서의 무거운 짐 조금은 덜까 싶어
말을 뱉고는 조심스레 네 눈치를 살폈다.
"징어야 나는, 나는 네 사랑에 보답할 수 없어."
"무슨 소리에요, 난 그런 거 아니야! 아니 그 전에, 누가 선배 사랑한대?"
내 맘, 다 알고 있었구나.
창피한 맘, 알면서도 그댄 왜 모른척 하셨나, 아픈 맘이 섞여
괜히 역정을 내며 발끈했다.
그런데 선배, 나는, 선배를 갖고 싶지 않아.
선배를, 그냥 지켜주고 싶어.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내 전부를 죽여서라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파.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는 속을 숨기고는
그렇게 그냥, 한참을 추운 날씨에 네 옆에 앉아 입김만 내뱉었다.
.
내 조국에서 빼간 많은 정보들,
어쩌면,
남에 큰 타격이 되고, 중요한 문제가 되어 무너질 수 있는.
나도 발기발기 찢겨 쫓겨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은밀히 빼내가는 너를.
나는 그런 너를,
세상 누구에게 물어도
사랑에 눈이 멀어 중대한 일을 놓치는 너는 세상서 제일로 못난 이라고.
그렇게 욕을 먹을 각오로 너를 보내주었다.
임무를 마치고 북으로 돌아가는 널 위해
위조여권을 만들어주고, 비행편을 알아봐주고.
그렇게 한심한 짓거리를 하다보니까,
내 사랑 내가 내 손으로 보내드리는
가슴 찢기는 짓거리를 하고 나니까,
어느새 시간은 네가 떠나는 날이 되었다.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내가 만들어준 위조여권,
내가 알아봐준 항공티켓,
내가 챙겨준 코트,
너는,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그 어리석은 마음을 머릿속으로라도, 알고는 갔을까.
얼마나 사랑의 깊이가 깊었는지, 그것까지는 모를거야.
승강장으로 향하던 네 발걸음이 잠시 멈춰 뒤를 돌아봤다.
눈물은 꾹 참았는데 왜 이렇게 줄줄 흐르는 건지.
꺽꺽거리며 눈물만 찍어닦고 있는 내 모습에
네가 느끼는 것이 죄책감인지, 사랑은 아니겠는, 그런 맘으로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내게서 사라진다.
그래 우리,
아니 내가,
그대를 알게 되었음은, 사랑했음은 진정으로 기적이었다고.
그 자체로 내게는 너무도 큰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었다고.
그렇게 대면당하지 못하고
버림받고 스스로 자청하여 이용당한 내 사랑은
살을 에는 바람이 불던,
모든 해의 시작이 되던,
1월에 그렇게 지고 말았다.
내 전부는, 내 삶은, 1월에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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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아직 남과 북
아 진짜 졸려서 비몽사몽
불금은 자야해...ㅂ_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