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난다.
너 나를 뒤로 하고, 새하얗게 내리는 눈 사이로 그렇게 가버린 날.
발이 살짝 빠지는 걸음에 여린 그대가 혹시 넘어질까
그 와중에 염려되어서,
아니 실은,
너를 붙잡고 싶은 마음에 한두어 발자국 너를 따랐었다.
이내 빠르게 사라지는 다급해보이는 네 모습에
나는 더는 너를 따라가지도,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해 먹먹해진 눈물만 줄줄 흘려대며
네 이름을 더는 중얼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었다.
며칠이 지나 길에서 마주한 너를 붙들고
그래도 마지막 한 말이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이라 다행이다.
우리 사랑했던 기억, 내가 너를 얼마나 바래왔는지 너 차마 다 모르는 그 사랑을,
비가 오면 너 혹시 넘어질까, 햇살이 듬뿍인 좋은 날에도
너 혹시 햇빛 가린다고 손으로 창 만들어 종종대다가
어디 부딪히는 건 아닌지,
자잘한 걱정에 하루에도 수십번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그러다가도 잦은 연락이면 네가 혹시 질려할까봐,
이내 전화기를 내려놓는 나를,
너 다 잊고 그래 행복하라고.
"잘 살아, 죄책감 갖지 말고. 행복해라, 꼭."
멋있는 남자처럼 말했지만
내 속은 바싹바싹.
어쩜 우리 사랑할 때 다른 남자들이 널 훔쳐볼까 전전긍긍하던 때보다도,
더 졸아드는 내 속.
아아, 그러고 보니 또 생각난다.
너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는
이쁘지 않냐며 잔뜩 애교를 부리며 끼를 떨고는
내 품에 안기던 날.
너무 이뻐서, 정말 너무너무 예뻐서,
넋을 빼고 그냥 마냥 네게 입맞추고 껴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드러난 네 다리를 가리려 애쓰고,
너는 그런 나를 보면서 우리 남자친구가 질투 해준다며 까르륵 웃어넘기고,
나는 또 그런 네가 귀여워 입 맞추고.
아아, 돌아올 수는, 없을 걸 알지만.
아아, 차마 잊혀지지 않는 감정이란.
가지 마, 제발.
집에 돌아오면 나는 무얼 할 생각도 다 잊고는
침대에 누워 네 냄새만 더듬고 숨을 들이쉬다가
듣지 않는 너를 향해 계속 울먹이며 빈다.
너 나를 알잖아,
너 가면, 나 어떻게 될 지를 알잖아,
나를 가장 잘 아는 여자면서,
가지 마라. 제발.
그렇게 펑펑 터져나오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줄줄 흘려대다가 옷걸이에 걸려있는 네 유일한 물건인 가디건에
얼굴을 묻고는 마치 널 대하듯 아프게 쓸어내린다.
더는 이러고 싶지 않아.
제발,
오, 그대.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라고,
나를 잊고,
아프지도 말고, 행복하게,
너 늘 웃는 그 웃음으로,
그래 거기까지 말하고는 나는 목이 메인다.
밤중에 불러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행복하라는,
하하 웃음이 나와서 얼굴을 쓸어내리며 낄낄대다
굳어진 네 표정을 보고는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상처를 받아서, 왜 그러는 거야,
왜 나를 그렇게 굳어진 시선으로 보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는 듯이,
내가 가장 멋지다고,
그렇게,
우리 사랑하던 눈빛은, 어딜 간거야..
술도 마시질 않았는데 정신없이 너를 향한 그리움에 취해서,
나는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그대로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왔다.
신발, 그래, 신발 벗어야지.
신발장 구석에 네가 꼼꼼히 챙겨주며
넣어주던 나프탈렌,
낄낄 웃음이 난다.
이 작은 화학약품을 보고 다 큰 사내가 눈물을 흘리는 꼴이라니.
현관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다 웃다
니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이었는데.
신발을 벗지도 않고 재빨리 들어와
네게 입맞추려 허리를 끌어안으면
나를 밀어내며 신발부터 벗으라고 나를 타박하고,
나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앙탈을 부리고,
우리 그렇게 사랑했던 때 있었는데.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물을 한잔 마신다.
그만 둬야해?
정말, 우린.
난 더는 이러고 싶지가 않아.
제발.
아,
너는 왜 자꾸 내게 아픈 기억으로 남으려 하는지.
침대에 누워 가만가만 눈 언저리를 꾹꾹 누르며
삐져나오는 울음기를 달래려 애쓴다.
내일 아침이 오면,
새하얀 햇살이,
너 눈부시다며 내 품으로 파고들고,
나는 그런 네 머리를 쓰다듬다가
피식 웃으며 머리 좀 감아야겠다고 놀리면
너 내 가슴팍을 치고는 토라져 돌아눕고,
나는 다시 너를 끌어안고는 입맞추는.
그런 내일이.
돌아와주기를.
-
이런 내용으로 나중에 하나 더 쓸거라능
하라는 시험공부는 안하고... 나 수신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