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모두가 나가고,
냉장고에 먹을 것도 없고, 나가긴 귀찮고, 쫄쫄 굶으며
오징어 다리 하나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워메- 짭조름 한 거, 아, 배고파-
뭐 요리프로라도 보면서 시각적 충족을 하려는 맘에
텔레비전을 틀고는 소파에 풀썩 옆으로 누웠다.
"네~ 오늘의 초대 셰프님은요~ 너무나 유명하신 분이죠,
카이 종나니님, 어후, 요리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미모에, 여성분들이 껌뻑 죽는,
하늘이 내린 셰프죠, 동서양을 어우르는 스타셰프, 카이 종나니님! 모셔보겠습니다!"
"앙뇽하세요..."
뭐여, 뭐 저렇게 요란한 소개를 받고 나온 놈이 저래?
얼굴은 팅팅 부어서는, 아니 아니, 동남아 사람인가?
이름도 뭐? 카이... 종나니? 뭐여, 불의 닌자 카이여? 탑블레이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소심하게 웅얼대는 그를 보며
낄낄 비웃고는 어디 해볼테면 해봐라, 라는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응시했다.
"네, 오늘 보여주실 요리는 뭐죠?"
"네...그게, 고추장을 이용한..., 그, 그, 우월한, 고,고, 고자..."
"하하, 네, 고등어...조림 말씀하시는 거죠?"
"네! 감사합니다..."
뭐야, 저 병신은.
뭐, 고, 고자?
참나, 우월한 고자는 또 뭐야.
어휴, 됐다 됐어.
이 몸이 요리계를 떠난 지 어언 2년, 그 새 요리계가 많이 죽었다 이거로고.
어디 오늘은 이 몸의 실력을 뽐내보실까.
대충 잠바떼기를 걸쳐 입고는 한손에는 환경을 위한 에코쿠킹-☆을 위한 에코백을,
한손에는 오늘 세일하는 동네 마트의 전단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고등어가 저렴한가보군.
고등어를 사라고 목청껏 외쳐대는 아저씨가 안쓰러워져서
주춤주춤 다가가서는 말했다.
"아저씨, 고등어 주세요, 자반 말고, 조림할거에요."
기쁘게 고등어를 포장해 주는 아저씨에
봉투를 받아드니
대가리를 뎅겅 자르고 토막을 내어버린 고등어가 또 안쓰러워져서 중얼중얼 한소리를 했다.
"아저씨도 참, 잘라드릴까요-라는 말도 없이 이렇게."
입을 삐죽 내밀고는 분명 집에 없을 고추장을 사러
소스 코너로 가는데, 으아니-
저 놈이 왜 저기 있어.
우월한 고자 놈이 저기에 있다는 말이다.
고추장 통에 붙어있는 스티커에는
분명 아리따운 여배우나 (이를테면 청정원!같은)
빠알갛게 잘 익은 고추 몇 개가 통통통 그려져있어야 함이 당연하거늘,
아까 본 그 우월한 고자 놈이
고추장 독에서 고추장 한 스푼을 푹 뜨고는 딱딱한 표정으로 억지미소를 짓는 꼴이 있었다.
대충 다른 고추장들을 슥슥 둘러봤지만
가격이 느므느므 비쌌기에
걍 그놈의 고추장 중에서
제일 저렴한 것을 훅 집어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
아후- 국물 바글바글하고, 살 한번 탱탱하고,
아저씨가 잔인해보여도 보기보담은 좋은 생선을 주셨다고,
요리를 하느라 좀 뻐근해진 어깻죽지를 통통 두들기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한 숟갈 들어 맛본 고등어조림은
아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진짜...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다는 감탄사의 연발이었고,
때마침 귀가한 가족들에게 나는 자랑스레 말했다.
"여러분! 제가 드디어...고등어...조림을 완성했습니다!"
쟤, 쟤 또 저런다, 픽 비웃고는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자
내가 나의 아름다운 고등어조림을 내간다.
"다들, 맛봐도, 좋아...따,딱히...칭찬을 바라는건 아냐...!"
과연, 그들은 지난 날 요리사가 되겠다고,
지상 최고의 셰프가 되겠다고 깝죽거린 나의 7년을 버티고,
호텔 셰프가 되어서 구설수에 휘말려 요리계를 때려치기까지 3년,
그 동안 숱했던 나의 망한 대작들을 맛본 가족들답게
의연한 표정으로 맛을 보았다.
"음...."
어때? 어때 어때? 갖은 오두방정을 떨며 묻고 싶었지만
상대는 내 오랜 비판자들, 쉽게 방심할 일이 아니기에
나는 내 쿠크를 부여잡고 물었다.
"음..."
"음?"
"음..."
"음!"
"음... 좀... 뭔가 비었는뎅?"
아나, 저걸 죽여살려.
기껏 요리를 했더니 밥까지 말아서 생선 얹어 실컷 먹고서는
뭔가 비었는뎅?
이런 말이나 뱉는 세훈의 머리통을 씽나게 쥐어박고는 부모님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야, 음...세훈이 말대로...뭔가 비었는데?"
"뭐? 뭐가!!!"
허둥지둥 숟가락을 뺏어들고는
나의 고등어조림을 맛보는 내 뒤로
얄미운 세훈이 디저트를 잡숫는답시고
냉장고를 뒤지다 우월한 고자의 고추장을 집어들고는
집이 떠나가도록 외쳤다.
"대애박!!! 형 대애박- 형은 어떻게 이렇게 신성한 고추장을 가지고도...
와아- 형 호텔 셰프 했었던 사람 맞앙? 대애박-"
"뭐? 그게 뭐, 금칠한 고추장이라도 되냐?"
"아유, 형이 그르케 세상물정에 휑하니께 그런 일에나 말렸던 거..., 아앙, 미안해여"
계속 읊어보라는 턱짓에 곧 세훈이 말을 잇는다.
"이 싸람, 이 싸람이여, 카이- 종나니! 이 싸람이 을매나 대단한 셰프인지 알아여?
이 싸람이 어디 호텔 셰프 된지 한 2년? 아니다 2년도 좀 안됐을 때,
그게 아주 기똥찬 고추장을 개발했잖아여!"
"그게 이거야?"
"에이- 이거는, 그 레시피의 일부가 들어간거고, 그 싸람 레스또랑 가서 먹는 거에 새발의 피죠!
근데, 이것도 맛이 기똥차다는 거 아니에여!
그 원조 고추장, 크아- 그거 한번 먹는 게 내 소원인뎅..."
세훈이 입맛을 다시며
짭짭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내 억장을 긁는 또 한 소리를 한다.
"긍데, 형은 아마, 요런 거, 못 맹글거에여- 고등어조림이 쫌, 뭔가 비었다그여!"
.
분노의 요리학!!!!!
분노에 찬 나는 우월한 고자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곧이어 우월한 고자는 나보다 나이까지 어리다는 것을 알아냈다!
소사 소사 맙소사!
이럴 수는 없다그...
무릎을 꿇고 땅을 치며
엉엉엉엉 내가 요리고자라니...!를 외치는
나에게 팔랑팔랑 오미자의 향이 묻은 종이가 날라왔다.
"낄낄, 형, 정 그렇게 쫀심이 상한다면, 카이 종나니님과 함께하는 요리대회에 나가보지 그래여?"
재빨리 종이를 주워들고 곳곳을 살펴보자
우월한 고자의 예의 그 억지미소와 함께 위아원...? 뭐야 이게 그냥 따봉이지ㅋ
암튼 따봉을 표현하는듯 손가락을 내밀고는
요리대회를 알리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남은 기간은 일주일, 재료는... 이놈의 고추장 요거 하나만 쓰면 되고...
어휴 고추장 회사의 홍보성 이벤트구먼-하는 게 딱 보이는데
참가자들과 우월한 고자의 대결에,
게다가 블라인드 테스트라니,
얘 좀 바보 아냐?
자기 명성에 금 갈 수도 있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대회에 응한건지, 종잇 속 우월한 고자의 따봉을 툭툭 치며 말했다.
"고자야, 어쩌려고 그러냐. 너 이제 형이 고추장으로 발라줄텐데...쯥-"
뒤에서 픽- 비웃는 세훈을 뒤로 하고
나는 우선 대회에 참가할 요리와 재료,
아니 그 전에 엑소고추장이라는 범우주적인 고추장 사이트엘 들어가서
대회 참가 신청까지 했다.
그렇게 일주일 후,
나는 전날 챙겨둔 요리 목록표를 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목록표에 맞는 재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형, 그런 건 좀 일찍 챙기래두- 형이 그르니까 물수능에두- 아앙, 미안해여"
아리따운 오늘 네놈의 입바른 소리따위 필요없다고
살벌하게 오센의 목울대를 퍽 치고는 재료담기나 도우라고 일렀다.
"네에- 형이 하라믄 해야져-"
꿍얼꿍얼 맞은 목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세훈이 무를 담았다.
"긍데 형, 또 고등어조림하게여? 형 그거 디게 못하잖-"
.
기어이 한대를 더 맞은 세훈이 입을 삐죽 내밀고
형은 일본순사라고, 왜 말도 못하게 하냐고- 내 나라 말로 나는 말하겠다고 꿍얼대는 걸
무시하고는 대회장에 모인 참가자들을 스캔했다.
어쭈, 땅꼬마가 여긴 뭔 일이야-
아가씨 거 다리 하나는 끝내주네 늘씬해! 껄껄껄
화통하게 웃어제끼며
이내 내 상대가 될만한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배때지를 쑥 내밀고 등허리에 뒷짐을 진 채로
짐을 들은 세훈에게 손을 까딱했다.
"조수- 따라오도록."
내 지정된 참가석에 이르자
세훈에게 다시 손을 휙- 프로처럼 까딱거리며
"쪼수, 재료!"
우렁차게 외치는데 뒤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다.
뒤를 돌아보니 저어기 멀리서
대회에 참가하러 온 우월한 고자를 보고는
내 재료를 내팽겨친 채로 꼬리가 생길 정도로
낑낑대며 싸인- 싸인- 고맙습니다! 당신은 대박 어쩌고저쩌고를
읊고 있는 세훈이 보였다.
저걸 그냥.
금쪽같은 내 재료들을 챙겨 내 자리로 끙끙 이고 와서는
기둘려라 우월한 고자, 내 너를 고등어조림으로 발라버리갔어! 라는
내 확고한 의지를 불태웠다.
.
하필 고자가 서있는 참가석과
내 자리가 마주해 있는 바람에
아, 이걸 또... 사람 눈을 보고 패배를 안겨줘야한다니, 참으로 잔인한 현실일세-를
중얼대며 내 재료들을 풀어놓는데,
마주 선 테이블의 고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반가운 강아지 마냥, 맞다, 아까의 세훈이 마냥 낑낑대는 표정을 지었다.
뭐여, 뒤에 뭐 지 연인이라도 있누?
뒤를 돌아보니 그냥 뭐 이냥저냥... 각자의 재료 준비에, 또 고자 얼굴 감상에 넋 놓는 사람들 투성이고,
이내 좌우전후로 들이닥치는 촬영진에 흐미- 무서운 거- 입술이 바싹 말렸다.
이내 사회자까지 입장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오늘 대회를 평가할 9명의 심사위원들이 소개되었다.
아따- 거 느끼하게두 생겼다.
잘생긴 놈들은 죄다 얼굴값을 한다고,
나도 이래뵈도 꿀리는 얼굴은 아니라고 콧김을 흥흥 내뿜으며
다시 손을 씻었다.
이내 카이 종나니에게 클로즈업이 들어오며
사회자가 오늘 이 대회에 임하는 기분은 어떠세요, 떨리지는 않으세요-
그런 하찮은 질문을 했다.
고자놈은 또 그 소심한 말투로 네...네...좋아요...따위의 사내대장부 답지 못한 어설픈 대답을 했고,
나는 그를 픽 비웃고는 도마 옆에 칼을 내리두었다.
챙강-
아니 무슨 삼국지여?
그냥 칼 하나 내려두는데 뭔 소리가 이리 살벌혀...
눈치가 보여 어섪게 하하하...웃음을 짓는데
사회자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어머! 맞네요! 그 분! 위아원호텔에 수석셰프셨던, 맞죠?"
몸담았던 그 호텔 이름을 듣자마자
어색하게라도 웃던 내 표정이 싸-하게 굳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회자는 말을 이어갔다.
"맞네 맞아, 어머 너무 반가와요, 셰프님이 그 당시 요리 하나는 끝내주게 하시는 걸로
워낙 명성이 자자해서, 근데 또 인터뷰나 방송은 죽어라- 응하지 않으셨잖아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내가 들으면 뻔히 움찔할 말들을 뱉는 사회자를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한 순간에 그렇게... 음...
왜 그렇게 한 순간에 숨어버리셨어요? 경력위조, 그거때문에... 어쨌든, 재기를 꿈꾸러 오셨나봐요?"
"저기 전 경력위조를 한 적이...!"
내 없는 죄를 있다 하는 것에 발끈하여
경황없이 말을 뱉는데 사회자는 그걸 또 뭉탱이로 잘라먹는다.
"그런데, 그 호텔의 수석셰프자리, 그쪽이 떠나시고,
카이 종나니씨가 맡게 되었다는 건,
알고 계세요?"
"네?"
"어머- 모르셨나보네, 그쪽이 떠나시고 바로, 카이 종나니씨가 수석셰프 되셨거든요,
어쩌나, 이번 대회에서 패하시면, 후배한테 지는 거잖아요!"
깔깔대며 웃는 사회자를 보며
내 표정은 갈수록 구겨졌고,
아 진짜 울지 말아야지 를 되뇌이며
그렁그렁한 눈가만 숨기는데 급급했다.
그때 고자가 다가왔다.
새끼, 쪽팔리게 왜 오고 난리야. 비교되게.
"우리 선배님이 왜요, 경력위조라뇨, 선배님 그러신 적 없습니다.
뭘 좀 알고 말하세요."
말바보던 소심한 셰프, 우월한 고자가
이토록 말을 잘할 줄이야.
게다가 내 편 들어준당 이힛
기특해서 엉덩이라도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대체 얘가 나를 뭘 믿고 이런 말을 하나 좀 걱정이 됐다.
"인터뷰, 방송 응하지 않는다고 온갖 뒷소문 더럽게 만들고,
우리 선배님 경력위조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문으로 떨어트린게 언론쪽 아닌가요.
그만들 하시고,
오늘 요리대회에나, 초점 잘 좀 맞춰주시죠."
새침데기 고자는 사회자를 똑똑히 노려보며
똑소리 나게 내 할 말을 다 해주었고,
아니 얘가 그런 일들을 다 어떻게 알지 하는 의문과 함께
그제서야 넌 나의 에인젤-
고자가 미카엘 보다 눈부신 존재가 되어버린 나는 눈물을 참으며 다짐했다.
나능... 꼭 너에게 져줄게...
근데 내가 이겼다.
헐.
뭔 일이 어떻게 지나간 줄도 모르겠다.
세훈이도, 나도, 참가자들도, 촬영진들도,
다들 입이 헤- 벌려진 채로
이게 당최 무슨 상황인지 납득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뭐 요리 못하는 실력은 아니다,
실패를 거듭해서 그렇지 완성해낸 오늘의 레시피는 완벽했고,
하지만 고자는,
고자도 요리를 기똥차게 잘하지 않는가.
심지어 나에게는 고자와 같은 종목의 요리 '고등어 조림'이라는
핸디캡이 있었다.
근데, 내가 이겼다.
그리고 내가 본 종나니 재료통에 개봉도 되어있지 않은 채의 화이트와인을 본 순간,
나는 내가 종나니에게 완벽히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졌지만 왜인지 좋은 친구를 얻은 기분에
나는 언젠가는 종나니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을 생각을 했고,
그 결심이 우습게도 고자에게 쏟아지는 여론의 비난을 막아줄 힘은 없었다.
.
인터넷 뉴스에는 대문짝 만하게
'스타 셰프 카이 종나니, 전 수석셰프에게 처참한 패배'
'카이 종나니의 실력은 거품덩어리?'
'카이 종나니, 명성 얻은 뒤 건방진 태도'
따위의 쓰레기같은 기사들이 나뒹굴었고,
고자는 더 이상 텔레비전에서도,
빌어먹을 고추장 스티커에서도 억지웃음을 짓지 않게 되었다.
전부가 나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든 나는 카이 종나니 덧쿠 세훈이를 쨜쨜 털었다.
"세훈아- 세훈아? 야, 세훈아!"
"말도 앙대... 우리 종나니님이...우리 종나니님이...!"
놈을 짤짤 털어 얻은 정보는
고자놈이 차렸던 레스또랑을 다 정리하고,
염병할 고추장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레스또랑 식구들에게 나눠준 뒤,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항간에 들리우는 풍문에는,
고자놈을 붙들고 간절히 자취를 묻는 한 덧쿠에게
" 돌고 돌아서, 다시 시작하는 곳으로 가요."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었다는 말도 있다.
( 그 덧쿠가 세훈이란 건 비밀)
하지만 그런 유치한 노래가삿말 같은 말 한줄을
듣고는 그곳이 어디인지 누가 알것이냐.
근데 나는, 삘링이 탁! 왔다
그랬다는 것이다.
요리사 놈들 인생이야 뻔하지.
시작은 제 엄마 곁에서 배우는 자잘한 요리들,
끝은 이렇게 조렇게 내 꼴 나거나. 잊혀지거나. 자기 사업 차려서 나가거나. 세 꼴 중 하나.
그렇게 나는 세훈이와 함께
고자의 고향을 찾기 시작했다.
고자가 그간 인터뷰 했던 쬐끔한 기사까지
모조리 뒤져 고향이나 어머니, 뭐 어린 시절,
이런 것이란 것은
죄다 분석했고,
나는 고자의 고향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곳이 카이 종나니님의 (덧쿠새끼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향이 아니면 어뜩해여,
라는 세훈이의 말에는
너같은 덧쿠새기는 모르는 이 요리왕들의 사이에는 묘한 그 텔레파시가 있다며 무작정 걸음을 나섰다.
근데 사실 나도 쪼끔은 불안했다.
워메-아니면 우짜지.
그래도 일단은, 사람이 도움을 받았으면, 갚는 게 인지상정.
은혜갚은 까치라는 전래동화 속 구렁이는 너무 무섭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재우쳤다.
버스 타고, 아 말도 마시라.
내 발이 처음 고자를 텔레비전에서 본 날의 고자 얼굴 처럼
팅팅 부었고,
입에서는 절로 이 듁일놈의 고자!!!! 소리가 나왔다.
아무튼,
돌고 돌아서,
그래, 왔노라.
날이 벌써 어두운데
무작정 마을을 돌다가도 고자를 못 만나면 우짤까, 하는 고민이었는데,
다행이고 마을은 진짜 코딱지만했다.
아따, 작기도 혀라.
대강 흘깃 흘깃 안쪽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내 코는 개코- 고자 얼굴은 안 보여-
즉흥노래를 불러제끼며 조금 무서워진 마을을 돌아댕기는데
저기에 커다랗고 대따 무서워 보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ㄷㄷ
나능 레알 무서워따...흡......
하지만 지금 내가 기웃댄 집은 이제 두채,
나에게는 아직 미쎤이 남아있었고,
새가슴인 나는 좌심실 우심실 모두 부여잡고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그 때, 그림자가 이 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헐, 자유로 귀신? 대박 무서운데,
아닌가? 팔척귀신? 아 나 고자 덕을 빨리 안 갚았다고 이렇게 인생이 쫑나나...
눈물이 왈칵 나서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몸만 겨우 지탱하는데,
가로등 곁까지 걸어온 그림자에
긴장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나, 이 고자새끼!
인생에 도움이!
되긴 되는구나.
놀라서 쪽팔리게 찍찍 흐른 눈물만 쓸어닦고
고자를 향해 외쳤다.
"야 이 우월한 고자야!
너 그리 내빼면! 나는 어쩌라고!"
뱉고 보니 뭐 흡사 떠난 연인 붙잡는 삘이라
민망시려워서 낄낄 웃었지만
나능 나름 진지했다.
뛰어가서는 고자를 붙잡는데,
온몸에 그득한 담배냄새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고 화를 냈다.
"야! 넌 요리하는 새끼가! 담배를 펴?"
얘는 뭐여, 왜 온 거시여,
하는 표정,
많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고자가 입을 열었다.
"이제 뭐, 요리도 안하는데요 뭘."
아나...... 고자 맘에 생채기를 건든 것인가,
내 뺨따구를 때리고 머리 박고 엎드려뻗쳐를 하고 싶은 맘에
무작정 고자 손을 붙들고 말했다.
"저기, 저번에, 그건 고마웠다."
"뭐여"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뭐"
말이 좀 짧아지는 고자의 목울대를 세훈이 마냥 쳐주고 싶었으나
받은 도움이 있어 화를 삭이고 제대로 말했다.
"나 대신, 그 사회자한테 엿 멕인거,
근데 너. 어떻게 알았냐. 경력조작했다는 게 구라라는 거."
괜히 툴툴대게 되고 민망시려워져
고개를 돌리고 말을 하자
종나니 (이젠 제대로 불러주기로 했다, 좋은 놈이니께)
암튼 종나니가 낄낄 낮게 웃더니 말했다.
"선배 진짜 기억 하나도 못하네."
"뭘"
"선배가 그렇게 핫한 수석솊이었을 때,
나는 그 바로 밑에 있던 애였는데,
밤에, 선배가 굳이 할 필요 없는 재료 정리며,
아침일찍 재료 준비하는 거,
그거 볼 때마다, 얼마나 멋졌는데.
와아- 저 자리에 올라도 저렇게, 된 사람이구나, 하고."
그건 그냥 내가 하찮은 니놈들을 못 믿어서 한거야- 라는 말은 접어두고
그날의 기억에 젖어 촉촉한 감동으로 말하는 종나니를 보고는
큼큼, 헛기침 후에 괜시리 가슴팍을 펴고 말했다.
"어휴, 내가 좀 그렇지. 근데 그래도, 나도 나쁜 놈일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게 한결같이, 그렇게 열심히 요리하는 사람이, 왜 요리로 거짓말을 하겠어요. 나는, 믿어요."
믿는다는 한마디에
아 이새끼 진정한 내 편이구나 하는 감동과
왈칵 눈물이 터질 듯한
비슷한 좌절을 겪는 동지로서의 전우애가
절로 종나니의 등을 퐝퐝 두들기게 만들었다.
너 임마... 멋진 놈..! bb
돌아갈 곳이 없던 나란 하찮은 일개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급의 백수는
종나니의 집에서 자게 되었다.
종나니는 친구도 없던 모양인지
종나니의 어머님은 "아이구~ 종인이 친구가 다 오고~ 이게 무신 일이냐?" 하며
반겨주셨고, 종나니, 고자, 따위로 놈을 칭했던 나는 놈의 이름이 종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유, 어머님, 안녕하세요- 종인이 친구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신세 좀 지려구요 하.하.하."
웃으며 종나니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기뻐하시며 이불을 펴주시는 모습에
나는 안절부절 감사하다는 말만 연발,
종나니는 그런 나를 위아래로 슥슥 훑어보기만 했다.
방안에 종나니, 그 옆에 나,
이렇게 누워 말똥말똥, 말 없이 한참을 있다가
피곤해진 몸에 스르르 잠이 들자
종나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자요?"
"이응 이응..."
"선배, 감사합니다."
"이응..뭐?"
"그냥,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뭔 손님접대하냐? 무슨 멘트가 그랴...
야, 고마우면, 사업이나 같이 하자"
"싫어여"
"개새끼"
.
아침에 일어나 뻑쩍지근한 날갯죽지를 꺼떡대는 나를 보며
종나니가 말했다.
"선배 진짜 못생기셨네여"
"개새끼"
어머님이 해주신 뜨끈뜨끈 밥을 먹고는
너는 요리사란 새끼가 어머님이 밥을 짓게 하냐며
머리통을 때리고는 집을 나섰다.
밭 매러.
하루 종일 뜨뜻한 햇볕에서 일하다가 좀 쉬면 안되나 하는 것보다
더 눈치를 살피게 되었던 건
이 새끼가 지금 눈 앞에 주렁주렁 달린
꼬츄들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나 였다.
고추장 생각, 하나.
.
몇날 몇일을 꼬츄들 매만져주며 보냈고,
제법 그을린 내 살을 어루만지며
나는 어머님의 배웅을 받고
종나니와 길을 나섰다.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 둘 모두 말 없이
손 끝에 배인 고추 냄새에 (아 고추요 고추 그거 말고 고추!)
킁킁 대며 매워라 재채기를 하다가
서로 낄낄 웃고는 ...
나는 그만...
고추장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낄끼낄낄ㅋ크킄크ㅡㅋㅋ...야 긍데 너는, 고추장 맹그는 놈이 무슨,"
아차, 우리는 헤어진 42-
버벌이의 노래가 떠올랐고,
나능 주워담을 수 없는 말에 쩔쩔매며 눈알만 핑핑 돌렸다.
말없이 짐짓 화가 난 듯한 표정에
망했다, 나는 끝났어!
은인에게... 이 따위 말을...!
난... 죽어야 해...
창에 머리만 쿵쿵 박는데,
마침 과속방지턱을 밟은 버스 덕에 머리를 아주 쿵!!!!하고 박아버렸다.
내 죄를 버스도 아는구나.
.
돌아온 나와 종나니를 보고는
세훈이는 감격의 눈물을 금하지 못하였고,
나는 세훈이의 미간을 톡톡 치며
이 새끼 이거 지 형보다 종나니가 더 좋단다며 비웃었다.
.
종나니의 요리실력은 제법이었다.
아니,
솔직히...
갱장히 마시써ㄷ따
눙물이 날 정도로... 아 지난 내 셰프 생활은 다 헛것이었노라 할 정도로
기똥차게 맛있었다
나 따위의 고등어조림이 죄스러워질만큼,
기똥차게 맛있었다.
하기야, 제 재료 하나 빠뜨린 맛도 나랑 비등비등했는데,
다 챙겨넣은 맛은, 기똥찰 수 밖에.
씁쓸해진 혀를 츳츳 차며
나는 두 그릇을 먹었고.
이게 사람이야 짐승이야 라고 쳐다보는 종나니의
머리통을 숟가락으로 탁! 목탁 울리듯 경쾌히 쳐주며 말했다.
"예끼 이놈! 이런 실력을 나에게 진작 맛보였어야지!"
그렇게 나는 맨날맨날 종나니의 요리에 홀릭되어 살았다고 한다
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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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개그가 쓰고 싶어서
근데 나는야 잡식러 이거 원래 우정인데 자꾸 호모냄새가 날 것 같아서 여기서 멈추겠어여
스아실 비하인드 스또리는 쟤네 나중에 새롭게 고추장 사업 연다능
기회가 된다면 고추장 사업 동업하는 이야기도 난중에 쓰겠다능
고추장 하면 고추장 종이니 아니겠나여
아쉽게도 전설의 고추장 바지 김종인을 찾지 못하여 사진첨부를 못한다능
그럼 20000